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17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구시가지

좀좀이 2012. 11. 1.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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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크 바자르로 돌아갔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서 마슈르트카를 타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어요.



이제부터 갈 길은 정말 평범한 길. 부지런히 돌아다녔는데 이 평범한 관광 코스를 돌아다니기 시작한 것은 오후 4시였어요. 관광객들이 잘 안 가는 곳을 가서 유적도 여러 개 보고 신시가지와 시장을 가 보았기 때문에 허송세월을 한 것은 아니었어요.


'어차피 내일도 있잖아.'


오늘 못 보면 내일 마저 보고 가도 되는 일. 어차피 부하라를 하루에 다 볼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늘 끝장을 내면 다음날 할 게 없으니까요. 게다가 부하라는 부하라 구시가지만 볼 것이 있는 것이 아니라 부하라 외곽에도 볼 것들이 있었어요. 처음부터 계획을 첫날은 구시가지를 보고 두 번째 날은 외곽에 있는 지역을 다닐 생각이었어요. 부하라 외곽 지역에서 볼 만한 것은 바로 왕궁. 우즈베키스탄에는 코칸드 칸국, 부하라 칸국, 히바 칸국이 있었는데 코칸드 칸국의 왕궁은 보았어요. 부하라와 히바에서 왕궁을 보면 우즈베키스탄 3개 칸국의 왕궁을 모두 보는 것.



저 문은 아침 도착해서도 보고 몇 번을 본 문. 그러나 이제야 드디어 저 문을 통과할 것이었어요. 저 문은 16세기에 지어진 토키 사라폰 Toqi Sarrafon. 딱 보아도 알 수 있지만 이 이름은 타지크어에요. 타지크어로는 Тоқи Саррафон. '환전상의 문'이라는 뜻이에요.


두 단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번째 단어가 i로 끝나고 두 번째 단어에 i로 안 끝난다면 타지크어라고 보면 되요. 타지크어는 이란어와 마찬가지로 '에제페'라는 문법이 있어요. 명사든 형용사든 무조건 'A of B'로 쓰는데 'A of B'에서 'of'를 i로 써요. 'A of B'를 타지크어 식으로 쓰면 'Ai B'가 되는 것이죠. 위의 Тоқи Саррафон도 마찬가지에요. тоқ 는 타지크어로 '아치, 돔'이라는 뜻. 그러므로 Тоқи Саррафон 은 '사라폰 아치' 정도 되는 거에요. 그리고 우즈벡어에는 '명사수식법'이라는 문법이 있는데, 3인칭에서는 i로 끝나요. 저 말을 우즈벡어로 하면 Sarrafon gumbazi. gumbaz가 '돔'이라는 뜻인데 명사수식법이 붙어서 gumbazi가 된 거에요. 이 정도만 알고 가면 부하라, 사마르칸트에서 유적 이름이 타지크어로 되어 있는지, 우즈벡어로 되어 있는지는 쉽게 구분할 수 있어요. 간단히 요약하자면 두 단어로 된 유적 이름에서 첫 번째 단어에 i가 붙어 있고 두 번째 단어에 i가 안 붙어있으면 타지크어, 두 번째 단어에 i가 붙어 있으면 우즈벡어로 된 이름이에요.



이것도 유적이 아니었을까 추측해 보았지만 유적임을 알려주는 표시가 없었어요.



이 유적은 16세기에 지어진 함모니 사라폰 Hammoni Sarrafon. 이것 역시 타지크어로, 우리말로 번역하면 '사라폰 대중목욕탕'. 함맘을 '대중목욕탕'으로 번역하니 뭔가 어감이 매우 우습지만 완역하면 저렇게 되어요. 이곳이 혹시 아침에 그 호텔에서 괜찮은 함맘이라고 추천한 곳인가? 사진을 찍으며 아쉬웠던 것은 앞에서 보니 그냥 평범할 뿐이었다는 것이었어요. 역시 위에서 함맘 지붕을 내려다보아야 제 맛. 바로 앞에 있는 토키 사라폰에 올라갈 수 있다면 꽤 사진 찍기 좋았을텐데 그러지는 못했어요.



토키 사라폰을 지나갔어요. 여기서 일반적으로 가는 쪽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가 보았어요.




두 번째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그냥 크고 인상적인 것이 없어 보이는 건물도 유적이었어요.



바로 이 건물이 19세기에 지어진 바로이쿠흐나 카르본 사로이 Baroyiko'hna Karvon Saroyi. 옛날 부하라에 온 대상들이 잠을 자는 숙소들 중 하나였어요.




더 돌아볼까 하다가 이쪽으로는 그냥 사람 사는 동네로 이어져 있어서 다시 토키 사라폰으로 돌아갔어요.



다시 부하라의 유명 관광 코스로 돌아왔어요. 여기서부터는 단체 관광객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역시나 독일, 아니면 프랑스에서 온 단체 관광객들이었어요. 다행히도 부하라 유명 관광코스는 유적이 몰려 있고 많은데 크기까지 했어요. 이건 정말로 좋은 점이었어요. 볼 건 어쨌든 많고, 충분히 넓기 때문에 단체 관광객들과 엉켜서 다닐 필요가 없었거든요.



