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엽서는 언제 받을 것인가.
포스트크로싱을 시작했어요. 1월에 시작해서 엽서 5통을 보냈어요. 이 엽서 5통 중 한 통이라도 등록이 되어야 제가 엽서를 받을 수 있었어요. 포스트크로싱은 엽서를 받은 사람이 엽서 받았다고 포스트크로싱 사이트에 엽서 ID 코드를 등록해줘야 누군가로부터 엽서를 받을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본인이 엽서를 보냈다고 바로 어떤 사람이 본인에게 엽서를 보내주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엽서를 빨리 받고 싶다.
당연히 엽서를 보내면서 빨리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엽서를 통해 한국을 세계에 알린다는 재미도 있지만 엽서를 받아야 포스트크로싱이죠. 엽서를 못 받고 보내기만 하면 그건 포스트크로싱이 아니라 포스트센딩인데 포스트센딩만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의정부, 도계, 하고사리역으로 사진 엽서를 만들었고, 어서 빨리 세계에 이들 지역을 알리고 싶었어요.
이론적으로 엽서를 많이 보내면 많이 받을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보내고 싶다고 100통 1000통 마구 보낼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에요. 본인이 보낸 엽서를 상대방이 등록해줘야 새롭게 엽서를 보낼 주소와 엽서 ID 코드가 발급되요. 그러니까 무조건 엽서 받은 사람이 엽서를 등록해줘야만 또 엽서를 보낼 수 있고 엽서 받을 확률도 높아져요. '받는 엽서'라고 하지 않고 '엽서 받을 확률'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엽서는 중간에 분실되는 경우도 좀 있거든요.
처음 포스트크로싱을 시작하면서 주소를 하나씩 받을 때마다 카드 게임 할 때 카드를 한 장씩 까보는 쫄깃함이 있었어요.
일본! 일본! 제발 일본!
마치 최강의 패가 등장하기를 바라는 것처럼 일본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랬어요.
일본은 엽서 금방 가고 금방 온단 말이야!
첫 번째 포스트크로싱 엽서의 맛을 느껴보고 싶은데 한국과 엽서가 가장 빠르게 왕래하는 국가는 당연히 일본이에요. 일본은 빠르면 1주일, 늦어도 2주일 안에 엽서가 도착해요. 일본 도쿄 여행 갔을 때 일본 도쿄에서 제게 엽서를 보내었을 때는 거의 일주일만에 엽서가 도착했어요. 그러니까 빠른 엽서 교류를 원한다면 무조건 주소에 일본이 떠야 했어요.
주소를 받는 게 아니라 무슨 카드 하나씩 까보는 느낌으로 계속 주소를 받았어요. 그러나 일본은 뜨지 않았어요. 일본은 고사하고 타이완도 안 떴어요. 멀리 머나먼 미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핀란드만 나왔어요.
'이건 보내고 2월말이나 되어야 한 통 받을까 말까겠네.'
살다살다 카드를 쪼는 것도 아니고 엽서 보낼 주소를 쪼는 맛. 결과는 내가 이런 거 해서 좋은 거 뜨는 일을 못 봤어요. 오죽하면 남들 다 사는 로또, 즉석복권도 내 인생에 이런 운은 없다는 것을 알고 돈 아까워서 절대 안 사요. 그래도 바꿀 수 없고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미국, 독일, 이탈리아, 러시아, 핀란드로 엽서를 보냈어요. 제가 보낸 엽서가 등록되기까지 예상 한 달이었어요.
2023년 1월 3일에 보낸 엽서 중 가장 먼저 등록된 엽서는 독일로 보낸 엽서였어요. 1월 21일에 등록되었어요. 그리고 3일 뒤인 1월 24일에는 미국으로 보낸 엽서가 등록되었어요. 1월 29일에는 러시아로 보낸 엽서가 등록되었고, 2월 1일에는 이탈리아로 보낸 엽서가 등록되었어요. 핀란드로 보낸 엽서는 감감무소식이에요. 이건 핀란드가 너무 추워서 엽서가 가다가 얼어죽었나봐요. 아니면 꽝꽝 언 냉동엽서가 되어서 날 풀리고 자연 해동되어야 도착할 건가 봐요. 러시아도 엽서가 잘 도착했는데 핀란드는 아직도 깜깜무소식이라니 이해가 어려웠어요.
