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어디 가지?"
황지연못이 있는 황지공원을 다 봤어요. 날이 맑았다면 황지공원 안에서 시간을 때우며 물닭갈비 식당이 주문을 받기 시작하는 11시까지 버텼을 거였어요. 황지공원 안에는 사람들이 거의 없었어요. 벤치는 모두 텅 비어 있었어요. 다른 곳을 새롭게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했어요. 벤치에 앉아서 멍하니 있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분명히 방법이었어요. 날이 맑았다면요.
엉덩이로 벤치 물기 다 닦아주게?
벤치에 앉아서 시간 보내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벤치가 다 젖어 있었어요. 날이 안 좋았어요. 태백도 새벽에 비가 내렸고, 이때도 비가 내리고 있었어요. 맞고 다녀도 되는 안개비 수준으로 내리고 있는 것에 감사해야 했어요. 우산 쓰지 않고 돌아다니는 것은 가능했지만 벤치는 바지로 벤치 물기 닦아줄 생각이 없다면 앉지 말아야 했어요. 우비를 사서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다면 벤치에 앉아도 되었겠지만 우비는 고사하고 우산도 안 쓰고 다녀도 되는 정도였어요.
"갈 만한 곳 없나?"
황지연못에서 가만히 서서 시간을 보내기에는 시간이 많이 남아 있었어요. 황지공원 안을 뱅뱅 도는 것도 별로였어요. 황지연못에 있는 나무들이 단풍이 들기 시작해서 풍경이 아름다웠어요. 다 봤어요. 황지공원에 와서 봤기 때문에 여기가 단풍이 들기 시작해서 전에 왔을 때보다 더 아름다워졌음을 목격했어요. 몇 바퀴를 돈다고 더 새롭고 더 감흥을 느낄 리 없었어요.
'다 돌아다닌 후에 저녁으로 물닭갈비 먹기도 애매한데...'
물닭갈비는 기본 2인분이에요. 혼자 가서 2인분을 주문해서 먹으면 상관없기는 해요. 그러나 사람들 많을 시간에 혼자 가서 테이블 하나 차지하고 먹으면 아무리 혼자 2인분을 주문해서 먹는다고 해도 별로 환영받지 못해요. 게다가 저는 술을 안 마셔요. 술이라도 시키면 그래도 괜찮은데 술을 안 시키면 술 많이 팔리는 저녁 시간에 더욱 환영받지 못해요. 물닭갈비를 먹으려면 점심에 먹는 것이 좋았아요.
'주변 좀 돌아다니다가 식당 가야겠다.'
만약 저녁에 물닭갈비를 먹기로 계획을 변경했다면 태백시 시내버스 4번을 타고 빨리 통리장이 열리는 통동으로 넘어가야 했어요. 전에 와본 황지공원과 황지연못에서 쓸 데 없이 시간을 허비할 것이 아니라요. 시간을 조금만 더 보내면 11시가 될 거였어요. 식당에서 11시부터 주문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에 11시 즈음에 가면 식당 안에 들어가서 앉아 있을 수 있었어요. 조금만 더 시간을 보낼 곳을 찾으면 되었어요.
'대충 주변이나 더 돌아다니다 가자.'
김씨네 닭갈비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서 적당히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다 11시쯤 되면 김씨네 닭갈비 가서 바로 물닭갈비 2인분을 주문해서 먹기로 했어요. 의정부에서 계획한 것보다 계획이 전체적으로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뒤로 밀리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어요. 통리장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지 모르겠지만 시장 구경을 조금 일찍 끝내고 바로 다음 목적지로 가면 되었어요. 어차피 태백시 황지동 24시간 찜질방은 저녁 8시 이후에 입장해야 요금이 조금 더 저렴했기 때문에 저녁 8시까지는 시간을 밖에서 보내야 했어요.
