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더 윗쪽으로 올라가자 낡은 단층 가옥들이 몰려 있는 동네가 나왔어요.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 삼방마을이었어요. 여기는 삼방동 미로마을이라고도 하고, 삼방동 벽화마을이라고도 하는 곳이었어요.
"여기 조금 둘러보고 철암탄광역사촌 갔다가 구문소로 넘어가야겠다."
삼방동 벽화마을을 조금 둘러보고 내려가서 구문소로 넘어가기로 했어요. 여기는 경사가 조금 있었어요. 평소라면 온 김에 아주 싹싹 다 보고 가겠다고 덤벼들었을 거에요. 이런 동네 다닐 때는 한 사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골목길까지 다 들어가보고 구경해야 직성이 풀려요. 그렇지만 이날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어요. 다음날 엄청 걸어야하는데 첫날부터 무리하면 안 되었어요.
'태백이야 나중에 오고 싶으면 또 오면 되니까.'
진짜 오기 힘든 지역이었다면 다음날 일정은 길에서 쓰러져서 헥헥대는 한이 있더라도 억지로 다 돌아다녔을 거였어요. 그렇지만 제게 태백시는 '진짜 가기 힘든 지역'까지는 아니었어요. 의정부에서 태백시까지 가는 시외버스가 있기 때문이었어요. 의정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태백시까지 시외버스 타고 왔기 때문에 이제 의정부에서 태백까지 버스 타고 바로 갈 수 있다는 것은 '이론적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진짜 되는 것'으로 바뀌었어요. 버스 요금이 안 저렴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오고 싶다면 언제든 올 수 있었어요. 꼭두새벽에 의정부 시외버스 터미널 가는 것이 매우 부담스러운 일이기는 했지만요.
"저기 사진 포인트다."
삼방동 미로마을에서 철암탄광역사촌 까치발 건물과 철암천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있었어요. 저기 가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예쁘게 찍을 수 있어보였어요. 멀리 석탄을 싣고 운반하는 화차도 보였어요. 철암역 건물까지는 안 보였지만 철암동이 어떤 곳인지 보여주기 위한 사진으로 꽤 괜찮은 사진을 찍을 만한 자리였어요. 조금 내려가서 사진을 찍은 후 다시 삼방동 미로마을을 구경하기로 했어요.
사진을 찍고 또 돌아다니기 시작했어요. 나무 아래에 평상이 있었어요. 평상 위에는 밥상이 올라가 있었어요. 낡은 나무 벤치도 있었어요.
"여기 주민분들 여기에서 마을회의 하시나."
평상 위에는 누런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놀고 있었어요. 새끼 고양이들을 보며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떴어요. 고양이 인사를 했지만 인사를 받아줄 줄 모르는 고양이였어요. 생긴 것부터 누렇고 긴 털이 북슬거리는 고양이들이었어요. 동방예의지국 토종 고양이 모습이 아니었어요. 고양이에게 엄청 다가간 것도 아니고 멀리 떨어져서 고양이 인사하고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찍으려는데 고양이 인사하는 동안 다 도망갔어요.
'고양이 인사 이거 진짜 맞아?'
무슨 동방예의지국 고양이가 아니라 도망간 것은 아닐 거고, 헬로 쌀뤼 마르하반 살람 외국어로 인사하지 않아서 도망간 것도 아닐 거였어요. 그냥 사람 보고 도망갔어요. 제가 봤을 때는 고양이와 마주쳤을 때 두 눈을 응시하고 천천히 감았다 뜨는 고양이 인사라는 것이 고양이 인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었어요. 이게 알고 보면 문화권마다 다르거든요. 터키 같은 곳에서는 입으로 바람을 세게 불며 프스 프스 소리내면 고양이가 다가와서 인사해요. 한국에서 길거리 돌아다니는 고양이한테 터키 거주 고양이들한테 인사하듯 인사하면 싹 다 도망가요.
