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잊혀진 어머니의 돌 (2022)

잊혀진 어머니의 돌 - 15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리 사북중앙로 사북시장

좀좀이 2022. 11. 1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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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저녁을 못 먹었어요. 저녁밥을 먹어야 했어요. 저녁밥을 먹으려면 밖으로 나가야 했어요. 밖에는 비가 엄청나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과거 동원탄좌가 운영될 때 사망한 광부들의 영혼이 흘리는 눈물일 수도 있고, 강원랜드에서 전재상 홀라당 다 날린 사람들의 눈물일 수도 있어요. 비가 무자비하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모든 것을 다 쓸어내려버리겠다고 작정한 것처럼 퍼부어대고 있었어요.

 

우산으로 될 일이 아니었어요. 우비를 또 뒤집어써야 했어요. 도계역에서 우비를 안 버리고 가방에 넣고 오기를 정말 잘 했어요. 아무리 하늘에서 비가 폭포수처럼 쏟아진다고 해도 우비만 있으면 무적이에요. 친구 말대로 2000원짜리 우비 산 것이 신의 한 수였어요. 만약 우비를 사지 않았다면 도계에서 조금 다니다 여행 진행이 완전 중단될 뻔 했어요. 그리고 이제 또 우비를 걸칠 때였어요. 이 정도면 2천원으로 구입한 우비를 아주 뽕을 제대로 뽑아먹고 있었어요.

 

"우비 입어."

 

우비를 걸친 후 친구에게 우비를 건네며 우비를 입으라고 했어요.

 

"안 입고 갈래."

"우비 입어!"

 

친구는 우비를 안 입고 나가겠다고 헀어요. 친구에게 아주 단호하게 반드시 우비 입어야한다고 했어요.

 

"지금 비 퍼붓고 날도 쌀쌀한데 너 그 옷차림으로 나가면 감기 걸려."

 

친구에게 우비를 입혀줬어요. 친구는 얇은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왔어요. 폭우에 산골짜기의 밤공기라 그대로 나가면 여름 감기 걸릴 수 있었어요. 우산으로 비를 모두 막을 수 없어서 맨살에 빗방울이 떨어지고 피부가 젖을 거였어요. 여기에 산골짜기 특유의 차가운 밤공기가 덮치면 여름 감기 걸리기 아주 딱 좋아질 거였어요. 친구가 반드시 우비를 걸쳐야하는 이유는 단순히 비 때문이 아니었어요. 옷을 너무 얇게 입고 왔기 때문에 우비를 웃옷 삼아서 보온도 해야 했어요.

 

숙소에서 밖으로 나왔어요.

 

 

아까 걸어올 때 대충 어디에 식당이 몰려 있을지 보면서 왔어요. 식당은 사북시장 쪽에 많이 있어 보였어요. 사북시장 쪽으로 걸어갔어요.

 

 

 

한국 도박의 중심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답게 온통 전당포였어요. 다른 곳 다닐 때는 전당포를 별로 못 봤어요. 다른 지역도 전당포가 있기는 해요. 그러나 눈에 잘 띄지 않아요. 모르고 지나가면 모르고 지나가요. 허름한 건물 2층 같은 곳에 있거나 얼핏 봐서는 잘 모르게 생긴 전당포가 많아요. 강원랜드 카지노의 고장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은 대놓고 전당포가 우글거렸어요. 간판이 번쩍번쩍 빛났어요.

 

"너 아까 주차장에서 무판 차량들 봤어?"

"어. 진짜더라."

 

한때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가면 중고차를 매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이 전국적으로 돌았었어요. 전당포에 차 맡기고 돈 빌려간 사람들이 돈을 다 잃어서 차를 못 찾아가서 중고차가 매우 많다고 했었어요. 이런 차가 한두 대가 아니라 매우 많아서 사북 가면 좋은 중고차를 매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소문이 쫙 퍼진 적이 있어요.

 

사북에서 중고차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어요. 그러나 이렇게 전당포에 차를 맡기고 돈을 빌려갔다가 돈을 홀라당 다 날려서 차를 못 찾아가는 바람에 사북 주차장 같은 곳에 이런 차가 많이 방치되어 있다는 보도를 본 적 있었어요. 이런 차량의 특징은 번호판이 없다고 했어요. 아까 강원랜드 무료 셔틀버스 타러 가는 주차장에는 무판 차량이 여러 대 주차되어 있었어요. 무판 차량이 주차장에 여러 대 방치되어 있다는 말은 진짜였어요.