그렇다, 다시 주소를 까보자.
4통이 등록되었기 때문에 엽서 보낼 주소 4개까지 또 받을 수 있었어요. 일단 2개만 해보기로 했어요. 한 번에 4통 다 쓰려고 하면 힘들더라구요. 손글씨에 영어로 써야 하다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일단 2개를 받아보기로 했어요. 쫄리는 마음으로 마우스를 클릭했어요. 마우스 짤깍하는 느낌이 받은 카드를 살살 쪼아서 까볼 때 그 맛이었어요.
일본! 일본! 제발 일본!
역시 내가 변할 리가 없어요. 빨리 엽서를 보내고 빨리 엽서를 보내는 최강의 주소는 일본. 일본이 뜨면 10여일이면 한 통 등록될 거에요. 빠르면 일주일이구요. 어쨌든 많이 보내야 받을 엽서도 늘어나요. 지금 다양한 나라, 다양한 엽서 같은 거에 생각 없었어요. 무조건 빨리 한 통 받아보고 싶었어요. 나도 엽서 받는 맛 느끼며 포스트크로싱의 참맛을 느끼고 싶었어요.
떴다!
일본까지는 아니어도 빠른 주소 하나 나왔다!
타이완이 나왔어요. 타이완도 한국에서 보낸 엽서가 빨리 도착하는 나라에요. 일본만큼은 아니지만요. 이러면 운 좋으면 2월에 한 통 받을 수도 있었어요. 제 주소를 받은 사람 중 일본, 타이완이 있어야 가능하겠지만요. 그래도 확률이 급상승했어요.
엽서 2통을 보내고 돌아왔어요. 순간 웃겼어요.
나란 인간, 참 세상에 찌들은 인간인가.
남들은 순수한 마음으로, 하얀 마음으로 즐겁게 엽서를 교환하고 있는 포스트크로싱. 저는 아 무조건 빨리 한 통 받아보고 싶다고 주소 받을 때마다 무슨 화투짝 까보는 것처럼 하고 있었어요. 이러면 안 되요. 건전하고 새로운 것을 즐기기 위해 시작한 포스트크로싱인데 나란 인간은 여기에서도 빨리 엽서 가는 나라 주소 뜨라고 기원하며 주소를 받는 게 아니라 주소를 까서 보고 있었어요. 사실 꾸준히 엽서 보내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받을 엽서이고, 제가 이번 한 번만 하고 끝낼 거도 아니고 앞으로 계속할 건데 나란 인간은 참 세상에 찌들어있나봐요.
2023년 2월 4일 토요일. 별 생각없이 우편함을 들여다봤어요.
"저거 뭐지?"
얼핏 보이는 종이가 있었어요. 전단지, 일반 편지봉투와는 뭔가 다른 물체였어요. 우편함에 들어 있는 것을 꺼내봤어요.
"왔다!"
드디어 떴습니다.
일본이 나왔어요!
내가 주소 받아볼 때는 절대 안 나오던 일본이 반대로 제 주소가 일본인에게 나왔어요.
일본, 믿고 있었다구!
포스트크로싱 시작 정확히 한 달 만에 엽서를 받았어요. 아마 전날인 2월 3일에 도착한 걸 그날은 우편함을 신경쓰지 않고 보지 않아서 넘어갔을 거에요. 국제 랜덤 엽서 교류인데 시작한지 한 달만에 엽서를 받았다면 제 예상보다 정말 빨리 받았어요. 아무리 보낼 주소에 일본이 뜨고 본인에게 엽서 보내는 사람이 일본이 떠도 엄청 운좋고 빠르면 2주, 보통 20일은 잡아야할 거에요. 역시 일본 믿고 있었어요. 제 쪽에서든 제 주소를 받는 상대쪽에서든 일본만 뜨면 운이 좋으면 한 달 안에 엽서를 받을 수 있을 건데 이게 이뤄졌어요.
