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한국

경상북도 경주 구황동 사적 제6호 황룡사지

좀좀이 2021. 6. 28.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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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여행을 갔을 때였어요. 불국사를 간 날은 비가 계속 내리는 날이었어요. 그나마 불국사에 도착했을 때는 빗줄기가 부슬비로 바뀌어서 우산 쓰면 돌아다닐만해졌어요. 불국사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동안 빗줄기는 갈 수록 약해졌어요. 드디어 비가 그쳤어요. 언제 비가 다시 쏟아질 지 모르겠지만 중요한 것은 당장 비가 안 내리고 있다는 점이었어요. 하늘은 누가 톡 건드리기만 하면 다시 비가 무섭게 퍼붓게 생겼어요. 그렇지만 하늘이 무섭게 생기기만 했을 뿐 비는 안 내리고 있었어요.

 

"다른 곳 더 갈 수 있겠다."

 

불국사에서 비가 많이 쏟아졌다면 다음 일정이 매우 골치아파졌을 거였어요. 불국사 다음 어디로 갈 지 전혀 결정하지 않았어요. 이렇게 비가 쉬지 않고 퍼부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비가 좍좍 퍼부으면 돌아다니기 나빠요. 이렇게 비가 퍼붓는 날에 갈 만한 곳은 딱히 찾아보지 않았어요. 그나마 갈 만한 곳이라면 황리단길 가서 괜찮아보이는 카페 하나 찾아서 들어가서 시간 보내는 것 뿐이었어요. 그렇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있었어요. 하루에 카페 두세 곳 연달아 가게 생겼어요. 그런데 다행히 비가 그쳤어요.

 

'어디 가지?'

 

문득 버스에서 봤던 버스 노선도가 떠올랐어요. 불국사에서 경주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면 분황사, 황룡사지도 들려요. 날씨만 따라준다면 황리단길에서 분황사, 황룡사지까지도 여유롭게 걸어가며 즐길 수 있어요. 거리가 조금 멀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 걸어갈 거리도 아니에요. 주변 구경하고 사진 찍으며 걸으면 황리단길까지 지루하지 않게 걸어갈 수 있어요.

 

'분황사랑 황룡사지 보러 갈까?'

 

중학교 수학여행으로 경주에 갔을 때였어요. 수학여행으로 경주 와서 본 것은 불국사와 석굴암이었어요. 분황사와 황룡사지는 보지 못했어요.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때만 해도 황룡사지는 그렇게 많이 알려진 곳이 아니었어요. 국사 교과서에는 등장했어요. 경주 황룡사는 중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등장했고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도 등장하는 아주 중요한 절이었어요. 통일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은 아주 오래전부터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반드시 외워야 하는 단어였어요. 그렇지만 딱 거기까지였어요. 황룡사는 국사책에 2번 나왔어요. 첫 번째는 통일신라의 번성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존재로 황룡사 9층 목탑이 나왔어요. 두 번째는 고려말 몽골의 침입 시기에 황룡사 9층 목탑이 홀라당 불타서 완전히 소실되었다는 내용으로, 몽골의 침입이 당시 고려에 얼마나 큰 피해를 끼쳤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어요.

 

국사책에 무려 2번이나 아주 상징적인 존재로 등장하는 황룡사 9층 목탑이지만 황룡사지 자체는 매우 안 유명한 유적이었어요. 경주를 대표하는 유적은 석굴암, 불국사였어요. 여기에 무령왕릉, 천마총, 첨성대 등이 있구요. 황룡사지가 유명해진 것은 상당히 나중의 일이에요.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아마 2010년대 들어서야 황룡사지가 유명해졌을 거에요. 그 전까지 황룡사는 몽골 침략때 홀라당 불타서 남아 있는 것이 없다고 마침표가 찍혔어요.

 

우리나라에는 대형 절터가 여러 곳 있어요. 지금까지 가본 대형 절터는 한결같이 별로였어요. 딱히 가서 볼 것이 없었어요. 날씨가 좋아서 원래 일정대로 돌아다녔다면 황룡사지는 아예 갈 생각조차 안 했을 거였어요. 그렇지만 날씨가 매우 안 좋아서 급히 일정 다시 짜느라 불국사를 갔어요. 불국사에서 더 멀리 가기에는 시간도 애매했고 언제 다시 비가 쏟아질지 알 수 없었어요. 그래서 불국사에서 경주 시내로 돌아가는 버스가 들리는 곳 중 한 곳을 가보기로 했어요. 그게 황룡사지였어요.

 

불국사에서 버스를 타고 분황사에서 내렸어요.

 

"분황사랑 황룡사 붙어 있네?"

 

분황사와 황룡사지는 붙어 있었어요. 분황사 입구 맞은편이 황룡사지였어요.

 

'역시 건물은 지을 때 튼튼한 재료를 써야 해.'

 

분황사 3층 석탑은 돌로 만들었어요. 지금도 있어요. 분황사도 황룡사와 마찬가지로 소실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하지만 그래도 분황사 3층 석탑은 그대로 남아 있고, 분황사 3층 석탑을 분황사가 품고 있어요. 여기는 지금도 절이에요. 반면 황룡사지는 정말 아무 것도 안 남아 있었어요. 과거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황룡사는 엄청나게 큰 절이고 분황사는 사람들이 거들떠도 안 보는 조그마한 절이었을 거에요. 그렇지만 건축자재 선택에서 운명이 갈렸어요. 분황사는 최소한 탑은 화재에 강한 돌로 만들었고, 황룡사는 화재에 매우 취약한 나무로 만들었어요. 그 결과 현대에 와서 분황사는 어떻게 명맥을 이어오고 있지만 황룡사는 싸그리 다 없어졌어요.

