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29 우즈베키스탄 히바 디샨 칼아

좀좀이 2012. 11. 16.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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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에서 내려와 북문 Bog'cha darvoza를 통과했어요.



Bog'cha darvoza


"빨리 디샨 칼아 보고 이찬 칼아 안이나 돌아다녀야지!"


이찬 칼아는 거의 다 보았어요. 못 본 곳이라면 오크 샤이크 보보와 거기를 통해 올라가야 하는 전망대. 여기는 석양을 보기 위해 남겨둔 곳이었는데 디샨 칼아까지 빨리 다 보게 되면 그때 가서 느긋하게 안도 둘러보고 안에서 적당히 시간을 때우며 감상하다 석양이 질 무렵에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아니면 이찬 칼아 주변을 둘러보든가요. 어쨌든 시간이 남으면 좋은 것.



북문에서 나와 큰 길까지 쭉 걸어갔어요.



"저렇게 보니 북문도 괜찮네?"


이찬 칼아 안에서 북문을 보았을 때에는 북문이 아름답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안에서 본 북문과 그 주변은 그냥 황량한 공간일 뿐이었어요. 그러나 밖에 나와 뒤돌아보니 북문도 나름 볼 만 했어요.



유적처럼 생긴 건물을 지나가자 공원이 나왔어요.



"디샨 칼아까지는 금방 찾아가겠지?"


지도를 보니 디샨 칼아까지 가는 길은 멀지도 않았고, 찾아가기도 쉬워 보였어요. 디샨 칼아 자체는 그렇게 볼 게 없었어요. 부하라에서 서벽을 보러 사모니 공원 끝까지 걸어갔던 것처럼 여기도 도시 경계 역할을 했던 성벽의 흔적을 보러 가는 것. 성벽만 보고 나서 바로 이찬 칼아로 돌아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급한 마음은 하나도 없었어요.



이것은 걸을 때 그냥 평범한 관공서 같은 거 아닌가 했어요.


Kosh darvoza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되었어요. 이 문은 디샨 칼아 10개 문 중 하나인 코슈 다르보자 Kosh darvoza 였어요. 디샨 칼아는 1842년 올로쿨리 칸이 투르크멘 부족 중 요무드 Yomud 부족의 침략을 막기 위해 3년간 20만명 이상 동원해 지은 성이에요. 원래 문이 10개 있는 거대한 성이었는데, 지금은 딱 3개 - 간디미안 다르보자 Gandimyan darvoza, 카자라스프 다르보자 Kazarasp darvoza, 코슈 다르보자 Kosh darvoza 만 남아 있어요. 아마 이때 돌아다니다 알았다면 굳이 디샨 칼아를 보러 더 가지 않고 다시 이찬 칼아로 돌아갔을 거에요. 하지만 그때는 이게 디샨 칼아인 줄 몰랐기 때문에 지도에 나와 있는 디샨 칼아를 보러 걸어갔어요.


얼마 걷지 않아서 희생자 공원 Xotira xiyoboni 까지 왔어요.



공원 주변에는 옛날 유적처럼 생긴 건물이 있었어요.



이것은 전화국. 위의 시계탑은 고장이었어요. 시계가 아예 움직이지 않고 있었어요. 시계에 의하면 지금 시각은 12시. 그러나 실제 시각은 12시를 훨씬 넘긴 시각.


Xon Kasalxonasi


이것은 유적처럼 생기지 않았지만 유적이었어요. 이 건물은 1912년 지어진 칸의 병원 Xon Kasalxonasi.


지도를 보니 여기에서 공원을 통해 쭉 가면 디샨 칼아가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그래서 이왕 온 김에 공원을 통해 디샨 칼아로 가기로 했어요.





이 공원의 특징이라면 우는 어머니 동상이 없고, 그 자리에 다른 석상이 있었다는 것. 우즈베키스탄에서 희생자 공원은 2차세계대전 당시 사망한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공원이에요. 그래서 어느 지역을 가든 희생자 공원의 구성은 공통점이 있어요. 가운데에 우는 어머니 동상이 있고, 그 앞에 꺼지지 않는 불이 있으며, 우는 어머니 동상 뒤에는 2차세계대전 당시 죽은 사람들의 이름과 간략한 신상이 적혀 있는 동판으로 된 커다란 책이 매달려 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여기는 꺼지지 않는 불도 없었고, 우는 어머니 동상도 없었어요. 혹시 여기가 우즈베키스탄 주도가 아니라서 우는 어머니 동상이 없는 건가? 항상 비슷한 구조의 희생자 공원만 보다가 이것을 보니 나름 신기하게 보였어요. 게다가 남자가 쓴 모자는 아무리 보아도 투르크메니스탄 전통 모자처럼 보였어요.


