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해야 했던 숙제 (2012)

해야 했던 숙제 - 18 우즈베키스탄 부하라

좀좀이 2012. 11. 2.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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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부하라의 상징이구나!"



Bukhara


미리 아랍 마드라사도, 칼론 모스크도, 미노라이 칼론도 모두 컸어요. 세 개 다 한 사진에 집어넣으려고 하니 24미리 화각에 x0.7 광각 컨버터까지 달아서 우겨넣어야 했어요.



이것이 바로 1530~36년에 지어진 미리 아랍 마드라사 Miri Arab Madrasasi. 'мир'는 타지크어로 '왕자, 지도자'라는 뜻이에요.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 '아랍 지도자 이슬람 신학교'. 이 마드라사가 다른 마드라사와 다른 결정적 차이는 바로 이 마드라사는 지금도 마드라사의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 마드라사는 내부로 들어갈 수 없어요.


입구로 들어가자 한 남자애가 앉아있다가 여기는 못 들어간다고 말했어요. 그래서 그냥 나갈까 아니면 소년에게 부탁을 해볼까 고민을 하며 일단 소년에게 말을 걸었어요. 일단 대화 주제는 가벼운 것부터.


"너 여기에서 공부하니?"

"예."


소년은 공책을 보며 계속 소리내서 읽고 있었어요. 무엇을 적었나 보니 아랍어였어요. 아래에는 아랍어 해석을 우즈벡어로 적혀 있었어요.


"이거 너 읽을 수 있어?"

"예."


제가 먼저 아랍어를 소리내어 읽었어요. 소년도 같이 읽었어요. 정말 몇 년 만에 아랍어를 소리내서 읽으려니 어색하기도 하고 잘 읽어지지도 않았어요. 소년은 계속 외우던 거라 매우 잘 읽었어요.


"이거 공부해?"

"예."

"이거 숙제야?"

"예."


여기 오며 아랍어는 이제 쓸 일이 아예 없을 줄 알았는데 이런 식으로 써먹게 될 줄은 정말 몰랐어요. 확실히 제가 공책에 적힌 아랍어를 소리내서 읽자 소년의 경계심이 꽤 부드러워졌어요. 이대로라면 잠깐 안에 들어가서 사진만 후딱 찍고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창문 너머 보이는 미리 아랍 마드라사는 확실히 지금까지 사용하는 건물이라 그런지 더욱 깔끔하고 아름다워 보였어요.


그때 다른 소년이 왔어요.


"야, 너 뭐해?"

"숙제."

"외국인한테 우즈벡어로 이야기하면 못 알아듣잖아."

"이 아저씨 우즈벡어 알아들어."


그 소년도 이 마드라사에서 공부하는 것 같았어요.


"너도 우즈벡어 알아?"

"예. 그리고 쟤는 카자흐어도 알아요."

"응?"


입구를 지키는 소년을 쳐다보았어요. 소년은 부끄러운 듯 얼굴이 상기되었어요.


"너 카자흐어도 알아?"

"예. 알아요."

"어떻게? 어디에서 배웠어?"

"저 카자흐인이에요."


두 아이들과 거리가 많이 가까워졌어요. 왠지 이제 세 마디만 더 하면 안에 잠깐 들어가 사진만 후딱 찍고 나와도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드는 순간.


"아우...저 망할 단체 관광객!"


프랑스 단체 관광객이 우루루 몰려왔어요. 단체 관광객 무리 중 몇 명이 사원 안에 들어와 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소년이 못 들어가게 막았어요. 잠시 후, 이 무리는 가이드의 설명을 듣기 위해 마드라사 앞으로 모였어요. 어쨌든 안에 들어가기는 글렀어요. 저 혼자 있다면 적당히 잘 들어가서 잠깐 구경하고 나올 수도 있겠지만 다른 관광객이 있으면 일반적으로 그렇게 안 해 주거든요.


단체 관광객이 몰려와서 애들하고 잡담하기도 어려워지고 조용히 보기도 글러서 단체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미노라이 칼론으로 갔어요.



미노라이 칼론 Минораи калон은 타지크어로 '거대한 탑'이에요. 지금 이 사진은 탑이 작게 나온 사진이에요. 최대한 광각을 만들어서 찍은 것이 이 정도이거든요. 이 탑은 1127년 지어졌으며, 높이가 47미터에요.



