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가고 싶다.
무려 작년 - 2020년 설날 이후 여행을 단 한 번도 안 갔어요. 이때부터 어디 돌아다니기 매우 안 좋았어요. 어디 가려고 해도 눈치보였어요. 밤에 돌아다니는 것이 취미지만 상황이 밤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 촬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심지어 절묘하게 명절 즈음마다 우리나라 보건 상황이 더 나빠져서 명절때 내려가지도 못 했어요. 여기에 설상가상으로 2020년 11월 24일부터 수도권은 아예 뭘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렸어요.
그렇게 1년 넘게 시간이 흘러갔어요. 그렇지 않아도 스트레스 엄청 받는데 설상가상으로 티스토리가 글 에디터를 엉터리 업데이트 하면서 도저히 못 써먹을 지경까지 가버렸어요. 비유가 아니라 정말로 블로그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할 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상황까지 왔어요. 티스토리 개발진들은 지금도 제대로 된 글은 아예 못 쓰게 엉터리 업데이트하고 또 귀 막고 눈 가리고 자기들끼리 열심히 했다고 하고 있을 거에요. 항상 그래왔으니까요. 티스토리 개발진은 어떻게 된 것이 더 발전시키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더 엉망으로 만들고 어떻게든 사람들 다 쫓아내려고 노력하고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애초에 대충 만들다 만 신에디터를 던져주고 그걸로 글 쓰라고 했을 때부터 예견되어 있던 일이었어요. 현재 강제 일괄 적용중인 신에디터는 1년 전에 만들다 만 것을 아무 것도 손 대지 않다가 덜렁 던져주고 구에디터를 없애버리는 만행이었어요. 티스토리 신 에디터는 글자 폰트 조절조차 없는 글 편집기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쓰레기 그 자체였어요. 그런 엉터리 글 편집기를 이번에는 대놓고 장문의 글을 못 쓰게 만들어놨기 때문에 이것은 문제가 매우 심각해요. 이 정도로 심각한 문제라면 롤백하지 않는 한 답이 없는데 역시나 지금까지도 항상 하던대로 귀 막고 눈 가리고 자기들끼리 노력했다고 자위하고 있을 거에요.
여기에 올해는 정말 '무소식이 희소식'인 상황의 연속. 진짜 아는 사람한테서 연락오는 것 자체가 무서울 지경이었어요. 주변 지인들에게 일어나는 안 좋은 일이 과거와는 차원이 달랐어요. 지인한테서 연락이 왔다 하면 좋은 일로 연락 오는 건 하나도 없고 한결같이 극단적으로 안 좋은 일이었어요. 아무리 지금이 작년부터 이어진 사태 때문에 전국민 모두 아픈 세상이라 해도 이건 넋이 나갈 지경이었어요.
여행을 너무 가고 싶었어요.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고 정신도 힘들었어요.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여행을 가서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고 싶었어요. 아무리 봐도 이건 아니었어요.
국내여행으로 갈 만한 곳은?
국내여행으로 갈 만한 곳을 골라야 했어요. 운전면허증이 없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닐 수 있기 편한 곳이어야 했어요.
경주?
어쩌면 이것이 좀좀이의 여행 티스토리 블로그를 운영하며 간 마지막 여행일 수도 있었어요. 이 불길한 예감이 맞아버린다면 이 여행은 좀좀이의 여행 블로그와의 작별 여행이 될 거에요. 이런 불길한 예감이 안 맞기를 바라지만 아무리 봐도 안 맞을 확률보다 맞을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어요. 그렇다면 제 여행 기록에서 원점으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중학교 수학여행 때 갔던 경주. 그게 제 인생에서 최초로 제대로 된 여행이었어요. 초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제주도 일주를 한 적 있지만 그건 너무 오래된 기억인데다 불과 1박2일 일정이었어요. 정말 여행이라고 부를 만한 최초의 여행지는 수학여행 때 간 경상북도 경주였어요.
일단 떠나자.
고민한다고 답이 보이는 것도 아니었어요. 정확히는 고만'만' 늘어났어요. 이러면 훌쩍 떠나버리는 것이 나아요. 여행 갈 수 있는 곳을 더 찾아보기도 싫었어요. 그냥 경주 가기로 했어요. 경주 가서 생각해보기로 했어요.
예? 경주를 간다구요?
경주 가서 뭐 할 지 계획은 짜셨어요?
경주 가면 불국사 있잖아.
내가 지금 그런 걸로 고민을 해야겠냐?