 

"여기 주민들은 어떻게 살지?"

 

이건 완전 카지노 빌리지였어요. 실제로 강원랜드가 영업을 개시한 초기에는 지역 주민들 중에도 도박 중독되고 전재산을 홀라당 날린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해요. 지금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들이 알아서 걸러지고 남은 사람들이라는 말이 있어요.

 

사북은 파도 파도 괴담이 쏟아지는 곳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진짜 중고차를 매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지역 주민들 중 여럿이 도박으로 패가망신해 사라졌다는 말은 진짜인지 아닌지 저도 몰라요. 괴담만 보면 매일 원혼 달래는 굿판이 도처에서 행해지고 여기저기에서 곡소리와 시비가 넘쳐나는 도저히 인간이 맨정신으로 못 살 땅이에요. 그러나 이 괴담들의 진실 여부는 모르겠어요. 강원랜드 카지노로 인한 도박의 폐해가 워낙 전국적으로 유명하고 때 되면 언론에서 등장하기 때문에 실화인지 구라인지 판단도 안 서요. 실화인지 구라인지 판단도 안 되니 이거 자체가 어떻게 보면 도박이네요.

 

 

확실히 다른 시골 마을과는 완전히 달랐어요. 밤에도 밝았어요. 저녁 8시 50분인데도 번쩍이고 있었어요. 비까지 내려서 건물 간판 불빛이 땅을 뒤덮은 빗물에 반사되어 더욱 화려했어요.

 

'여기는 그럴만해.'

 

아까 무료 셔틀버스 시각을 보고 이럴 거라고 짐작했어요. 무료 셔틀버스가 거의 24시간 운행되고 있었어요. 강원랜드로 가는 사람도 밤새 있을 거고 강원랜드에서 나오는 사람들도 밤새 있을 거였어요. 이 사람들이 밥도 먹고 술도 마실 테니 늦게까지 하는 식당이 여러 곳 있는 게 당연했어요.

 

 

사북시장 입구까지 왔어요. 사북 시장으로 걸어오면서 식당들을 보니 곤드레 들어간 메뉴를 판매하는 곳이 여러 곳 있었어요.

 

"여기도 정선이라고 곤드레 나물 파네."

"곤드레 그런데 그렇게 막 특별하지는 않아."

 

친구는 곤드레 나물을 먹어봤다고 했어요. 그렇게 엄청나게 특별하지는 않다고 했어요. 너무 기대하면 실망할 거라고 했어요. 그래도 이왕이면 정선군에 왔는데 곤드레 나물을 먹어보고 싶었어요. 일반적으로 정선군은 첩첩산골 시골 이미지에요. 사북은 정선군이지만 첩첩산골 시골 이미지와는 완전히 달랐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북읍이 정선군이 아닌 것은 아니었어요.

 

"여기 물가 엄청 비싸네?"

 

식당 음식 가격을 보고 놀랐어요. 물가가 상당히 비쌌어요. 사실 서울 물가 비싸다고 하지만 서울 물가는 전국적으로 보면 상당히 저렴한 편이에요. 집세가 비싸서 문제지, 생활 물가는 시골에 비해서 훨씬 저렴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서울은 규모가 되다 보니 규모에서 오는 할인이 있어요. 모든 교통이 다 서울로 이어지구요. 반면 소도시, 시골로 갈 수록 규모에서 오는 할인이 줄어들고 자체적으로 해결되는 것도 별로 없고 교통도 불편하다보니 물가가 엄청 비싸져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거나 조금 저렴하고 나머지는 말도 안 되게 비싸요. 서울이 비싸다고 하는 사람들은 여행 별로 안 해본 사람들이에요. 우리나라 여기저기 다녀보면 서울에 웬만한 건 다 엄청 저렴해요.

 

사북은 규모가 큰 지역이 아니에요. 교통도 상당히 불편한 곳이에요. 기차역이 있기는 하지만 무궁화호만 정차하는 기차역이에요. 타지역에서 자동차로 물자를 운송해오려면 한참 걸리는 곳이에요. 반면 자급자족되는 건 거의 없구요. 그래서 물가가 비쌀 수 밖에 없기는 해요. 하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식당 음식 가격은 확실히 비쌌어요.

 

빗속을 걸으며 식당 중 문 열고 영업하는 곳을 쭉 봤어요. 뭔가 딱 맛집 같다는 느낌이 오는 곳이 안 보였어요.

 

"저기 가자."