발 가는 대로 천천히 걸었어요. 평소 걸음보다 더욱 느리게 걸었어요. 한 걸음도 소중했어요. 한 걸음이라도 덜 걷는 것이 목표가 아니었어요. 한 걸음이라도 보폭을 좁게 걷고 느리게 걸어서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내고 짧은 거리를 걷는 것이 목표였어요. 저는 보폭이 큰 편이라 혼자 막 걸으면 걸음수에 비해 상당히 멀리까지 가버려요. 많은 거리를 혼자 걸을 때라면 성큼성큼 빠르게 걸어야 했지만 이때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최대한 황지연못에서 벗어나지 말아야했어요. 어쩔 수 없이 황지공원에서 벗어나서 걸어가기는 하지만 걸음을 최대한 느리게 걷고 보폭을 좁게 걸어서 덜 가야 했어요.
'카페라도 갈 걸 그랬나?'
황지연못 근처에는 카페가 있었어요. 순간 황지연못에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 온 김에 모닝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한 잔 마시며 시간을 때우는 것도 괜찮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커피 마시고 바로 물닭갈비 먹을 셈입니까?
바로 고개를 저었어요. 카페에 안 간 게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었어요. 카페에 갔다면 이렇게 무의미하게 걸을 일은 없었을 거에요. 대신에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마시자마자 바로 물닭갈비를 먹는 일이 벌어졌을 거에요. 아무리 물닭갈비 2인분이 양이 많지 않아서 혼자서도 먹을 수 있다고 하지만 태백 물닭갈비와 도계 물닭갈비는 혼자 널널히 먹을 양은 아니에요. 태백이 원래 물가가 비싼 동네라고 해도 도계 물닭갈비보다 양이 형편없이 적을 것 같지 않았어요. 그러면 혼자 먹을 수는 있지만 조금 무리해서 먹는 느낌이 있을 거였어요.
"성당 있다."
담벼락 풀과 담쟁이 덩쿨이 알록달록 단풍이 들기 시작한 건물이 있었어요. 천주교 원주교구 가톨릭 황지성당이었어요.
"성당 구경하고 가야지."
김씨네 닭갈비가 주문을 받기 시작하는 11시까지 갈 곳 없어서 방황하던 차에 황지성당이 나왔어요. 매우 반가웠어요. 성당 구경하면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때울 수 있었어요. 성당 구경도 좋았어요.
저는 원래 성당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요. 몰타에 잠시 있었을 때 몰타에 성당이 360여곳 있다고 했는데 그 중 36곳을 가봤어요. 몰타 있었을 때 사진이 거의 없었고 성당 갈 때마다 카메라를 들고 간 것이 아니라 사진은 안 남아 있지만요. 그 정도로 성당 구경하는 것을 좋아해요. 성당은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요. 비록 가톨릭 신자는 아니지만 성당 특유의 분위기를 매우 좋아해요. 그래서 원래 여행 다닐 때 성당이 보이면 한 번씩 들르곤 해요. 그런데 마침 성당이 등장했어요.
성당 경내로 들어갔어요.
황지성당 본당은 이렇게 생겼어요.
강원도 태백시에 가톨릭이 전래된 것은 1947년경부터라고 해요.
우리나라에 가톨릭이 전래된 것은 조선 중엽에서 말기 사이에 마테오 리치의 천주실의를 통해 '서학'이라는 학문으로 전래되었어요. 가톨릭 신자가 증가하면서 외부 선교 활동 없이 자치 교회를 세울 정도로 성장했지만, 조선 정부가 유교 질서를 파괴한다며 가톨릭을 크게 탄압했어요. 이 탄압은 개항 전까지 이어졌어요. 1882년부터 조선 정부가 천주교 신앙의 자유를 묵인해줬고,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며 온전한 사목활동이 가능해졌어요.
조선말에 다섯 차례의 박해로 인해 조선의 천주교가 많이 위축되기는 했지만 조선 시대에 천주교는 우리나라 여기저기 많이 퍼져 있었어요. 1886년 조불수호통상조약 이후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되었어요. 강원도 태백시에 가톨릭이 전래된 것은 1947년. 한반도에 천주교 신앙의 자유가 허용된 후 상당히 많은 시간이 지나간 후에야 태백에 천주교가 전래되었어요. 조선말에 천주교 종교의 자유가 인정된 후 무려 일제강점기 다 끝나고나서야 전래되었으니까요. 그만큼 태백시는 예전에 산간 벽지에 오지인 곳이었다는 증거이기도 해요.