그렇지 않아도 다른 것 때문에 머리아파 죽겠는데?
불국사 하나 믿고 간다.
5월 19일은 부처님 오신 날. 경주에는 절 많아. 정 안 되면 절이나 하나 다녀오면 돼. 어느 절 갈 지 모르겠으면 불국사 가면 돼.
진짜 이랬어요. 그래도 한때 여행을 많이 다녔기 때문에 몇 개 안을 아주 대충 짜놓기는 했어요. 그리고 최후의 보루, 마지막 카드는 불국사였어요. 경주는 불국사 있잖아요. 믿고 가는 불국사였어요. 중학교 2학년 수학여행때 가고 안 갔으니 불국사 다시 가도 되요. 하도 오래되어서 다보탑, 석가탑 보고 자운문으로 달려갔던 기억만 날 뿐이니 다시 가서 제대로 보면 되요. 그거 하나 믿었어요.
2021년 5월 15일, 서울역으로 갔어요. KTX를 타고 경주로 내려갔어요.
내 인생에서 이 보다 더 날씨가 최악인 여행은 없었다.
5월 15일부터 5월 18일까지 3박4일로 경주를 다녀왔어요. 이보다 더 날씨 운이 안 따라준 여행은 제 인생에 과거나 지금이나 존재하지 않아요. 제가 경주 내려가던 날 의정부 기온은 거의 30도까지 치솟았어요. 엄청 더웠어요. 경주도 그날 꽤 더웠어요.
어째서 기온까지 폭락하는가!
5월 16일부터 기온이 10도 넘게 폭락했다.
여기에 남부지역 폭우는 덤.
기온이 단 하루만에 거의 15도 정도 떨어졌어요. 30도 날씨에 맞춰서 옷을 입고 갔어요. 옷 자체를 그렇게 맞춰서 들고 갔어요. 그런데 뜬금없는 꽃샘추위. 기온이 하루만에 반토막났어요.
하다하다 기온이 반토막나서 기온에 물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 발생.
하늘이 진짜 상도덕 없었어요. 물 타고 탈출할 기회 한 번을 안 주고 기온을 이렇게 한 번에 반토막내면 어떻게 해요. 여기에 하필 호우주의보에 걸맞게 비도 엄청 퍼부었어요. 기온만 15도 떨어졌으면 그래도 참을 만 해요. 비까지 좍좍 퍼붓자 체감 온도가 엄청나게 뚝 떨어졌어요. 백주대낮인데 진짜로 추웠어요. 5월 15일까지만 해도 반팔 입고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5월 17일이 되자 저처럼 외투 꺼내서 입고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말이 좋아 기온이 반토막이지, 이틀만에 날씨로 하한가 2번 연속 맞은 급이었어요. 5월에 추워서 감기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기온만 반토막나서 추운 게 아니라 여기에 비까지 좍좍 퍼부어서 체온이 급격히 내려갔어요. 심지어 식당에서 체온 체크할 때 빗물에 젖고 차가워진 손목 온도를 재자 체온이 너무 낮게 찍혀서 발열 문제가 아니라 이건 중증 저체온증 걱정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사장님께 농담하고 함께 웃기도 했어요. 체온계마다 약간 더 높게 나오는 것이 있고 더 낮게 나오는 것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멀쩡한 인간 체온을 32도 찍히게 나오는 체온계는 없어요. 그만큼 기온 낮은데 비까지 와서 정말 추웠어요.
이 정도면 사실상 여행 다 접고 숙소에서 계속 하늘만 원망하기 마련이에요. 제대로 된 여행을 진행할 수 없는 정말 고약한 상황이었어요.
경주가 그렇게 만만한 도시 같습니까?
경주는 근본 있는 관광도시!
경주는 그런 상황조차 다 대비가 되어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는 뿌리 있고 족보 있고 근본 있는 관광도시에요.
신라 사람들이 수도 금성 관광 안 가보고 싶었겠어?
고려 사람들이 동경 관광 안 가보고 싶었겠어?
조선 사람들이 경주 관광 안 가보고 싶었겠어?
경상북도 경주시는 1000년이 넘는 관광 도시에요. 우리나라에서 1000년 넘는 관광 도시는 경주시가 유일해요. 현대 관광 도시로 경주가 개발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라고 하지만 경주시는 역사가 길고 꾸준히 한국에서 중요한 도시였어요.
