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대선 사전투표 시작이네."
2022년 3월 4일 금요일이었어요. 이날은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 시작일이었어요. 사전투표는 3월 4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실시될 예정이었어요. 사전투표가 끝나고 본투표는 3월 9일 수요일이었어요.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차이는 사전투표는 아무 지역에서나 투표할 수 있고, 본투표는 본인이 주민등록상 거주하고 있는 지역의 지정된 투표소에서만 투표가 가능해요.
이번처럼 대선 분위기 참 안 나는 대선도 있었을까?
지금까지 경험해본 대통령 선거는 선거일로부터 한참 전부터 매우 뜨거웠어요. 다양한 정책과 그에 대한 이슈가 있었고, 대선테마주도 엄청나게 요동쳤어요. 대선테마주는 크게 두 종류가 있어요. 인맥주가 있고 정책주가 있어요. 1라운드는 인맥주고, 2라운드는 정책주에요. 대통령 선거 때는 정책주가 크게 움직이고 이때 진정한 한국 증시의 꽃 대선테마주 시즌이 찾아와요.
그러나 모든 게 다 조용했어요. 대선 테마주 시즌인지도 모르겠어요. 요즘 주식에 별로 관심을 안 갖고 있기 때문에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 것일 수도 있지만 상한가 리스트 같은 것을 보고 주식 커뮤니티를 봐도 대선 테마주 이야기는 예전에 비해 훨씬 적었어요. 주식판의 관심은 미국 금리인상 이슈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전세계적인 증시 폭락이었어요.
뉴스를 봐도 마찬가지였어요. 꼴깝 떨던 정부 관료들도 걸렸다는 뉴스가 오히려 더 눈에 들어왔어요. 대통령 선거 정책에 대한 공방은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있기는 할 거에요. 그러나 그보다는 후보들의 도덕성과 관련된 이슈가 도배하고 있었어요. 도덕성 따위 뭐가 중요하다고 도덕성이나 따지고 있는지 매우 한심한 상황이에요. 그보다는 정책과 정책을 실현할 구체적 방안이 훨씬 중요한데요.
대통령 선거 시즌인데 오히려 사회적 관심은 다른 곳에 쏠려 있었어요. 영업시간 금지 조치 해제가 언제 되는지에 모든 관심이 다 가 있어요. 이 꽃샘추위가 끝나면 봄이고, 이제는 모두가 제대로 활동해야죠.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게 증가해서 이제 감당이 안 되는 지경까지 왔어요. 당장 2년제 전문대 20학번들은 방송통신대 다닌 꼴이 되었고, 4년제 대학생들도 2년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했어요. 그런데 4년제 대학생들이 올해까지 또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면 이건 두고두고 한국 사회에서 고질적인 리스크로 작용할 거에요.
"내일 명동 가서 투표해야지."
원래는 3월 4일에 동네에서 빨리 투표하려고 했어요. 그러나 날이 춥고 나가기 정말 싫었어요. 게다가 이날 늦잠 자서 정신 차려보니 이미 시간이 너무 애매해져버렸어요. 그래서 3월 5일에 서울 중구 명동에 있는 명동 주민센터 사전투표소 가서 제20대 대통령 선거 사전투표를 하기로 했어요.
3월 5일이 되었어요. 서울 중구 명동으로 갔어요. 전에 모스버거 먹으러 왔고 또 왔어요.
"여기는 참 의미있는 곳이지."
서울 중구 명동은 우리나라에서 대표적인 도심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곳이에요. 그래서 중학생들도 종로, 명동이 도심공동화 현상이 일어나는 대표 지역으로 배워요. 하지만 제가 서울 중구 명동으로 사전투표를 하러 온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어요.
혹자는 서울 명동이 중국 사드 보복 때문에 망했다고 이야기해요. 타격이 심각했던 건 사실이에요. 그러나 그거 때문에 완전히 망했다? 그건 틀렸어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 없어진 후에 중국인 개인 관광객 및 동남아시아 관광객들이 많이 왔어요. 그 전에 워낙 중국인만 우대하고 한국인은 문전박대하던 명동이었기 때문에 명동 상권의 쇠퇴는 모든 한국인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었어요. 그러나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없어도 '명동'이라는 곳 자체가 외국인들에게 워낙 유명한 관광지이다 보니 다른 여러 나라 관광객들이 몰려왔어요.
정권이 바뀌고 최저임금 폭등으로 여기도 타격을 입었어요. 그 이후 2020년 3월 사태로 아주 망해버렸어요. 장사는 안 되는데 인건비는 폭등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아예 방문객 자체가 없어져버렸어요.