"디샨 칼아 대체 어디야?"


큰 길을 따라 쭉 가고 있는데 디샨 칼아가 보이지 않았어요. 아니, 디샨 칼아처럼 생긴 것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무언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분명 길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다면 지금쯤 디샨 칼아에 도착해야 했어요. 하지만 디샨 칼아는 고사하고 성벽처럼 생긴 것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걸어가며 보는 풍경은 디샨 칼아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내로 나아가는 듯한 풍경이었어요.


"실례합니다. 말씀 좀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물론이요."

"여기에서 디샨 칼아 어떻게 가나요?"

"이 길로 쭉 내려가세요."


도저히 혼자 지도 들고 다니다가는 디샨 칼아를 못 찾을 것 같아서 아주머니들께 길을 여쭈어 보았어요. 아주머니들은 우즈벡어 하는 동양인이라고 신기해하며 제게 디샨 칼아 가는 길을 알려주셨어요. 제가 가고 있는 길은 잘못된 길이었어요. 어디에서 잘못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래 꺾어야 하는 길에서 조금 더 올라가서 있는 큰 길로 가서 길을 꺾어 쭉 가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아주머니들께서는 이찬 칼아 쪽으로 내려가라고 알려주셨어요.


'이찬 칼아를 알려주신 거 아니야?'


이때는 제가 맞게 가는 것인지 아닌지 불확실했고, 지도를 보면 분명히 큰 길로 나가서 꺾어가라고 했기 때문에 아주머니들께서 알려주신 길이 왠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껏 여행 중에서 아주 가끔, 비슷한 유적 두 개가 있는데 하나는 잘 알려져 있고 하나는 잘 안 알려져 있는 것일 경우 그냥 잘 알려진 것을 알려주는 경우가 있었거든요. 현지인들이 그냥 으례 짐작하고 가려고 하는 별 볼 일 없는 곳이 아니라 유명한 곳으로 알려줘 버리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아주머니들께서 알려주신 대로 일단 걸어갔어요.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자 자동차 옆에 서 계신 아저씨가 보였어요.


"실례합니다. 말씀 좀 여쭈어보아도 될까요?"

"물론."

"여기에서 디샨 칼아 어떻게 가나요?"

"이 길로 쭉 가면 돼."


그 아저씨 역시 아주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이찬 칼아 쪽으로 쭉 내려가라고 알려주셨어요.


'이찬 칼아랑 디샨 칼아가 그렇게 가까웠나?'


아저씨께서도 그렇게 알려주셨기 때문에 믿고 가기는 하는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찜찜한 느낌이 남아 있었어요. 아까 이슬람 호자 미노라에서 히바를 내려다 보았을 때 디샨 칼아를 찾지 못했어요. 디샨 칼아가 그렇게 이찬 칼아와 가깝다면 아까 탑 위에서 히바를 내려다볼 때 디샨 칼아를 못 볼 리가 없었어요. 시력이 나빠서 멀리까지 보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이찬 칼아 성벽과 이찬 칼아 내부의 건물을이 모두 고층빌딩이라 풍경을 모두 가려버리는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냥 남문에 있는 디샨 칼아를 갈 걸 그랬나?"


부하라가 외성의 서벽과 남벽이 남아 있는 것처럼 히바도 외성인 디샨 칼아의 경우 남문과 북문에 남아 있었어요. 이찬 칼아 남문에서 디샨 칼아까지는 별로 멀지도 않았고, 탑 위에서 남문을 보였을 때 보였어요. 길을 찾아가는 것도 어려운 편이 아니었구요. 남문에서 나가서 쭉 걸어나가면 디샨 칼아의 흔적을 볼 수 있었어요. 남문 쪽은 볼 것이 없어서 북문 쪽으로 온 것이었는데 그냥 편하게 남문으로 나가서 디샨 칼아를 볼 걸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아주머니들과 아저씨의 설명대로 가자 성 같은 것이 나왔어요.




"설마 이게 디샨 칼아라구?"


고개를 갸웃거리며 관광객이 와서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 건물부터 갔어요.