1959년에 영월성당이 건립된 후 강원도 남부에 가톨릭 신자가 증가했어요. 1959년 1월 28일에는 상동 본당 승격이 있었고, 1959년 10월 21일에 상동본당 준공식이 있었어요. 1961년 8월 12일에는 장성성당이 상동 본당에서 분리되어 설립되었어요.
1965년 3월 22일에는 가톨릭 춘천교구에서 원주교구가 분리되어 설정되었어요. 가톨릭 원주교구는 강원도 남부와 충청북도 제천시, 단양군을 관할하는 가톨릭 교구에요.
1965년 6월 29일, 병인순교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황지성당 신축이 결정되었고, 1966년 10월 5일에는 황지공소가 본당으로 승격되었어요. 1966년 10월 30일에는 황지성당 준공식이 있었어요.
황지성당 본당 입구로 갔어요. 문을 가볍게 밀어봤어요.
"안 잠겼네?"
도계 성당에 갔을 때는 문이 잠겨 있었어요. 황지 성당은 문이 안 잠겨 있었어요. 성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뒷자리에 앉았어요.
"하느님, 이 여행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잘 끝내게 해주십시오. 아멘."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성당에 왔기 때문에 기도를 드렸어요. 큰 거 안 빌었어요. 그저 이 여행이 아무 탈 없이 무사히 잘 끝내게 해달라고만 빌었어요.
황지성당에서 나왔어요. 성당에서 나와서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5일 10시 53분이었어요.
"물닭갈비 먹으러 가야겠다."
시간이 되었어요. 김씨네 닭갈비 가면 11시가 될 거였어요.
시간 알차게 잘 보냈습니다.
애매하게 남은 시간을 매우 알차게 잘 보냈어요. 황지연못 가서 황지연못 구경했고, 황지성당도 방문했어요. 이 정도면 의정부에서 알아본 정보와 틀려서 꼬일 뻔한 일정을 나름대로 잘 풀었어요. 황지연못이야 이따 또 지나갈 곳이라고 하지만, 황지성당은 원래 계획에 없던 곳이었어요. 물닭갈비 먹는 시간이 늦어진 대신 황지연못 풍경 감상 잘 했고, 계획에 없던 황지성당도 봤으니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김씨네 닭갈비로 걸어갔어요.
김씨네 닭갈비 안으로 들어갔어요. 당연히 제가 첫 번째 손님이었어요.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여기 물닭갈비 2인분 주세요."
"사리는 뭘로 하시겠어요?"
"우동사리로 주세요."
물닭갈비는 야채와 사리를 먹은 후 익은 닭고기를 건져먹고 마지막에 밥을 볶아먹는 순서로 먹는다고 해요. 사리와 볶음밥 둘 다 먹는 것은 무리였어요. 하나만 선택해서 먹어야 했어요. 볶음밥을 포기하고 사리를 먹기로 했어요. 도계에서 먹을 때는 친구가 밀가루를 조심해야 한다고 해서 사리를 못 먹었어요. 이번에는 저 혼자 먹을 거였기 때문에 제가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었어요.
사리는 우동사리도 있었고 라면사리도 있었어요. 이 중 우동사리로 골랐어요. 라면사리도 맛있겠지만 왠지 우동사리를 넣어서 먹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우동사리를 고른 게 아니라 단지 우동사리를 넣는 게 더 원조의 맛 같을 것 같아서 골랐어요.
식당 벽에는 물닭갈비 먹는 방법이 붙어 있었어요. 물닭갈비 맛있게 먹는 방법은 다음과 같았어요.
1. 솥뚜껑에서 김이 모락모락 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김이 나면 아주머니에게 저어달라고 하세요!!!
2. 골고루 저어진 후에, 야채랑 사리를 먼저 드세요. 건강식을 위해 쎈 양념을 사용하지 않아요. 혹, 싱거우시면 양념을 더 넣어달라고 하세요.
