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34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비비 하늠 모스크

좀좀이 2012. 11. 22.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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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기스탄 광장을 가장 먼저 갈 것인가, 레기스탄 광장을 가장 마지막에 갈 것인가?


숙소에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이것을 결정해야 했어요. 호스텔 근처에 레기스탄 광장이 있기는 했지만 레기스탄 광장 가는 방향과 비비 하늠 모스크 가는 길은 정반대 방향. 레기스탄 광장쪽으로 올라가면 레기스탄 광장을 보고, 아미르 테무르 동상과 아미르 테무르 묘소까지 볼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반대 방향으로 간다면 비비 하늠 모스크와 쇼흐지나, 울루그벡 천문대까지 볼 수 있었구요.


레기스탄 광장, 아미르 테무르 동상, 아미르 테무르 묘소는 두 번 왔을 때 두 번 다 지나갔던 곳. 안에 들어가지만 못했을 뿐, 지나가며 본 곳이었어요. 당장 아침에 택시 타고 오면서도 이 세 곳은 지나갔어요. 반면 비비 하늠 모스크쪽은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전에 보았던 곳을 먼저 볼 것인가, 전에 보지 못했던 곳을 먼저 볼 것인가. 사마르칸트는 부하라처럼 큰 도시는 아니었어요. 비록 히바보다야 큰 도시였지만 현지인들도 반나절이면 충분히 다 본다고 하는 도시. 반나절이면 충분히 다 보는 도시 정도가 아니라 타슈켄트에서 당일치기로 보고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 곳이었어요. 실제로 타슈켄트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많이 다녀오구요.


'설마 오늘 사마르칸트를 다 못 볼 일은 없겠지?'


모두가 반나절이면 다 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하는 사마르칸트. 어느 쪽부터 시작해도 오늘 내에 다 보는 것에 아무 문제가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도 여행에는 항상 '혹시', '만약'이라는 것이 있는 법.


'레기스탄 광장을 가장 마지막으로 보아야겠다.'


일단 비비 하늠 모스크 쪽으로 걸어가며 울루그벡 천문대까지 보는 것을 먼저 하기로 했어요. 이쪽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울루그벡 천문대에서 아미르 테무르 동상까지는 거리가 조금 되었어요. 울루그벡 천문대에서 아미르 테무르 동상까지 시간이 되면 걸어오고, 안 되면 택시를 타고 가는 방법이 있었어요. 그렇게 아미르 테무르 동상까지 이동한 후, 바로 그 근처에 있는 아미르 테무르 묘소를 보고 숙소 돌아오는 길에 레기스탄 광장을 보고 돌아오면 동선이 나름 깔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게다가 마지막에 시간이 부족해졌을 때,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남은 두 마드라사는 대충 후딱 보고 끝내버리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구요.


그래서 일단 비비 하늠 모스크 쪽부터 보기로 했어요. 다리가 아픈 것이 계속 신경쓰였거든요. 누구든 반나절이면 보는 사마르칸트이지만, 오늘 잘 걸어다닐 수 있을지 스스로 미더웠어요. 다리가 멀쩡했다면 그다지 크게 고민할 문제도 아니었지만 이틀간 탑을 4개 올라갔어요. 히바에서 올라간 탑 3개 높이를 다 더하면 120미터가 넘는데 여기 도착하자마자 아침에 또 탑을 하나 올라갔어요. 별로 힘든 일정도 아니고 힘들게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여행 말미에 이렇게 다른 여행보다 더욱 힘들게 느껴지는 원인은 오직 하나. 바로 탑이었어요.




숙소에는 아침 일찍 도착했지만 숙소에서 나온 시각은 11시 즈음. 그래도 아직 여유가 있었어요. 현지인들의 말대로 타슈켄트에서 당일치기로 사마르칸트를 보고 온다면 아침 기차를 타고 와야 해요. 가장 빨리 오는 아프로시욥 기차를 타고 타슈켄트에서 사마르칸트 온다고 해도 아직 도착할 시간이 되지 않았어요. 여기는 크기는 하지만 크게 택시를 타고 돌아다닐 곳도 없는 도시. 11시에 관광을 시작한다 해도 늦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어요.


"슬슬 시작해볼까?"



오늘은 토요일. 우리나라는 토요일에 학교를 가지 않지만 우즈베키스탄은 토요일에 학교를 가요. 거리에는 학생들이 많이 보였어요. 이 나라 교복은 남학생은 검은색 바지에 하얀 셔츠, 여학생은 검은색 스커트에 하얀 블라우스. 그 외에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요. 동복은 위에 검은 재킷을 덧입는 것 정도에요.


