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올라갔어요. 계속 소시지와 초콜릿을 먹으며 가서 많이 힘들지는 않았지만 체력 자체가 저나 친구나 저질이라서 숨이 자꾸 차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12시. 드디어 공룡능선에 도착했어요. 공룡능선 옆에는 헬리콥터 착륙장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공룡능선을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헬리콥터 착륙장에 올라갔어요.
위이잉
“야! 이게 뭔 바람이냐!”
“바람 엄청 센데?”
헬리콥터 착륙장에 올라갔더니 바람이 장난 아니게 불고 있었어요. 사람 날아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확실히 강한 바람.
“이곳 기후가 이상한가 본데?”
“그러게. 왜 헬기 착륙장에만 바람이 심하게 불지?”
헬리콥터 착륙장에서 내려오니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어요. 둘이서 왜 바람이 헬리콥터 착륙장 위에만 심하게 부는지 투덜거리며 다시 걸었어요.
지나온 길도 험하다고 했는데 길이 더 험해졌어요.
“이거 어떻게 올라가라는 거야?”
그냥 한숨이 푹푹 나왔어요. 예상은 했어요. 처음에 계속 완만한 길을 걷다가 올라갔다 싶으면 내려가고 내려간다 싶으면 올라가는 길의 연속. 그래서 마지막에 꽤 힘든 산행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이것은 예상을 뛰어넘은 난이도. 이런 길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도 못했어요. 울산바위 정상을 갔을 때를 생각하며 그 정도 험하겠구나 생각했는데 그보다 훨씬 힘든 길이었어요. 아침부터 열심히 빵과 소시지, 초콜릿을 먹으며 배를 비워두지 않았는데도 배가 고팠어요.
진짜 산사태의 흔적도 만났어요. 가뜩이나 날씨가 흐리고 매우 습한데 산사태가 어떤 모습인지 목격하니 공포는 배가 되었어요. 정상은 안 보이고 이제 힘이 많이 들고 날씨는 안 좋고 산사태의 공포도 남의 일 같지 않고 길은 갈수록 예상보다 험해져서 이제 예상도 못할 경지까지 다다랐어요. 대체 몇 중고인지 셀 수도 없었어요.
“아 미친 천당폭포!”
분노는 애꿎은 천당폭포에게 돌아갔어요.
“아 어떤 거지같은 놈이 천당폭포라고 붙인 거야? 천당은 개뿔. 아주 지옥이구만.”
이제는 누가 힘들다고 할 것도 없었어요. 말하지 않아도 알았어요. 거의 서로 제발 쉬어주었으면 하는 눈치였어요. 제가 쉬자고 하면 친구가 얼씨구나 하며 쉬었고 친구가 쉬자고 하면 제가 얼씨구나 하면서 쉬었어요. 그러나 오래 쉬지도 못했어요. 길이 좁고 험해서 마땅히 앉아 쉴 곳이 없었어요. 그나마 쉴 수 있어 보이는 자리는 전날 비가 왔는지 축축하게 젖어서 앉아있을 수 없었어요. 점심을 먹을 시간이 지났는데 점심을 먹을 자리조차 없었어요. 원래 계획은 정상에서 점심을 먹고 내려오는 것이었어요. 그러나 그것은 이미 달나라까지 날아간 상태. 광속으로 달려야 가능한 일이 되었어요. 두 번째는 소청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는 것. 그러나 소청 대피소가 보이지 않았어요. 도대체 어디까지 왔고 얼마나 남았는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희운각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지 않은 것이 너무 후회되었어요. 원래 두 번째 계획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점심을 먹는 걸로 바꾸었어요. 그런데 희운각 대피소에서 쓰레기 냄새가 너무 심해 이렇게 아름다운 산에 와서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점심을 먹을 수 없다는 데에 의견이 일치했어요. 그래서 이왕 가는 거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소청 대피소에서 먹자고 다시 계획을 바꾼 것이었어요. 정상에서 먹으려다가 소청 대피소에서 먹기로 바꾸었고, 그것을 다시 희운각 대피소에서 먹기로 바꾸었는데 쓰레기 냄새에 다시 소청 대피소에서 먹기로 바꾸었어요. 하지만 소청 대피소는 보이지도 않았고 이제 반드시 점심을 해결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계속 가져온 것들을 까먹으며 가서 크게 배가 고프지는 않았지만 점심을 제 시각에 먹지 않아 등산 일정 전체를 망쳐버리거나 최악의 경우 너무 늦게 점심을 먹으려다가 김밥이 쉬어버려 점심을 굶고 내려오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김밥이 쉬어서 점심을 굶게 된다면?!’
이것은 말 그대로 최악의 상황. 기분 좋게 놀러 와서 고난의 행군으로 바뀌는 순간. 김밥은 말 그대로 현재 상황에서 양날의 검이었어요. 쓰레기 적게 나와서 이동시 매우 편리하고 나름 이것저것 속에 들어가 있어서 식사로도 매우 좋았지만 대신 쉽게 상한다는 단점이 있었어요. 잘 먹는다면 매우 큰 힘이 되겠지만 쉬어서 못 먹는다면 말 그대로 치명적인 결정타가 될 것이었어요. 더욱 신경 쓰이게 만드는 것은 가방 안에 얼음물이 들어있어서 가방 속이 축축하다는 것이었어요. 음료수를 꺼내 마실 때 김밥 포장지가 젖어있는 것을 보았어요. 이것은 김밥의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측면에 가중치를 주는 현실이었어요.
“밥 먹고 가자.”
오후 1시. 예상과 다르게 정상 도착시간이 계속 미루어지고 있었고 밥 먹을 시간도 지났어요. 마침 위의 사진 풍경이 보이는 곳 근처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점심을 먹고 내려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설악산 등산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바늘로 톡 찌르면 비가 좍좍 내릴 것만 같은 하늘. 힘들면 무엇을 먹어도 꿀맛이라는데 축축하게 젖어버린 김밥은 아무리 지금 힘들고 배고프다고 해도 맛이 없었어요.
밥을 먹는 이유는 오직 하나. 무사히 정상에 간 후 내려오기 위함이었어요. 입속으로 꾸역꾸역 우겨넣고 쉬다가 다시 일어났어요. 다시 부지런히 걸었어요. 이제 남은 것은 중청봉과 대청봉. 이것 두 개 남았어요. 대체 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중청 대피소가 안 나타나는지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힘을 내야 했어요. 의욕에 차서 힘을 낸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여기서 포기하면 돌아 내려가야 하는데 기껏 고생한 것이 너무 억울해서 어쩔 수 없이 힘을 내야만 했던 것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