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33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과 일출

좀좀이 2012. 11. 2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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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니 주변이 캄캄했어요.


"많이 자기는 했나 보구나."


몇 시인지 알 수 없었어요. 그저 매우 야심한 밤이라는 것만 알려주는 어둠. 기차가 사마르칸트 종점이 아니라 타슈켄트 종점이기 때문에 알아서 잘 내려야 했어요. 일단 늦게 일어나지는 않은 것 같았어요. 캄캄함 속에서 옆구리에 느껴지는 네모난 덩어리를 집어들었어요. 그것은 바로 제 카메라 가방. 기차의 흔들림에 따라 문이 열렸다 닫혔다 하고 있었어요. 유럽이었으면 벌써 싸그리 다 털렸겠네. 다행히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저와 같은 칸에 탄 나머지 두 명도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던 듯 했어요. 2층에서 내려와 창밖을 보았어요. 밖은 사막. 달빛에 젖은 사막도 황량해 보이기는 매한가지. 히바로 갈 때와 달리 별도 많이 보이지 않았어요. 문을 잠그고 다시 올라가 카메라 가방에서 핸드폰을 꺼냈어요. 시각은 새벽 1시. 아직 사마르칸트는 고사하고 나보이까지도 못 갔구나. 잠을 더 자고 싶은데 잠에서 완전히 깨어버려서 더 잘 수도 없었어요. 여행 기록을 이틀치나 밀렸는데 불을 켤 수 없어서 밀린 여행 기록도 쓸 수 없었어요. 할 수 있는 것이라면 핸드폰으로 여행기에서 사진이 안 들어가는 부분을 작성하는 것 정도. 2층은 이래서 안 좋아. 자리마다 개인 램프가 있기는 한데 2층 자리에서 켜면 방 전체로 불빛이 퍼져서 다른 사람들 자는데 방해가 되거든요.


일단 오늘 - 9월 29일 지금 기차 안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어요. 확실히 지금 겪고 있는 일을 바로 쓰는 것이다보니 쓰는 것이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기억해내고 떠올리고 사건을 재구성할 필요가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그냥 있는 그대로 쓰는 거라 어려울 것이 전혀 없었어요. 여행할 때 읽어지지도 않는 책 무겁게 끌고 다니는 것보다 시간 날 때 여행기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고 알차다는 것을 이번 여행에서 깨달았어요. 요즘은 카메라 메모리 카드를 스마트폰에서 인식시켜주는 장치도 있다던데 그거 하나 들고 다니면 장기간 여행 다닐 때 정말 딱일 듯 했어요. 아...그전에 나는 핸드폰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구나.


이놈의 핸드폰은 회생불가 아예 고장 진단을 받은 후 새로 하나 구하려니까 또 간간이 되네. 그래도 이미 늦었어. 벌써 중고폰으로 하나 구해서 해결했을 문제를 아직도 질질 끌고 있는 것은 여기가 우즈베키스탄이기 때문. 눈여겨 본 스마트폰을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고로 구하려 했지만 간발의 차이로 놓쳐서 그냥 기다리고 있는 중이거든요.


여행기를 쓰다 잠깐 졸 듯이 잤어요. 꿈을 꾸었어요. 제가 여행기를 핸드폰으로 쓰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에 여행기를 쓰고 있었던 꿈이었어요. 이런 해괴한 꿈을 꾸고 일어나니 5시. 복도에 붙어 있는 운행 시간표에서 정차 후 출발 시각에 기차가 역에 도착하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사마르칸트 도착 시각은 새벽 5시 40분. 침대에서 내려와 간단히 씻고 짐을 챙기고 기차가 역에 도착하기를 기다렸어요.


5시 40분. 기차가 역에 도착했어요. 차장이 사마르칸트에 도착했다고 알려주었어요. 짐을 짊어매고 기차에서 내리기 위해 문으로 갔어요.


문은 열어주어야 내리지!