사진으로 찍어놓고 보니 사람들이 참 없어 보였어요. 하지만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단체 관광객들이 득실대던 곳이었어요. 그 단체 관광객과 엉키지 않고 그 사람들이 안 보는 쪽을 보고 싶어서 바로이쿠흐나 카르본 사로이를 갔던 것이구요. 단체 관광팀 내부의 관광객들은 넓고 어수선하게 퍼져 있었어요. 가이드가 설명해줄 때에는 대체로 잘 모였지만, 사진 찍고 캠코더 찍으며 딴 짓하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이 유적은 12~16세기에 지어진 마고키 앗토르 모스크 Magoki Attori Masjidi. 이렇게 연대 차이가 몇백년 나는 이유는 아마 몇 번 무너지고 다시 세우고를 했다는 이야기일 거에요. 이 모스크는 부하라에 있는 모스크 가운데 가장 오래전부터 보존된 모스크에요. 여기는 들어가기 위해서는 돈을 내어야 했어요. 저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이 있어서 저렴한 가격에 들어가 보았어요. 안에 볼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정말로 들어갈 필요가 없는 곳이었어요.




이것은 18세기에 지어진 울루그벡 타모키푸루쉬 카르본 사라이 Ulug'bek Tamokifurush Karvon Saroyi. 여기도 옛날 상인들이 잠을 자던 곳. 오늘날로는 호텔. 아쉽게도 안에 들어갈 수는 없었어요. 아마 몇 년 후에는 이 안도 들어갈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혼자 상상해 보았어요. 저것이 사진으로도 크게 보이지만, 저것은 규모가 꽤 큰 편인데다 유적 한 개짜리가 아니었어요. 제대로 안을 복원하고 꾸민다면 여기도 꽤 유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가 갔을 때에는 문이 굳게 닫혀 있어서 안을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요.



사진 가운데에 돔 지붕이 여러 개 모여 있어서 올록볼록해 보이는 특이하게 생긴 건물은 16세기에 지어진 토키 텔팍 푸루숀 Toqi Telpak Furushon. 우리 말로 하면 '스카프 상인들의 문'.



이 텔팍 푸루숀 문 안에는 가게들이 모여 있었어요. 느낌이 왠지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이집션 바자르 축소판이었어요. 규모는 이집션 바자르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어요. 하지만 내부에서 느껴지는 그 느낌, 그리고 생김새를 보니 이집션 바자르를 갔을 때 그 느낌과 기억하고 있는 모습과 흡사한 것 같았어요.




토키 텔팍 푸루숀에서 나오자 관광객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래도 관광객들을 요리조리 잘 피해다니며 사진을 찍고 혼자 감상하기에는 아직 별 무리가 없었어요. 관광객들은 주로 향신료 가게 앞에 모여 있었어요. 향신료 가게에서는 향신료를 조그만 봉지에 담아 팔고 있었어요.


'이 향기 너무 좋아!'


향신료 가게가 궁금해서 앞에 서 있지는 않았어요. 이런 향신료 가게라면 시장에서 더 많이, 다양하게 파는 가게가 많으니까요. 향신료 가게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던 이유는 향신료 냄새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향신료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가끔 이태원 갈 때마다 맡을 수 있는 향신료 냄새가 이국적으로 느껴지기는 했지만 좋지는 않았어요. 그러나 우즈베키스탄 와서 시장에 갈 때마다, 그리고 음식을 먹을 때마다 향신료 냄새를 맡다 보니 이제는 향신료 냄새가 친숙하게 느껴지고, 좋게 느껴졌어요.



이 건물은 16세기에 지어진 티미 압둘로혼 Timi Abdulloxon. 타지크어로 'тим'은 우리말로도 '팀'. 그러면 '압둘라 팀'이라는 뜻인가? 왜 저런 이름이 붙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타지크어-영어 사전에 나와 있지 않은 뜻일 수도 있구요. 제가 가지고 있는 타지크어-영어 사전에는 없는 뜻이 많거든요. 결국 여행기를 쓰기 위해 타지크어-타지크어 사전을 뒤져보니 타지크어 тим에는 '카라반사라이' 라는 뜻도 있네요. 즉 이 건물은 우리 말로 하면 '압둘라혼 대상 숙소' 정도. '압둘라혼 호텔'이라고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마드라사 2개가 마주보고 있었어요. 저는 먼저 왼쪽 것부터 들어갔어요.



이 마드라사는 1652년에 지어진 압둘아지즈혼 마드라사 Abdulazizxon madrasasi.



"우와! 정말 화려하잖아!"


입구를 올려다보았어요. 정말 화려한 색채로 칠한 천장이 저를 보며 유혹하고 있었어요. 여기는 정말 복원을 어느 정도 해 놓았구나!


입구를 보니 안도 꽤 볼 만 하겠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응?