 

 

찬이네 감자탕이 가장 괜찮아 보였어요. 안에서 밥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어요. 그 중에는 가족으로 온 사람들도 있었어요. 게다가 메뉴에는 무려 '곤드레 해장국'이 있었어요. 곤드레 해장국을 먹으면 정선군의 유명한 특산물인 곤드레를 먹을 수 있었어요.

 

찬이네 감자탕은 무려 24시간 영업하는 식당이었어요. 아주 야심한 밤에도 사람들이 감자탕이나 해장국을 먹으러 오는 식당인 것 같았어요. 지금 중요한 것은 24시간 식당이라는 점이 아니었어요. 여기가 왠지 맛있어 보였어요. 메뉴 중 곤드레 해장국을 먹으면 정선 와서 정선 특산물 곤드레도 맛볼 수 있을 거였어요. 여기보다 더 나은 식당은 안 보였어요.

 

식당 안으로 들어갔어요.

 

"뼈다귀 해장국이랑 곤드레 해장국은 뭐가 달라요?"

"곤드레 해장국은 뼈해장국에 곤드레가 추가되요."

 

뼈해장국과 곤드레해장국의 차이점은 기본적으로 둘 다 뼈해장국이지만 곤드레 해장국에는 곤드레가 추가되었어요. 곤드레해장국 가격은 뼈다귀 해장국보다 1,000원 비쌌어요. 곤드레 추가 요금이 천원이었어요.

 

"여기 왔는데 그래도 곤드레 먹어봐야지. 뼈야 다른 데에서도 흔히 먹는 거잖아."

 

친구에게 곤드레 해장국으로 먹자고 했어요. 뼈해장국 파는 식당이야 전국 도처에 널려 있어요. 곤드레 해장국 파는 곳은 제가 잘 돌아다니는 서울, 의정부 같은 곳에서 못 봤어요. 설령 서울에 있다고 해도 정선 왔는데 곤드레 먹어봐야죠. 친구도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곤드레 해장국으로 통일해서 주문했어요.

 

"만두도 주문하자."

"만두? 많지 않을까?"

"괜찮아."

 

저녁을 폭식해도 괜찮았어요. 다음날 일정 때문에 저녁은 무리해서 먹어도 좋았어요. 아니, 정확히는 조금 무리해서 먹어야 했어요.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사북역으로 가서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영월역으로 가야 했어요. 영월역 도착하면 얼추 아침 10시일 거였어요. 아침 10시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하겠지만 대충 10시라고 보면 되었어요. 이 시각에 영월에서 아침밥 먹을 만한 곳이 있을 리 없었어요. 기껏 강원도 남부까지 여행왔는데 김밥천국 김밥 같은 거 먹거나 편의점 도시락 같은 거 먹으면 참 슬플 거였어요. 그럴 바에는 내일 아침 안 먹어도 되도록 저녁을 두둑히 먹는 게 좋았어요.

 

다음날 점심은 아마 예미에서 먹어야할 건데 예미에 제대로 된 식당이 있는지 전혀 몰랐어요. 그러니 점심도 어쩌면 매우 늦게 먹을 수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 저녁을 매우 잘 먹어놔야 했어요.

 

 

밑반찬이 나왔어요.

 

 

밑반찬을 하나씩 먹어봤어요.

 

"여기 무말랭이 대박이다!"

 

밑반찬 모두 맛있었어요. 그 중에서 특히 무말랭이가 엄청 맛있었어요. 가볍게 매콤하고 조금 달았어요. 양념은 단맛과 짠맛의 조합이었어요. 오독오독 씹는 맛도 좋았어요. 친구와 무말랭이를 열심히 집어먹었어요. 너무 맛있었어요. 이건 길거리 간식으로 팔아도 팔릴 거 같았어요. 심심할 때 한 조각 두 조각 집어서 먹어도 맛있게 잘 먹을 맛이었어요.

 

 

곤드레 해장국은 구수했어요. 돼지고기 잡내는 없었어요. 국물이 매우 맛있었어요. 간이 세지 않고 감칠맛이 있었어요. 아주 술술 잘 넘어갔어요. 맛만 좋은 것이 아니라 양도 꽤 많았어요. 돈이 안 아까웠어요. 이 정도 양에 이 가격이라면 수긍할 수 있었어요. 서울에서 주문할 때 보통과 특자 사이 정도 되는 양이었어요. 맛과 양 모두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다른 사람들에게 해장국 맛집이라고 소개해도 좋을 맛이었어요.