기차 문이 열려 있지 않았어요. 역에 도착하면 문이 열려 있고 계단이 나와 있어야 하는데 문이 잠겨 있었어요. 사마르칸트 정차 시각은 20분. 복도로 가서 차장을 찾았어요.


"문 열리지 않았어요!"


차장은 제가 문이 열리지 않았다고 말하자 문을 열고 철판을 들어올린 후 계단을 내려주었어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반겨주는 것은 차가운 바람. 하늘엔 보기만 해도 심란한 구름이 잔뜩 끼어 있었어요.


"설마 비 오는 거 아니야?"


사마르칸트는 이번이 세 번째. 부하라도 이번 여행때 간 것이 두 번째이긴 하지만 사마르칸트와는 질적으로 아예 다른 도시. 부하라는 처음 갔을 때 투르크메니스탄으로 가기 위해 간 곳으로, 유적지들이 있는 시내에는 아예 간 적이 없었어요. 그러나 사마르칸트는 앞서 두 번 왔을 때 모두 레기스탄 광장 앞에는 가 보았어요. 처음 레기스탄 광장에 갔을 때에는 너무 시간이 늦어서, 두 번째 레기스탄 광장에 갔을 때에는 사마르칸트 근처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국경이 폐쇄되어 시간도 없는데 소나기까지 거칠게 퍼부어서 두 번 다 광장이 어떻게 생겼는지 대충 보기만 하고 지나갔어요. 이번에는 시간 때문에 레기스탄 광장에 들어가지 못할 일이야 없겠지만, 만약 비가 내려서 오늘 일정이 전부 엉망진창이 되어 버려 또 못 들어간다면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이 저를 거부하는 것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었어요.


기차에서 내려보니 기차 한 대를 전부 걷고 더 걸어가야 역 바깥으로 나갈 수 있었어요. 천천히 걸어서 역 바깥으로 빠져나갔어요.


역 출구에는 택시 기사 두어 명이 기다리며 어디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러나 여기에서 택시 탈 필요가 없었어요. 역에서 빠져나와 조금만 쭉 걸어가면 버스 종점이 있어요.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레기스탄 광장까지 바로 갈 수 있거든요. 올해 5월 타지키스탄 갈 때 그렇게 사마르칸트 역에서 내려서 레기스탄 광장으로 갔어요. 그래서 택시 기사들에게 택시 필요 없다고 하고 버스 정거장으로 갔어요.




버스 정거장에 버스가 서 있었어요. 그래서 버스를 타기 위해 갔어요.


"레기스탄 광장 가요?"

"안 가. 3번 버스 타."


기차역에서 레기스탄 광장 가는 버스는 3번이고, 곧 올 거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버스를 기다렸다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어요. 버스 기사는 어떤 아저씨와 이야기하더니 버스 기사가 저를 불러 같이 이야기하던 아저씨를 따라가라고 했어요.


"택시?"

"어디? 레기스탄 광장?"

"예."

"얼마에?"

"3천숨이요."


아무리 멀다 한들 3천 숨이면 충분히 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타슈켄트에서 제가 사는 곳에서 기차역까지 꽤 멀지만 대충 3천 숨이면 충분히 가거든요. 타슈켄트에서의 경험으로 일단 3천 숨을 불렀어요. 저도 이 도시에서는 엄연한 관광객. 이 도시 택시비가 얼마인지 잘 몰랐어요. 하지만 대충 타슈켄트에서의 택시비로 불렀어요. 이번 여행을 하며 잊고 있었던 것 하나를 다시 떠올렸어요. 택시 기사가 얼마에 가겠냐고 물어볼 때 절대 '얼마에 갈 수 있어요?'라고 외국인 티 팍팍 내지 말 것. 그렇게 물어보면 당연히 엄청나게 높은 가격을 부르거든요. 거리를 잘 모를 경우 대충 시내라면 3천 숨부터, 먼 곳이라면 5천 숨부터 부르면 대충 흥정을 할 수 있어요. 관광객 입장에서 현지인처럼 타고 다니는 건 정말 어렵거든요.