3. 국물이 졸아들면서 고기도 익어가요. 그럼 고기도 고기도 맛있게 얌얌얌
4. 사리와 고기를 다 드신 후, 그래도 뭔가 아쉽다면 밥을 볶아 먹습니다. (사리 추가도 가능!!)
물닭갈비 먹는 방법을 보면 사리까지는 기본으로 넣고, 볶음밥은 옵션이었어요.
사라다가 있다!
반찬 중에 양배추에 케요네즈를 뿌린 샐러드가 나왔어요. 양배추 '사라다'였어요. 반찬으로 양배추 사라다가 나오자 이 가게 왠지 족보가 있어 보였어요.
물닭갈비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 안에 있는 콘센트에 충전기를 꽂고 갤럭시노트5 스마트폰과 갤럭시노트10+ 스마트폰을 충전시켰어요. 스마트폰 배터리는 매우 예민한 문제였어요. 보조배터리를 최대한 안 써야 했어요. 보조배터리로 스마트폰을 몇 번 충전할 수 있기는 하지만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연결해서 들고다니려면 불편했어요. 게다가 다음날 새벽부터 최악의 경우에는 동해시 숙소 들어갈 때까지 충전 못 할 경우도 고려해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스마트폰 충전할 기회가 있으면 최대한 충전해서 보조배터리를 충전 안 해야 했어요.
결정적으로 이따 찜질방 가서 또 충전하기는 하겠지만 충전기는 5핀과 C핀 케이블 각각 하나씩만 들고 왔고, 듀얼 충전기 잭 1개를 가져왔어요. 찜질방에서 잠자고 새벽 일찍 나와야하는데 자다가 일어나서 스마트폰 완충된 거 확인하고 보조배터리 충전 시작하려고 하면 이것이 신경쓰여서 더욱 잠을 못 잘 거였어요. 그렇다고 혼자 콘센트 2개 쓸 수도 없을 거였구요. 만약 사람이 많다면 콘센트 1개 이용하기도 힘들 거였어요. 그런데 2개나 써야 하는 상황을 만드는 건 그다지 현명한 선택이 아니었어요. 콘센트 2개 쓰는 상황은 아예 계획에 집어넣지 않아서 충전기 자체를 1개 들고 왔구요.
콘센트에 스마트폰을 꽂아놨지만 물닭갈비 사진을 찍어야 했기 때문에 콘센트가 있는 쪽에 앉았어요. 식탁 위 가스버너 점화손잡이는 제 맞은편에 있었어요.
드디어 강원도 태백시 황지동 물닭갈비 맛집인 김씨네 닭갈비의 태백 물닭갈비가 나왔어요.
물닭갈비 위에는 쑥갓이 수북히 올라가 있었어요. 야채가 매우 많았어요. 고기는 풀 아래 깔려서 보이지 않았어요. 닭고기가 보이지 않아도 닭고기 양이 어느 정도일지 알고 있었어요. 물닭갈비 2인분에는 닭 반마리가 들어가요. 광부들이 먼지 껴서 텁텁한 입과 깔깔한 목을 씻어내주는 칼칼한 맛을 찾아서 등장한 물닭갈비라고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을 불리기 위한 목적으로 등장한 것도 있어요. 그래서 야채도 넣어서 먹고 사리도 넣어서 먹어요.
물닭갈비가 잘 익었어요. 먼저 국물맛을 봤어요.
김씨네 닭갈비의 태백 물닭갈비 국물맛은 칼칼했어요. 맵지는 않았어요. 얼큰하다고 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고춧가루 들어간 국물에서 기본적으로 느껴지는 매운맛에서 아주 미세하게 더 매운 정도였어요. 이게 정말 매운 것인지 뜨거워서 맵다고 느껴지는 것인지 조금 애매한 정도였어요. 그리고 확실히 단맛이 타지역에서 먹은 국물 음식 - 특히 수도권에서 먹은 음식들에 비해 매우 적었어요.