"왜 이렇게 이 길에 학생들이 많지? 다 여기 사는 애들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는 것은 금방이었어요. 이 길에 학교가 있었거든요. 길가에 학교가 있으니 학생들이 많은 것은 당연한 것.


사마르칸트


비비 하늠 모스크가 보였어요. 비비 하늠 모스크는 레기스탄 광장과 더불어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유명한 곳. 레기스탄 광장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다고 했는데 그렇게 멀지도 않았어요. 레기스탄 광장 입구 기준으로는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맞지만, 레기스탄 광장 왼쪽 옆에서부터라면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는 거리도 아니었어요. 정말로 그냥 생각 없이 주변 보며 걸으면 금방 걸어갈 수 있는 거리.


이 거리에는 꽤 큰 기념품점들이 있었어요. 특별히 기념품을 살 생각이 없어서 그냥 밖에서 지나치다가 눈길을 끄는 기념품점을 하나 발견했어요. 이 기념품점은 악기를 파는 기념품점이었어요.


'혹시 창코고즈 있을까?'


우즈베키스탄에서 TV로 종종 전통 음악을 들을 수 있었어요. TV를 통해 여러 악기의 소리를 들어보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창코고즈'라는 악기였어요. 왜 이름이 창코고즈인지는 저도 몰라요. 우즈벡어로 '창'이라면 '더러운'이라는 뜻이고 '코고즈'라면 종이라는 뜻. 사실 이것을 올바르게 적어주는 우즈벡인을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어요. 한결같이 '창 코고즈'라고만 이야기해줄 뿐이었어요. 그래서 'chang qog'oz'라고 적으면 '더러운 종이'라는 말이 되요. 이 악기는 조그만 쇳조각인데 입에 물고 손으로 튕겨서 소리를 내요. 그러면 '띠용' 소리가 나는 악기. 이 '띠용' 소리가 좋아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으면 살까 하고 타슈켄트 초르수 바자르 근처를 돌아보았지만 돌아다닐 때마다 이 악기가 없었어요.



이 사진에서 입에 물고 있는 쇳조각이 바로 창코고즈에요.


창코고즈는 주로 카슈카다리오, 수르혼다리오에서 사용하는 악기. 사마르칸트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카슈카다리오에요. 타슈켄트야 카슈카다리오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 없을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창코고즈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안에 들어갔는데 직원은 한 명 뿐이었어요. 마침 일본인 관광객들이 옷감을 보러 와서 정신이 없었어요. 엽서를 구경하다가 어떤 악기가 있나 구경했어요.


"이거 창코고즈네?"


제가 이것 저것 구경하고 있는 것을 본 점원이 제게 다가왔어요.


"이거 뭐에요?"


창코고즈를 직원에게 보여주었어요.


"창코고즈."

"이거 어떻게 소리내요?"


직원이 입에 물고 쇳조각을 튕겼어요. 그러나 그 특유의 '띠용' 소리가 나지 않았어요. 직원이 자기는 모르고 형이 안다고 하며 제게 건네주었어요. 저도 어떻게 입에 물고 쇳조각을 튕겨보았지만 그 특유의 소리는 나지 않았어요.


"이거 얼마에요?"

"50달러."


음...


생각보다 많이 비쌌어요. 과연 50달러를 주고 살 가치가 있는가? 형이 창코고즈를 연주할 줄 안다고 했고, 점원은 창코고즈 연주를 할 줄 모른다고 했어요. 저 역시 창코고즈 연주를 어떻게 하는지 당연히 몰랐구요. 제대로 소리내는 법도 모르는 악기를 과연 살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10달러 정도라면 그냥 샀을 수도 있었겠지만 50달러는 무리였어요. 소리를 내는 법을 알았다면 직원과 흥정을 해서 가격을 깎고 구입을 했을 거에요. 하지만 이 가게 안에 있는 모두가 창코고즈 소리를 낼 줄 모른다는 것이 문제.


그래서 창코고즈는 내려놓고 엽서만 2장 샀어요.


"여기에서 엽서도 부쳐주나요?"

"아니요. 레기스탄 광장으로 가다 보면 우체국 있어요."


직원 말대로 레기스탄 광장을 따라 걸어갔어요.


"아까 걸어올 때 분명히 우체국 못 보았는데..."


레기스탄 광장쪽으로 가면 우체국이 있다고 직원이 알려주었어요. 제가 걸어간 방향은 레기스탄 광장에서 비비 하늠 모스크 쪽. 즉 제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길을 걸으면서 우체국을 본 적이 없었어요.


