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탄고도 9길 코스 지도를 만드는 중이었어요. 운탄고도 9길을 걷을 계획이었지만 공식 상세 지도가 없었어요. 운탄고도1330 코스 중 8길과 9길은 공식 상세지도가 없어도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공식 지도를 보고 직접 상세 지도를 만들어서 걸을 수 있는 길이에요. 운탄고도1330 코스 중 1길부터 7길까지는 산길이 포함되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공식지도 보며 카카오맵에서 지도를 만들 수 없지만 8길과 9길은 공식지도 보며 카카오맵을 이용해 스스로 상세지도를 제작할 수 있는 코스에요.
철도와 하천을 극복할 수가 없다.
운탄고도1330 8길과 9길은 도계역에서 시작해서 삼척시 소망의 탑으로 끝나요. 이 두 길의 지리적 특징은 바로 오십천, 철도에요. 8길 시작부터 9길 마평1교까지는 오십천과 철도를 따라 걷게 되어 있어요. 9길 마평1교부터는 오십천을 따라 삼척항까지 걷고, 삼척항까지 다 걸었으면 그때부터는 해안가를 따라 소망의 탑으로 걷게 되어 있는 코스에요.
삼척시가 운탄고도1330 조성에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붓고 정성을 기울인다고 해도 철도와 하천은 어쩔 수 없어요. 트레킹 코스 만든다고 철도를 잘라버리고 하천에 커다란 다리를 세울 수 없으니까요. 오십천은 하류로 갈 수록 폭이 상당히 넓어져요. 오십천을 건너려면 제대로 다리를 놔야 해요. 그런데 지도와 로드뷰를 보면 다리 놓는다고 쉽게 해결될 길이 아니에요. 오십천 양 옆으로 평지가 넓게 있는 게 아니라 한쪽은 이름모를 산 절벽인 곳도 많거든요. 게다가 철도는 중간에 철길 건널목 하나 만든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철길 건널목만 세우는 게 아니라 철길 건널목 너머로 길도 내어야 하니까요. 결국 운탄고도 8길과 9길은 거의 있는 길 따라서 가게 되어 있어요.
운탄고도1330 9길을 걷다 보면 마평1교 근처에서 무궁화호가 다니는 기찻길과 작별하도록 되어 있었어요. 이 지점은 의미가 상당히 큰 지점이에요. 운탄고도1330의 중심 소재인 석탄과 작별하는 지점이기 때문이에요. 석탄 대부분은 기차를 타고 미로역에서 도경리역으로 넘어가요. 도경리역을 지나서 동해시로 가요. 마평1교에서 운탄고도는 사실상 끝나요. 진짜 석탄의 길을 걷고 싶다면 여기에서 도경리역으로 가서 도경리역에서 동해시로 넘어가야 해요. 동해시에서 기찻길을 따라 묵호항으로 가는 길이 바로 석탄의 길이에요.
'가는 김에 도경리역 찍고 갈까?'
운탄고도1330 9길 코스에서 도경리역은 빠져 있었어요. 도경리역을 집어넣어도 되었을 것 같은데 도경리역은 생략되어 있었어요. 미로역에서 도경리역을 들리게 한 후 다시 오십천 따라 삼척항으로 가게 해도 될 거 같은데 코스가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았어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도경리역 가보겠어.'
도경리역은 과거에는 사람들이 탑승할 수 있는 기차역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기차에 탑승할 수 없는 역이에요. 현재는 도경리역이 아니라 도경리신호장이에요. 신호장은 단선 구간에서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에서 열차 교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중간에 대피선과 철도신호기를 설치한 곳이에요. 도경리역은 원래는 보통역이었지만 점점 강등되어서 지금은 신호장 역할을 하고 있어요.
도경리역은 운탄고도1330 9길을 걸을 때 아니면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자동차를 운전해서 일부러 가지 않을 거라면 갈 방법이 없었어요. 도경리역은 버스도 하루에 3번 밖에 안 들어가는 지역이에요. 도경리역을 보고 나온 후 그나마 번화한 곳으로 이동하려면 삼척터미널이 있는 삼척 시내까지 가든가 까마득히 아래로 내려가서 도계읍까지 내려가야 해요. 여기는 정말 운탄고도1330 9길 걸을 때 들리지나 않으면 갈 일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갈 방법이 없는 곳이었어요.