평상 위에서 놀고 있던 새끼 고양이들이 다 자리에서 떠났어요. 평상을 봤어요. 평상에는 고양이 사료가 들어 있는 스테인리스 사료 그릇이 있었어요. 사람 밥상이 아니라 고양이 밥상이었어요. 생선 쪼가리나 생선 삶은 물에 밥 말아준 토속적인 고양이밥이 아니라 반려동물 가게 가서 구입해야 하는 고양이 사료가 고양이 밥통 안에 들어 있었어요.
한 마리가 평상 앞에 웅크리고 있었어요. 다른 고양이들은 다 구석에서 저를 감시하고 있었어요. 이 고양이만 저에 대해 별 경계심을 보이지 않았어요. 밥 먹고 졸린 건지 웅크리고 눈 감고 졸고 있었어요. 제가 사진을 찍든 말든 전혀 신경쓰지 않았어요.
평상 앞에 있는 집에서 할머니 한 분께서 나오셨어요. 할머니께 공손히 허리 굽혀서 인사했어요.
"안녕하세요."
할머니께서 인사를 받아주셨어요.
"무슨 일이에요?"
"아, 제주도에서 이쪽으로 여행왔는데 여기 고양이 있어서 고양이 구경하고 있었어요."
할머니께서 저를 쳐다보셨어요.
"여기 고양이들, 할머니께서 돌보고 계세요?"
"나도 돌보고, 여기 동네 다른 사람들도 돌보고 해."
할머니께서는 평상 주변에 있는 고양이들이 동네 사람들이 같이 돌봐주고 있는 고양이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제게 따라들어오라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 들어오라고 하셔서 대문 안으로 들어갔어요. 할머니께서는 제게 대뜸 음료수 한 병을 주셨어요.
"감사합니다."
할머니께 감사하다고 인사드렸어요. 할머니께서는 연탄 보일러가 있는 곳으로 가셨어요. 실제 사용중인 연탄 보일러는 정말 오랜만에 봤어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연탄재는 많이 봤어요. 연탄재와 연탄 타는 냄새, 물 먹은 연탄재 냄새를 맡으며 지금도 연탄으로 난방하는 동네라고 유추했어요. 그러나 실제 사용중인 연탄 보일러를 직접 본 것은 엄청 옛날 일이었어요.
"할머니, 연탄 보일러 사진 찍어도 되나요?"
"이거? 이걸 왜 찍어?"
"너무 오랜만에 봐서 신기해서요."
"그래."
할머니께 허락을 맡고 연탄보일러와 연탄 사진을 찍었어요.
제가 어렸을 적에 집에 연탄 보일러가 있었어요. 그 연탄보일러도 구조는 저것과 대충 비슷했어요. 저렇게 철로 된 덮개가 있었고, 그 위에 커다란 뚜껑이 있었어요. 한겨울에는 뚜껑 대신 물이 가득 든 누런빛 코팅이 된 양은 들통을 보일러 위에 올려놨어요. 양은 들통 속에 들어 있는 뜨거운 물이 그 당시 겨울철 온수였어요. 연탄 보일러 위에 있는 양은 들통 속 뜨거운 물을 대야에 떠서 찬물과 섞어 온도를 맞춰서 양치하고 세수하고 머리를 감았어요. 양은 들통 속 물을 절반 정도 사용하면 물을 또 부어서 채워놨구요.
아직도 기억하는 것이 원래 집에서 사용하던 연탄 보일러는 연탄 2장 들어가는 구멍이 2개 있는 보일러였어요. 나중에 연탄 3장 들어가는 구멍이 1개 있는 보일러로 교체했고, 그 다음에 기름 보일러로 교체했어요. 기름 보일러로 교체하면서 한겨울에 언제나 온수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할머니께서 연탄 보일러에서 뭔가 하셨어요. 무엇을 하고 계신지 봤어요. 연탄 보일러 불이 꺼져서 불을 다시 붙이고 계셨어요. 연탄 보일러에 불을 다시 붙이느라 뚜껑을 열어놓고 계셨어요. 다행히 연탄에 불이 잘 붙었는지 할머니께서 연탄에 불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연탄을 집어넣은 후 보일러 뚜껑을 닫았어요.