"실례합니다. 우체국 어디에 있어요?"

"우리들도 관광객인데..."


우즈벡인 아주머니들께 길을 여쭈어 보았어요. 그러자 그 아주머니들께서는 자기들도 관광객이라 우체국이 어디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더니 주변에 있는 다른 우즈벡인에게 우체국이 어디 있냐고 물어봐 주셨어요. 그러자 그 우즈벡인은 저를 데리고 우체국 근처까지 가 주었어요.



이러니 아까 길을 걸어갈 때 못 찾았지!


우체국 입구는 건물 틈에 숨어 있었어요. 우체국 입구가 이렇게 꼭꼭 숨어 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요. 여기 위치를 설명하자면 이래요.



레기스탄 광장에서 비비 하늠 모스크로 걸어갈 때 길 오른편에 붙어서 가세요. 그리고 큰 길 말고 오른쪽 골목들을 잘 살피시면서 가세요. 이 주변에 이정표로 삼을 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이렇게 알려드릴 수밖에 없네요. 원래 이 우체국 입구에서 대각선 맞은편을 보면 MTS 사무실이 있는데 MTS는 지금 문을 닫았으므로 이게 다른 이동통신사 사무실로 바뀔지 아니면 아예 다른 가게로 바뀔지 모르거든요. 만약 사마르칸트에서 엽서를 보내고 싶으신 분은 레기스탄 광장에서 비비 하늠 모스크로 이어지는 길에서 엽서를 사서 우체국에 가서 써서 보내시면 되요.


우체국은 정말 작았어요. 안에서 나름 수집용 우표도 팔고 있었지만 종류가 거의 없었어요. 특별히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우표도 없었어요. 이 우체국이 좋은 점은 기념 우표를 사서 엽서에 붙여 보낼 수 있다는 점. 우즈베키스탄에서 편지나 엽서를 보낼 때 붙이는 우표는 하얗고 간단한 그림이 그려진 우표로 그렇게 예쁘지는 않아요. 이왕이면 외국 나와서 편지나 엽서 보낼 때 예쁜 우표를 붙여서 보내고 싶기 마련인데 일반 우표는 김이 빠지게 생겼어요. 이 우체국은 다행히 기념 우표를 액면가에 사서 붙일 수 있는 곳이었어요.


우체국에서 두 명에게 엽서를 썼어요. 그리고 기분 좋게 기념 우표와 보통 우표를 같이 붙여서 엽서를 보냈어요.


우체국에서 나와 다시 비비 하늠 모스크로 갔어요.


Samarkand


아미르 티무르의 사랑을 받던 비비 하늠이 모스크를 짓는 건축가가 키스를 허락하지 않으면 건물을 짓지 않겠다는 협박에 키스를 허락했다가 처형당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 그리고 그 모스크가 바로 비비 하늠 모스크에요. 비비 하늠 모스크 맞은편에는 비비 하늠의 묘소도 있어요. 저는 먼저 비비 하늠 묘소부터 갔어요.



이곳이 바로 14~15세기에 지어진 비비 하늠의 묘소 Bibixonim maqbarasi (Bibi Khanim mausoleum). 맞은편은 비비 하늠 모스크에요. 그리고 여기는 당연히 유료.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아주머니께 당당히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을 보여드렸어요. 그러자 현지인 요금을 받았어요. 이곳은 외국인은 6천숨, 저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500숨. 무려 10배가 넘는 차이.



이것이 내부에요. 제일 왼편에 있는 관이 비비 하늠의 것이에요. 중요한 것은 저게 관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관이 아니라는 사실. 실제 시신은 저 관처럼 생긴 돌 아래에 있어요. 제일 왼쪽부터 비비 하늠, 비비 하늠의 어머니, 비비 하늠의 조카의 묘이고, 오른쪽 방에 있는 묘 두 개는 시종들의 것이에요.





입구는 1층에 있고, 묘소는 지하에 있었어요. 그리고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었어요.



가장 왼쪽의 묘소가 비비 하늠의 묘소에요.


계단을 보니 단지 지하 1층만 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2층으로 올라갈 수도 있게 되어 있었어요. 우즈벡인 청년들이 2층으로 올라가기에 저도 따라 올라갔어요.


"아무 것도 없어. 올라오지 마!"


우즈벡인 청년들이 계단 끝까지 올라가더니 아무 것도 없다고 하며 제게 내려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길을 비켜준 후 2층으로 올라가 보았어요. 아무리 아무 것도 없다고 하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정말 궁금했거든요.


