허탈함과 분노를 안고 삼척 소망의 탑에서 삼척해수욕장으로 걸어갔어요. 제가 머무를 숙소는 삼척해수욕장 입구에 있었어요. 풍경이 아무 것도 눈에 안 들어왔어요. 그저 빨리 가서 신발 벗고 좀 쉬고 싶었어요. 여행이 이렇게 끝날 줄 몰랐어요. 아무리 운탄고도1330 9길 코스가 마지막 부분이 이상하다 못해 해괴하게 짜여 있기는 하지만 충격이 이렇게 클 줄 몰랐어요. 마지막에 삼척 소망의 탑 공사중은 제대로 결정타를 날렸어요.
조그만 포구가 몇 개 나왔어요. 생각없이 다 지나쳤어요. 사진도 하나도 안 찍었어요. 후진항을 지나 삼척해수욕장에 도착했어요. 삼척해수욕장은 과거에는 후진해수욕장이었다고 해요. 실제로 삼척해수욕장 바로 옆이 후진항이에요. 후진해수욕장 이름이 삼척해수욕장으로 바뀐 이유는 후진해수욕장이라고 하니까 '후지다'라는 단어를 연상하게 한다고 어감이 안 좋아서 이름을 바꾼 거라고 해요.
숙소에 도착했어요. 체크인을 했어요. 체크인하고 직원에게 먼저 버스 노선을 물어봤어요. 다음날 터미널까지 가는 버스가 있는지 물어보자 삼척은 버스가 별로 없어서 카카오택시 이용하는 게 좋다고 알려줬어요. 삼척해수욕장에서 삼척 버스 터미널까지 걸어갈 만한 거리냐고 물어보자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 거라고 했어요. 다음날은 삼척 종합시장 오일장날이었어요. 삼척 종합시장 오일장은 매 2일과 7일에 열려요. 삼척 종합시장 오일장 구경하고 삼척 버스 터미널 가서 버스 타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버스 별로 없다고 하니 다음날 또 많이 걷게 생겼어요.
"삼척에 기념품 마그네틱 파는 곳 있나요?"
"삼척은 그런 거 없어요."
"예?"
"저도 사장님께 그런 거 만들어서 팔자고 건의하고 있기는 한데, 아직은 없어요."
직원은 삼척 기념품 마그네틱은 없다고 대답했어요. 속으로 고개를 갸우뚱하며 제 방으로 올라갔어요.
방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신발을 벗고 방 안으로 들어갔어요. 도미토리 객실이었기 때문에 먼저 온 사람이 원하는 침대를 차지할 수 있었어요. 저는 1등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제가 눕고 싶은 침대를 골랐어요. 일부러 1층으로 골랐어요. 1층이 밤에 화장실 가고 물 마시러 나갔다 오기 편하거든요. 게다가 저는 새벽에 삼척해수욕장에 있는 삼척 24시간 카페도 잠깐 다녀올 계획이라 2층 침대 중 1층에 자리를 잡았어요.
양말을 벗고 화장실로 갔어요. 찬물로 발을 가볍게 냉찜질해줬어요. 통증이 가만히 있는 것보다 더 빠르게 가라앉았어요. 샤워기로 두 발과 종아리에 찬물을 끼얹어서 냉찜질한 후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아, 살겠다."
냉찜질하고 맨발로 있으니 고문받다가 풀려난 기분이었어요. 해방감이 장난 아니었어요. 잠깐 침대에 드러누워 있다가 가방에서 스마트폰 충전기를 꺼내서 콘센트에 꽂고 스마트폰을 충전했어요. 다시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대체 운탄고도 코스는 왜 그 따위로 짰지?"
또 다시 솟구치는 분노. 운탄고도1330 9길은 용서가 안 되었어요. 아무리 생각해도 맨정신으로 그렇게 코스를 짤 수 없었어요. 이건 문학적 감수성 문제가 아니었어요. 마평교를 건너는 순간 운탄고도1330 핵심 주제인 석탄과 아예 무관한 길이 이어졌어요. 짧으면 괜찮은데 마평교부터 소망의 탑까지 거리는 엄청나게 멀었어요.