경상북도 경주는 대한민국 수립 후 꾸준히 관광도시로 개발되었고, 여기에 한국사 연구하는 사람들도 경주 연구를 많이 해요. 단체여행객은 단체여행객대로, 개인여행자는 개인여행자대로 많이 가는 곳이에요. 그래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관광할 수 있는 길이 있어요. 아무 계획 없이 훌쩍 떠나도 어떻게든 답이 나오고 만족스러운 여행을 할 수 있는 도시가 바로 경상북도 경주에요.
제가 이번에 경주 갔을 때는 날씨가 도저히 답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정말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 준비한 카드인 불국사를 결국 가야만 했어요. 그렇지만 불국사 하나만 가고 끝난 여행이 아니었어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충분히 즐길 거 잘 즐기고 너무 만족스러운 여행을 하고 돌아왔어요.
날씨가 추우면 황리단길에서 놀면 되요. 경주 황리단길은 한옥이 밀집해 있는 곳이에요. 얼마 전부터 상권으로 개발되기 시작했어요. 현재는 경주에서 가장 큰 상권이라고 해요. 여러 분위기 있는 식당과 맛집, 카페들이 있어요. 경주 황리단길은 서울 익선동과 분위기가 조금 비슷한 편이에요. 그렇지만 서울 익선동과는 분위기가 확실히 다른 부분이 있어요.
먼저 경주 황리단길은 범위가 익선동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요. '황리단길' 자체도 익선동보다 더 길지만 황리단길은 경주시 황남동 포석로를 중심으로 양옆으로 점점 더 상권이 커져가고 있어요. 그래서 범위 자체가 넓어요.
여기에 경주 황리단길 상권에는 새로 지은 한옥들도 계속 들어서고 있어요. 그래서 서울의 익선동, 북촌, 삼청동을 합쳐놓은 느낌에 가까워요. 어디 들어가서 시간 보내고 놀기도 좋지만 그냥 돌아다니는 재미도 꽤 있어요. 더욱 좋은 점은 주변이 유적지라서 유적 보고 가도 되고, 유적 갔다와서 들려도 되요. 황리단길에서 주변 유적지이자 출사지인 첨성대, 동궁과 월지, 월정교 찾아가기 쉬워요.
경주 여행 가서 정말 마음에 들었던 점은 걸어서 돌아다니는 길을 지루하지 않게 잘 조성해놨다는 점이었어요.
경상북도 경주시 황리단길 근처 유적지 가는 길에는 도처에 예쁜 꽃밭을 크게 조성해서 사진 찍기 좋게 만들어놨어요. 만약 고분만 몇 개 덜렁 있었다면 스윽 대충 보고 지나가기 딱 좋았을 거에요. 그런데 고분과 유적 근처에 꽃밭을 예쁘게 조성해놔서 가만히 풍경만 봐도 예뻤어요. 당연히 사진 촬영하기 매우 좋았어요. 황남동 고분군, 첨성대 근처에는 유채꽃밭을 예쁘게 조성해놨고, 분황사 근처에는 보리밭과 양귀비밭을 아름답게 조성해놨어요.
유적 자체만 보고 간다면 솔직히 몇 분 안 걸리는 유적이 많아요. 정말 공부 많이 하고 이쪽으로 눈이 매우 좋은 사람이라면 유적 보는 것 자체가 즐겁고 시간 많이 걸리겠지만 대부분은 아쉽게도 그렇지 않아요. 경주에 있는 모든 고분을 다 들어가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고분이 하나만 있는 것도 아니에요. 황리단길 근처에는 고분이 정말 많아서 이게 무슨 고분인지 모르고 단지 고분이라는 것만 알고 지나치는 고분도 많아요.
하지만 고분 근처에 꽃밭을 예쁘게 조성해놔서 그냥 지나쳐갈 유적과 고분도 한 번 더 보게 만들고, 거기 안을 돌아다니고 사진 촬영하면서 다시 또 보고 몇 번을 보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분위기에 취하게 만들어놨어요. 비가 퍼부으면 비가 퍼붓는 대로 운치있고 아름다웠어요. 날이 좋으면 그건 또 매우 아름답겠지만 아쉽게도 저는 푸른 하늘 아래 풍경은 못 봤어요. 위에서 말한 대로 제가 갔을 때는 날씨가 유독 엄청나게 안 좋았을 때였거든요. 그래도 아름다웠어요.
