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19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야경

좀좀이 2012. 11. 3.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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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아르크구나."


'아르크'는 그냥 성채였어요. 시간이 늦기는 했지만 혹시 안에 들어갈 수 있을까 해서 정문을 향해 걸어갔어요. 아까 그 여대생은 여기 갈 때 왜 자기한테 전화를 하라고 한 것일까? 전화하겠다고 대답은 했는데 전화를 할까 말까 고민했어요. 아르크 못 찾아갈 거 같아서 전화하라고 한 건가? 이게 그나마 납득이 가는 이유였어요. 그 외 다른 가정은 현실성이 너무 떨어졌어요. 어쨌든 아르크는 잘 찾아왔고, 시간은 오후 6시였기 때문에 전화를 걸기도 애매했어요. 설령 아르크 돌아다니는 것을 와서 도와주기 위해 전화하라고 했다 해도 시각이 늦었거든요. 게다가 아까 그 여대생이 말한 집 방향은 아르크와 반대였어요. 그래서 전화하지 않고 그냥 혼자 구경하기로 마음먹었어요.


"헤이, 아르크 10달러 어때?"

"예?"


한 우즈벡인이 다가와서 아르크 들어가는데 10달러면 된다고 했어요.


"아니요. 필요없어요."

"아르크 안 들어갈 거야?"

"예. 안 들어가요."


우즈벡인이 계속 10달러 주면 아르크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지만 거절했어요. 저 성에 들어가는데 왜 10달러를 주어야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어요. 사실 못 들어가는 곳이라고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시간이 다 되어서 못 들어가는 거라면 다음날 다시 오면 되는 일. 어차피 다음날 여기 또 와야 했어요. 게다가 10달러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작은 돈이 아니에요. 10달러면 당장 부하라 숙소 하루치 가격.


10달러 주면 안에 들어갈 수 있게 해주겠다는 우즈벡인에게서 벗어나 아르크 정문쪽으로 갔어요.



ark


"여기는 복구를 잘 해 놓은 건가? 아니면 보존이 잘 된 건가?"


입장료가 얼마인지 물어보기 위해 입구쪽으로 가 보았는데 금줄이 쳐져 있었어요. 지금 수리중이라 아예 전부 폐쇄했다는 팻말이 금줄에 매달려 있었어요. 한쪽만 열려 있는 대문을 통해 경찰 두 명이 보였어요.


"이리 와!"


안에 앉아 있던 경찰 두 명이 저를 불렀어요. 그래서 안으로 들어갔어요.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경찰이 대문 안쪽으로 잡아당겼어요.


"10달러 주면 안에 들여보내줄게. 안에 전망 끝내주게 좋아. 지금 보면 정말 아름다워!"

"숨으로 얼마인데요?"


머리 속에서 계산이 촤라락 되었어요. 이곳은 지금 수리중이라 원래는 입장 금지에요. 낮이든 밤이든 입장할 수 없어요. 아르크 입구에 쳐져 있는 금줄에 매달린 팻말이 우즈벡어로 적혀 있어서 뭐라고 적혀 있는지 내용을 보았거든요. 그래서 여기는 졸지에 경찰들 용돈 버는 곳이 되어버린 것이었어요. 예전에는 아르크에서 멀쩡한 곳은 볼 수 있고, 안쪽 깊숙히 들어갈 때에만 경찰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전면폐쇄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아예 입구에서 경찰이 돈을 받고 있었어요.


때마침 제게 10달러라고 이야기했던 우즈벡인도 안으로 들어왔어요. 우즈벡인은 제가 경찰과 이야기하는 것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고 있었어요. 짐작컨데 저 사람이 10달러를 부른 이유는 경찰과 얼마 나누어먹기 위해 부른 가격.


"3만숨."

"2만숨으로 해주세요."

"안 돼. 3만숨.


10달러에 3만숨? 무섭게 불러버리네...그래서 사정했어요.


"형님, 저 우즈베키스탄 정말 사랑해요. 그래서 지금 타슈켄트에서 우즈벡어랑 문화 공부하고 있구요. 저 학생인데 2만에 해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아마 시끄러워서 해주었을 거에요. 경찰에게 2만숨을 쥐어주자 경찰이 따라오라고 했어요. 경찰을 따라 안에 있는 철문을 넘어갔어요.


"여기서 앞으로 쭉 가면 돼. 10분 후에 돌아올게. 그때 나와."


성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았어요.



