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잤어요. 마음놓고 잤어요. 버스가 종점에 도착할 때까지 깨어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었어요. 태백 시내버스 4번 종점은 태백버스터미널이었어요. 태백버스터미널은 성지사우나에서 가까웠어요. 황지동 중앙로에서 성지사우나로 가기 위해서는 태백버스터미널, 태백역 쪽으로 가야 했어요. 그래서 어찌 되든 괜찮았어요. 태백역 역전에는 별 거 없어서 종점까지 간다면 다시 황지연못으로 걸어가야 했지만 그 정도는 상관없었어요.
두 눈을 떴어요. 창밖을 봤어요. 매우 익숙한 풍경이었어요. 굴다리가 보였어요. 상장동 벽화마을로 가기 위해 내려야 하는 정류장이었어요. 전에 태백시 여행왔을 때 상장동 벽화마을 가기 위해서 내렸던 정류장이라 이쪽 동네 길은 대충 알고 있었어요. 그때도 깜깜할 때 상장동 벽화마을로 갔는데 이번에도 깜깜한 밤이었어요.
"장성동은 이번에도 제대로 못 봤네."
태백시 4번 시내버스를 타고 태백시 시내 주요 지역을 두 번째 돌아봤어요. 지난 번에 와서 돌아볼 때도 장성동은 너무 깜깜해진 후라 제대로 보지 못했어요. 어두워서 장성동 어디에서 내리면 좋을지 판단하지 못 하고 있다가 상장동까지 갔어요. 이번에는 자다가 장성동을 지나쳐버렸어요. 상장동은 이번에는 지나쳤지만 지난번에 비록 밤이기는 했어도 버스에서 내려서 동네를 돌아다녀봤어요.
게임 맵으로 비유하면 태백시 장성동은 분명히 2번이나 지나갔지만 여전히 깜깜한 어둠의 영역이었어요. 태백시 장성동이 어떤 동네인지 몰라요. 태백 4번 버스 노선 주변 풍경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고 있지만 장성동 구간만큼은 몰라요. 만약 태백 버스 1번을 타고 돌았다면 장성동을 햇볕이 남아 있는 시간에 봤을 거에요. 그러나 1번 버스를 타고 돌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어요. 만약 1번 버스를 타고 돌았다면 정작 태백시에서 단풍이 가장 아름답다는 철암 갔을 때는 이미 깜깜해져서 아무 것도 안 보였을 거였어요.
'다음에 또 태백 여행 오면 그때는 꼭 장성동 간다.'
제 여행 스타일 상 이렇게 두 번이나 지나가는데 두 번이나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에요. 저는 걸어다니며 동네의 분위기와 풍경을 온몸으로 즐기는 여행을 좋아해요. 여행 가면 대부분 걸어다니기 때문에 여행 일정 짤 때 하루 동선이 10km 넘지 않게 짜려고 해요. 10km가 별 거 아닌 거 같지만 여행 가서 순수하게 지도상 동선으로 10km면 실제로는 거의 2배 더 걷는다고 봐야 해요. 얌전히 지도에 나와 있는 동선만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샛길도 들어가보고 건물도 들어가보고 계단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도 있다 보니 실제 걸음수를 보면 상당히 많이 나와요.
그 다음에는 주로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요. 대중교통으로 다닐 때도 태백시에서 4번 버스 타고 돌아다닌 것처럼 조금씩 잘라가며 다녀요. 이렇게 다니는 것도 좋아하기는 하는데 실제 여행 가면 이렇게 계획했다가도 조금씩 조금만 주변 구경 더 해볼까 하다가 한 정거장 한 정거장 더 가면서 결국 걸어가고 있어요.
처음부터 강원도 태백시 장성동은 단순히 태백시 4번 버스가 지나가는 곳 정도로 넘길 계획은 아니었어요. 장성동도 한 번 가볼 생각은 있었어요. 하지만 두 번 연속으로 늦어서 못 가게 되었어요. 이렇게 두 번이나 놓쳐서 못 간 곳은 제 여행 스타일 상 거의 없어요. 애초에 가지 않겠다고 하거나, 간다고 하면 두 번째에서는 무조건 가요. 하지만 희안하게 장성동은 한 번 가보기로 마음먹고 있는 곳인데 두 번이나 지나쳤어요. 그냥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깜깜할 때 지나가서 장성동이 어떻게 생긴 동네인지 전혀 감도 못 잡고 있었어요. 두 번 지나가면 그래도 대충 감은 잡는데 장성동은 그것도 안 되었어요.