날씨가 너무 안 좋다고 좌절할 이유가 없었어요. 일단 나가고 보면 어떻게든 답이 나왔어요. 이것이 바로 경주의 매력이었어요.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예쁜 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고, 비가 안 오면 비가 안 오는 대로 예쁜 사진을 찍고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면 되었어요. 공부를 많이 하고 간다면 더욱 좋겠지만 공부를 안 하고 가도 그저 좋은 곳이었어요.
여기에 경주는 조명을 매우 예쁘게 잘 해놨어요. 야경이 정말 아름다웠어요. 경주 야경 보고 사진 촬영하는 맛이 매우 쏠쏠했어요. 여기저기 야경 조명을 잘 해놨지만, 이 중 가장 압도적인 곳은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로 유명한 동궁과 월지, 월정교였어요.
위 사진은 경주 동궁과 월지 야경 사진이에요. 경주 동궁과 월지는 과거에 '안압지'라고 부르는 곳이에요.
"역시 1000년 넘는 근본 있는 관광 도시는 확실히 다르다!"
야경 사진을 찍으면서 확실히 느꼈어요. 단순히 조명만 예쁘게 해놓은 것이 아니었어요. 사람이 사람을 불러오는 '관광'의 특징을 정말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도시가 바로 경주였어요.
위 사진은 경주 월정교 야경 사진이에요.
사람이 사람을 불러오는 관광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바로 여행자들이 찍은 '사진'이에요. 누군가에게 여행 다녀온 이야기를 하며 보여주는 사진이 다른 사람을 또 끌어오는 힘은 상당히 강력해요. 백 마디 말, 천 문장의 글보다 아름다운 사진 한 장 보여주는 것이 사람 마음을 더 흔들리게 만들어요.
우리나라 관광지 가서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이런 점을 정말 모르고 조경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해도 될 정도에요. 정말 인스타 인생 사진 찍을 포인트에 정확히 나무 심어놓고 팻말 박아놓은 경우가 허다해요. 사람이 가로막고 있으면 비켜줄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나무와 팻말이 가로막고 있으면 답이 없어요. 이 점 때문에 실제 봤을 때는 아름다운데 사진을 찍으면 정말 잘 안 나오는 곳이 허다해요. 이런 곳은 아무리 아름답다고 사진 보여줘봐야 소용없어요. 심지어 아예 사람들 오지 말라고 조경을 해놓은 것 아닌가 싶은 곳도 엄청나게 많아요.
반면 경주는 그런 것이 없었어요. 오히려 사진 많이 찍어서 널리 알려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정말 조경을 매우 잘 해놨어요. 사진 찍는 포인트를 찾기도 쉬웠어요. 나무가 가리지 않는 곳으로 가면 거기가 바로 사진 촬영 포인트였어요. 조명도 엄청나게 신경 많이 써서 아름답게 했는데 여기에 조경도 사진 엄청 잘 아는 사람이 진두지휘해서 만든 것 아닌가 싶을 정도였어요. 정확히 '여기 나무 하나 있었으면' 싶은 곳에는 나무가 있었고, '여기 꽃이 조금 있었으면' 싶은 곳에는 꽃이 있었어요. '여기가 조금 빛으로 포인트가 있었으면' 싶은 곳에는 절묘하게 그 자리에 딱 조명이 있었어요.
이 글에 들어간 사진 모두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사진이에요. 좋은 스마트폰도 아니고 갤럭시노트5로 촬영했어요. 그래도 이 정도 찍혔어요. 대충 찍어도 보면 예쁜 사진들이 찍혔어요. 원래 사진이 모델이 95는 먹고 들어가는데 모델이 너무 좋았어요.
이러니 반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아무 생각 없이 막 갈기는 사진조차도 매우 예쁘게 잘 나왔어요. 누구나 사진을 찍을 때는 자신이 찍은 사진이 예쁘게 나오기를 바래요. 스스로 '성취감'이라는 말을 못 느낄 수는 있지만 사진을 예쁘게 찍으면 성취감을 느껴요. 경주로 온 무수히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으며 성취감을 얻고 있었어요. 그리고 이런 성취감을 얻은 사진들은 100마디 말, 1000마디 글보다 더욱 강력한 힘을 발휘해요.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며 경주가 괜히 우리나라 대표 관광 도시가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다른 지역들과는 레벨 자체가 차원이 달랐어요. 관광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그에 맞춰서 예쁘게 단장한 도시였어요.
경상북도 경주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여행 테마를 이것 저것 적당히 버무려 가되 욕심은 버리는 것이에요.