할머니께서 나오시더니 제게 빨간색 고무 대야를 건네주셨어요.
빨간색 고무 대야.
할머니께서 내게 건네준 의미는?
같이 이야기 나누며 놀자는 의미지.
할머니께서 건네주신 빨간 고무 대야를 뒤집어서 바닥에 놓았어요. 고무 대야 위에 앉았어요. 할머니께서도 앉으셨어요.
"오늘 여기 여행왔는데 날씨 영 안 좋네요."
가볍게 날씨 이야기로 시작했어요. 제주도 출신이라 탄광 같은 건 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서 여행왔다고 했어요. 마침 통리장도 열리는 날이라 오늘 왔는데 하필 날씨가 이렇다고 했어요.
"아, 오늘이 장날인가?"
"예, 5일이요. 통리에 장 열렸어요."
"아, 5일이니까 통리에 장 섰겠네."
날씨가 매우 안 좋은데 이런 날 태백 여행에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씀드렸어요. 바로 통리장 때문이었어요. 할머니께서 고개를 끄덕이셨어요. 통리장은 5일, 15일, 25일에 서기 때문에 다른 지역 오일장과 달리 한 번 놓치면 보기 어렵거든요. 5일에 한 번씩 기회가 있는 다른 지역 5일장과 달리 통리장은 10일마다 열리는 장이라서 한 번 놓치면 최소 열흘 후에나 구경할 기회가 와요.
"할머니, 여기는 경상북도랑 교류 많은가요? 통리장 가보니까 경상북도 것이 많이 올라왔더라구요. 저는 경북은 산맥 아래라서 철도 타고 영월 같은 데에서 많이 넘어올 줄 알았는데 경북 것이 많이 있고 영월 같은 곳 것은 별로 안 보여서 신기했어요."
"여기? 경상도에서 많이 넘어와."
할머니께 통리장 구경하며 신기하고 궁금했던 것을 말씀드렸어요. 통리장을 직접 구경하기 전에는 통리장에 있는 야채 같은 것은 옆동네 정선이나 옆옆동네 영월 같은 곳에서 넘어온 것이 많을 거라 예상했어요. 기차와 도로로 이어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야채, 과일 같은 것은 옆동네 정선, 옆옆동네 영월 것은 거의 안 보였고, 경상북도에서 넘어온 것이 매우 많이 보였어요. 할머니께서는 이쪽이 경상북도에서 넘어오는 상인들이 많았고, 지금도 야채 같은 것은 경상북도에서 넘어오는 것이 많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도 원래는 경상도 출신이라고 하셨어요. 경상도에서 살다가 남편분께서 돈 벌러 태백 철암으로 넘어가며 같이 오셨다고 하셨어요. 당시 태백 가면 정말 떼돈 번다는 말이 돌아서 할아버지와 함께 넘어왔다고 하셨어요. 한동안 월세 내며 사시다가 집을 돈 주고 넘겨받았다고 하셨어요.
"여기 예전에 사람 많았어요?"
"어휴, 엄청 많았지. 저 아래 시장 가면 사람이 맨날 바글바글해서 다니지도 못했어!"
"시장이요? 저 까치발 건물 있는 데요?"
"응!"
할머니께서는 예전에 철암동에 강원탄광이 운영되고 있었을 때는 철암동에 사람들이 무지 많았다고 했어요. 철암동 까치발 건물 쪽이 원래 철암시장이었는데 거기는 맨날 사람이 너무 많아서 다니지도 못할 정도였다고 하셨어요. 삼방동 미로마을도 지금은 낡은 집 철거하고 정돈하면서 규모가 작아진 거라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삼방동 미로마을이 있는 산 거의 꼭대기 근처는 물론이고 이곳 도처가 다 집이었다고 알려주셨어요. 예전에는 집이 지금 남은 집의 3배는 더 있었다고 말씀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도 광부셨어요?"
"아니. 관리직이었어."
할머니께서는 할아버지께서는 광산에서 근무하시기는 하셨지만 광부가 아니라 관리직이셨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월급이 매우 적었다고 하셨어요. 탄광에 들어가서 일하는 광부는 월급을 많이 받았지만 탄광에 들어가지 않는 탄광 근로자들은 월급이 매우 적었다고 하셨어요.