 

 

만두도 나왔어요. 만두와 무말랭이를 같이 먹어봤어요. 독특하면서 맛있었어요. 간장에 찍어먹는 것보다 무말랭이와 같이 먹는 것이 더 맛있었어요.

 

"24시간 식당인데도 엄청 맛있네?"

 

많이 놀랐어요. 찬이네감자탕 본점은 24시간 식당인데 맛집이었어요. 서울에 이런 식당이 없는 것이 정말 아쉬웠어요.

 

저녁을 배부르게 잘 먹었어요. 숙소 들어가면 사북읍을 구경할 기회가 없었어요. 다음날은 아침 일찍 숙소에서 나와서 바로 사북역으로 가야 했어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왔는데 보고 가는 게 강원랜드 뿐이라니 참을 수 없었어요. 배불러서 소화시킬 겸 산책도 하고 싶었어요. 친구도 조금 걷다 들어가고 싶어했어요. 친구도 소화시킬 겸 산책도 하고 사북읍을 조금 구경하자고 했어요. 우비의 힘은 위대했어요. 100번 찬양해도 모자랐어요. 만약 우비가 없었다면 친구는 추워서 숙소 들어가자고 했을 거였어요. 우비가 방한 효과가 꽤 좋았어요. 비닐 우비라서 빗물이 몸에 떨어지는 것도 막아주고 바람도 막아주고 체온도 보호해줬어요.

 

"사북시장 구경하고 갈까?"

"그러자."

 

찬이네 감자탕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사북시장이 있었어요. 온 김에 사북시장을 구경하고 가기로 했어요.

 

 

1950년대 중반부터 강원도 남부 일대에서 탄광 민영개발이 활발해졌어요. 그렇지만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개발에는 문제점이 많았어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광구의 소단위화와 탄광의 영세성이었어요. 1950년대에 200여개의 민영탄광 중 몇 개 광업소를 제외하면 대다수가 지나치게 규모가 작은 소규모 탄광이었고, 소규모 탄광은 광구를 지나치게 세분화해서 경계 분쟁까지 발생했어요. 이러한 점은 석탄의 합리적 개발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했어요.

 

이 당시 탄광 개발은 주로 덕대 계약으로 이루어졌어요. 민간업자들은 자본의 영세성과 덕대 계약 기간의 불안정성 때문에 장기적인 시설 투자를 할 수 없었어요. 대부분의 소규모 민영탄광은 노면에서 조금만 파고 들어가며 석탄을 캐고 끝내는 쫄딱구뎅이였어요. 우리나라의 탄광은 지상에서 채굴되는 석탄은 얼마 없고, 대부분의 석탄은 지하에 매장되어 있었기 때문에 지하채탄으로 가야 하는데 이런 소규모 민간업자들에게 대규모 시설 투자와 기술력을 기대할 수 없었어요.

 

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초기 석탄 산업은 민간업자에 의지하고 있었지만, 이들은 노두 근처 채탄이 끝나면 광구를 폐쇄해버리곤 했어요. 석탄 수요는 급증하는데 지상채탄만 하고 지하 심부 개발은 투자가 안 되자 석탄산업 위기론까지 거론될 지경이었어요.

 

 

 

 

소규모 민간업자들에 의존하는 석탄 생산으로는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1년에 정부는 석탄개발임시조치법을 공포했어요. 다음해인 1962년에는 광업개발조성법을 제정해서 정부 차원에서 탄좌 설립과 민영탄광 개발 지원에 나섰어요. 또한 대한석탄공사가 나서서 탄전 전반에 대한 시추 업무와 민영탄광 기술지도 업무를 담당하고 나섰어요. 대한석탄공사는 1963년부터 개발부 인원을 증원해서 대대적인 시추에 나섰고, 6개 탄좌를 비롯해 민영탕관에 개발 기술을 지도했어요.

 

정부에서는 연간 30만톤 이상 생산할 수 있는 규모의 광구를 통합해서 대단위 탄좌를 설정했어요. 이렇게 대단위 탄좌로 설정된 탄좌에는 대규모 투자를 통해 현대적인 경영이 가능하도록 지원했어요. 이러한 정부의 정책과 지원은 대형 민간탄광이 설립되는 기폭제가 되었어요. 탄좌에는 시설투자액 75%를 장기 저금리로 정부가 융자해주었고, 나머지 25%만 자기자본으로 개발할 수 있는 조건을 제공했어요. 여기에 대단위 탄좌가 탄광을 원활히 개발할 수 있도록 철도, 송배선 시설 확충, 운탄도로 개통, 산업도로 건설 등 기반시설을 지원해줬어요.