택시 기사는 조금 망설이더니 그냥 타라고 했어요. 조그만 마티즈 안에 다른 승객 두 명도 탔어요. 그들이 가는 곳 역시 레기스탄 광장 근처.


택시가 출발하고 자기들끼리 대화하기 시작했어요.


'이 사람들도 타지크어 쓰는구나.'


사마르칸트도 부하라와 마찬가지로 타지크인들이 엄청나게 몰려 사는 도시에요. 그래서 가면 타지크어 많이 들을 수 있다고 현지인들이 말해 주었었는데, 이 도시도 딱 그랬어요. 하루의 시작을 택시에서 듣는 타지크어로 시작. 저와 대화할 때에는 우즈벡어로 이야기해 주었어요. 제가 타지크어도 러시아어도 모르고 오직 우즈벡어만 안다고 말했거든요. 그래서 택시 안에 탄 사람들이 저와 이야기할 때에는 우즈벡어로 이야기했고, 자기들끼리 이야기할 때에는 타지크어로 이야기했어요.


'여기나 부하라에서 우즈벡어 공부했으면 타지크어도 몇 마디는 배워갔을텐데...'


개인적으로 타지크어는 한 번 제대로 배워 보고 싶은 언어들 중 하나. 하지만 타슈켄트에는 타지크어를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타지크어를 따로 가르쳐주는 학원도 없구요. 그렇다고 무턱대고 타지크인에게 돈을 주고 타지크어 과외를 받을 수도 없는 일. 모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잘 하는 것과 모국어를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는 것은 완벽히 별개의 문제이니까요. 이런 이유로 타슈켄트에서는 타지크어를 배울 방법을 아직까지도 찾지 못했는데 사마르칸트와 부하라에서는 사람들이 타지크어로 많이 이야기했어요. 게다가 그 사람들이 우즈벡어도 잘 알았구요. 만약 사마르칸트나 부하라에 살았다면 타지크어도 꽤 배웠겠죠. 러시아어와 달리 의욕도 있었으니까요.


택시 기사와 승객들의 대화는 단어 몇 개 정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 우즈벡어와 타지크어는 비슷한 단어가 많고, 문법도 비슷한 게 조금 있어서 집중해서 들으면 단어 몇 개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어요. 하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건 역시나 불가능. '그냥 자기들끼리 이런 저런 이야기 하나 보다'라는 생각 외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얻어낼 정보가 없었어요.


같이 탄 두 사람이 먼저 내리고 저는 레기스탄 광장 바로 맞은 편에서 내렸어요.



아직 날이 제대로 밝지 않았어요. 이 광장 앞에 서니 감회가 새로웠어요. 처음 왔을 때에는 너무 늦게 와서 야경만 보고 갔지. 그리고 두 번째 왔을 때에는 우산도 없는데 소나기가 퍼부었지. 이제 세 번째. 설마 세 번째 왔는데도 이것을 못 볼 일은 없을 거야.


기차에서 내렸을 때에는 오늘 비가 오는 것 아닌가 싶은 하늘이었어요. 그러나 여기 와서 하늘을 보니 구름이 걷히고 있었어요. 오늘은 여행하기 꽤 괜찮은 날씨가 되겠어. 레기스탄 광장에 두 번 왔는데 두 번 다 못 들어간 것은 그냥 운이 없었다고 하면 돼. 설마 세 번 왔는데 못 보는 일은 없겠지. 왠지 날씨도 이번 만큼은 저를 도와줄 것 같았어요.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당연히 아무도 없었어요. 이제 6시 15분이 되어 가고 있었거든요. 아무리 아침 일찍 일어나는 우즈벡인들이라 하더라도 이 시각부터 열심히 돌아다니지는 않아요. 게다가 여기는 관광지. 일하러 오는 곳이 아니라 놀고 감상하러 오는 곳이기 때문에 이렇게 새벽부터 사람들이 미어터질 리 없는 곳. 지키는 사람조차 아무도 없었어요. 이렇게 좋은 기회가 없었어요. 이런 기회는 자주 찾아오지 않는 법. 그래서 후다닥 레기스탄 광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응? 이거 왜 이래?"