올라가 보았더니 정말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바로 내려와서 비비 하늠 모스크로 갔어요.



이곳이 바로 14~15세기에 지어진 비비 하늠 모스크 Bibixonim masjidi (Bibi Khanym mosque). 레기스탄 광장과 더불어 사마르칸트를 대표하는 곳이자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잘 알려진 곳들 중 하나. 이곳 역시 유료였어요. 외국인은 6천숨, 저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이 있어서 600숨.



흐음...


무언가 시작부터 심상치 않을 것 같았어요.







비비하늠 모스크


외부에서 보면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솔직히 좋다, 아름답다, 뛰어나다...이런 말까지는 못하겠어요. 슬픈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과대포장이 심하다는 감이 있었어요.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감성 팔이. 아름다운 이야기에 홀려 안에 들어온다고 해야 할까요. 저야 600숨 내고 들어왔기 때문에 이 정도면 큰 불만이 없었지만, 6천숨 내고 들어갈 가치가 있는 곳인지 진심으로 궁금했어요. 부풀려진 거품을 빼고 건물 자체만 보면 이게 과연 6천숨 내고 들어갈만한 곳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으음...


건물 내부로 들어갔어요.



한 청년이 무언가를 그리고 있었어요.


"사진 찍어도 되나요?"

"찍어요."


청년은 제가 사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사진을 찍으라고 하고는 작업을 계속했어요.


"무엇 위에 그림 그리고 계세요?"

"나무 위에요."



"응?"


건물에서 나가는데 사진이 이렇게 나왔어요. 이건 대체 무슨 일이 발생한 거지? 카메라가 이제 제대로 고장나려고 하는 건가? 어떻게 찍었는지 알면 종종 써먹을텐데 이런 사진이 또 우연히 나왔어요.




이런 곳이었어요. 지진으로 폐허가 된 후, 정말로 보수를 한 번도 안 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내가 짧은 시간에 너무 많은 모스크와 마드라사를 보아서 까칠해진 건가?


하지만 6천숨을 내고 보라고 하기에는 무언가 크게 부족한 것도 사실이었어요. 물론 복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그렇게 걷는 것이라면 납득하겠지만요. 단순히 관람을 위해 6천숨을 내는 것이라면 납득하기는 어려운 가격. 솔직히 말해서 밖에서 보며 환상을 가지는 것이 안에 들어와 어떤 모습인지 자세히 보는 것보다 좋았어요.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어떤 마드라사든 모스크든, 유료든 무료든 최대한 아름다움을 감상하려고 노력해왔다는 것이었어요. 전에 본 것들은 잊고 그것 자체만을 보려고 했어요. 그래서 아무리 모스크든 마드라사든 몇 개를 보든 몇 십 개를 보든 전부 좋았어요.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큰 것은 큰 것대로, 볼 게 있는 것은 볼 게 있는 대로, 볼 게 없는 것은 볼 게 없는 대로 좋았어요. 그런데 여기는 그렇게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어요. 하도 많이 비비 하늠 모스크 이야기를 들어왔고, 안 보아도 모습이 그려질 정도로 비비 하늠 모스크 영상을 많이 보아서 이런 것인가? 이곳이 보수가 잘 되었다면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비비 하늠 모스크는 딱 방치되지 않는 수준이었고, 그렇다고 무언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다운 모스크도 아니었어요. 그냥 잘 알려진 모스크.



비비 하늠 모스크 한가운데에 독서대처럼 생긴 돌이 있었고, 사람들이 돌 아래를 기어가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돌 아래를 기어서 돌고 있는 것을 구경하고 있는 우즈벡인에게 사람들이 대체 왜 저 돌 아래를 열심히 기어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어요.


"사람들 저기 왜 기어다녀요?"

"저기를 3번 기어서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대요."


우즈벡인의 설명에 의하면 저 돌 아래를 세 번 기어서 돌은 여자가 임신을 했대요. 그때부터 저 돌 아래를 세 번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생겼대요. 그래서 저도 세 번 돌 아래를 기어서 돌았어요. 카메라 가방을 메고 돌려니 더욱 힘들었어요. 탑 한 번 올라가는 것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세 번 돌고 나니 해내었다는 성취감이 조금 있었어요.


돌 아래를 기어서 세 번 돌고 바로 비비 하늠 모스크에서 나왔어요. 아직 갈 곳이 많이 남아있었어요. 게다가 비비 하늠 모스크는 밖에서 감상하는 것이 더욱 아름다워 보였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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