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삼대악산 (2010)

삼대악산 - 09 설악산

좀좀이 2011. 11. 19.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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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이거 뭐야!”


아마 소청봉이었을 거에요. 하여간 무슨 언덕 비슷한 것 올라가는데 갑자기 엄청난 바람이 사정없이 온몸을 때렸어요. 어린 아이는 충분히 날려 보낼 듯한 바람이었어요. 일단 날아가면 절벽으로 떨어지는 것이었어요. 고향에서 바람을 많이 맞아보았지만 이 정도로 센 바람은 거의 맞아보지 못했어요. 더욱이 산에서는 맞아본 적이 없었어요.



수난이 시작되었어요. 두 다리가 후들거렸어요.


, 조심해!”

너도 조심해!”


모자를 손에 움켜쥐고 난간에 매달렸어요. 어떻게 언덕을 넘어갔어요. 그러자 바람이 없어졌어요.


?”

?”


언덕 하나 넘었는데 바람이 사라져서 둘 다 서로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았어요. 바람도 없고 경사도 심하지 않아서 빨리 걸을 수 있었어요. 또 한참을 걷자 드디어 중청대피소가 나타났어요.


, 우리 여기서 1박 하고 가자.”

글쎄. 그냥 빨리 대청봉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일단 대청봉을 간 후에 생각하자.”


대청봉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어요. 전력을 다해 간다면 갈 수도 있었어요. 시간이 빠듯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대청봉에 갔다가 내려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은 여름. 7시까지는 어떻게든 내려갈 수 있어요. 아무리 산이라고 해도 7시까지는 산행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둡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1박하기 가장 꺼려진 이유는 열심히 걸으면 내려갈 수도 있다는 확신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1박할 준비를 아무 것도 하고 오지 않았다는 것이었어요. 아무리 여름이라 해도 산에서는 밤에 분명히 추워요. 더욱이 식량은 소시지와 초콜릿 뿐. 마실 것조차 1박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어요. 그래서 일단 대청봉을 가기로 했어요.



문제는 안개. 그리고 바람. 바람이 불면 안개가 날아가야 하는데 대체 얼마나 안개가 자욱하게 꼈길래 바람은 바람대로 세고 안개는 안개대로 자욱했어요. 제가 앞장서서 가는데 얼마 가다보니 뒤에 친구가 보이지 않았어요. 10미터만 떨어져도 안개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는데 가뜩이나 바람이 심해서 불러도 소리가 들리지 않았어요.


여기서 기다려야 하나?’


하지만 가만히 서 있는 것은 매우 안 좋은 생각 같았어요. 일단 바람이 세서 가만히 서 있으면 체온이 급격히 떨어졌어요. 더욱이 바람을 피할 곳도 마땅치 않았어요. 최대한 천천히 가며 친구에게 따라잡히기를 바랬지만 친구는 보이지 않았어요.


정상 가서 기다리자.’


상황이 이렇게 된 만큼 빠른 판단을 해야 했어요. 가만히 있다가는 저에게도 문제가 생길 것 같았어요. 물론 지금이야 긴장한 상태니까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다음날 긴장이 풀린 후에 무슨 문제가 생길지 모르는 것이었어요. 돌아서 내려갈 수도 없고 기다릴 수도 없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 일단 정상에 후딱 올라가 버리는 것이었어요. 지금 혼자 있는 친구. 다행히 대청봉에 가는 사람이 적지 않아서 친구 혼자 낙오되고 버려져 큰 일을 당한 채 방치될 확률은 낮았어요. 사람은 적지 않았지만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 분명 친구는 제가 안 보이므로 어떻게든 정상으로 올라올 거에요. , 정상에 빨리 먼저 간 후, 적당히 친구를 기다릴만한 곳까지 되돌아 내려가거나 정상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것이 가장 좋아 보였어요.


빨리 가자!”


천천히 걷던 발걸음을 최대한 빨리 움직였어요. 비록 안개와 바람이 저의 길을 방해했지만 상관 없었어요. 지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몸이 식어버리는 것. 어떻게든 몸이 식지 않도록 움직여주는 것이 가장 중요했어요.



정상이다!”


1450. 드디어 설악산 대청봉 정상 도착. 대청봉 비석을 껴안았어요. ...꼬옥 껴안았어요. 왜냐하면 바람이 너무 심해서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어려웠거든요.


대청봉 비석에서 조금 내려와 바닥에 주저앉았어요. 바위를 부여잡고 친구를 기다렸어요. 친구는 예상보다 빨리 올라왔어요. 친구가 보이자 친구 쪽으로 걸어갔어요.


, 버리고 가냐?”

너 안 보이기에 정상에서 만나는 거 외엔 방법이 없겠더라구.”

나는 너 사고날까봐 사람들에게 너 봤냐고 물어보면서 왔다.”


하여간 사진을 찍고 정상에서 머무르고 싶었지만 바람이 너무 세서 도저히 대청봉 비석 근처에 있을 수 없었어요.


여기는 바람 안 불어요!”


누군가 비석 뒤에서 우리가 투덜대는 소리를 듣더니 우리를 불렀어요. 비석 뒤로 내려가자 진짜 바람이 안 불었어요.


여기는 바람도 안 불고 덥네요?”

. 저 근처에서만 바람이 무섭게 불더라구요.”


가방에 소시지와 미니 초코바가 잔뜩 있었기 때문에 소시지와 초코바 몇 개를 드렸어요.


어디에서 올라오셨어요?”

저희는 오색에서 올라왔어요.”

그쪽은 날씨 어때요?”

그쪽은 날씨 좋아요. 여기 오니까 날씨가 이 모양이네요.”


오색으로 내려갈지 설악동으로 내려갈지 고민되었어요.


, 무슨 온 길을 되돌아가! 다른 길로 가야지.”


친구의 강력한 주장. 어차피 오색 아니면 설악동이었어요. 왜냐하면 나머지 코스는 당일치기로 내려갈 수 없었거든요. 사실 설악동도 이제부터 내려가면 밤에야 하산을 마칠 수 있을 거에요. 그래서 뭔지도 모르고 졸지에 설악산 종단을 하게 되었어요. 이때에는 우리가 설악산 종단을 한다는 것 자체도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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