멀리서 보았을 때는 정말 아름다워 보였어요. 레기스탄 광장은 우즈베키스탄의 상징과 같은 곳. 저야 세 번째 간 거라 별 감흥이 없었어요. 하지만 저 역시 처음 레기스탄 광장을 보았을 때에는 정말 아름다워서 감탄했어요.


그런데 사진으로 건물을 하나씩 찍어보니 뭔가 크게 부족했어요. 이게 감탄할 만한 대상인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사진이 못 나왔어요. 레기스탄 광장에 서서 보는 그 느낌과 사진이 전혀 달랐어요.


"다시 찍어볼까?"





"이건 아닌데..."


레기스탄 광장에 실제 서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사진에는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어요.




동이 슬슬 터 오는데 레기스탄 광장 한가운데에 서서 느끼는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사진은 한 장도 없었어요.



이거 프라하와 비슷한 효과 아니야?


간단히 말하자면 건물 하나만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우즈베키스탄을 상징하는 아름다움이라고 할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단지 보존과 복구가 잘 되었을 뿐이에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아직 자기네 문화재를 전부 제대로 보존과 복구할 능력이 안 되어서 그런 것이지, 이 정도 급은 다른 곳에도 많아요. 그것들 상태가 워낙 안 좋아서 그런 것 뿐이죠. 이것은 우즈베키스탄의 무능력과 무관심을 탓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방치된 유적들이 한둘이 아니에요. 앞서 본 부하라에서 아주 잘 나타나죠. 이건 다른 도시들도 마찬가지에요. 타슈켄트도 마찬가지구요. 문화재 복구가 무조건 인력만 투입해서 되는 것도 아닌 데다, 문화재 복구 말고 당장 삶을 위한 현대화도 시급한 문제에요. 소련 시절 지어놓은 낡은 것 투성이라 이것들을 수리하고 새로 짓는 것 또한 지금 우즈베키스탄에서 중요한 과제에요. 수도 타슈켄트만 해도 큰 길만 벗어나면 도로 상태가 엉망진창인 곳이 흔하니까요.


이 레기스탄 광장에 있는 세 마드라사는 정말로 복구와 보존이 잘 된 편. 게다가 중요한 것은 이 셋이 모여서 광장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마치 체코 프라하에서 아름다운 것들이 구시가지에 집중적으로 모여 있어서 또 다른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어요. 아름답게 잘 복구된 세 마드라사가 한데 뭉쳐서 '1+1+1=3'이 아니라 '1+1+1=10'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하지만 건물 하나만 잘라서 사진으로 찍으면 당연히 1만 나오죠. 건물 하나만 떼어서 놓고 보면 환상적인 곳이라 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아름답고 복구 잘 된 마드라사 수준이었지만, 이런 게 셋이 모여서 특유의 아름다움과 분위기를 만들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이제 숙소나 찾으러 가야겠다."


레기스탄 광장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때운 이유는 이렇게 사람 없을 때 사진을 찍을 기회가 많지 않은 곳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숙소를 찾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었다는 이유도 있었어요. 체크아웃은 이르면 9시, 보통 12시 정도인데, 새벽 6시에 가서 방 있냐고 물어보는 것은 썩 좋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이!"


레기스탄 광장에서 벗어나 숙소를 찾아가려는데 경찰이 불렀어요.


"예?"


경찰은 제가 다가왔어요.


"관광객?"

"예."


광장에 그냥 들어갔다고 트집잡을 생각인가? 그런데 아까 제가 광장 안에서 실컷 사진 찍고 놀 때 이 경찰은 없었어요. 만약 그것 가지고 트집을 잡는 것이라면 나는 절대 안 들어갔다고 잡아뗄 생각이었어요.