 

역시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재에 강한 튼튼한 재료에요. 분황사와 황룡사지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고 있었어요. 건축에서 내화설계 무시하면 하룻밤새 홀라당 화르륵 화르륵 불타 없어져버릴 수 있어요.

 

 

경주 황룡사지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운치있는데?"

 

경주 황룡사지는 한 번 가볼 만 했어요. 꽤 운치있었어요. 제가 간 날은 비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고 멀리 산쪽으로는 안개가 가볍게 끼어 있었어요.

 

 

경상북도 경주 구황동 황룡사지는 사적 제6호에요.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 실려 있는 내용에 의하면 진흥왕 14년인 서기 553년에 월성(月城) 동쪽에 새로운 궁궐을 건설하려 할 때 황룡이 나타났다고 해요. 그래서 황룡이 출몰한 자리에 황룡사를 짓기 시작했다고 해요. 서기 574년에는 장륙존상(丈六尊像)을 만들어 안치했고, 진평왕 6년인 584년에는 금당을 건립했다고 해요.

 

황룡사에서 가장 유명한 황룡사 목탑은 선덕여왕 14년인 645년에 세워졌다고 해요. 이후 황룡사는 몇 차례 중건되었어요. 고려시대에도 황룡사는 매우 중요한 절이어어요. 고려시대에도 국가 왕실의 보호 아래 호국사찰로서 숭앙되었어요.

 

하지만 고려 고종 25년인 1238년에 황룡사는 몽골 침입으로 완전 소실되어버렸어요. 목탑이고 가람이고 싹 다 불타서 사라져버렸어요.

 

제 아무리 한때 잘 나가는 절이었다 해도 내화설계 안 했다가 하룻밤새 완전히 잿가루되어버렸어요. 이래서 기초에 충실해야 해요. 과거에 황룡사가 있었을 시절에 누가 분황사에 눈길이나 줬겠어요. 경주로 온 모든 사람들이 다 황룡사만 가고 분황사는 황룡사 옆에 있는 조그마한 이름 모를 절 정도로나 생각했을 거에요. 황룡사와 분황사가 같이 있었을 시절, 분황사 가는 사람은 황룡사 구경 다 하고 불심이 너무나 충만해서, 또는 온 김에 하나 더 보고 가자는 생각으로나 갔을 거에요. 황룡사는 경복궁급이고, 분황사는 아무리 잘 쳐줘야 덕수궁 쯤 되었을 거에요.

 

하지만 내화설계 제대로 안 된 황룡사는 싸그리 불타 주춧돌 몇 개 빼고 완전히 흔적조차 사라져버렸어요. 황룡사 그림조차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이 없어요. 하지만 분황사는 탑만큼은 기본 중에서도 기본에 해당하는 내화설계 튼튼히 해서 탑은 멀쩡히 남아 있어요. 탑이라도 남아 있으니 그렇게 불교 탄압하던 조선시대에 약사전이 세워졌어요. 기본이 부실하면 어느 순간 한 방에 몽땅 날아간다는 걸 아주 잘 보여주는 황룡사지였어요.

 

역시 예나 지금이나 자나 깨나 불조심이에요.

 

 

경주 황룡사 목탑 터로 갔어요. 수묵화 같은 풍경이었어요.

 

 

황룡사 9층 목탑 심초석이 있었어요.

 

 

 

'여기는 사진 찍기 좋은데?'

 

황룡사지 와서 놀란 점은 사진 찍기 상당히 좋게 조성해놨다는 점이었어요. 푸르른 잔디밭, 멀리 보이는 산, 앞에는 보리밭. 역사에 크게 관심없고 한국 건축양식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황룡사지 와도 즐길 수 있게 조성해놨어요. 분황사와 황룡사를 묶어서 다니면 사진찍기 매우 좋았어요. 경주 여행 기념 사진 찍는 곳으로 일부러 조성해놓은 수준이었어요.

 

분황사와 황룡사지는 지나가다가 여기 사진 찍기 좋겠다고 잠시 들리고 싶게 만들어놨어요. 확실히 족보 있는 관광도시 경주라서 그런지 센스가 아주 뛰어났어요. 억지로 뭔가 막 세워놓고 만들어놨다면 오히려 재미없었을 거에요. 우리나라 대부분의 유적이 이런 식이에요. 억지로 뭘 자꾸 가르치려고 해요.

 

넓은 들판에서 사진 찍으며 한참 돌아다니다 딱 나왔을 때 여기가 황룡사지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의 느낌. 반대로 황룡사지라고 해서 가서 사진 찍고 풍경 즐기며 한참 놀다 나왔을 때의 그 느낌. 어마어마하게 큰 절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소실되어 사라져 폐허만 남았다는 점에서 찾아오는 애잔함과 안타까움. 시끄럽게 주절주절 우리의 아픈 과거라고 안 떠들어도 자연스럽게 그 느낌이 왔어요.

 

 

범종 소리 크고 은은하게 퍼지며 '경주 법주'라는 광고 멘트가 나오면 딱 어울릴 법한 느낌.

 

유적이라는 곳에 의의를 두지 않고 재미있게 사진 찍고 놀러 가도 시간 꽤 보낼 수 있는 곳이었어요. 사진 촬영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가서 사진 찍는 재미가 쏠쏠한 곳이었어요.

 

경상북도 경주 구황동 사적 제6호 황룡사지는 사진 촬영 좋아한다면 가볼 만한 곳이었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애잔함과 안타까움을 느끼게 공간을 구성해놓은 것이 참 마음에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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