"이건 힘들어도 가야 해."
운탄고도1330 9길을 걷기 전에 9길 지도를 만들며 이쪽에 대해 조사하면서 도경리역은 코스에 들어가 있는 곳은 아니지만 반드시 가봐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만한 가치가 있었어요. 태백, 도계에서 시작되는 타이타닉 같은 극적인 서사가 있는 비극적인 스토리가 있는 길이 삼척시 구간에서는 도경리역에서 마침표를 찍었어요. 이후부터는 딱히 큰 의미없이 오십천 타고 가는 길이었어요.
굳이 비유하자면 운탄고도1330 9길에서 잠시 벗어나서 도경리역 가는 길은 타이타닉 같은 거대한 스케일에 극적인 서사가 있는 책을 다 읽고 책장을 스스로 덮는 길이었고, 마평1교부터 소망의탑까지 가는 길은 책 다 읽고 도서관에 반납하러 가는 길이었어요. 책을 읽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다 읽어야죠.
2022년 10월 21일, 운탄고도1330 9길을 걷는 중이었어요. 전날 운탄고도 3길을 걷고 걷는 거라 평소보다 조금 더 피곤했어요. 운탄고도 9길은 힘든 길은 아니었어요. 대신 이게 상당히 길었어요. 게다가 저는 운탄고도 8길을 이미 걸어봤어요. 운탄고도 8길부터 9길까지 풍경은 점점 밋밋해져요. 그래서 처음에는 재미있었지만 조금씩 지루해지려고 하고 있었어요.
2022년 10월 21일 오전 10시 18분, 마평교에 도착했어요. 여기에서 바로 다리를 건너지 않고 철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어요. 도경리역 가는 길이었어요.
카카오맵으로 도경리역 가는 길을 검색해보면 꼬불꼬불한 잿길을 넘어가게 되어 있었어요. 이렇게 나온 이유는 도경리역 맞은편으로 넘어가는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도경리역에 도착했어요. 도경리역은 초록색 지붕의 하얀 건물이었어요. 작고 예쁘게 생긴 건물이었어요.
도경리역 앞에는 안내문이 적혀 있는 소개판 2개가 세워져 있었어요.
삼척 구 도경리역
三陟 舊 桃京里驛
Former Dogyeong-ri Station, Samcheok
국가등록문화재 제298호
National Registered Cultural Heritage No.298
도경리역은 1939년에 세워진 1동 1층 규모의 목조 건물로, 영동선에 남아 있는 역사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1940년부터 2008년까지 운영되었다.
도경리역 건물은 면적이 159.98제곱미터로 아담한 편이다. 맞이방이 가로로 놓여 있고 광장 오른쪽으로는 출입구가, 철로 쪽으로는 역무실이 튀어나와 있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하얀색으로 페인트칠이 되어 있고 일본식 기와를 올린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건물의 모양을 따라 출입구와 역무실 위에 각각 맞배지붕이 놓여 있는데, 맞배지붕이 같은 위치에 있는 다른 역들과는 다르다. 또한, 건물 바깥을 따라 덮지붕을 설치하여 철로 쪽에서 옆면 출구 쪽으로 연장한 모습이 독특하다.
깊은 산속 감춰진 아름다움 도경리역
역 이야기
문화재가 된 영동선 철도역의 맏형
도경리역은 영동선 철암-묵호 구간에 위차한 역으로 영동선에서 가장 오래된 역이다. 철암선이 삼척탄전의 개발을 위해 개통되었던 1940년 8월 도경리역도 함께 영업을 개시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역사가 완공된 것은 1939년 5월이지만 일부 그보다 먼저 지어졌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인적이 적은 외진 곳에 위치하여 이용객이 줄어들면서 1997년 배치간이역이 되었다가 현재는 열차가 멈추지 않는다. 건축하적 의의와 희귀성 때문에 2006년 등록문화재 제298호로 지정되었다. 2009년 지붕과 창호를 보수하였지만, 여전히 소박하면서도 자연스러운 품격이 묻어난다.