 

정부에서 대단위 탄좌 설립을 위해 엄청나게 지원해줬지만 성과는 절반의 성공에 가까웠어요. 설립된 탄좌 중 대단위 탄좌로 성공한 것은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 사북광업소의 동원탄좌,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정암광업소의 삼척탄좌,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광업소의 대성탄좌 뿐이었어요. 나머지 탄좌는 자기자본 부족, 운송수단 미비 또는 열악한 탄층이나 불량한 탄질 문제로 대단위 탄좌로 성장하지 못하고 소규모로 유지되고 말았어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은 원래 해발 700m 이상에 자리잡고 있는 경작지가 전혀 없는 산간지역이었어요. 그런데 동원탄좌가 대단위 탄좌로 성공하면서 사북읍도 갑자기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어요. 사북 지역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이유는 고용집약 산업인 탄광 - 그 중에서도 동원탄좌 때문이었어요. 1959년에 사북지역 인구는 고작 70여 가구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설립되던 1962년에 사북지역 인구는 1800명으로 증가했고, 이후 동원탄좌 사북광업소 탄광노동자는 4500명 규모까지 발전했어요.

 

사북 지역은 동원탄좌 발전으로 인한 폭발적인 인구 증가로 인해 1973년에 사북읍으로 승격되었어요. 1980년에 사북읍 인구는 무려 51,042명에 달했어요. 1983년 당시 사북읍 경제활동 인구 15,128명 중 62%인 9,437명이 광업에 종사했다고 해요.

 

 

 

 

사북 지역에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주거 문제도 매우 심각해졌어요. 광부로 일하기 위해 온 사람들은 비싼 돈에 하숙을 했다고 해요. 이나마도 자리가 부족해서 누울 만한 자리면 다락방이고 뭐고 가리지 않고 다 광부들로 들어찼다고 해요.

 

주택 보급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유입되는 인구를 감당 못하자 판잣집을 지어서 판매하는 업자들까지 등장했다고 해요. 주말에 공무원이 쉴 때 3일만에 판잣집을 만들고 이불과 요강 정도 들고 들어가 있으면 공무원이 사람 있는 판잣집이라 허물지 못했다고 해요. 이렇게 완성한 판잣집에 어느 정도 머무르다가 다른 사람에게 파는 일이 많았다고 해요.

 

동원탄좌에서 광산 근로자를 위해 만든 지장산 사택은 우리나라 탄광 사택 중 최대 규모로 손꼽히는 탄광 사택이었어요. 지장산 사택 자리가 현재 하이원 리조트 자리에요. 훗날 동원탄좌가 폐광한 후 지장산 사택을 밀고 그 자리에 하이원 리조트, 강원랜드를 올렸어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1962년 4월에 개광했어요. 동원탄좌는 2004년 11월 폐광할 때까지 약 40여년 동안 동양 최대의 민영 탄광기업이었어요. 동원탄좌는 광구 24개를 보유하고 있었어요. 초창기에는 종업원이 600명이었고, 1963년 생산량은 155,000톤에 불과했어요. 그러나 기계화된 막장 채탄 방식으로 전환하고 수동운반방식에서 벨트 컨베이어 방식으로 기계화하면서 생산량이 증가했어요.

 

1980년대 초에 동원탄좌는 제2의 중흥기를 맞이했어요. 동원탄좌는 대단위 사갱 건설, 운탄 기계화시설을 완공했어요. 이와 더불어 수갱 시설공사를 착공해서 1983년 11월에 수갱 영구 철탑을 준공했어요. 1987년에는 총 생산량 300만 톤을 돌파하며 전국 석탄 생산량 2400만 톤의 13%에 근접하는 대규모 생산을 했고, 1988년 12월는 수갱 시설공사를 완공하며 준공된 대규모 시설들을 기반으로 전국 석탄 생산량의 12%대를 유지하는 생산량을 지속했어요.

 

이후 정부의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으로 인해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지속적으로 감산하며 규모를 줄여갔어요. 동원탄좌 사북광업소는 정선군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폐광한 광업소에요.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은 탄광개발 및 발전으로 크게 성장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사북읍에 대해 대규모 탄광이 있었다고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사북읍이라고 하면 백이면 백 모두 강원랜드를 떠올리고, 한판 땡기고 배팅하러 가는 곳으로 떠올려요. 하이원에서도 너무 도박으로 알려지는 것을 매우 안 좋게 여겨서 복합 리조트 시설로 홍보하고 있어요. 나름대로 투자도 하고 있구요.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당장 매출부터 강원랜드 카지노가 압도적인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데요.