히바 누룰라보이 궁전


이 건물은 1912년 지어진 누룰라보이 궁전 Nurullaboy saroyi. 안에 들어갈 수 있나 문을 열어보았어요. 문은 굳게 잠겨 있었어요. 어쨌든 맞게 왔어요. 주변에 디샨 칼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만 제외하면요. 성처럼 생긴 건물은 지도를 보니 하렘이었어요.


문이 잠겨 있어서 밖에서 둘러보고 있는데 단체 관광객이 우루루 몰려왔어요.


'저 사람들 위해서 문 열어줄건가?'


단체 관광객의 힘을 한 번 믿어볼까? 단체 관광객들 역시 들어가기 위해 문을 열어보았지만 굳게 닫힌 문이 열릴 리 없었어요. 단체 관광객이 여기 왔다면 왠지 문을 열어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멀리 가지는 않고 주변에서 사진이나 찍고 구경이나 하면서 단체 관광객이 어떻게 하나 살폈어요.



궁전 앞에는 이렇게 낡고 허름한 건물이 있었어요. 내부는 특별할 것이 없었어요. 어떤 방은 그냥 사무실로 쓰이고 있었고, 어떤 방에서는 옷감을 짜고 있었어요. 그리고 건물 한쪽에는 이포테카 은행 Ipoteka bank 의 작은 사무실이 있었어요. 그 외에는 그냥 평범한 낡은 건물에 불과했어요.


궁전 앞 건물을 휙 둘러보는데 관리인 아주머니께서 돌아오셨고, 단체 관광객이 안으로 우루루 들어갔어요.


"역시 단체 관광객!"


문이 열려서 단체 관광객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도 다시 궁전으로 가서 안으로 들어갔어요.



입구는 이렇게 생겼어요.


먼저 첫 번째 방.


히바



두 번째 방.


Nurullaboy saroyi


히바 칸국 왕궁


세 번째 방.





네 번째 방.



"히바 칸국은 돈이 없었나?"


확실히 코칸드 칸국과 부하라 칸국의 궁전에 비해 많이 떨어졌어요. 물론 안에 아무 것도 없는 휑한 방이었다는 것도 크게 한 몫 했겠지만, 앞서 본 궁전 또한 마찬가지였어요. 코칸드 칸국 궁전의 화려한 무늬, 부하라 칸국 궁전의 번쩍임에 비해 무언가 조금 부족해 보였어요. 그런데 이것은 오직 저만 느낀 것 같지는 않았어요. 단체 관광객들도 후다닥 사진만 찍고 빠져나갔거든요. 아까 앞에서 본 궁전이나 이 궁전이나 관광객들이 사진 찍으며 머무르는 시간이 꽤 짧았어요. 그냥 '우와! 아름다워!'하고 사진만 후다닥 찍고 빠져나가는 것처럼 보였어요. 이미 들어와 있는 단체 관광객이 제가 들어갈 때 사진 찍다가 빠져 나가는 게 아니라 그들이 언제 들어와서 언제 나가는지를 보았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생각했어요.


단체 관광객이 빠져나가고, 단무지 빠진 김밥을 먹은 것처럼 무언가 부족하고 허전한 느낌을 채워보기 위해 카펫이 깔린 바닥에 앉아도 보고 사진도 찍어보고 했지만 그 부족한 느낌은 채워지지 않았어요. 궁전에서 나오다 입구에 계신 관리인 아주머니께 다가갔어요.


"여기 하렘 어디에요?"

"저거. 그런데 20년째 수리중이라 문 닫혔어."


관리인 아주머니께서는 바로 옆에 보이는 성 같은 것이 하렘이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그 하렘은 소련 붕괴 후 지금까지 계속 문이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궁전은 없나요?"

"하렘 옆에 궁전이 있어. 그런데 그 궁전도 20년째 수리중이라 문 닫혔어. 거기는 20년 전부터 문이 열린 적이 없어."


아주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이 궁전은 왕의 집무실 같은 곳이었어요. 그리고 원래 왕의 처소로 사용되던 다른 부분은 전부 20년 전에 폐쇄된 후 지금까지 계속 '수리중'이라서 일반인에게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알려주셨어요.


"너 거울 있는 방 보았니?"

"예."

"그 방에서 투르크멘인들이 칸을 죽였어."

"진짜요? 어떤 칸을요?"

"이 사람."


아주머니께서는 엽서들이 쌓여 있는 곳에 같이 있던 칸의 사진들 중 한 명을 골라서 보여주셨어요. 그 칸은 1910년부터 1918년까지 히바 칸국을 다스렸던 이스판디요르 칸 Isfandiyorxon 이었어요.