지역 이야기
한때는 삼척의 중요 교통시설로 역할
도경리역은 이웃 다른 마을보다 지세가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는 뜻으로 '돈경'으로 부르던 지명에서 유래된 이름의 역사답게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던 곳이다. 지금은 여객을 다루지 않지만, 과거 도경리역은 삼척시의 주요 교통시설로 이용자가 많은 곳이었다. 때문에 한 번에 많은 사람이 나갈 수 있는 측면 출입구를 별도로 두었을 것으로 추측되는데, 그 노천 출입구가 역사의 다양한 조형의 재미와 여유를 더해준다. 비록 더 이상 승객이 열차를 기다리는 역은 아니게 되었지만, 여전히 열차들은 도경리역을 지나며 사람과 삶, 시간을 실어나른다.
도경리역은 역사 안에 들어가볼 수 있었어요.
도경리역 안에는 열차 시간표가 붙어 있었어요.
상행
열차번호 1698
무궁화
도착시각 18:27
출발시각 18:28
종착역 영주
하행
열차번호 1698
무궁화
도착시각 09:54
출발시각 09:55
종착역 강릉
도경리역에서 마지막으로 열차 운행이 될 때 기차는 하루에 상행 한 번, 하행 한 번 정차했어요.
도경리역 안에는 여객 운임표도 붙어 있었어요.
영동선
영주 7900
봉화 7100
춘양 5800
녹동 5500
임기 5300
현동 5000
분천 4600
석포 3600
철암 3000
통리 2800
도계 2800
고사리 2800
하고사리 2800
마차리 2800
신기 2800
상정 2800
미로 2800
동해 2800
묵호 2800
옥계 2800
정동진 2800
안인 2800
강릉 3000
위 사진은 도경리역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본 도경리역 내부 모습이에요.
도경리역에서 플랫폼으로 나가는 문은 밖에서 잠가놓았는지 열리지 않았어요.
도경리역은 삼척시내에서 가장 가까운 영동선이에요. 나무위키를 보면 도로를 통한 서울 방향 접근이 불편했을 시절에는 나름대로 삼척 시내의 영동선 내 관문역으로 기능했을 법도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렇게 되지는 못하고 산골짜기의 작은 역으로 남았다고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직접 가보면 이유를 알 수 있어요. 도경리역으로 가는 길은 매우 좁고, 역사 쪽으로 가는 길은 특히 좁은 오르막길이에요. 산골 속에 있는 조그마한 기차역이라 대중교통 접근성이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에요. 대중교통 접근성을 놓고 보면 오히려 더 아래쪽 폐역인 미로역이 훨씬 나아요. 삼척종합버스터미널 기준으로 미로역까지 자동차로 14분 걸려요. 미로역까지 가는 길은 38번 국도 큰 길 따라 가면 되구요.
하지만 미로역도 도경리역도 사이좋게 폐역으로 전락한 이유는...
그 시간이면 동해역 가면 돼.
삼척종합버스터미널에서 도경리역 가는 길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에요. 도경리역으로 들어가는 길이 매우 좁아요. 도경리역 앞도 공간이 매우 좁아서 주차공간이 별로 없구요. 미로역은 도로가 더 좋고 주차공간도 확보하려면 확보할 수 있지만 삼척종합버스터미널에서 미로역 가는 시간이나 동해역 가는 시간이나 거의 똑같아요. 그러면 동해역으로 가라고 하는 게 낫죠. 삼척종합버스터미널에서 동해역으로 가기 위해서는 21-1번 버스를 탑승하면 되는데, 이 버스가 삼척시 대중교통정보에서 찾아보면 삼척종합버스터미널-동해역 구간에 하루에 36회 있어요.
강원도 삼척시를 자동차로 여행중이거나 운탄고도1330 9길을 걷는 중이라면 도경리역을 한 번 들려보는 것도 매우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