역시 이 나라에서 큰 기대를 하면 안 되요. 이것은 우즈베키스탄을 비하하는 말이 아니에요. 소련 시절 약 70년 동안 이 마드라사가 제대로 관리되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아요. 부수지는 않았지만 보존하지도 않은 경우가 매우 많거든요. 특히 민족주의, 종교와 관련된 것들은 고의적으로 방치해버린 경우도 많아요. 그러므로 절대 상태가 좋을 거라 기대하지는 않는 게 구 소련 지역 여행의 노하우. 그나마 입구라도 잘 복원해놓은 것이 다행이었어요. 70여년 방치된 문화재가 한둘이 아닌데 우즈베키스탄 정부도 한계가 있죠. 설령 돈이 많다고 해서 시멘트 바르고 공장에서 찍어낸 타일을 대충 붙여넣고 복원이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그건 오히려 새로운 훼손이죠. 제대로 복원중인 곳은 정말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벽화를 그리고 있어요. 이런 전문가들이 많아야 빨리 복원이 되는 것이구요. 그런데 이런 전문가들이 소련 시대에 제대로 잘 양성이 되었을 리도 만무하고, 복원해야할 문화재는 엄청 많으니 더더욱 진도가 느릴 수 밖에 없는 것이죠. 굳이 우즈베키스탄이 돈이 많고 적은 문제를 떠나서요.



압둘아지즈혼 마드라사 맞은 편에 있는 마드라사는 울루그벡 마드라사 Ulug'bek Madrasasi. 여기는 압둘아지즈혼 마드라사에 비해 매우 담백한 느낌이었어요.




부서진 미흐랍을 보고 할 말을 잃었어요. 게다가 여기는 내부에 상인들조차 한 명도 없었어요. 정말 주요 관광 경로에 없었다면 그냥 아직까지도 방치되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압둘아지즈혼 마드라사가 약간이라도 보수된 것에 비해 여기는 보수가 거의 안 된 것처럼 보였어요.



"이것도 모이니까 괜찮은데?"


부하라를 돌아다니며 한 가지 기분 좋지 않은 것이 있었어요. 들어갈 수 있는 유적 대부분은 안에서 기념품점 및 수공예품점이 장사를 하고 있었어요. 여기까지는 기분이 안 좋을 이유가 없었어요. 문제는 이 기념품점 및 수공예품점 주인과 직원들이 자꾸 물건을 사라고 잡아끌었다는 것. 그런데 여기는 상인도 가게도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래서 편하게 사진을 찍고 조용히 감상할 수 있었어요. 아무 것도 없는 마드라사의 한 쪽을 찍었는데 사진이 제 마음에 들게 잘 나왔어요.



이 두 모스크 바로 옆은 그냥 사람 사는 동네. 여기도 구시가지라고 해야 맞기는 한데, 그렇게 하면 어느 쪽을 지칭하는지 알 수가 없어진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관광지로 개발되고 유적들이 몰려 있는 곳도 엄연한 구시가지이니까요.


'저기를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여행중에는 그냥 편한대로 관광지로 개발되고 유적이 몰려 있는 곳은 '시내', 바로 옆 개발이 되지 않은 동네를 '구시가지'라고 부르며 다녔어요.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표현 방법. 그래서 저는 이런 동네는 그냥 '마을'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구시가지 번화가', '구시가지 개발구역'이라고 하는 것은 왠지 이상했거든요.



다시 한 번 압둘아지즈혼 마드라사 입구를 감상했어요. 이 정도 화려함이라면 나중에 언젠가 책 표지로 사용해도 괜찮겠는데? 먼지를 뒤집어써서 오히려 색이 고와졌어요. 너무 강렬하지도 않으면서 화려한 색채가 참 마음에 들었어요.



왼쪽에 보이는 토키 텔팍 푸루숀처럼 생긴 건물은 16세기에 지어진 토키 자르가론 Toqi Zargaron. заргар는 타지크어로 '보석 세공인'이라는 뜻이므로 저 건물의 뜻은 '보석 세공인들의 문'이라는 의미에요.


이 뒤로 보이는 것이 바로 부하라의 첫 번째 상징이자 부하라에서 가장 유명한 미노라이 칼론과 미리 아랍 마드라사였어요.


"이제 거의 다 왔구나!"


미노라이 칼론까지 가면 부하라 주요 관광지는 대충 다 둘러본 셈이었어요. 지도를 보니 미노라이 칼론을 넘어가면 '아르크'라는 곳이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토키 자르가론으로 갔어요. 여기만 통과하면 이제 미노라이 칼론. 여기도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있었어요. 전체적인 분위기도 토키 텔팍 푸루숀과 비슷했지만, 여기는 조금 어두침침했어요. 밖에서 보면 사진 찍기도 좋고 꽤 예쁘게 생겼는데 내부에는 그렇게 크게 눈길을 끄는 것도 없어서 별로 시간을 지체하지 않고 휙 지나갔어요. 개인적으로 외부는 토키 자르가론이, 내부는 토키 텔팍 푸루숀이 훨씬 나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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