"아휴, 그때 말도 못 하지. 남편 월급은 적지, 애들은 먹여 살려야지...어떻게 해? 그래서 장사 시작했어."
할머니께서는 남편분 월급으로는 생활이 감당이 안 되어서 장사에 뛰어드셨다고 하셨어요.
"묵호 사람들이 여기로 생선 팔러 오면 생선을 떼어서 장성 가서 팔아서 가족들 먹여 살렸지."
"묵호요?"
귀가 쫑긋 섰어요. '묵호'라고 하셨어요.
"묵호요? 동해시 묵호요?"
"응. 동해시 묵호."
"묵호에서 사람들이 생선 팔러 여기까지 왔어요?"
"응. 기차 타고 여기까지 왔어. 그러면 그 사람들한테 생선 떼어다가 장성 가서 팔았어."
석탄의 길은 묵호에서 끝내는 것이 맞다!
단순히 강원 남부 탄전에서 생산된 석탄이 기차로 묵호항으로 이동했기 때문에 강원도 동해시 묵호항이 석탄의 길 종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이게 맞기는 했어요. 석탄의 길이니 석탄이 가는 길을 따라가는 거였으니까요. 운탄고도1330 코스를 보면 운탄고도 9길은 삼척 정라항을 거쳐 소망의 탑에서 끝나지만 진짜 석탄의 길은 도경리역을 거쳐 묵호항으로 넘어가는 길이었어요. 지금도 석탄은 그렇게 이동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보다 더 깊은 이유로 태백에서 도계를 거쳐 동해시 묵호항으로 가는 길은 진정한 석탄의 길이었어요. 동해시 묵호 사람들이 예전에는 생선 싸들고 기차 타고 여기까지 와서 생선을 팔고 갔대요. 석탄만 태백에서 기차 타고 동해로 간 것이 아니라 동해시에서 생선이 태백시로 넘어왔어요. 인적 교류도 꽤 있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보면 동해시 묵호 지역이 쇠락한 데에 강원도 남부 탄광지역 몰락도 한 몫 했을 거에요. 석탄산업의 몰락으로 묵호항에서 석탄 관련 종사자가 줄어들었고, '강원 남부 탄전 지대'라는 거대한 배후 소비시장이 사라져버렸으니까요.
할머니께서는 예전에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시더니 길게 숨을 내뱉으셨어요. 그때 힘들었던 시절이 떠오르시며 조금 울컥하신 것 같았어요.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자식들이 지금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고 하셨어요. 자식들이 잘 커서 서울울에서 잘 살고 있다는 것에 매우 자랑스러워하셨어요. 할머니께서 고생하신 대신 자식분들이 잘 성장해서 서울에서 잘 지내고 계시다니 정말 잘 되었어요. 할머니께서 자랑스러워하실 만 했어요.
할머니께서는 자식분들이 이제 서울 올라오라고 하고 있지만 거기 가서 뭐하냐고 하셨어요. 할머니의 마음이 어느 정도 조금 이해되었어요. 여기에서의 생활이 자식분들 집에서 머무르는 것에 비해 불편하시겠지만 대신 여기에는 오랜 기간 같이 지낸 사람들이 있어요. 서울 가면 낯선 지역에 가족분들 제외하면 모두 모르는 사람들이구요.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 대화를 나누었어요. 그러다 이 동네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어요.
"여기 지금도 시장 있어요?"
"시장? 저기 아래!"
"지금도 오일장 서요?"
"응. 통리장이 5일이고, 여기 철암은 10일이야. 저기 철암시장에서 열려."
할머니께서 까치발 건물 오른쪽을 가리키셨어요.
'저기에? 저기가 시장이라고?'
아까 올 때 멀리서 봤어요. 시장 같이 생긴 게 없었어요. 그냥 길이었어요. 할머니께서는 거기에 가게들 몇 곳 있는 것이 지금 철암시장이고, 장날이 되면 지금도 장이 선다고 알려주셨어요. 철암장은 10일, 20일, 30일에 선다고 하셨어요.