경상북도 경주시는 면적이 꽤 커요. 산도 있고 바다도 있어요. 시내버스로 돌아다니기는 좋지만 그렇다고 해서 거리가 가깝지는 않아요. 여기에 경주는 기본적으로 유적이 많아요. 관광 특화 도시인 역사도 길어요. 그래서 욕심내서 돌아다니면 몸만 힘들어요. 여러 선택지가 있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훌쩍 가도 어떻게 되기는 하지만, 반대로 너무 욕심내면 탈나기 딱 좋은 도시에요. 제대로 보려고 하면 호락호락한 도시가 아니에요. 볼 것, 가볼 곳 모두 너무 많아요. 여기에 주요 관광지와 유적은 조명도 예쁘게 잘 해놔서 낮 시간은 낮 시간대로, 밤 시간은 밤 시간대로 모습이 아주 달라져요. 모습이 달라지는 수준이 아니라 세상이 달라진다고 해도 될 정도에요. 게다가 위에서 한 번 언급했지만 경주는 유적 자체는 관람 시간이 별로 안 걸릴 수 있지만 유적 주변을 예쁘게 꾸며놔서 유적 주변에서 사진 찍고 놀다가 시간 꽤 잡아먹히는 곳이 여럿 있어요.
경주시 관광은 크게 몇몇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어요. 경주는 어차피 단시간에 다 볼 수 있는 곳이 아니니까 처음부터 욕심 버리고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한다고 생각하고 가는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그래도 최악의 상황에 갈 곳 하나 정도는 정해놓는 게 좋기는 해요. 우리에게는 불국사가 있어요. 불국사조차 무리라면 그때는 적당히 황리단길에서 놀면 되요. 박물관도 있구요.
저는 도저히 뭘 해도 못마땅스러울 기상조건 속에서 경주 여행을 했음에도 크게 만족했어요. 이렇게 여행하기 좋은 도시는 우리나라에 별로 없어요.
냉정히 이야기해서 이 정도로 여행하기 좋은 우리나라 도시는 지금까지 딱 한 곳 가봤어요. 강원도 속초가 이 정도로 여행하기 좋았어요. 그 외에는 전부 여행하기 안 좋은 결점이 꽤 있었어요.
왜 경주에 반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알 것 같아.
이번에 경주를 직접 가보기 전에는 몰랐어요. 그저 불국사, 석굴암에 왕릉 있는 도시 정도로만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실제 가보니 경주는 '수학여행'으로 오히려 심하게 저평가당하는 도시였어요.
이제서야 경주를 다시 가서 너무 후회되요.
이제라도 경주를 다시 가서 너무 다행이에요.
5월에는 경주, 경주에 가자.
과찬이 아니에요. 과장도 아니에요. 경주 가서 힐링 여행 수준을 넘어서서 완전 요양 여행했어요. 악천후에도 발발발 돌아다녀서 힘들어야 정상인데 오히려 몸도 마음도 머리도 피로가 쫙 풀리고 아주 건강해졌어요. 몸과 정신, 생각, 마음에 깃들어있던 독을 아주 제대로 쫙 빼고 돌아왔어요. 경주는 여행을 위한 모든 게 준비되어 있었어요. 취향에 따라 원하는 대로 고르기만 하면 되는 도시였어요. 심지어 준비 없이 가서 골라도 되었어요.
등잔 밑이 어두웠어.
여행 가고 싶을 때마다 어디를 갈 지 못 정해서 못 갔어요. 그런데 그럴 필요 없었어요. 그냥 경주 가면 되었어요. 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어요. 너무나 많이 들은 도시 경주. 국사 시간에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수능 준비하면서 백 번 천 번 그 이름을 본 도시. 한국인이라면 이름은 누구나 다 아는 도시, 경주. 그냥 경주 가면 되었어요. 왜 경주의 매력에 반해서 경주에 계속 여행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지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사진 좋아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경주를 좋아하는지 이제야 깨달았어요.
이번 경주 여행은 처음부터 아예 여행기를 안 쓸 계획이었어요. 디지털 카메라도 안 들고 가고 기록도 하나도 안 남겼어요. 그러나 여행 둘째날부터 엄청나게 후회되었어요. 제대로 여행기 쓸 준비하고 갈 걸 그랬어요. 다음에 경주를 또 가게 된다면 그때는 여행기 쓸 준비를 하고 갈 거에요. 디지털 카메라도 들고 가고 기록도 꼼꼼히 잘 남길 거에요.
경주는 반드시 다시 갈 거에요. 제가 모르는 새로운 것들이 끝없이 저를 유혹하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