'한국 석탄 산업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강원도 남부의 이야기'라는 주제는 우리나라에서 너무나 극적이고 자극적인 이야기에요. 영화 기생충에서 갑자기 쏟아진 홍수에 기택의 반지하 방이 완전히 침수되어 손 쓸 틈도 없이 한 번에 폭삭 망한 것처럼 석탄산업합리화정책이 실시되자 강원도 남부 탄전지대는 어떻게 손 쓸 틈도 없이 순식간에 망해버렸어요. 그 지역 사람들에게는 '망해버렸다'는 표현이 거슬릴 수 있지만 실제로 그랬어요. 지역 경제 침체, 지역 사회 붕괴 수준이 아니라 아예 많은 마을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운탄고도1330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이 너무나 극적이고 자극적이고 비극적 결말로 끝나는 스토리에 빠져들어요. 제가 과몰입한 게 아니라 길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단순히 정해진 코스로 길을 걸을 뿐인데 본인의 의사와 관련없이 어느 순간 이 스토리에 몰입하게 되요. 태백시부터 신기역까지 이어지는 구간은 한국 석탄 산업의 흥망성쇠와 현재 모습 모두를 너무나 생생하게 볼 수 있어요. 특히 운탄고도 8길이 클라이막스에요. 정말로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대박'이에요. 운탄고도1330 모든 구간을 다 걷지는 않았지만 운탄고도 8길만큼은 너무나 특별해요. 왜냐하면 당장 도계역 바로 뒤가 탄광 입구거든요. 도계역 바로 뒤에 거대한 저탄장이 있고, 폐석을 산 위로 운반하는 인클라인 철도가 있고,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 입구가 있어요. 대한석탄공사 도계광업소가 바로 탄광이에요. 여기에 도계 자체가 거대한 탄광촌이라서 도처에 광부사택이 있구요. 동네 색깔도 타지역과 확실히 달라요. 타지역은 비가 오면 채도가 높아져서 색이 진해지지만 도계는 비가 오면 탄가루 검은빛이 올라와서 색이 진해져요.
이렇게 스토리에 몰입해서 걷는데 마평교 지나서부터는 갑자기 '미래를 향해 달려나가는 삼척'으로 주제가 완전히 틀어져버렸어요. 여운을 음미할 틈도 안 주고 결말부 들어가니까 갑자기 미래를 향해 발전해나가는 희망찬 삼척이래요. 차라리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모두 꿈'이라는 사람 제일 열받게 하는 엔딩이 더 나을 지경이에요. 지금까지 한 이야기가 다 꿈이라는 엔딩은 최소한 이야기 흐름은 이어지잖아요. 비록 몇 시간 실컷 본 이야기가 전면 부정당하기는 하나 그게 고작 어떤 인간의 꿈, 상상에 불과했다는 논리적인 전개는 있어요. 그러나 운탄고도1330 9길 결말부는 그런 논리적 전개가 아니라 이야기 흐름 자체가 끊어져버렸어요. '그건 옛날 이야기고 지금은 이래'라고 이야기 흐름이 연결되지 않고 결말부 혼자 따로 놀고 있었어요.
그래요, 백 번 천 번 양보해요. 과거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앞으로 나아가는 삼척이라고 어떻게 연결된다고 칩시다. 삼척항까지는 그래도 그럴 수 있어요. 길이 삼척항에서 끝났다면 삼척장미공원을 지나가게 만든 것도 이해할 수 있어요. 마지막에 장미꽃 향기 맡으며 완주에 대한 축하 꽃다발 받는 기분 느끼며 삼척항에서 만세 부르라고 하면 되니까요. 문제는 삼척항에서 길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삼척항에서 또 실컷 걸어서 삼척 소망의 탑까지 걸어가도록 길이 설정되어 있었어요. 이건 아무리 봐도 너무 억지로 코스를 잡아늘려놨어요.
전날 걸은 운탄고도1330 3길과 이날 걸은 운탄고도1330 9길에서 공통적으로 보인 점이 있었어요. 바로 이거 왠지 계획 후 사업 진행 단계에서 계획 몇 번 바뀌었을 거에요. 그렇게 보면 이해가 되요. 원래는 운탄고도1330을 등산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백두대간 종주, 지리산 종주하는 것처럼 걸으라고 만들기로 계획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일반인도 걷기 여행으로 와서 걷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걷기 여행으로 홍보한 결과 발생한 문제가 운탄고도 3길 수라리재에서 드룹산 방면 하산길일 거에요. 그리고 이왕 강원도 남부를 횡단하는 거대한 도보 여행 코스 만들 거면 소망의 탑에 건설될 감성로드 전망대도 와서 보게 하자고 코스를 소망의 탑까지 추가로 붙였을 거에요.
그러나 이것만으로 이틀간의 불만이 다 설명되지는 못 했어요. 3길이야 그렇다 쳐요. 대체 9길은 엔딩이 왜 이 따위가 되었고 서사의 흐름이 왜 이렇게 이상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완벽한 답이 되지 않았어요.