주변은 정말 폐허였어요.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여기는 적군이 폭파한 자리. 1920년 소련 볼셰비키 적군이 부하라를 점령할 때 미하일 프룬제 Mikhail Frunze가 항공기 폭격을 명령해서 아르크에서 중요한 부분 대부분이 파괴되었대요. 칼론 모스크에서 오는 길에 본 무너진 성벽도 적군이 폭파시켜서 무너진 것이었어요. 적군이 파괴하고 남은 일부 구역을 예전에는 들어갈 수 있었고, 지금은 거기도 보수공사한다고 못 들어가게 된 것이었어요.


부하라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어요. 정말로 아름다운 풍경. 이것은 3만숨이 아니라 30달러의 가치가 있는 풍경이었어요. 항상 이야기로만 듣고 그림으로만 보던 실크로드의 환상이 눈 앞에 펼쳐져 있었어요. 대충 사진을 찍어도 황홀하게 나오는 자리. 이 언덕에 서 있으니 마치 힘든 여행길에서 도착지가 보이는 그 기분이 들었어요. 이 언덕만 넘어가면 드디어 도시에 도착이다! 지친 발을 이끌고 낙타를 끌다가 제대로 쉴 수 있다는 생각이 든 실크로드 대상이 된 기분이 들었어요.


부하라


무너진 성벽 앞에 섰어요. 석양을 잔뜩 머금은 부하라가 나타났어요. 아까 별 볼 일 없게 생겨서 지나쳤던 시장이 저렇게 예쁜 곳이었단 말인가! 어둠 속에서 미노라이 칼론 꼭대기에 불을 피워 빛을 내면 또 얼마나 황홀할까!


너무나 몽환적이고 환상적인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 실크로드의 대상이 된 상상을 하다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경찰이 말한 10분을 지키기 위해 슬슬 돌아나가려는데 멀리서 외국인 둘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어요.


'쟤네들은 얼마 주고 들어왔을까?'


하지만 물어보지 않았어요. 가격을 물어본다면 둘 중 하나는 반드시 기분이 나빠질테니까요. 아마 한 사람당 10달러씩 쥐어주고 들어왔을 거라 짐작했어요.


철문을 향해 걸어갔어요. 뒤돌아보니 외국인 둘도 아름다운 경관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었어요.




수리중인 것은 맞았어요. 오래된 나무 기둥도 교체중이었고, 수리를 위한 자재들을 가져다 놓은 것도 보였어요.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것은 칠두흐타론 모스크 Childuhtaron mosque 에요.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제게 10달러에 들어갈 수 있다고 접근했던 우즈벡인이 너무 오래 있었다고 내려가라고 하고는 다른 외국인 둘도 데려가기 위해 안쪽으로 들어갔어요. 그래서 조용히 아르크에서 빠져나왔어요.



달을 보며 무언가를 비는 여인.


Bukhara Ark


아르크를 뒤로 하고 볼로 하우즈 모스크 Bolo Xauz Masjidi 로 갔어요. 볼로 하우즈 모스크는 1712~13년에 지어진 모스크로 최고위층을 위한 모스크였다고 해요.


Bukhara Bolo Xauz Masjidi


이것이 바로 볼로 하우즈 모스크.



이 모스크에도 미나렛이 있었어요. 하지만 정말 아담한 크기였어요. 원래 크지도 않은 미나렛인데 근처에 미노라이 칼론이 있어서 아이들을 위해 만든 것처럼 작아 보였어요.



아잔이 울려퍼지기 시작했어요. 저는 남자라 모스크 구경에 아무 문제가 없어요. 무슬림 국가에서 여자가 함부로 모스크 본당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큰 결례이지만, 남자는 그냥 들어가도 괜찮거든요. 아예 관광객에게 개방을 한 모스크는 여자도 들어가도 상관 없어요. 그리고 여자 기도실이 모스크 본당 안에 위치한 경우는 당연히 본당을 지나가야 여자 기도실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역시나 상관 없어요. 하지만 여자 기도실이 따로 마련되어 있는 모스크에서 여자가 함부로 모스크 본당으로 들어가는 것은 엄청난 결례 중 하나에요. 그나마 머리카락을 스카프로 가리고 들어가면 덜 결례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스카프를 하고 들어가든 부르카를 뒤집어쓰고 들어가든 큰 결례인 것은 마찬가지에요. 그나마 무슬림처럼 스카프를 둘러 머리카락을 감추고 사람이 안에 없을 때 잘 이야기하면 들어가 잠깐 구경할 수도 있다는 것 정도이지, 머리카락 가렸으니까 들어가도 된다고 생각하면 사람들이 노려보고 쫓겨나는 불쾌한 경험을 할 수도 있어요. 이런 것을 엄격히 지키는 모스크에서는 아예 여자는 못 들어가게 하거나 여자가 들어가면 쫓아내요. 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이것이 엄격한 편이구요. 저야 모스크 본당에 들어가도 별 문제는 없었어요. 하지만 기도 시각을 알리는 아잔이 울려서 모스크를 들어가서 볼까 말까 잠깐 생각했어요. 그러던 차에 기도를 드리려고 모스크에 온 우즈벡인이 제 옆에 왔어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혹시 안에 들어가서 보아도 되나요?"