'투르크멘인들 정말 대단하네. 어떻게 왕궁까지 털어가냐?'


아주머니께서 왜 투르크멘인들이 왕궁까지 쳐들어와서 칸을 거울이 있는 방 (두 번째 방) 에서 죽였는지 그 이유에 대해 정확히 설명해주시지는 못하셨어요. 단지 예전부터 투르크멘인들이 히바 칸국을 약탈하기 위해 종종 쳐들어왔기 때문에 그때도 그렇게 약탈하기 위해 쳐들어와서 죽였을 것이라고만 이야기해주셨어요. 중앙아시아 각 민족의 역사와 문화, 특징을 보면 투르크멘인들에 대해서는 옛날에 특별한 역사적 사건은 없고 대상들을 털어먹던 민족이었다고 간단히 정리된 곳이 많았어요. 그런데 알고 보면 셀주크 튀르크도 투르크멘인들의 나라였고, 터키가 제일 잘 나갔던 시절인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세운 민족 역시 투르크멘 부족 중 한 부족이 서쪽으로 흘러 흘러 가다가 세운 나라라는 설이 있어요. 오스만 튀르크든, 셀주크 튀르크든 간에 투르크멘인들이 주변을 지나가는 대상을 약탈하던 민족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털어먹었길래 일개 왕국의 궁전까지 털어먹었는지 놀랍기만 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여행 끝나고 와서 이것과 관련해 이것 저것 뒤져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가지 근거있는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것은 바로 1918년 러시아 적군과 투르크멘인들이 연합하여 히바 칸국을 침공했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투르크멘인들이 다른 대상들 약탈해서 먹고 살던 민족이었다 하더라도 일개 왕궁을 털고 왕까지 죽였다는 것은 듣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이야기였어요. 그것보다는 왠지 1918년 러시아 적군과 투르크멘인들이 연합해서 히바 칸국을 칠 때, 투르크멘인들이 당시 히바 칸국의 지배자 이스판디요르 칸을 이 궁전에서 거울이 있는 방에서 죽였다는 것이 맞을 듯 했어요.


"저기 저 건물 보이지?"

"예."


아주머니께서는 밖에 보이는 건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셨어요. 아주머니께서 가리키신 건물은 아까 이 왕궁 문이 열리기 전에 주변을 둘러보는데 별로 볼 것이 없어서 그냥 대충 훑어보았던 그 건물이었어요.


"저 건물이 예전에 칸의 재산을 보관하던 곳이야."

"그래요? 저기 지금 은행 있잖아요."

"응. 이포테카 은행 있어."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 보관하는 곳이로군요!"


제 말에 아주머니께서 웃으셨어요. 예전에는 칸의 재산을 보관하던 건물이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건물 일부분이 이포테카 은행으로 사용되고 있었어요. 과거나 지금이나 돈을 보관한다는 것은 공통된 특징. 현지인들 말에 의하면 돈 찾으러 가면 툭하면 돈 없다고 나중에 오라고 하는 우즈베키스탄의 은행 안에 돈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게 유형의 화폐이든, 전산상으로 기록된 것이든 은행은 돈이 보관된 곳이기는 하니 과거의 특징을 참 잘 살렸다고 생각하며 웃었어요.


"하렘 들어갈 수 있어요?"

"거기 못 들어간다구! 20년째 문 안 열고 있다니까!"

"궁전은요?"

"말했잖니. 거기도 20년째 수리중이라 문 안 열어!"


부하라 아르크처럼 적당히 돈 좀 쥐어드리고 하렘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주머니께서는 절대 못 들어간다고 하셨어요. 그곳은 20년째 문이 잠긴 곳이라 들어갈 방법이 없다고 말씀하셨어요. 흥정을 시도해볼까 했지만 워낙 완강하고 단호하게 안 된다고 하셔서 그냥 관두었어요.


"여기서 디샨 칼아는 멀어요?"

"따라와."


제가 하렘과 궁전, 디샨 칼아를 물어보자 아주머니께서는 제게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셨어요. 혹시 하렘 문을 열어주시려고 그러나? 아니면 하렘 관리하는 경찰에게 보내서 알아서 흥정하라고 하라고 하실 건가? 어쨌든 아주머니께서 따라오라고 하셔서 졸졸 따라갔어요.


"이 틈으로 봐. 여기가 원래 하렘이야."


아주머니께서는 잠겨진 문을 안으로 밀고 그 틈으로 내부를 보라고 하셨어요.