 

 

 

 

사북시장도 사북 지역에 인구가 몰리며 생긴 시장이에요. 그러나 시장 안에서 딱히 과거 동원탄좌의 마을 흔적은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시장 안을 돌아다닐 수록 여기가 강원랜드 카지노의 마을이라는 생각만 더욱 확고해졌어요.

 

콤프 콤프 콤프

온통 콤프잖아!

 

상점 입구, 유리창에는 콤프를 받는다는 문구가 있었어요. 콤프는 강원랜드에서 테이블 및 머신 게임 등 카지노 게임 실적에 따라 지급하는 마일리지에요. 강원랜드에서 즐기고 획득한 마일리지인 콤프로 사북시장 와서 물건 사고 즐기다 가라고 하고 있었어요.

 

처음에는 콤프가 뭔지 궁금했어요. 콤프가 당연히 콤프레샤 기계를 의미할 리 없었어요. 무슨 식당과 일반 가게들에서 콤프레샤를 받아줘요. 콤프가 대체 무엇인지 궁금해하며 시장 안을 돌아다니다 콤프가 뭔지 떠올랐어요. 여행 오기 전에 강원랜드 글을 본 적이 있었어요. 이때 강원랜드 마일리지가 콤프라는 문장을 본 것이 떠올랐어요. 사북읍 와서 강원랜드 안 가더라도 강원랜드의 냄새를 안 맡는 것은 불가능했어요. 여기 전체가 강원랜드 영향권이었어요.

 

 

옥수수 수염을 말리고 있는 가게가 있었어요.

 

 

"여기 분위기 너무 어둡다."

 

사북시장을 한밤중에 왔으니 시장 분위기가 밝을 리 없었어요. 사북시장 영업시간은 이미 한참 전에 끝났어요. 모든 가게가 문을 닫았으니 당연히 분위기가 어두웠어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저와 친구만 시장을 걷고 있었어요. 어느 재래시장이나 전부 영업시간 끝나고 한밤중에 가면 분위기가 매우 어두워요. 시장이 어두운 것은 당연했지만 분위기가 다른 재래시장을 한밤중에 간 것보다 왠지 더 어두운 것 같았어요.

 

'기분 탓인가?'

 

사북이 밝은 동네는 아니에요. 과거가 어쨌든 지금은 강원랜드의 마을이에요. 언론에 비춰지고 있는 사북 모습은 도박의 폐해를 모두 모아놓은 동네에요. 언론에서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밝은 모습은 보도하지 않고 오직 어두운 모습만 집중적으로 보도했기 때문에 그렇게 비춰지고 있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어요. 기자들이 첩첩산중에 대중교통도 그리 좋지 않은 사북읍까지 오는 이유는 사북읍의 밝은 모습을 취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박 중독의 폐해를 취재하기 위해서니까요.

 

사북읍에도 밝은 모습이 있기는 할 거에요. 찾아보면 있을 거에요. 아쉽게도 저와 친구는 사북읍에 와서 사북읍내를 돌아다니며 밝은 모습을 하나도 못 봤어요. 밝은 모습이라면 찬이네 감자탕에서 먹은 곤드레 해장국이 맛있다는 것 뿐이었어요. 주차장에서 본 번호판 뜯긴 차량들, 길거리의 환한 전당포들, 가게마다 붙어 있는 콤프 받는다는 문구들. 이걸 보며 사북읍의 밝은 모습을 찾는 건 무리였어요.

 

 

 

불이 꺼진 시장이라 어두침침한데 비까지 무지막지하게 퍼붓고 있으니 분위기는 더욱 어두웠어요.

 

 

 

친구와 시장에서 나왔어요. 이제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저건 뭔데 저렇게 예쁘게 조성했지?"

 

'별빛공원'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번쩍번쩍하게 잘 꾸며놓은 것이 무슨 대형 관광나이트 입구처럼 생겼어요. 친구와 별빛공원이라는 곳으로 가봤어요. 계단은 못 올라가게 막아놨어요. 별빛공원이라고 하는데 반짝이는 조명 말고는 특징이랄 것이 없었어요.

 

'이건 완전 카바레 번쩍이는 의상 디자인 아냐?'