상장동까지 온 것을 확인한 후 또 졸았어요. 내릴 때가 슬슬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에 선잠을 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했어요. 대학교 다닐 때 지하철에서 손잡이 잡고 서서 자던 것이 여기에서 도움되었어요. 순간적으로 정신줄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며 눈을 떴어요. 졸았다고 하기에는 너무 깊이 잠들었어요. 그렇다고 깊이 잠들었다고 하기에는 매우 짧은 시간 동안 잠들었다 깨었어요.
2022년 10월 20일 오후 6시 40분, 태백 4번 버스가 태백영프라자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버스에서 내렸어요.
"졸려 죽겠네."
잠기운이 가시지 않았어요. 버스에서 잤더니 버스에서 내리자 살짝 어지러웠어요. 잠기운에서 벗어나기 위해 황지연못 쪽으로 걸어갔어요.
2022년 10월 20일 오후 6시 44분 태백시 황지동 기온은 섭씨 9도였어요.
"카페 없나?"
황지연못 쪽에는 카페가 의외로 별로 많지 않아요. 서울 같은 곳에서는 도심에 유명한 공원이 있으면 인근에 카페가 매우 많아요. 그러나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황지연못 황지공원 주변에는 카페가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전에 왔을 때나 이번에 왔을 때나 마찬가지였어요.
"카페 괜찮은 곳 있으면 좋을 텐데..."
시간이 애매하게 남았어요. 한 시간을 걸어다니기에는 다음날 일정이 계속 걸렸어요. 다리와 발 상태가 그렇게 좋지 않았어요. 살살 걸어도 한 시간 걸으면 당연히 다리와 발에 무리가 온 상태에서 더 무리가 될 거였어요. 기온도 살살 걷기에는 전혀 도움되지 않았어요. 가만히 있으면 추웠어요.
'저녁이나 먹을까?'
한 시간 남짓 남은 시간 동안 저녁을 먹을지 고민했어요. 아직 뱃속에 아까 먹은 물닭갈비가 남아 있었어요. 별로 배가 고프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직도 배가 조금 불렀어요. 소화가 조금 되기는 했지만 저녁을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이 시각에 황지동에서 저녁 먹을 만한 곳이라고는 부래실비식당 육회비빔밥 정도였어요. 부래실비식당은 다음날 새벽에 아침 먹으러 갈 예정이었어요. 저녁 먹는 것도 영 아니었어요.
'카페 괜찮은 곳 있나 돌아다니면서 찾아봐야겠다.'
황지연못 황지공원을 돌아다니며 괜찮은 카페가 있는지 찾아보기로 했어요. 황지연못 황지공원 주변에 있는 카페는 대체로 규모가 크지 않았어요. 한 시간은 버텨야 했기 때문에 적당히 괜찮아보이는 카페가 있으면 들어가기로 했어요.
황지공원을 걸었어요. 주변에 있는 카페를 하나씩 꼼꼼히 살펴봤어요.
"저기 괜찮아보인다."
'페이스투페이스'라는 카페였어요. 페이스투페이스 카페로 갔어요.
"여기 예쁘다."
입구쪽에는 야외 좌석도 마련되어 있었어요. 야외 좌석은 좁았지만 매우 예쁘게 생겼어요. 만약 기온만 따스했다면 커피를 들고 나와서 밖에서 마시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어요. 한 시간 동안 앉아 있어야 하니 초가을까지는 야외 좌석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을 거에요. 아쉽게도 제가 갔을 때는 가을이었어요. 태백시 황지동 기온은 9도 아래로 내려가 있었어요. 밖에서 앉아서 마시며 한 시간 동안 시간을 보내기에는 기온이 너무 낮았어요.
"이거 조금 태백시 같다."
흔히 야외 좌석은 넓은 편이에요. 넓지 않아도 앞이 도로 같은 거라 실제 카페 야외좌석 영역보다 훨씬 더 넓어보여요. 페이스투페이스 카페의 야외 좌석은 카페 건물과 담벼락 사이 좁은 공간에 마련되어 있었어요. 카페 건물과 담벼락 사이 좁은 공간에 마련된 야외 좌석이 태백시 풍경과 통하는 것이 있었어요. 태백시도 도처가 산이고, 산 사이에 하천을 따라 조금 있는 평탄면에 주거지와 가게가 밀집해 있어요. 건물과 담벼락을 산으로 본다면 참 태백시스러운 모습이었어요.