일본인이 보내준 엽서는 벚꽃 엽서였어요.
일본인이 보내준 일본 엽서는 벚꽃 엽서였어요. 앤틱한 느낌이 있는 벚꽃 엽서였어요. 일본 벚꽃 엽서 속 벚꽃은 홑벚꽃이 만개하고 있었어요.
오늘 모처럼 날씨 따스한 입춘인데 벚꽃 엽서!
너무 딱이잖아!
2023년 2월 4일은 입춘이에요. 24절기 중 봄의 시작이에요. 집 대문 앞에 입춘대길 건양다경 立春大吉 建陽多慶 쓴 종이를 붙여놓아야하는 날이에요. 입춘날에 봄의 상징 벚꽃 엽서를 받았어요.
우표는 두 장 붙어 있었어요. 20엔짜리 우표 1장과 50엔짜리 우표 1장이었어요.
왼쪽 20엔짜리 우표는 우라시마 타로 우표였어요. 우라시마 타로는 일본 민담에 나오는 인물이에요. 우라시마 타로라는 사람이 거북이를 구해주었는데 알고보니 거북이가 용왕의 딸이라 용궁으로 초청받아 며칠간 융숭한 대접을 받으며 매우 즐거운 날을 보냈어요. 하지만 집과 아내가 그리워져서 돌아가고 싶다고 하자 용궁에서는 보물상자를 주면서 절대 열어보지 말라고 했어요. 우라시마 타로가 돌아와보니 마을은 이미 300년이 흐른 후였어요. 우라시마 타로는 너무 충격받은 나머지 별 생각 없이 용궁에서 선물 상자를 열어봤고, 상자에서는 구름이 나오더니 우라시마 타로는 노인으로 변해버렸어요. 우라시마 타로의 300년 노화를 가둬놓은 것이 바로 선물상자였어요. 늙은 우라시마 타로는 학이 되어서 하늘로 승천했다고 해요.
이런 스토리는 동양권에서 종종 보이는 유형의 스토리에요. 우리나라도 신선 둘이 바둑 두는 것을 구경하고 돌아왔더니 마을에서는 몇백년 흘러가 있었다는 전래동화도 있고, 선계나 용궁 같은 곳으로 다녀왔더니 마을은 몇 백년 시간이 흘러갔다는 유형이에요.
50엔짜리 우표를 봤어요. 공작 우표였어요. 갈색 공작의 꼬리가 화면을 꽉 채우고 있었어요. 1975년에 발행된 우표였어요.
'만약 답장 엽서를 보낼 수 있었다면 하고사리역 엽서 보내줬을 건데.'
50엔짜리 우표를 보며 확실히 한국과 일본의 미적 감각은 상당히 차이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어요. 한국은 여백의 미가 중요하니까요. 반면 일본은 여백을 남기면 절대 안 된다고 느끼는지 화면을 최대한 빽빽하게 채우는 디자인이 많아요.
50엔짜리 우표 오른쪽에는 INTERNATIONAL LETTER WRITING WEEK 라고 적혀 있었어요. 아랫쪽에는 国際文通週間 이라고 적혀 있었어요.
国際文通週間?
국제문통주간?
뭔 말이지?
네이버 사전으로 国際文通週間이 뭔지 찾아봤어요. 파파고 번역으로는 국제 펜팔 주간이라고 나왔어요. 구글에서 INTERNATIONAL LETTER WRITING WEEK가 뭔지 찾아봤어요. 누군가에게 손과 펜으로 편지를 쓰는 주간이라고 나왔어요.
국제 펜팔 주간? 국제 편지 쓰기 주간?