모스크에 들어가기 전에 주변에서 사진부터 찍었어요. 이것 역시 유적.



어떻게 사진 한 장에 우겨넣을 수는 있지만 예쁘게 잘 나오지는 않았어요.



이 탑의 특징은 입구가 땅에 없다는 것이에요. 이 탑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먼저 칼론 모스크 옥상에 올라가서 옥상과 이어진 다리를 건너 입구로 들어가야 해요.


'이건 들어갈 수 있을 건가?'




"풍경 좋구나."


이쪽은 단체 관광객들이 오지 않는 곳. 그래서 혼자 조용히 쉬기 좋았어요.


"아...진짜 절묘한 타이밍에 들이닥치네."


아예 문을 걸어잠그고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서 더욱 아쉬웠어요. 소년 둘과 어울려 우즈벡어로 잡담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안에 들어가서 잠깐 구경하고 나올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었는데 단체 관광객들이 들이닥치며 망쳤어요. 다시 가서 안에 사진만 찍게 해달라고 부탁한다면 보나마나 바로 또 거절당할 것이었구요. 앞에서 소년이랑 이야기하면서 적당히 시간을 보내다 어른이 오셨을 때 인사를 하고 부탁을 드리는 방법도 있었지만 오늘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아르크까지는 끝내고 싶었어요.


사진을 찍고 콜라를 마시며 쉬다가 칼론 모스크를 향했어요. 이제 서두를 필요도 없었어요. 시간을 보니 오후 5시였거든요. 오늘 사모니 공원까지 다 둘러보니는 너무 늦었어요. 최대한 서두르고 욕심을 부려보았자 아르크 맞은 편에 있는 볼로 하브자 모스크 정도 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하지만 어차피 다음날 사모니 공원을 가야 했기 때문에 굳이 서둘러 다 보겠다고 들 필요는 없었어요. 그래서 충분히 쉬고 칼론 모스크로 갔어요.



칼론 모스크에 들어가려는데 한 청년이 불렀어요.


"입장료 내야 해요."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을 보여주었어요. 그러자 저는 공짜로 들어가라고 했어요. 뒤따라 서양 배낭여행객들이 왔어요. 그들은 당연히 입장료를 내야 했어요.


'우즈베키스탄 학생증 챙겨오기를 잘 했다.'


우즈베키스탄 학생증 안 챙겨왔다면 저도 다른 외국인들과 똑같이 입장료 다 내고 들어가야 했을 거에요. 국제학생증도 필요 없었어요. 중요한 것은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이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였어요. 국제학생증은 별 소용도 없는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했지만, 타슈켄트에서 단 한 번도 쓸 일이 없어서 방구석에 던져놓았던 우즈베키스탄 학생증은 이 여행에서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어요.



칼론 모스크 내부. 이곳은 1만명까지 들어가서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모스크라고 해요. 어떻게 이 정도 공간에 1만명 씩이나 들어갈 수 있냐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텐데, 충분히 가능해요. 무슬림들은 예배를 드릴 때 다닥다닥 붙어서 예배를 드려요. 멀찍이 서로 떨어져서 예배를 드리는 게 아니라 일렬로 서서 서로의 어깨를 붙이고 예배를 보아요. 그렇게 안 하면 어깨가 떨어져 있는 틈으로 악마가 들어온대요. 그렇게 다닥다닥 붙어서 예배를 드리기 때문에 충분히 1만명까지 안에 들어가서 예배를 볼 수 있는 거에요.


1만명이나 동시에 예배를 볼 수 있는 모스크이기 때문에 '칼론 모스크'라는 이름이 전혀 아깝지 않았어요. калон 은 타지크어로 '거대한'이라는 뜻이거든요.



아무 것도 없는 하얀 칠이라 아름다웠어요. 만약 여기를 모두 화려하게 칠했다면 매우 정신 사나워졌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냥 와서 구경하는 사람이 정신 사나워질 정도라면 예배드리러 온 사람은 더 정신이 없을 거에요. 규모도 큰데 모든 곳이 화려하다면 양과 질에 정신이 눌려버리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구경을 하고 혹시 미노라이 칼론에도 올라갈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입장료를 내라고 했던 청년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그 청년은 모스크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어요. 그래서 밖에 나갔어요. 모스크 앞에는 소년과 아이들이 앉아서 놀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옆에 칼론 미노라를 관리하는 청년이 있었어요.