명동 상권이 망한 이유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냉정히 말해서 단순히 사드 보복, 최저임금 폭등, 2020년 3월 사태 - 오직 이 세 가지 때문에 멸망한 건 아니에요. 서울의 관문 서울역과 가깝다는 지리적 장점을 홍대입구역에 완전히 넘겨준 것도 있고, 의류와 패션이 동대문 상권으로 완전히 넘어가 버린 것도 있어요. 오히려 제일 중요한 건 한국인 손님들 소홀히 대하다가 특색을 완전히 상실하고 '외국인들이나 가는 유명해서 유명한 곳'으로 전락해버린 게 가장 커요. 중국인 단체관광객만 바라보다가 파멸적 결과를 맞아버린 대표적인 상권이에요.
"거리 참 깨끗하네."
재미있는 점은 명동에서 이제 외국인 점원이 거의 안 보인다는 점이었어요. 예전에는 중국인 직원만 바글바글했어요. 이후 중국 사드 보복 후에는 베트남인, 태국인 직원들이 늘어났어요. 그래도 중국인 직원들은 여전히 있었어요. 왜냐하면 타이완, 동남아시아 화교들이 왔거든요.
2020년 3월 이후 외국인 관광객은 절멸 수준으로 떨어져버렸어요. 그러나 외국인 직원은 전부 필요없어져버렸어요. 명동 상인들이 뭔 짓을 하든 그동안 한국인 손님들에게 해온 짓거리가 있어서 당연히 한국인들은 안 갔어요. 다른 상권들은 어렵다고 하면 동정하는 말도 많았지만 명동 상권이 어렵다고 하면 한결같이 아주 꼴 좋다고 신나했어요. 자업자득이에요. 그리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아예 절멸 수준으로 없어지자 장사가 안 되어서 외국인 직원들을 거의 없앴어요. 직원만 없어진 게 아니라 가게들도 망해서 여기저기 공실이 넘쳐나요.
서울 중구 명동은 최저임금 폭등, K-방역의 직격탄을 아주 제대로 맞고 개같이 멸망한 상권이에요. 그래서 일부러 중구 명동 사전투표소로 투표하러 갔어요. 중국과 중국인들만 엄청 빨아대고 한국인 무시하다가 폭삭 망한 명동 꼴도 구경하고 투표도 하려구요.
제20대 대통령 선거 서울 중구 명동 사전투표소는 서울 명동 주민센터 3층 강당이었어요.
도심공동화 현상의 대표주자 명동답게 관내 투표를 하러 온 사람은 거의 없었어요. 대기줄이 매우 길었어요. 그 중 중구 주민은 거의 없었어요. 제가 투표하고 나가는 동안 본 중구 구민은 5명 채 안 되었어요. 모두가 이 근방에 놀러왔다가 사전투표하러 온 사람들이었어요.
사전투표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어요.
저녁 있는 삶?
현실은 저녁 부업 있는 삶이 되었지.
인터넷에서 재미있는 말이 돌아다니고 있어요. 어느 순간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사라졌어요.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진짜 지옥이 되니까 헬조선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거래요. 이거 진짜 맞을 거에요.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이 정도로 일반인들 개개인 하나하나 삶과 경제를 파괴시키고 가정을 분열시켜놓은 시기가 과연 역사적으로 존재했는지 의문일 지경이에요. 한국 경제는 2020년 3월 사태 이전에 이미 상황이 극도로 나빠지고 있었어요. 과격한 최저임금 폭등으로 인한 심각한 부작용이 여기저기에서 터져나왔어요.
남녀갈등이 폭발한 것도 최저임금 폭등이 야기한 엄청난 실업난과 극심해진 외국인 노동자 의존 문제와 엄청나게 밀접한 관련이 있어요. 곳간에서 인심난다고 양보할 것은 고사하고 자기가 먹을 것도 없는데 강제로 빼앗아가며 양보하라고 하니 싸움나죠. 청년실업률은 끝없이 치솟았어요. 자영업자들도 줄줄이 망해갔어요. 최저임금은 정부가 시장 전체에 가하는 구조조정이에요. 노동자도 최저임금만큼 생산성을 보이지 못하면 노동시장에서 나가라는 소리고, 기업가도 최저임금만큼 벌지 못하면 당장 장사 때려치라는 소리에요. 하지만 이런 것은 싸그리 무시하고 감성과 정치적 선동으로 최저임금을 폭등시켜놨고,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의 삶이 어려워지고 실업자, 실직자가 폭증했어요.