"여기 탑 올라가보지 않을래?"

"탑이요? 얼마에요?"

"5달러."


사마르칸트 레기스탄 광장에서 경찰에게 돈을 주면 울루그벡 마드라사 왼쪽 탑에 올라갈 수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었어요. 하지만 어떤 경찰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지는 당연히 몰랐고, 게다가 레기스탄 광장은 끝날 때까지 관광객이 붐비는 곳이었어요. 저 혼자 있다면야 적당히 어떻게 해 보겠지만, 문제는 관광객들. 한 명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줄줄이 비엔나로 쫓아올 게 뻔했으니까요. 경찰에게 돈을 주어야 올라갈 수 있다는 말은 어렵게 생각할 것 없어요. 원래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이에요. 경찰도 바보가 아닌 이상 사람들 떼거지로 다 보고 있는데 돈 받고 원래 올라가면 안 되는 탑에 올라가게 해 줄 리가 없죠. 게다가 5달러면 그럭저럭 괜찮은 가격.


'지금 확 올라갈까? 그런데 지금 이 짐 다 메고 기어올라가기는 조금 그런데...'


안 올라간다는 게 아니라 짐을 어디 맡길 곳 없나 생각하고 있는데 경찰은 제가 올라갈까 가지 말까 망설이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 같았어요.


"지금 올라가서 보면 풍경 최고야. 해 뜰 때 탑에 올라가서 보는 사마르칸트 풍경이 최고의 사마르칸트 모습이라구. 지금 올라가서 사진 찍는 거야!"

"좋아요."


가방 메고 어떻게 올라갈 수 있겠지. 경찰을 따라갔어요. 경찰은 울루그벡 마드라사 옆쪽으로 가더니 문을 열고 자기를 따라 들어오라고 했어요. 울루그벡 마드라사는 레기스탄 광장을 정면에서 보았을 때 왼쪽에 있는 마드라사에요.


경찰은 울루그벡 마드라사 2층으로 올라갔어요. 여기에서 다시 한 번 문을 열고 제게 따라오라고 했어요. 본격적으로 탑 올라가기 시작...은 아니고, 2층에 올라가서 다시 천장이 낮은 좁은 통로를 지나 계단이 나왔어요.


"여기에 가방 놔."


가방을 내려놓고 낮은 입구로 허리를 굽히고 목을 숙여 들어갔어요. 본격적인 탑 올라가기가 시작되었어요. 탑 자체는 올라가기가 어렵지는 않았어요. 단지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계단이 잘 보이지 않았다는 것 정도였어요. 계단 상태는 진짜로 안 좋았구요. 정말 괜히 이 탑을 못 올라가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 느껴졌어요. 재미있는 것은 경찰 아저씨도 같이 올라갔다는 것.


"여기 올라가서 봐."


경찰이 벽에 붙어서서 지나가라고 했어요. 경찰 옆을 지나 꼭대기로 올라갔어요. 꼭대기는 딱 한 명이 설 수 있는 자리. 가슴팍 조금 아래까지 탑 바깥으로 나왔어요.










"우와!"


아침 노을과 멀리 보이는 산, 그리고 붉게 물든 사마르칸트의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어요. 정말 멋있기는 멋있었어요. 사진이 안 멋있는 이유는 제가 사진을 엄청 못 찍기 때문이에요. 아침부터 탑 기어올라가 맞는 사마르칸트의 아침. 진하고 꿈같은 환상을 주기보다는 현실적인 아침 풍경이었어요. 부하라 겨울궁전에서 본 일몰이 '실크로드의 꿈'이라고 한다면 여기는 그냥 '사마르칸트의 아침'. 이 아침 풍경은 정말 휴가 첫 날 아침에 일어나 타 먹는 인스턴트 커피와 같은 맛이었어요.


여기가 아미르 티무르가 세운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구나.