"혹시 저 탑에 올라갈 수 있어요?"

"아니요. 안 되요. 저기는 지금 수리중이라서 못 올라가요."


청년은 단칼에 안 된다고 거절했어요. 청년이 거절하자 방법이 없었어요. 그러던 차에 제가 우즈벡어로 물어보는 것을 들은 모스크 앞에 있는 소년들과 아이들이 제게 말을 걸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 애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그 애들 모두 타지크어를 잘 알고 있었어요. 타지크인도 있었고, 우즈벡인도 있었어요. 아이들이 어리다보니 제게 이야기해줄 때 우즈벡인은 우즈벡어를 잘 했고, 타지크인은 우즈벡어와 타지크어를 많이 섞어서 이야기했어요. 타지크어를 들어서 이해하는 수준은 아니라서 제가 못 알아들으면 우즈벡인 소년이 타지크인 아이에게 '우즈벡어로 이야기해야지!'라고 타이르며 제게 우즈벡어로 다시 이야기해주었어요. 그렇게 애들과 어울려 잡담하며 놀다가 소년과 애들에게 물어보았어요.


"저 탑 아예 못 올라가?"

"저 탑 계속 수리중이라서 못 올라가요. 저 사람한테 열쇠 있어요."


한 소년이 청년에게 탑에 올라갈 수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청년은 탑 내부가 너무 위험해서 들여보내줄 수 없다고 대답했어요. 청년이 정말 위험해서 안 된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흥정도 안 될 듯 싶었어요. 그래서 애들과 어울려 잡담하고 놀다가 슬슬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목마른데 콜라나 하나 사먹고 가야지."


칼론 모스크에서 길 건너 옆에 있는 가게로 올라가 저렴하게 마시고 가기 위해 병에 든 콜라를 골랐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병에 든 콜라는 가격이 매우 싸요. 대신, 가게 안에서 마시고 병을 돌려주어야 해요. 병을 깨면 병값을 물어주어야 하구요. 당연히 다른 곳에 들고 가서 마시려면 병값을 주어야 해요. 구입한 자리에서 다 마시고 병을 돌려주는 조건하에 콜라를 싸게 마시는 것이에요.


콜라를 마시며 미리 아랍 마드라사와 미노라이 칼론, 칼론 모스크를 바라보았어요.


"여기가 진짜 사진 찍기 좋은 장소였구나!"



콜라를 다 마시고 병을 돌려드린 후 마지막으로 갈 곳을 향했어요. 그곳은 바로 아르크. 부하라 출신 지인들이 갈 때 꼭 자기에게 연락하라고 하거나 같이 가자고 했던 아르크. 대체 아르크가 뭔지도 모르는데 아르크는 많이 들어서 무엇인지 궁금했어요. 아르크 주위에 '진돈'도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진돈 zindon 은 옛날에 죄인들을 가두던 깊은 웅덩이 감옥. 타지키스탄에서는 이 진돈을 메운 자리만 보았어요. 거기에서는 소를 집어넣고 돌과 흙으로 진돈을 메워 없앴다고 했어요. 그래서 진짜 진돈의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물론 당연히 그냥 웅덩이이겠지만 어떻게 생겼는지 그래도 보고 싶었어요. 하지만 이것은 내일 일정. 지금 진돈을 보러 가기에는 너무 늦었거든요.



칼론 모스크 옆길을 따라 계속 갔어요. 그러자 시장이 나왔어요.



시장 역시 시간이 늦어서 거의 다 문을 닫았어요.



시장을 넘어가자 거대한 성벽이 나타났어요.




칼론 모스크에서 제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니 정말로 아름다웠어요. 석양의 붉은 빛이 녹아든 흙빛 벽돌 건물들은 낮에 본 그 흙빛 건물과 달라 보였어요. 정말 이제 눈을 감고 자야할 것만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색이었어요.


Bukhara Ark


성벽은 높았어요. 아이들은 벽에 축구 골대처럼 그려진 그림을 골대 삼아 축구를 하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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