운탄고도1330 6길 종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페이스투페이스 카페 안으로 들어갔어요.
자리를 잡고 음료를 주문하러 갔어요. 한 시간만 앉아서 쉬다가 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했어요.
강원도 태백시 황지연못 황지공원 운탄고도1330 6길 카페 페이스투페이스의 아이스 아메리카노 맛은 맑고 경쾌했어요. 산미가 살짝 있고 고소했어요. 맛은 혀뿌리 쪽에서 많이 느껴졌고 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향이 퍼졌어요. 커피가 시원하고 맑아서 쭉 들이켜서 그렇게 느껴졌어요. 여름에 시원하게 한 잔 들이켜면 좋을 맛이었어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페이스투페이스 카페 안에는 콘센트가 없었어요. 콘센트가 있었다면 스마트폰을 충전했을 거였어요. 아니면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서 하루 있었던 일을 컴퓨터에 정리했을 거였어요. 하지만 페이스투페이스 카페 안에는 콘센트가 없었기 때문에 가방에서 노트북 컴퓨터를 꺼내지 않았어요. 노트북 컴퓨터 배터리가 완충되어 있었기 때문에 꺼내서 사용해도 되기는 했지만 콘센트가 없으니 꺼내는 것 자체가 귀찮아졌어요.
카카오톡에서 제 자신에게 보내는 메세지로 하루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메모하기 시작했어요. 스마트폰 배터리가 계속 줄어들었어요. 그래서 조금 메모하다가 그만두고 카페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멍하니 앉아 있기에 매우 좋았어요.
카페로 사람들이 왔어요. 배달하러 온 사람도 있었어요. 이 근방에서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카페 같았어요.
"이제 나가야겠다."
2022년 10월 20일 19시 50분,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지금부터 천천히 걸어가면 성지사우나에 도착했을 때 8시가 넘어 있을 거였어요.
'조금만 더 돌아다니다가 찜질방 갈까?'
막상 찜질방으로 가려니 조금 아쉬웠어요.
'황지천 쪽이나 조금 보다 가야겠다.'
황지천 쪽을 구경하고 가기로 했어요.
황지공원 입구로 돌아왔어요.
2022년 10월 20일 밤 8시 23분, 태백시 황지동 기온은 섭씨 6도였어요. 그새 3도 떨어졌어요.
태백시 24시간 찜질방인 성지사우나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아무 생각 없었어요. 피곤하고 졸렸어요. 커피를 마셨지만 잠이 하나도 안 깨었어요. 애초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신다고 잠이 깨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어요. 만약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고 잠이 깰 거였다면 카페인 없는 음료를 마셨을 거였어요. 다음날도 새벽에 출발해야 해서 찜질방 가자마자 바로 자야 하는데 잠 설치면 큰일이었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신다고 잠이 깰 리 없었어요.
머리 속이 멍했어요. 아무 생각 없었어요. 특별히 감흥있는 풍경도 없었어요. 익숙한 길이었고, 익숙한 풍경이었어요.
'그때 그 찐빵집 열었을 건가?'
지난 번에 태백시 왔을 때 저녁에 찐빵 사먹었던 가게가 떠올랐어요. 찜질방 가는 길에 지나가는 길에 있었어요. 만약 찐빵집이 장사중이라면 그때처럼 찐빵 사서 먹으며 찜질방으로 가기로 했어요.
빨리 가서 잠이나 자랍니다.
찐빵집은 문을 닫았어요. 찜질방 가는 길에 마지막으로 잠시 시간을 또 거리에서 보낼 거라면 찐빵 사먹는 것 뿐이었는데 찐빵집이 문을 닫았으니 더 이상 거리에서 시간을 허비할 이유가 없었어요. 그대로 찜질방으로 갔어요.
2022년 10월 20일 오후 8시 39분, 찜질방에 도착했어요. 목욕탕으로 가서 다리를 냉찜질해주고 온탕에 몸을 담갔다가 다시 다리를 냉찜질해주기를 몇 번 반복했어요. 그렇게 몇 번 하자 다리 피로가 많이 가셨고, 발 통증도 상당히 많이 가라앉았어요. 샤워를 간단히 하고 찜질방으로 올라갔어요. 스마트폰 충전기를 콘센트에 꽂고 스마트폰을 충전시키고 바로 잠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