그리고 지진 때문에 한동안 폐허로 버려졌던 사마르칸트구나.

마지막으로 지금 대통령인 이슬롬 카리모프의 고향 사마르칸트구나.


탑에서 내려왔어요. 다행히 머리를 한 번도 찧지 않았어요.


"너 일해?"

"아니요. 학생이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을 보여주었어요. 그러자 경찰은 외국인은 레기스탄 광장 입장료가 8달러인데 저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이 있으므로 현지인 가격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알려주었어요. 그리고 제게 울루그벡 마드라사를 보고 싶으면 보고 오라고 했어요.


'이왕 온 거 울루그벡 마드라사도 보고 가야겠다.'


이따 관광객이 몰리면 감상은 고사하고 사진 찍기도 힘들어질 것이 뻔했어요. 그래서 혼자 조용히 울루그벡 마드라사를 감상했어요.



2층에서 본 울루그벡 마드라사.



내려와서 본 울루그벡 마드라사.



이 동상은 미르조 울루그벡 탄생 600주년 기념 동상이에요. 미르조 울루그벡은 매우 위대한 천문학자. 사마르칸트에는 울루그벡 천문대도 있어요. 여기도 오늘 가야할 곳.



이 사진에서 왼쪽에 있는 탑이 제가 올라갔던 탑이에요. 저 탑을 올라갔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더욱 좋았어요.


울루그벡 마드라사에서 나왔어요. 이제는 정말로 숙소를 찾아가는 길.



레기스탄 광장에도 아침이 찾아왔어요.



이른 아침부터 레기스탄 광장에 찾아온 관광객들.



레기스탄 광장을 뒤로 하고 숙소가 있는 곳으로 갔어요. 제가 찾는 숙소는 Bahodir B&B. 이 숙소는 레기스탄 광장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무언가 심상치 않은 하늘. 그래도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어요. 단지 부하라, 히바, 코칸드, 파르고나, 안디잔에서 보았던 맑고 푸른 하늘이 보이지 않았을 뿐이었어요. 정말 '단지'요. 이놈의 사마르칸트는 제가 오니까 날이 흐려진 것 같았어요. 하지만 네가 아무리 나를 거부한다 해도 오늘 하루종일 내가 여기 있을 거니까 너도 별 방법 없을 거다. 지금이 비가 올 때는 아니니 말이야. 기다리고 있어. 내가 이따 또 올게. 이따 와서 아주 타일 무늬 한 개 한 개 다 세어줄께!


지도를 보며 Bahodir B&B를 찾아갔어요.


"내가 그렇게 쉬운 줄 알았니?"


사마르칸트의 속삭임. 분명 레기스탄 광장 근처에 있다고 했는데 레기스탄 광장 근처 길을 다 돌아다녀도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30분 정도 그렇게 길을 헤매고 돌아다녔어요. 어느덧 아침 8시. 전혀 일부러 원해서 그런 게 아니었어요. 머물 숙소를 찾지 못해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다 보니 숙소 들어가기 아주 좋은 시간이 되어 버렸어요.


8시 10분쯤 되어서야 겨우 숙소를 찾았어요. 이것은 사마르칸트가 저를 거부해서 못 찾은 것은 아니었어요. Bahodir B&B는 간판이 작게 달려 있는데 이게 나뭇가지에 가려서 제가 못 보고 지나친 것이었어요. 저는 이 숙소에서 길 건너편에서 걷고 있었거든요. 레기스탄 광장 오른쪽에서 돌다 돌다 다시 레기스탄 광장 오른쪽으로 돌아와 주변을 아주 유심히 살피며 걸었더니 쉽게 찾았어요.


"여기 자리 있나요?"

"자리 있어요."


이 숙소 역시 예약을 하고 가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자리가 있냐고 물어보았더니 자리가 있다고 했어요.


"1박에 얼마에요?"

"1박에 12달러."

"숨으로는요?"