 

아무리 봐도 별빛공원 조명이 예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니라 무슨 대형 관광나이트 입구, 카바레 의상처럼 보였어요. 별빛공원 하판 아래에는 차가 빼곡히 주차되어 있었어요. 이건 영락없는 주차장이었어요. 친구와 번호판 없는 차량이 있나 쭉 보며 걸었어요. 번호판 없는 차량은 여기에는 없었어요.

 

 

"하천 물 불어난 거 봐!"

 

사북 읍내를 흐르는 지장천은 물이 무섭게 불어 있었어요.

 

 

 

강원도 정선군에 있는 하천인 지장천은 사북과 고한을 지나 남면을 거쳐 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이에요. 동강 상류에 위치한 하천이에요.

 

 

 

삼척탄좌와 동원탄좌가 폐광할 때까지도 이 지역 일대에는 화장장이 없었다고 해요. 공인된 화장장도 없었고, 화장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도 없었대요. 장례로 화장을 할 때는 그때그때 사람을 사서 화장을 했다고 해요.

 

광산에서는 인명 사고가 발생하곤 했어요. 인명 사고가 발생해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대체로 가족들이 와서 시신을 수습해서 고향으로 돌아갔어요. 그렇지만 무연고자라든가 그 외 고향으로 시신을 옮겨갈 수 없는 사람의 시신은 아무 데나 가져가서 매장하기도 하고 화장을 했다고 해요. 1960년대에는 드럼통 두 개를 연결하고 밑에 구멍을 낸 후 용접한 드럼통 위에 시신을 올리고 기름 한 말 정도 붓고 시신을 불태우는 방식으로 화장을 했다고 해요. 고한 고토일, 박심골, 사북 도사곡에서 주로 화장이 이뤄졌기 때문에 사북, 고한 사람들 중에는 이 지역들을 화장터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해요.

 

이 당시 회사 차원의 화장 담장자는 따로 없었다고 해요. 대신 총대를 메고 일당 받고 시신을 화장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해요. 화장을 마치고 나서 뼛가루는 지장천에 뿌렸다고 해요. 시신이 다 안 타면 안 탄 채로 사람 없는 새벽에 지장천에 흘려보냈다고 해요.

 

 

지장천 물은 아까 사북 도착했을 때보다 더 많이 불어 있었어요.

 

 

번쩍이는 사북 읍내 번화가를 뒤로 하고 숙소를 향해 걸어갔어요.

 

"오늘도 여기에서 전당포에 뭐 맡기고 땡기러 가는 사람들 있겠지?"

"있을걸."

 

날씨만 보면 절대 아무도 안 오게 생긴 날씨였어요. 비가 조금 퍼붓는 것이 아니라 사북읍 전체를 쓸어버려서 물청서해버릴 기세로 퍼붓고 있었어요. 아직 지장천 수위를 보니 안전하기는 했지만 매우 많이 퍼붓는 빗줄기였어요.

 

친구와 잡담하면서 걷는 중이었어요. 전당포에 매달려 있는 LED 간판을 보고 둘 다 동시에 웃음이 빵 터져나왔어요.

 

 

노트북 매입!

 

아까 친구와 강원대학교 도계캠퍼스 학생들은 주말 밤에 여기 와서 한 판 땡기고 가는 거 아니냐고 농담했어요. 도계에서 사북은 오기 좋아요. 무궁화호 기차 타고 넘어오면 되요. 도계는 밤에 할 것이 별로 없으니까 밤에 영업하는 식당, 술집이 있고 밤새 돌아가는 강원랜드가 있는 사북 가서 놀다 오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요. 기차는 무궁화호라서 저렴하고, 사북역에서 강원랜드까지 가는 건 무료 셔틀버스 타고 가면 되니까요.

 

농담으로 이렇게 이야기했었는데 LED 간판에 아주 타이밍 딱 맞춰서 '노트북 매입'이 떴어요. 이건 사진을 안 찍을 수 없었어요. 전당포 LED 간판에 노트북 매입이 뜨는 건 놀라울 것 없지만 친구와 농담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타이밍 딱 맞춰서 '노트북 매입'이 뜨니까 너무 웃겼어요.

 

 

강원랜드로 돈 캐러 가자스라.

 

번쩍이는 사북의 밤 풍경이었어요. 곡괭이는 과거 동원탄좌가 있었던 것을 상징하는 조형물이었어요. 그렇지만 여기 분위기가 그렇게 탄광을 떠올리게 생기지 않았어요. 강원랜드 가서 돈 캐러 가자고 세워놓은 것처럼 보였어요. 여기저기에서 당첨과 잭팟으로 돈이 쏟아져나오는 강원랜드로 돈 캐러 가자스라 조형물이었어요. 강원랜드 하면 사북, 사북하면 강원랜드. 5천만 대한민국 국민 상식이에요.