최저임금 폭등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었는지 모두 잊어버렸어요. 2020년 3월 사태를 지금 정부는 매우 고마워할 거에요. 그거 아니었으면 최저임금 폭등시켜놓은 게 얼마나 망국적 조치였고 살인적 조치였는지 만천하에 까발려진 것을 모든 사람들이 지금까지 아주 확실히 기억하고 있을 거니까요.
경제 정책 실책은 한둘이 아니에요. 부동산도 엉터리 정책으로 무지막지하게 폭등시켜놨어요. 이 정도면 악의적으로 부동산을 펌핑하기 위해 일부러 그런 거 아닌가 의심하고 검증해봐야 해요.
결국 저녁 있는 삶이 아니라 저녁 부업 있는 삶이 되었어요. 요즘 보면 매우 씁쓸한 게 모두 부업에 혈안이 되어 있어요. 본업인 직장생활은 적당히 하고 저녁에 하는 부업에 목숨 걸고 목 매달고 열심히 하는 사람들 수두룩해요. 저녁 부업 있는 삶을 안 보내고 있는 게 오히려 천연기념물이 되어가고 있어요.
언론에서는 부업을 갖고 '긱 경제' Gig Economy라고 포장해요. 긱 경제의 원래 의미는 기업들이 정규직보다 필요에 따라 계약직 또는 임시적으로 사람을 고용하는 경향이 커지는 경제 상황을 의미해요. 그런데 요즘 언론사에서는 사람들이 점점 더 2030이 파이어족을 목표로 하고 정규직보다는 이런 긱 경제 스타일을 더 선호하는 추세라고 호도하려고 들고 있어요. 더 나아가 전사회가 이런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호도하려 하고 있구요. 현실은 제대로 정규직으로 일할 만한 일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그러는 거고, 설령 그런 일자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해도 부동산 폭등과 물가 폭등으로 인해 생활비가 감당이 안 되다보니 어쩔 수 없이 부업을 찾는 건데요. 누가 회사 퇴근 후 집에 와서 부업으로 일 또 하고 싶고, 수입이 일정하지 않고 엄청나게 들쭉날쭉한 상황 속에 있고 싶어해요.
5년 전과 비교해보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나빠졌는지 신기할 정도에요. 농담으로도 망상으로도 하지 못했던 수준까지 나빠졌어요.
저녁 부업 뛰는 삶?
저녁 굶어야하는 삶이 된다면 끔찍할 거야.
5년 뒤에 오늘을 회상하며 그때가 차라리 좋았다고 회상하게 된다면 5년 후 미래는 아마 저녁 굶어야하는 삶을 보내고 있는 한국 사회일 거에요. 이것만은 안 왔으면 좋겠어요.
누가 집권하든 경제를 살릴 거라는 기대는 아예 안 해요. 지금 상황에서는 여기에서 더 악화되지만 않아도 다행이에요. 최저임금 폭등 부작용, 부동산 폭등, 물가 폭등, 대출 폭증, K-방역 사회적 비용 폭증 등 막대한 청구서가 쌓여 있어요. 이것들을 해결하는 데에는 5년도 짧을 거에요. 5년 안에 다 해치우면 진짜 기립박수쳐줘야 해요.
솔직히 다음 정부에게 바라는 거 오직 딱 하나 있어요. 남녀갈등 문제만큼은 꼭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 경제 조금 더 나락가도 좋으니 남녀갈등 문제만큼만은 반드시 해결해줬으면 해요.
남녀갈등 문제는 단순히 2030의 문제가 아니에요. 가족을 찢어버렸어요. 가족 단위에서 1차적으로 타협이 이뤄져야 하는데 가족을 와해시켜버렸어요. 가족이 와해되어 버리자 무슨 일만 생기면 갈등이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어요. 중재와 타협 기능을 하는 '가족'이라는 조직이 사실상 와해되면서 한국 사회 전체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대분열의 시대에 빠져버렸어요.
가정이 와해되어버리니 가족 구성원간에 서로 보듬어주어서 스트레스 해소시켜주는 가정의 순기능도 현저히 낮아져서 사람들의 스트레스 해소 능력은 형편없이 떨어졌어요. 괜히 오징어게임, 좀비물이 흥행하고 세계적으로 잘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는 게 아니에요. 뉴스에서 묻지마 흉악 범죄 기사 보기 어렵지 않아요. 5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분위기가 달라요. 과도한 스트레스로 인해 톡 건드리면 뻥 터져버릴 것 같은 분위기가 지배하고 있어요.
사전투표는 끝났어요. 이제 3월 9일 대선 당일이 남았어요. 경제 부활까지는 바라지도 않아요. 누가 대통령이 되든 간에 갈등과 대립, 분열 좀 진정시켜줬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