김씨네 닭갈비의 태백 물닭갈비 맛 역시 닭매운탕과 닭도리탕의 중간쯤 되는 맛이었어요. 닭매운탕이라고 보기에는 닭도리탕 국물 같았고, 닭도리탕 국물이라고 보기에는 닭매운탕 국물 같았어요. 닭매운탕이 진짜 존재하는 음식인지는 몰라요. 닭 넣고 매운탕 끓이면 대충 맛이 그렇게 날 거 같아서 닭매운탕이라고 한 거에요. 처음에는 닭매운탕 같은데 국물이 졸아들 수록 닭도리탕 같아졌어요.
끝맛에서 살짝 느껴지는 카레향.
카레향이 도계 물닭갈비와의 차이인가?
김씨네 닭갈비의 물닭갈비 국물에서는 끝맛에서 미세하게 카레향 비슷한 향이 느껴졌어요. 양념장에 카레를 조금 집어넣은 것 같았어요. 양념장 만드는 것을 직접 못 봤기 때문에 카레가 진짜 들어가는지는 몰라요. 제가 국물을 맛봤을 때는 끝에서 아주 미세하게 카레향이 느껴졌어요.
'카레가루 들어가도 이상할 건 없지.'
강원도 친구가 예전에 춘천 닭갈비 맛은 한차례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고 알려줬어요. 이 변화의 원인은 카레가루였어요. 춘천에 있는 어떤 닭갈비집에서 양념에 카레가루를 넣자 엄청나게 인기를 끌었고, 이것이 춘천 닭갈비에 쫙 퍼져서 맛이 과거와 크게 변했다고 했어요. 닭갈비의 탄생 이후 카레가루로 인해 한 차례 더 변화한 게 오늘날 춘천 닭갈비라고 했어요. 물론 이 카레가루는 보나마나 오뚜기 카레 가루겠죠.
물닭갈비에 카레 가루가 살짝 들어가도 전혀 안 이상했어요. 오히려 충분히 납득되었어요. 오뚜기 카레 가루가 마법의 가루에요. 잘만 쓰면 음식맛을 확 끌어올려요. 보다 '밖에서 먹는 음식' 느낌을 내요. 국물요리에서 많이 쓰면 카레맛이 너무 강해져서 카레국 맛이 되어 버리지만, 가볍게 미량을 집어넣으면 '뭔가 있어보이는 맛'이 되요. 카레가루를 잘 쓰면 찌개나 탕 국물맛이 전통 한복에 샤넬백 같은 느낌으로 변해요. 살짝 이질적인 것이 더해지며 럭셔리한 느낌이 되요.
진짜 카레 가루가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들어갔다고 해도 하나도 안 이상했어요.
국물 끝맛에서 미세하게 카레맛 비슷한 맛이 느껴지는 것 말고는 도계에서 먹었던 물닭갈비 맛과 비슷했어요. 도계에서 먹은 물닭갈비 맛이 보다 더 강했고, 태백 김씨네 닭갈비에서 먹은 물닭갈비가 야채 양이 더 많았어요. 그 정도 차이였어요.
물닭갈비는 닭고기를 익혀가며 먹는 음식이에요. 그래서 팔팔 끓이며 먹었어요. 국물도 떠먹었어요.
불 조절 실패했어.
처음으로 혼자 먹는 물닭갈비라 잘 몰랐어.
불 조절을 완전히 실패했어요. 실패 원인은 두 가지였어요. 첫 번째 원인은 너무 '닭을 익히며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얽매여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팔팔 끓이며 먹어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둘이 먹는다면 먹는 속도가 있으니 이렇게 먹어도 되었어요. 그러나 저는 이때 혼자 2인분을 먹었어요. 물닭갈비 2인분은 제가 살짝 무리해서 다 먹을 수 있는 양이었어요. 당연히 먹는 속도가 둘이 먹을 때에 비해 2배 이상으로 느렸어요. 여기에 계속 팔팔 끓이며 먹다 보니 뜨거워서 빨리 먹지도 못했어요. 계속 닭을 익혀가며 먹어야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상태로 먹다 보니 불을 줄일 생각을 아예 못 했어요.