히바 하렘


정말 관리가 안 되고 있구나...


돌로 포장한 바닥을 비집고 나와 자란 잡초를 보니 여기가 보수가 되고 있다는 말이 다 변명으로 들렸어요. 저것은 제초 작업을 며칠 안 해서 자란 잡초가 아니었어요. 저 정도로 자라려면 정말 방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니까요. 그냥 문만 잠가놓았을 뿐, 수리니 보수니 복원이니 관리니 아무 것도 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만 들었어요. 건물 유리창이 다 깨져 있지 않은 게 다행으로 여겨졌어요. 잡초가 저렇게 자랄 동안 건물 유리창에 신경을 썼을 리도 없었을 테니까요. 이런 말을 하는 게 잘하는 짓이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솔직히 말해서 문만 걸어잠그고 방치하는 것을 보수중이라고 둘러대는 경우도 많아 보였어요. 부하라에서도 느꼈던 것을 여기에서 또 느끼니 착잡했어요.


"여기에서 길 따라서 쭉 올라가면 디샨 칼아가 있어. 디샨 칼아는 원래 이찬 칼아의 2배인데, 지금은 다 무너졌어. 그런데 이 길로 가면 디샨 칼아 문이 있거든. 그 문이 디샨 칼아에서 유일하게 원래 모양대로 온전한 형태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문이야."


아주머니께서는 정확히 몇 헥타르 넓이라고 말씀해 주시며 원래 디샨 칼아가 이찬 칼아의 2배라고 알려주셨어요. 그런데 들을 때에는 기억났지만, 지금은 그 넓이까지는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나중에 찾아보니 이찬 칼아는 길이가 2250 미터, 디샨 칼아는 길이가 5650 미터라고 나와 있었어요. 그리고 아주머니께서 제가 하도 왕궁 타령을 하자 마슈르트카 2번을 타고 왕궁이 하나 있는데 거기는 지금 카페로 사용되고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길을 걸어갔어요.


히바 디샨 칼아


"정말로 성문이 있네?"


참 수수하게 생긴 성벽과 성문이었어요. 성벽은 상태가 좋은 구간도 있고 나쁜 구간도 있었어요.



"여기도 어딘가 기어올라가는 곳이 있을텐데..."


관광지 출신 인간으로써 이곳에도 어딘가 기어올라가는 곳이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솔직히 박물관 같은 곳이 아닌 이상 개구멍 없는 관광지는 없거든요. 이런 곳은 어딘가에 분명히 동네 주민들이 들락날락하는 개구멍이 있기 마련. 그래서 성벽 위로 올라가는 개구멍은 어디일까 두리번거리는데 한 아이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어요.


"꼬마야!"

"예?"

"저 성벽 어디로 올라가니?"

"저기요."

"고맙다."


꼬마가 알려준 곳으로 갔어요.



"올라갈 때 손 버리겠네."


그래도 일단 기어올라갔어요. 당연히 손을 다 버렸어요. 가지고 있던 생수로 손을 대충 씻고 성벽 위를 걸었어요.


Dishan qala





성벽 안쪽은 공원이었어요. 이 공원에 대해서도 아주머니께서 설명해 주셨어요. 이 공원은 원래 시장이 서던 곳이었는데, 칸이 공원으로 만들었고, 그 공원이 지금까지 보존되고 관리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성벽을 따라 걸어가는데 사람들이 저를 보며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며 낄낄 웃었어요. 어떤 우즈벡인들은 저한테 장난으로 인사를 해서 저도 가볍게 인사를 받아주었어요. 성벽 옆이 공원이었는데, 조금 으슥하게 생긴 곳도 있었어요. 이곳에서는 커플이 데이트를 하고 있었어요. 커플은 저를 보더니 웃으며 손을 흔들었어요. 그래서 저도 손을 흔들어 주었어요.


"계속 가다보면 내려갈만한 곳이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내려갈만한 곳은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성벽을 한참 걷다가 내려갈 곳이 마땅치 않아서 다시 성문으로 돌아갔어요.


Khiva


아까 올라온 곳으로 다시 내려갔어요. 역시나 손을 버려서 생수로 손을 씻어야 했어요. 손을 씻고 혹시 다른 곳에 궁전 안으로 들어가는 개구멍이 없나 둘러보기 위해 성벽을 따라 공원을 걸었어요.



'디샨 칼아'라고 적힌 팻말을 사진을 찍고 슬슬 이찬 칼아 쪽을 향해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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