"여기 관광객들도 오나요? 저기 까치발 건물을 기념관으로 조성해놨다고 해서요."
"저기? 저기 옛날 여기 모습 보존한 기념관으로 조성해놨어. 여기 온 사람들이 저기 보고 가더라구."
"여기에 저처럼 관광객들 오곤 하나요?"
"예전에는 꽤 왔었어. 여기 와서 동네 구경도 하고, 피내골로도 가고, 돌꾸지로도 가구. 그런데 코로나 이후로는 다 끊겨서 이제 안 와."
할머니께서는 역병 사태 이전에는 관광객들이 철암에 와서 삼방동 미로마을도 돌아다니며 구경하고, 피내골과 돌꾸지로도 가곤 했다고 하셨어요. 그러나 역병 사태가 터진 이후로는 관광객이 안 오고 있다고 하셨어요.
"피내골과 돌꾸지요? 거기는 어디에요?"
'피내골'이라는 곳과 '돌꾸지'라는 곳은 처음 들어봤어요. 할머니께 피내골과 돌꾸지가 어디냐고 여쭈어봤어요. 할머니께서 피내골은 여기에서 가깝고, 돌꾸지는 버스 타고 구문소쪽으로 가다 보면 있다고 하셨어요.
'여기에 관광객이 왔었다고?'
관광객이 전혀 안 올 것처럼 생긴 곳이었어요. 할머니께서는 예전에는 관광객들이 오곤 했다고 하셨어요. 저는 추측한 거고 할머니께서는 있었던 일을 그대로 말씀하시는 것이니 할머니 말씀이 맞았어요.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나중에 여행기 쓰며 자료를 찾으며 알게 되었어요. 한국광해공단은 2014년에 폐광지역 벽화마을 조성사업을 전개했어요. 첫 번째 대상지가 바로 여기 강원도 태백시 철암동에 있는 삼방동 미로마을이었어요.
이와 더불어 코레일에서 2013년 4월 12일에 관광열차인 백두대간협곡열차 V-Train,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을 운행하기 시작했어요. 코레일의 관광열차는 호응이 꽤 좋았어요. V-Train과 O-Train은 철암역에서 정차했어요. 그래서 이 노선을 이용해 여행하며 철암역을 들리는 사람들도 꽤 있었던 모양이었어요. 특히 V-Train은 시발점이 철암역이었고, V-Train은 코레일 관광열차 중 가장 인기가 좋은 관광열차였어요. 이 중 중부내륙순환열차 O-Train은 2020년 8월 19일부로 폐지되었고, 후속으로 동해산타열차가 운행되고 있어요. 동해산타열차 또한 철암역에서 정차해요.
2020년 역병 사태 이전에는 기차 여행하면서 철암동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았어요. 기차 여행 뿐만 아니라 단풍 시즌 되면 단풍 구경하러 오는 관광객들도 있었구요.
"점심 안 먹었으면 점심 먹고 가."
"아니에요, 저 먹고 왔어요. 저기 태백역에서 물닭갈비 먹고 왔어요."
"아, 점심 먹고 왔어?"
"예, 지금 3시 넘었어요."
할머니께서는 제게 점심 안 먹고 왔으면 점심 먹고 가라고 하셨어요. 그러나 할머니께 점심 먹고 왔다고 말씀드렸어요. 당연히 점심 먹고 왔어요. 물닭갈비 2인분 혼자 다 먹어서 통리장에서 식혜만 2통 사서 한 통 다 마셨어요.
"할머니, 이제 들어가셔야 할 거 같아요."
"나? 아니, 괜찮아."
"아니에요, 지금 기온 뚝뚝 떨어지고 있어요. 할머니 떨고 계시잖아요. 어서 안으로 들어가세요. 감기 걸리시면 어쩌시려고요."