동해시가 참여하지 않아서 그래.
머리를 굴려서 내놓은 답은 동해시가 운탄고도1330 조성 사업에 참여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였어요. 만약 동해시가 운탄고도1330 조성사업에 참여했다면 서사의 흐름 관점으로 보면 코스가 훨씬 나아졌을 거에요. 실제 삼척탄전에서 생산되는 석탄은 현재도 동해역으로 이동해요. 과거에는 동해역을 거쳐 선박수송해야 하는 석탄은 묵호항선을 타고 묵호항까지 이동했구요. 동해시 묵호 지역이라고 하면 바닷가 어촌 마을, 논골담길과 등대 정도 떠올리지만 여기가 진짜 석탄과 관련있는 지역이에요. 석탄을 선박으로 운송하기 위해서는 석탄을 묵호항으로 운반해야 했고, 묵호에서 잡힌 생선은 기차를 타고 도계, 태백으로 이동했어요. 강원도 동해시 묵호 지역 쇠락의 가장 큰 원인은 어획량 감소이지만 거대 배후 시장이었던 강원도 남부 탄광촌의 몰락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이상적인 운탄고도 여행 코스는 원래 영동선 따라 도경리역으로 가서 그쪽에서 어떻게 동해시로 들어가서 묵호항까지 가는 코스라 봐야 해요.
영동선 따라서 도경리역에서 동해시로 들어가게 하면 삼척이 내륙지역만 지나간다고 싫어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타협을 해서 9길은 적당히 소망의 탑이나 삼척해수욕장, 삼척항 셋 중 하나에서 끝내고 동해시 묵호항까지 걷는 10길을 만들 수도 있었을 거에요. 이러면 중간에 삼척시내 구간에서 조금 이상해지기는 하지만 커다란 흐름에서 별로 안 벗어나기 때문에 괜찮아요.
'동해시가 왜 참여 안 했지?'
1안인 도경리역을 지나 동해시로 가는 루트는 새로 길을 만들어야 해서 돈 아까워서 안 했다고 쳐요. 2안이라면 동해시는 돈 거의 안 쓰고 밥숟가락만 얹는 수준이에요. 왜냐하면 2안의 길은 대부분 해파랑길 33코스와 겹치거든요. 해파랑길 33코스에 적당히 군데군데 운탄고도1330 안내 표식 리본이나 몇 개 매달아주면 끝이에요. 이러면 운탄고도1330도 애매한 9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10길로 끝나서 더 완성도 있어 보이고, 동해시도 운탄고도1330 여행객들 추가로 오니까 관광수입이 더 늘어날 거에요. 이렇게 된다면 사람들이 동해시 천곡동이나 발한동에서 밥 한 끼라도 더 먹을 거고, 밥 안 먹고 굶으며 걷는다 쳐도 묵호역 이용객이 증가하니 코레일한테 큰 소리 칠 수 있을 거에요.
운탄고도1330 3길과 9길 덕분에 아직 안 걸어본 1길, 2길, 4길, 5길, 6길은 가보고 싶으면서 가보기 싫어졌어요. 7길은 가보고 싶지만 거긴 완공 전에는 인간이 걸어서 갈 곳이 아니라고 결론지었구요.
"삼척 마그네틱이나 찾아보자."
삼척시도 관광기념품 마그네틱이 있었어요. 여행 오기 전에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곳이 있다는 글을 봤어요. 인터넷으로 검색했어요.
"쏠비치!"
쏠비치 삼척 안에 있는 기념품점에 가면 삼척 관광기념품 마그네틱을 구입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쏠비치 삼척 위치를 찾아봤어요. 삼척해수욕장 끄트머리에 있었어요. 제가 있는 쪽과 완벽히 반대 방향 끄트머리였어요. 가는 길에 삼척해변역 근처도 지나갔어요.
"삼척해변역 갔다가 삼척 마그네틱 사러 가야겠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다시 양말을 신었어요. 신발을 신고 밖으로 나왔어요. 삼척해수욕장 백사장을 따라 북쪽으로 걸어갔어요.
삼척해변역 입간판이 나왔어요.
굴다리 위가 삼척해변역이었어요. 굴다리 위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갔어요.
삼척해변역은 삼척선 기차역이에요. 코레일 바다열차는 강원도 강릉시 강릉역부터 삼척시 삼척역까지 운행되는 관광열차로, 1일 2회 왕복 운행해요. 운행시간은 약 1시간 20분이며, 인기가 정말 좋아요. 사람들이 동해안 여행 우루루 갈 때는 바다열차 예매가 매우 힘들기로 유명해요.