"물론이요."


우즈벡어로 물어보자 아저씨께서는 웃으시며 당연히 안에 들어가서 구경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저씨와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어요.


"모스크 내부 사진 찍어도 되나요?"

"당연하죠. 찍어요."


아저씨에게 허락을 맡고 모스크 내부 사진을 찍었어요.



살짝 낡은 느낌이 있었지만 깔끔한 내부였어요. 이 정도면 우즈베키스탄에서 나름 괜찮은 모스크 내부라고 할 수 있을 정도.


사람들이 곧 우루루 몰려올 거라 가볍게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어요. 밖에서는 자기가 그린 그림을 사진으로 만들어 파는 장사꾼이 있었어요. 그림은 많이 사기 부담스럽지만 사진은 가격이 저렴해서 몇 장 사서 선물로 주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구경하고 있는데 한 우즈벡인이 다가왔어요.


"한국인?"

"예."

"나 한국에서 일했어요. 여기에서 일해요?"

"아니요. 저 학생이에요."

"언제 부하라 떠나요?"

"내일이요."

"내일 어디로?"

"히바요."

"내일 택시 나한테 타야 해요. 꼭 나한테 타야 해요. 알았죠? 택시, 내 차."


아저씨는 자기 차로 히바에 가자고 했어요. 택시 필요 없다고 하는데 계속 자기 차 타고 가라고 졸라대었어요. 그래서 귀찮아서 그냥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사진 중 살 것이 있나 보았어요. 제가 이 아저씨 택시를 탈 확률은 0. 이건 확실했어요. 부하라에서 우르겐치 기차표가 있는데 왜 멀쩡한 기차표 버리고 택시를 타나요. 내일 어디를 가든 간에 마지막에는 부하라 라비 하브즈 근처 구시가지 입구로 돌아와 마슈르트카 타고 기차역으로 갈 계획이었어요. 설령 시내를 택시 타고 돌아다닌다 해도 한 사람꺼를 대절해 다닐 이유는 전혀 없었구요.


"5분만 기다려. 기도 빨리 드리고 올게. 5분."


택시 기사와 자기가 그린 그림과 그 그림을 사진으로 만들어 파는 장사꾼이 모스크 안으로 들어갔어요. 택시 기사야 매달리든 뭐하든 필요 없다고 완강히 거부해 버리면 되는 것이고, 사진은 괜찮은 것은 전부 상태가 안 좋았어요. 게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이제 사진도 잘 보이지 않았어요. 당연히 제가 그 사람들을 기다려줄 이유는 전혀 없었어요.



미노라와 달. 이제 어둠이 찾아왔어요. 혹시 장사꾼이 나오면 사진이나 몇 장 흥정해볼까 했는데 장사꾼도 모스크 안에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어요. 솔직히 기도 시간에 맞추어 모스크 들어가 기도하는데 기도를 5분 만에 끝내고 나올 수가 없죠. 그래서 사진을 찍으며 기다리다 그냥 왔던 길로 되돌아가기 시작했어요. 사진 파는 장사꾼이야 내일도 팔 테니까요.


부하라



다시 라비 하브즈쪽으로 돌아가는 길. 속이 다시 싸르르 아파오기 시작했어요.



우즈베키스탄



사진을 조금 찍고 숙소로 돌아갔어요. 숙소에 돌아간 이유는 오직 화장실 때문. 공중화장실이 있기는 했지만 문을 닫아서 어쩔 수 없었어요. 신호를 덜 느끼기 위해 오히려 사진을 많이 찍으며 사진에 신경 쏟으며 돌아왔어요. 슬픈 것은 그렇게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거의 다 흔들려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사진이었다는 것.


숙소에서 볼 일을 보았어요. 역시나 설사.


'오늘은 굶어야겠다.'


설사일 때 가장 빠른 방법은 일단 굶기. 가끔 여행중 설사한다고 바나나 같은 것 먹이려는 사람들이 있는데 제 경험상 이러면 오히려 사태만 악화시킬 뿐. 여행중 설사로 고통받는다면 섬유질이고 기름질이고 다 쏟아져나오는 상태이니까요. 이럴 때에는 지사제 먹고 물과 음료수나 마시며 하루 굶는 게 제일 빠르더라구요.


부하라 밤거리를 걷기 위해 다시 나갔어요.







"별 거 없잖아."