할머니께서는 저와 더 대화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어하셨어요. 저도 구문소고 나발이고 나머지 일정 다 제끼고 할머니와 대화하며 시간을 더 보내고 싶었어요. 그러나 그럴 수 없었어요. 더 이상 비 내릴 것 걱정은 안 해도 되었어요. 그 대신 기온이 훅훅 떨어지고 있었어요. 기온이 뚝뚝 떨어지는 게 계속 느껴졌어요. 할머니께서도 조금씩 추워하고 계셨어요. 그러나 저와 더 대화하고 싶으셔서 계속 앉아 계시며 저를 잡았어요. 그러나 계속 대화하다가는 할머니께서 감기걸리실 수 있었어요. 할머니께서는 추워서 옷을 단단하게 껴입으시고 나오시든가 아니면 혼자 안에 들어가셔야 하셨어요.
"그래, 잘 구경하고 가요."
"예, 할머니, 건강하세요! 안녕히 계세요!"
정말 아쉬웠지만 일어나야 했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어요. 할머니께서 방 안에 잘 들어가시는 것을 보고 뒤돌아서서 제 갈 길을 가기 시작했어요.
"와, 벌써 시간 이렇게 되었어?"
몇 시인지 확인해보고 깜짝 놀랐어요. 2022년 10월 5일 오후 3시 20분이었어요. 할머니와 만나서 대화를 시작했을 때가 오후 2시 20분쯤이었어요. 고양이 사진 정보 보니 촬영시각이 오후 2시 23분이었어요. 그러니 할머니와 한 시간 가까이 대화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어요. 할머니께서 계속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할머니께서 더 이상 심심하지 않으시게 여기에 다시 사람들이 많이 방문해 활기가 도는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할머니께서 피내골로도 관광객들이 꽤 갔었다고 알려주셨어요. 삼방동 미로마을을 다 둘러보는 대신 여기는 장성성당 철암공소만 보고 대신 피내골을 가보기로 했어요.
강원도 태백시 가톨릭 원주교구 장성성당 철암공소로 갔어요.
강원도 태백시 가톨릭 원주교구 장성성당 철암공소 너머로 철암역두 선탄시설과 저탄장이 보였어요.
입구로 갔어요. 입구 경계석에는 '천주교 철암교회'라고 적힌 명패가 붙어 있었어요.
장성성당 철암공소 정면 사진을 촬영했어요.
'진짜 탄광촌 성당 사진이네.'
촬영된 사진을 봤어요. 조그마한 하얀 성당 건물과 뒷편 검은 저탄장과 산이 담겨 있었어요. 성당 마당은 자갈로 채워놓은 바닥이라 뒷편 저탄장과 묘하게 이어지는 모습을 만들고 있었어요. 정말로 탄광촌 성당 같은 사진이 나왔어요.
장성성당 철암공소 옆 성모마리아상 앞으로 갔어요.
강원도 원주교구 태백시 철암동 장성성당 철암공소의 기원은 1947년 11월경을 기원으로 본다고 해요. 당시 철암, 동점, 백산 지역에 산재되어 있던 가톨릭 신자들이 이 시기에 모여서 공소 예절을 지냈다고 하는데 정확한 설립일은 알기는 어렵다고 해요. 참고로 태백시에 가톨릭이 전래된 것이 1947년이라고 해요.
멀리 산과 저탄장, 바로 앞의 화사한 꽃. 그 사이에 서 있는 성모마리아상.
성모마리아상은 이 지역을 대표해서 하늘에 이 지역의 소원을 빌고 있는 것처럼 보였어요. 과거 석탄산업 전성기의 영화가 돌아오기는 어렵겠지만, 이 동네가 영원히 잊혀지고 소멸되지 않게 해달라고 비는 모습 같았어요.
장성성당 철암공소 문은 잠겨 있었어요. 본당 내부를 유리창을 통해 바라봤어요.
"어?"
유리창에 비친 반영과 내부 모습의 조화가 마음에 들었어요.
사진 하나하나 다 마음에 들었어요. 한 장만 남기고 지우려고 했지만 다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사진이었어요.
장성성당 철암공소 사진을 찍고 나왔어요.
여기 마을 이름이 '삼방동'이라는 것을 확인했어요. 철암천 쪽으로 내려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