어쩌면 국제 펜팔 주간이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펜팔'이라는 단어는 이제 거의 사어가 되었어요. '편지를 주고 받는 친구' 이전에 편지 써서 보내는 일이 없으니까요. 요즘은 이메일도 고사하고 바로 카카오톡, 라인, 텔레그램 등 메신저로 대화하는 시대에요. 그리고 과거에 '펜팔'이란 편지 주고 받는 친구였는데 文通 ぶんつう가 정확히 과거 편지 주고 받는 친구 펜팔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어요. 文通 ぶんつう의 의미는 편지 왕래, 서신 교류라는 의미에요. 인터넷 사전으로 일본어로 펜팔을 뭐라고 하는지 찾아보면 ペンパル, ペンフレンド 라고 영어 단어를 그대로 쓰거나 文通仲間 ぶんつうなかま - 편지 왕래 동료라고 해요. 과거 정말 펜팔을 하던 시대에 일본에서 文通이라고 하면 다 펜팔이라고 알아들었을지는 모르겠어요.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현대에 와서 国際文通週間을 번역하려면 아마 국제 편지 쓰기 주간이 맞을 거에요. 우표취미주간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일본에서 우표취미주간은 切手趣味週間 이라고 하고 우표취미주간 우표는 따로 발행되고 있어요.
이 엽서에 붙어 있는 우표 가격을 다 합치면 70엔이에요. 환율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대충 650~700원 정도에요. 한국에서 일본으로 엽서 부칠 때는 430원이에요.
포스트크로싱에 엽서 ID 코드를 등록했어요. 그리고 포스트크로싱 시작하고 처음 받은 엽서인데 꽃 엽서라 꽃다발 받는 기분이고, 오늘 날씨 따뜻해졌는데 엽서가 봄의 전령 같다고 썼어요. 정말로 너무 기뻤어요.
설마 이 취미는 내게 운이 따라주는 걸까?
첫 번째 주소는 미국. 의정부는 한때 주한미군의 도시였어요. 그래서 엽서 쓸 때 재미있었어요. 여기가 의정부고 주한미군이 주둔했던 도시이고, 많은 한국인들이 미국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노력했음을 잊지 않고 있다고 적었거든요. 그리고 받은 첫 번째 엽서는 그렇게 빨리 한 통 받아보고 싶어서 간절히 바랬던 일본 - 그것도 입춘에 받은 벚꽃 엽서였어요.
'이제 다시 우표 사러 다녀야 하나?'
예전에는 우표를 모았었지만 요즘은 있으면 모으고 없으면 안 모으는 식이에요. 외국 여행 가면 그 나라 우표 몇 장 사는 정도로만 모으고 있었어요. 그런데 엽서에 붙어서 온 우표가 무려 1975년 우표였어요. 포스트크로싱하는 사람들이 엽서에 붙이는 우표도 신경 많이 쓴다고 들었는데 직접 이렇게 일본 1975년 국제 편지 교류 주간 우표가 붙은 엽서를 받자 포스트크로싱하는 사람들이 엽서 보낼 때 우표도 매우 많이 신경쓴다는 것이 확 와닿았어요. 저는 제가 촬영한 사진을 엽서 출력하는 정도까지만 했지, 우표는 우체국 가서 보통 우표 붙여서 보냈거든요.
그래서 옛날 우표를 요즘 얼마에 판매하고 있는지 잘 몰라요. 우표 수집하는 사람 엄청 줄어들어서 옛날 우표 시세 많이 내려갔다고 알고는 있지만 옛날 우표가 얼마에 판매중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10원이라도 더 받고 판매하겠죠. 그러니 방법이라면 예쁜 디자인 우표 새로 출시될 때 지역 중앙우체국 가서 기념우표 사는 거에요. 그러면 액면가 그대로 살 수 있으니까요.
일본에서 제게 보내온 엽서 소인을 보면 2023년 1월 23일이었어요. 2주일 조금 안 걸렸어요.
드디어 포스트크로싱 첫 번째 엽서를 받았어요. 국제 엽서 교류 포스트크로싱은 앞으로 부지런히 계속 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