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감을 살 때 매의 눈이 되어야하는 이유

좀좀이 2012. 11. 2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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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에서 살며 과일은 참 많이 먹었어요. 요즘은 거의 안 먹지만, 여름, 가을에는 밥 대신 과일을 먹을 정도로 과일을 매우 많이 먹었죠. 이유는 간단해요. 싸고 엄청나게 맛있으니까요. 여름, 가을에는 신 맛이 나는 과일을 찾는 게 단 맛이 나는 과일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워요.


하지만 여기는 저장시설이 안 좋은 나라. 그래서 몇 번이고 시장을 돌아다녀야 해요. 저는 물건 하나 사려고 시장을 몇 바퀴 도는 것을 참 안 좋아하지만, 몇 번 과일 잘못 산 후로는 열심히 시장을 돌아다니고 충분히 과일을 비교해본 후 과일을 구입해요. 안 그러면 돈 날리고 쓰레기만 늘거든요. 우리나라는 좋은 과일을 파는 가게 한 곳 알면 그 집 가서 계속 구입해먹게 되는데, 여기는 그런 게 별로 없어요. 질 좋은 과일을 파는 가게가 수시로 바뀌어요. 그래서 반드시 시식해보고 몇 번을 살펴본 후에 확실히 감이 와야 구입을 하죠.


그래서 지금까지 과일을 잘 샀어요. 처음에 몇 번 실패한 것 제외하고는 모두 괜찮은 과일을 구입했죠.


그런데 새로운 녀석이 나왔으니...


감.


우즈베키스탄에도 감이 나와요. 그냥 조금 가져다놓고 파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로 감이 많이 나와요. 요즘 시장 가면 과일이라고는 그다지 질이 안 좋아보이는 포도 약간 있고, 나머지는 전부 감, 사과, 석류에요.


이야기는 11월 초로 돌아가요.


한국에서 감을 사듯 시장에서 감을 사 왔어요. 시장을 몇 번 돌아다니고 시식을 해보고 확실하다 싶어서 집어왔어요. 그런데...


생긴 건 똑같은데 도저히 떫어서 먹을 수 없는 감이었어요. 칼로 잘랐을 때까지는 우리나라 감과 다를 거 없었어요. 그리고 그게 함정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감 고르듯 고르면 여기에서는 떫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어요. 속이 시커멓게 보일 정도로 갈색빛이 돌고, 물렁물렁해야 먹을 만한 감인데 속 색깔을 확인하기 위해 다 잘라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물렁거리는 것도 적당히 물렁거려야지, 너무 무른 건 또 꽝이에요. 맛이 없어서 꽝이라기 보다는 온통 멍들고 상처 투성이여서 이것을 집에 가서 먹을 수 있을까 싶은 놈들이 태반이거든요.


어쨌든 한국에서 감을 살 때처럼 신중히 골랐다가 망한 감을 버릴 수도 없고 해서 그냥 알아서 자연 숙성되라고 창가에 놔두었어요.




20일 넘게 푹푹 묵힌 감이에요. 이 감은 구입한 날짜도 안 잊어버려요. 11월 4일에 구입한 감이에요.


진짜 푹푹 쪄먹을까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지만 그런 시도까지는 해 보지 않았어요. 그냥 무관심에 집안 장식 쯤으로 여기게 되더라구요.


감을 열흘 정도 숙성시킨 후, 감을 먹어보았는데 그때도 떫은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방치. 홍시가 되든 곶감이 되든 알아서 되라고 그냥 던져놓고 있었어요.


'20일이면 어떻게 먹을 수 있게 되지 않았을까?'


계속 집안 장식물인줄 알고 있다가 문득 이게 장식물이 아니라 '감'이라는 먹는 과일이었다는 사실이 떠올라서 하나 까서 먹어보기로 했어요.



"이제야 다 익었잖아!"


20여 일 푹푹 던져두니 이제야 먹을 수 있게 익었어요. 맛은 확실히 좋았어요. 떫은 부분도 없었어요. 다시 감을 사서 먹고 싶다는 유혹이 들기는 하는데...


지금 감을 사면 내가 한국 돌아갈 때 되어서야 먹을 수 있게 되는 거 아니야?


우즈베키스탄에서 감을 살 때에는 반드시 다른 과일과 다르게 매우 신중하고 잘 골라야 해요. 한국에서 고르듯 고르면 낭패 봅니다. 감을 고르는 방법은 '필히' 손가락으로 눌러보아야 해요. 그래서 조금 물렁거린다 싶은 놈으로 골라야 해요. 만약 딱딱하다? 아주 높은 확률로 떫습니다. 문제는 조금 물렁거리는 놈 치고 구입하고 싶게 생긴 감이 없다는 것. 만져보아서 먹을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감은 거의 전부 어디 가서 죽도록 얻어터지고 온 듯한 몰골이에요. 어떻게 그런 상태의 감을 팔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요.


여기 요즘 커다랗고 맛있게 생긴 대봉감도 많이 나오던데 구입하고는 싶은데 사 와서 정 떫으면 푹푹 익혀버릴까 살짝 고민이 되네요. 지금 구입하면 1월에는 먹을 수 있을 거 같기도 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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