미노라이 칼론까지 갈 필요가 없었어요. 미노라이 칼론은 워낙 커서 멀리에서도 잘 보이는데 조명이 안 들어가 있어서 보이지도 않았거든요. 조명이 있어야 그래도 돌아다니는 재미가 있는데 조명이 그다지 잘 되어 있지 않았어요.


"돌아가야겠다."


여기는 야경을 찍을 것이 거의 없었어요. 어둠 속에서 비치는 밝은 빛이 너무 적어서 시간을 거슬러갔다는 느낌은 들었어요. 물론 옛날에는 밤에 빛이 하나도 없었겠지만요. 조용한 점 하나는 마음에 들었어요.


라비 하브즈로 돌아가 콜라 500ml 한 통을 사러 가게에 갔어요.


"의자 있네?"


다리도 아프고 점원이 다른 손님들 계산하고 있는데 의자가 보였어요. 그래서 잠깐 앉으려고 했어요.


"헐...큰일날 뻔 했네."



순간적으로 이것을 의자라고 착각해서 앉을 뻔 했어요. 앉았으면 밀가루나 곡물, 파스타 면발 위에 앉았을 거에요. 스스로 왜 그랬는지 어이없어서 웃으며 콜라를 사서 라비 하브즈 근처로 가서 계단에 주저앉았어요.



그래도 라비 하브즈 근처는 조명을 잘 해 놓아서 구경할만 했어요. 혼자 콜라를 마시며 가만히 앉아 있었어요. 별 생각 없이 주변을 감상하다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저거 낚시하는 거 아니야?"


어떤 아저씨가 긴 막대기를 연못으로 던졌다 들어올렸다 하고 있었어요. 아무리 보아도 낚시하는 모습이었어요.


"안녕하세요."

"응."


그렇게 아저씨께 말을 걸었어요. 아저씨는 이 연못에 진짜 물고기가 살고, 낚시하면 팔뚝만한 놈이 잡힌다고 하셨어요. 미끼는 새끼손가락만한 물고기. 아저씨 혼자 하시는 게 아니라 다른 아저씨도 낚시하러 오셨어요.


아저씨는 10년전 한국에서 일하셨었다고 하셨어요. 그때는 한국어를 잘 했는데 지금은 다 잊어버려서 잘 못 하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대화는 우즈벡어로 했어요. 저와 아저씨가 대화를 하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겼는지 청년 둘도 왔어요. 청년 둘은 아저씨와 타지크어로 뭐라고 이야기했어요.


"전부 타지크인이세요?"

"응."


세 명 다 타지크인. 서로 잡담하며 노는데 자기들끼리는 타지크어로 대화하고, 저와 이야기할 때에는 우즈벡어로 이야기했어요. 낚시하시던 아저씨께서는 자기가 의정부와 동두천에서 살며 일했다고 하셨어요.


"저도 작년에 의정부에서 일했어요! 의정부역 이제 커졌어요!"

"그래? 의정부역에서 동대문까지 한 시간이잖아!"


아저씨께서 자기 한국에 있었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나 천 달러, 부장 이천 달러, 사장 삼천 달러'라고 한국어로 이야기하셨어요. 그 이야기 듣고 정말 크게 웃었어요. 두 타지크인 청년들은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해 아저씨께 다시 물어보았고, 아저씨께서는 저 말을 우즈벡어로 그대로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래보아야 숫자만 우즈벡어로 바뀐 거라 제가 우즈벡어로 다시 설명을 해주어야 했어요. 제 말을 듣고서 타지크인 청년들은 고개를 끄덕거렸어요. 이 말이 왜 재미있는 것인지는 이해를 못 한 눈치였어요.


이 세 타지크인들에게 아르크에 대해 넌지시 물어보았어요. 그러자 셋 다 거기는 지금 수리중이라 아예 못 들어가는 곳이며 원래 그런 곳이라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아까 그 여대생이 내게 아르크 갈 때 부르라고 한 이유는 저를 위해 아르크에서 경찰과 흥정을 해주겠다는 말이었다는 게 확실했어요. 그리고 부하라를 보기 위해 며칠 필요하냐고 물어보자 한결같이 3일 필요하다고 이야기해 주었어요. 하루에 다 볼 수 있냐고 물어보자 한결같이 그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었어요.


시계를 보니 어느덧 10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세 분께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그러자 셋 다 사진 찍어도 된다고 하시며 자세를 잡으셨어요.



이 사진 가운데 제일 오른쪽 분이 한국에서 일하셨었고, 낚시하시던 아저씨에요.



이것이 바로 이 아저씨께서 낚시하시던 낚싯대.


세 명과 헤어저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오늘 일을 수첩에 기록하고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내일은 제발 속 좀 괜찮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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