아저씨가 핸드폰 계산기를 켜서 12달러를 숨으로 바꾸어 계산했어요. 여기는 1달러를 2600숨으로 계산했어요. 여기는 확실히 숨으로 돈을 내는 것이 유리한 곳. 게다가 내일 기차타고 집에 돌아가는 일만 남았기 때문에 숙박비를 숨으로 내도 문제 없었어요.


방을 둘러보니 방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샤워 커튼이 없고 문이 안 잠기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그 외에는 그렇게 큰 단점도 없어 보였어요.


"아침은 주나요?"

"줘요."

"오늘도 주고, 내일도 주나요?"

"아니요. 오늘 지금 주든가 내일 아침에 주든가요. 오늘 먹고 내일 2달러 내고 아침을 또 먹을 수 있어요."

"그러면 내일 먹을게요. 그리고 돈은 숨으로 낼게요."


아저씨께 여권과 돈을 가지고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아저씨께서 내려가시자 여권과 숨 뭉치를 꺼냈어요. 카메라 배터리를 충전기에 꼽고 충전기를 콘센트에 끼웠어요. 지금부터 충전하면 24시간은 충전할 수 있겠지? 지금 카메라에 끼운 배터리로 오늘 하루는 충분히 잘 보낼 수 있겠지. 하지만 의외로 배터리가 빨리 닳아버릴 수도 있었어요. 지금 일찍 끼워놓았으니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숙소로 돌아와 충전지를 바꾸어 끼워 나가면 되었어요. 물론 그런 일이 발생하려면 제가 하루 종일 카메라를 켜놓아야겠지만요.


천 숨짜리 지폐 31장과 200숨 지폐 1장, 그리고 여권을 들고 내려가 아저씨에게 갔어요.


"저는 타슈켄트에서 살고 있어요. 그래서 거주지등록 필요없어요."

"여기서 앉아서 잠깐 기다리세요."


아저씨께서는 거주지등록을 하고 여권을 복사하는 동안 잠깐 평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평상에 앉았어요. 평상에 앉아 있자 소녀가 차와 요구르트, 꿀, 비스킷을 가져다 주었어요.


"이건 누가 한 짓이야?"



누가 했는지 모르겠어요. 보물 상자를 열고 웃고 있는 할아버지 인형 보물 상자 안에 담배 꽁초를 집어넣어 놓았어요. 이것이 원래 재떨이 용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보물 상자 열었는데 나온 것이 담배 꽁초라...상상만 해도 웃겼어요.


요구르트에 꿀을 잔뜩 넣고 마신 후 차를 마시고 있는데 아저씨께서 제게 여권과 종이 쪽지 하나를 주셨어요.


"이건 뭐에요?"

"이거 거주지등록인데 타슈켄트에 거주지등록 되어 있으니까 필요 없어요. 그냥 버려요."



이것이 말로만 듣던 여행자들의 거주지등록이구나!


우즈베키스탄 안을 여행하면서 여행자들이 거주지등록을 어떻게 하는지 몰랐어요. 이것은 제가 알 수도 없는 것이 저는 여행자와 달리 우즈베키스탄 체류자거든요. 저는 몇 개월씩 거주지등록을 하는데, 이 경우는 OVIR에서 여권에 도장을 따로 찍어주어요. 그리고 이렇게 타슈켄트에 거주지등록이 되어 있기 때문에 여행자용 거주지등록을 할 필요가 아예 없어요. 제가 받는 거주지등록과 여행자들이 하는 거주지등록은 아예 다른 것이고, 제가 받은 거주지등록이 있으면 여행중 거주지등록을 아예 안 해도 되요. 그래서 여행자들이 어떻게 거주지등록을 해야 하는지 대충 인터넷에서 보고, 호텔 직원들에게 들어서만 알 뿐이었어요. 여행자들은 숙소에서 거주지등록을 대행해주었을 경우 숙소에서 무슨 종이쪽지 하나 준다고 들은 적은 있었는데 실제 해본 적은 처음이었어요.


차를 다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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