강원도 삼척시 코레일 관광열차 바다열차 기차역 삼척선 삼척해수욕장 삼척해변역 대합실로 갔어요.
강원도 삼척시 갈천동에 위치한 삼척해변역은 1944년 2월 11일부로 개업한 기차역이에요. 1944년 2월 11일에 동해~삼척간 연장개통되자 후진역이란 이름의 역원무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했어요.
삼척해변역 역시 삼척, 동해, 강릉 간 버스가 정기 운행되자 사람들이 전부 버스 타고 다니면서 승객이 급감해서 1991년에 여객 수송을 중단했어요. 그러나 여름마다 삼척해수욕장을 찾아오는 관광객이 증가하자 2001년 7월 1일에 다시 영업을 개시했고, 2003년에 삼척해변역으로 역명이 바뀌었어요. 현재 삼척해변역은 코레일 관광열차만 정차하는 기차역이에요.
담장 너머에서 삼척해변역 플랫폼을 바라봤어요.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어요. 아까 봤던 미로역 플랫폼과는 차원이 달랐어요.
삼척해변역을 뒤로 하고 쏠비치 삼척 리조트를 향해 걸어갔어요.
동해시를 들썩이게 했던 쏠비치 삼척 리조트.
웃음이 나왔어요. 예전에 동해시 여행 갔을 때 택시기사분으로부터 쏠비치 삼척 리조트 비화를 들었어요. 쏠비치 삼척 리조트는 원래 동해시 천곡동 한섬해변에 건설할 계획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동해시가 조금 더 유리한 조건으로 계약하기 위해 협상에서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시간을 끌었다고 해요. 한편 천곡동 한섬해변은 부지가 좁다는 문제도 있었어요. 이렇게 동해시와 쏠비치가 서로 줄다리기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쏠비치가 삼척해수욕장에 쏠비치 삼척을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대요. 삼척시는 동해시와 쏠비치의 줄다리기에 전혀 신경 안 쓰고 멍하니 있다가 삼척해수욕장에 랜드마크인 쏠비치거 들어오는 초대박 횡재했다고 해요.
쏠비치 삼척 리조트로 갔어요. 쏠비치 삼척 리조트 안에 있는 굿앤굿스 쏠비치삼척점에서 삼척 마그네틱을 판매한다고 했어요. 직원분께 굿앤굿스 쏠비치삼척점을 물어봤어요. 직원분이 길을 알려줬어요. 굿앤굿스 쏠비치삼척점은 쏠비치 삼척 건물 정문으로 들어간 후 오른쪽으로 꺾어서 쭉 가면 있었어요.
굿앤굿스 쏠비치삼척점으로 들어가서 한 바퀴 둘러봤어요. 마그네틱이 안 보였어요. 직원분께 마그네틱 있냐고 물어봤어요. 직원분이 저를 마그네틱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데려갔어요.
삼척 마그네틱을 구입했어요. 삼척 마그네틱을 구입한 후 밖으로 나왔어요.
쏠비치 삼척 리조트를 뒤로 하고 삼척해수욕장으로 갔어요.
바다를 바라봤어요. 날이 저물고 있었어요. 하늘에 노을이 붉게 물들고 있었어요. 완전히 깔끔하게 맑은 하늘은 아니라서 아주 시뻘건 저녁 노을은 아니었어요.
'운탄고도1330 9길이 과연 단점만 있을 건가?'
삼척해변역을 구경하고 삼척 마그네틱을 사자 기분이 좋아졌어요. 바다를 보며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이대로 여행기 쓰면 운탄고도 9길 완전 욕 바락바락 쏟아부을 건데...'
운탄고도1330 9길에서 완전히 벗어났어요. 그래도 운탄고도1330 9길 마지막 부분은 용서가 안 되었어요. 도대체 어째서 코스를 그렇게 짰는지 직접 물어보고 싶었어요. 악평만 실컷 쓰고 싶었어요.
'아니야, 쫀떡궁합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돼.'
베스킨라빈스31 쫀떡궁합 아이스크림이 준 교훈을 상기했어요. 베스킨라빈스31에서 쫀떡궁합 아이스크림을 출시했을 때 찌익 늘어나는 떡이 너무 싫어서 블로그에 후기 쓸 때 이거 최악이라고 악평을 쏟아내었어요. 다시는 먹지 않고 싶은 아이스크림이었어요. 그런데 그건 저만 그랬어요. 베스킨라빈스31 쫀떡궁합은 최근 5년간 배스킨라빈스에서 출시한 신메뉴 아이스크림 중 손꼽히게 크게 흥행한 아이스크림이 되었어요. 쫀떡궁합 아이스크림이 얼마나 크게 흥행했는지 쫀떡궁합 아이스크림은 배스킨라빈스 매장에 심심하면 등장했고, 배스킨라빈스는 쫀떡궁합 아이스크림 비슷한 신메뉴 아이스크림을 몇 종류 더 출시했어요.