두 번째 원인은 스마트폰 충전한다고 가스 버너 점화스위치 정반대편에 앉아 있었어요. 그래서 불을 줄이려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맞은편으로 가서 점화스위치를 돌려야 했어요. 점화스위치가 바로 눈에 보였다면 먹다가 불을 줄였을 거에요. 그러나 눈에 안 보이고 닭을 익히며 먹는 음식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인데다 점화스위치 돌려서 불을 줄이려면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으로 가야 하는데 이게 귀찮아서 그냥 앉아서 먹었어요. 뒤늦게야 이거 완전히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리에서 일어나 불을 급하게 줄였지만 늦어버렸어요.
닭고기가 다 익기는 했지만 대신 국물이 너무 졸아서 엄청 짰어요. 원래 그렇게 짜지 않은 국물인데 저 지경으로 졸아들었으니 당연히 무지 짜게 변했어요. 닭고기도 매우 짭짤해졌어요.
아주 중요한 물닭갈비 먹을 때 노하우을 얻었어요. 혼자 2인분 주문해서 먹을 때는 무조건 가스버너 점화손잡이 바로 앞자리에 앉아야 했어요. 먹어가면서 계속 불을 줄여가야 했어요. 두 명이서 먹을 때에 맞춰서 불을 줄이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빨리 불을 줄여야 했어요. 혼자 먹으면 두 명이 먹을 때보다 속도가 2배 이상으로 느려지기 때문에 불을 빨리 줄여도 먹는 속도가 느려서 느려진 속도 만큼 닭고기가 익는 속도가 더 길어져요.
물닭갈비를 다 먹자 종업원 아주머니께서 식혜를 가져다 주셨어요. 식혜를 시원하게 마시고 계산하고 나왔어요.
"이제 정오 되어가네."
식당에서 나와서 몇 시인지 봤어요. 2022년 10월 5일 오전 11시 56분이었어요.
태백 시내버스 4번을 타고 통동으로 가기 위해서는 태백 영프라자 정류장으로 가야 했어요. 태백 영프라자 정류장 번호는 2540008이었어요.
아까 갔던 황지공원 앞을 다시 지나갔어요.
황지동 번화가는 왕복 2차선이었어요. 태백시에서 가장 큰 번화가인데 도로는 2차선이었기 때문에 교통체증이 심했어요.
태백 영프라자 버스 정류장으로 갔어요. 4번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어요. 버스 정류장에 있는 사람들이 통리장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오늘 통리장인데 어떤 버스를 타야 되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있었어요. 사람들은 통리장 가려면 4번 버스 타라고 알려주었어요.
정류장에서 태백 시내버스 4번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조금 기다리자 버스가 여러 대 왔어요. 2차선이라 버스가 여러 대 오자 매우 혼잡해졌어요. 4번 버스가 왔어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갔어요. 왠지 이 사람들 모두 통리장 가는 사람들 같았어요. 저도 4번 버스를 탔어요.
드디어 태백 여행 본격적인 시작되었다.
태백 여행 일정은 태백 시내버스 4번을 타고 태백시를 한 바퀴 뱅 도는 일정이었어요. 드디어 태백 시내버스 4번을 탔어요. 태백 여행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어요. 버스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봤어요. 날씨가 아직은 양호했어요. 이슬비도 그쳤어요. 희망이 보였어요.
버스는 산 속 시골 풍경 속을 달렸어요. 어느새 통리 정류장에 도착했어요. 통리장을 보기 위해서는 다음 정류장인 경동아파트 정류장에서 내려야 했어요.
2022년 10월 5일 12시 21분, 태백 시내버스 4번 버스가 경동아파트 정류장에 도착하자 버스에서 내렸어요.
버스 정류장 맞은편에는 '통리5일장'이라는 글자가 붙어 있는 큰 입간판이 있었어요. 통리5일장 입간판 옆에는 기차 모형이 있었어요.
"저거 뭐지?"
버스 정류장에서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어요. 멀리 눈에 확 들어온 것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