 

진짜 탄광촌인 도계에서 넘어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보였어요.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은 지금도 탄광촌이에요. 탄광의 흔적을 찾아보는 정도가 아니라 지금도 탄광이 2개나 가동되고 있는 지역이에요. 도계는 가보면 탄광촌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어요. 반면 사북읍은 탄광촌 흔적은 거의 안 남아 있었어요. 사북시장이 과거 탄광촌의 시장이었다고는 하지만 딱히 탄광촌의 시장 같은 느낌은 없었어요. 번쩍이는 전당포들과 탄광을 어떻게 연관지어요. 사북읍은 그냥 다른 세상이었어요. 아무리 곡괭이니 석탄이니 갖다놔도 생각이 결국 '강원랜드로 돈 따러 가자'를 형상화한 것이란 걸로 흘러갔어요. 이미 너무 변해버렸어요.

 

 

강원도답게 평창올림픽 마스코트 수호랑과 반다비 조형물이 있었어요. 수호랑과 반다비 조형물을 보고 또 웃음이 터져나왔어요.

 

"저것들 지금 강랜으로 땡기러 가는 거잖아!"

 

흰색 호랑이는 지금 머리 속에 잭팟 맞을 생각 밖에 없어요. 땡겨서 돈 왕창 따서 오늘 밤에는 고급 쇠고기도 배터지게 먹고 호화로운 호텔에서 룸서비스로 와인도 시켜서 마시고, 다음날에는 마세라티를 뽑을까 포르쉐를 뽑을까 이런 생각 뿐이에요. 저 해맑은 표정과 힘찬 발걸음 보세요. 돈이 무한으로 쏟아져나오고 복사되는 강원랜드 가서 나도 인생 활짝 펴보자고 하고 있잖아요.

 

진회색 곰은 지금 나름대로 머리를 굴리면서 전략을 짜고 있어요. 어디에서 본 건 또 있어가지고 필승 바카라 전략, 필승 포커 전략, 확률을 높이는 배팅 기법 같은 거 떠올리면서 열심히 머리 속에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어요. 나의 뛰어난 두뇌와 치밀한 전략이라면 도박으로 승리해 강원랜드 털어먹는 건 일도 아니라고 자신하면서 열심히 머리 굴리고 있어요.

 

흰색 호랑이는 한 방에 쪽박 차고 무료 셔틀버스 타고 돌아와서 편의점에서 소수 사서 지장천 근처로 가서 깡으로 나발 불 거에요. 그러면서 내 인생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고 신세한탄할 거에요. 진회색 곰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을 거에요. 나름대로 오래 버티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돈 다 잃고 나와서 탄이 부족했네 한 끗발이 부족했네 그 배팅에서 더 강하게 나갔어야했네 후회하며 흰색 호랑이 옆에서 사이좋게 깡소주 마실 거에요. 그리고 어디로 간다? 전당포 가야죠. 호뤠이 쉐리는 가죽 맡기고 곰탱이 쉐리는 웅담 맡기고 또 승부 보러 가야죠. 뭐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수호랑과 반다비는 표정부터 포즈까지 완벽한 강원랜드 카지노로 한 판 땡기러 가는 모습이었어요. 보자마자 위와 같은 스토리가 떠올랐어요. 엄청 웃었어요. 친구가 제게 왜 웃냐고 물어봤어요.

 

"저것들 완전 강원랜드 달려가는 포즈잖아!"

 

친구는 제 말을 잘 이해 못 했는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어요.

 

숙소로 돌아왔어요. 신발에서 깔창을 꺼내서 방바닥에 놓았어요. 저는 다행히 신발이 별로 안 젖었어요. 발목 쪽이 신발 혀가 비를 맞아서 젖었는데 이게 신발 바닥까지 번졌어요. 자는 동안 말리면 다 마를 거였어요.

 

 

창밖을 봤어요. 뒷산 위에는 불이 밝게 켜져 있었어요. 별로 높지 않은 산 같은데 산 허리까지 구름이 덮고 있었어요. 산머리를 덮은 구름과 구름을 비집고 나온 뿌연 불빛에 새까만 하늘과 쏟아지는 폭구. 영화에서나 보던 으스스한 악마가 튀어나오는 밤 같은 풍경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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