제가 화나고 싫은 건 화나고 싫었다고 해야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 주관적 판단이에요. 글을 쓸 때 자기 취향에 안 맞는다고 나쁘고 형편없다고 확 긁어버리는 거 별로 안 좋아요. 정말 분노하게 했더라도 어떤 사람들이 좋아할지 몇 번은 생각해봐야 해요. 그게 바로 베스킨라빈스31 쫀떡궁합 아이스크림이 제게 준 인생의 교훈이었어요.
바다를 보며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먼저 코스 종점인 삼척 소망의 탑부터 떠올려봤어요. 서사 진행상 삼척항에서 끝냈어야 했어요. 소망의 탑까지 추가로 걸어가라고 하는 건 진짜 아니었어요. 그렇게 할 거라면 차라리 삼척해수욕장까지 걷게 만드는 게 더 나았을 거에요. 하지만 한편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삼척항에서 끝내도 애매하고 삼척해수욕장에서 끝내는 것도 애매했어요. 만약 삼척항에서 끝낸다면 삼척에서 숙박하고 싶은 사람이나 이왕 온 김에 바닷가 백사장 구경도 하고 싶은 사람은 되게 애매해져요. 삼척시 숙소는 주로 삼척해수욕장 쪽에 몰려 있거든요. 반대로 삼척해수욕장까지 가라고 하면 길 걷고 바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이 애매해져요. 삼척해수욕장에서 삼척 버스 터미널까지 안 가까워요. 게다가 삼척항 가서 해산물 먹고 대게 먹고 싶은 사람도 있을 거에요. 길을 끝낼 만한 지점은 삼척항 아니면 삼척해수욕장인데 둘 다 애매하니 둘 사이에 있는 삼척 소망의 탑으로 끝냈다고 본다면 납득이 되었어요.
'운탄고도 9길은 누가 좋아할까?'
어쩌면 이 불만, 나만의 불만일 수도 있어.
운탄고도 8길을 걸은 후 9길을 걸었기 때문일 수 있어.
운탄고도 9길만 본다면 길이 꽤 괜찮았어요. 운탄고도 9길만 놓고 보면 삼척시 종합 관광 코스였어요. 삼척 내륙 오십천 곡류와 절벽, 산, 철도가 어우러진 비경 보죠, 죽서루 보죠, 삼척장미공원 보죠, 삼표시멘트 삼척공장 보죠, 여기에 나릿골 감성마을과 삼척항도 보죠, 소망의 탑도 보죠 - 뭐 하나 빠지는 게 없어요. 삼척 내륙과 시내 볼 거리는 거진 다 둘러봐요.
삼척으로 와서 버스 타고 신기역으로 가서 길을 시작하는 최악의 선택만 안 하면 되었어요. 삼척시 와서 신기역까지 운탄고도 9길을 역방향으로 걸어가거나 타지역에서 기차 타고 신기역으로 가서 신기역에서 삼척시내 방향으로 운탄고도 9길을 순방향으로 걸어간다면 삼척 종합 관광 코스라고 매우 좋아할 거에요.
운탄고도 8길만 먼저 안 걸으면 되요. 아니, 8길 걸은 후 바로 9길 걷지만 않으면 되요. 이거 하나만 조금 신경쓰면 되요. 8길 걸은 후에 얼마 안 되어서 9길 걸으면 9길이 진짜 지루하고 재미없고 길어서 피로누적으로 힘들기만 해요. 한 번에 쉬지 않고 완주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몇 번에 걸쳐서 걸어서 완주하는 것이 목표라면 8길 걷고 텀을 둔 후 9길 걸으면 되요. 아니면 9길만 따로 걷고 나서 나중에 8길을 가든가요. 또는 9길부터 거꾸로 가서 9길 걷고 8길 가는 것도 좋아요.
이렇게 보니 운탄고도 9길도 좋은 길이었어요. 어쩌면 정말로 제가 운탄고도 8길 걷고 너무 감동한 지 얼마 채 되지 않아서 운탄고도 9길을 걷는 바람에 혼자 실망한 거일 수도 있었어요.
어둠이 바다에 깔리고 있었어요. 멀리 수평선에는 배들이 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