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 그거 환자들 먹는 거 아니야?"

 

제게 죽이란 환자들이 먹는 음식이었어요. 죽을 먹는다는 말은 곧 어디 아프다는 소리와 마찬가지였어요. 이건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어려서부터 평소에는 밥을 먹었지, 죽을 먹은 적이 없었어요. 제가 죽을 먹을 때는 제가 정말 많이 아플 때였어요. 주변에서도 죽 먹고 있다고 하면 어디 아프다는 소리였어요. 그래서 누가 죽을 먹는다고 하면 '어디 아파?'라고 물어보곤 했어요.

 

"너 치과 다녀?"

 

주변을 보면 특히 치과 치료 받는 사람들이 죽을 잘 사먹었어요. 치과 치료 받을 때는 제대로 씹지 못하기 때문에 딱딱한 것을 먹을 수 없어요. 더욱이 치과 치료 받을 때 치과에서 치료 받는 부분으로는 씹지 말라고 해요. 그러면 먹는 것이 상당히 불편해져서 최대한 안 씹는 것을 찾아 먹게 되요. 이때 딱 좋은 음식이 바로 죽이에요. 죽은 씹을 것이 없으니까요.

 

꼭 치과 치료 받는 사람 뿐만 아니라 속이 안 좋은 사람들도 죽을 잘 먹어요. 하여간 제 인생 통틀어서 죽을 사서 먹는다는 소리는 어디 아프다는 말이었어요. 그래서 죽을 사서 먹는다고 하면 치과 치료 받냐고 물어보곤 했어요. 다른 곳 아파서 죽 사서 먹는 경우도 많지만 그나마 제일 무난한 고통이 치과 치료니까요. 그거 말고 다른 곳이 정말 안 좋아서 죽을 사먹냐고 물어보면 그건 또 결례일 수 있거든요.

 

본죽이 처음 생겼을 때였어요.

 

"야, 누가 돈 내고 죽 사먹어?"

 

본죽을 보며 누가 돈 내고 죽 사먹냐고 의아해했어요. 이 생각은 얼마 전까지 전혀 안 바뀌었어요. 왜냐하면 본죽 가격은 만만치 않아요. 어렸을 적에 가난해서 밥이 부족해서 죽을 먹었다는 소리를 어른들한테서 하도 많이 들어서 죽은 밥 부족하니까 물 넣고 쌀알 불려서 양 불려 먹으려고 먹는 음식으로 완전히 굳어져 있었어요. 그런데 본죽 가격을 보면 이게 밥보다 더 비싸요. 밥보다 더 비싼 돈 내고 죽 사먹는 것이 전혀 이해되지 않았어요.

 

"본죽 잘 될까?"

 

본죽이 처음 생겼을 때부터 본죽을 보면서 본죽이 잘 될까 궁금했어요. 제게 죽은 환자들이 먹는 음식이었기 때문이었어요.

 

"죽 전문점 왜 이렇게 늘어나?"

 

제 예상은 완전히 틀렸어요. 죽 전문점은 오히려 더 많이 증가했어요. 나날이 본죽 매장이 늘어났고, 본죽 말고 다른 죽 전문 프랜차이즈도 생겨서 매장이 여기저기 생겼어요. 죽 먹는 사람들이 꽤 많은 모양이었어요.

 

'죽이 왜 잘 되지?'

 

저는 본죽을 먹으러 가지 않았어요. 가끔 한 번 너무 궁금해서 가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죽 가격 보고 바로 뒤돌아섰어요. 그 가격이면 국밥이나 피자, 치킨, 닭강정 사먹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엄청난 시간이 흐른 후였어요. 드디어 제가 본죽을 먹어야 할 일이 생겼어요.

 

3월 말이었어요. 그동안 계속 미뤄왔던 치과 치료를 받으러 갔어요. 치과 치료를 받고 사랑니도 발치했어요. 이렇게 되자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 없었어요. 사랑니 발치 후 3일간은 상당히 아파서 음식은 고사하고 제대로 먹은 것 자체가 거의 없었어요. 집에 사다놓은 땅콩버터가 이렇게 고마운 존재인 줄 처음 알았어요. 땅콩버터로 3일 버틴 후 진짜 이러다가는 음식 못 먹어서 더 문제되겠다 싶어서 본죽으로 갔어요.

 

'본죽 가면 뭐 먹어야 하지?'

 

절대 씹어서는 안 되었어요. 통증이 계속 있었고 부어 있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음식이 닿는 것 자체가 문제였어요. 최대한 안 씹는 것을 먹어야 했어요.

 

"치과 때문에 그러는데 본죽 가면 뭐 먹어야해?"

 

여자친구한테 물어봤어요. 여자친구가 쇠고기 야채죽을 먹으라고 알려줬어요.

 

본죽에 갔어요.

 

'이거 아픈 사람만 먹는 거 아니구나.'

 

본죽 매장 안에는 여러 사람들이 죽을 먹고 있었어요. 그 사람들이 전부 저처럼 치과 치료 받는 사람들은 아닐 거에요. 겉모습 보면 모두 한결같이 건강한 사람들이었어요. 저처럼 3일간 땅콩버터로 연명하고 이러다 진짜 영양실조에 굶어죽을 거 같아서 본죽 온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냥 멀쩡한 사람들이었어요.

 

쇠고기 야채죽을 찾아봤어요. 맨 위에 있었어요. 인기 메뉴 딱지까지 붙어 있었어요. 가격은 9000원이었어요. 평소라면 이 가격에 절대 죽 사먹는 일은 없을 거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지만 지금은 아니었어요. 이러다 굶어서 더 아프게 생겼어요. 3일을 땅콩버터로 버텼으면 되었어요. 치과 치료한 것도 아파 죽겠는데 뭔 기아 체험까지 하고 있어요. 뭐라도 먹어야 했어요.

 

'진짜 살기 위해 사서 먹는다.'

 

예전에 치과 치료 받았을 때에는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요. 물론 그 때는 발치한 것이 아니라 이에 크라운을 씌우는 신경치료였지만요. 그 당시에는 베트남 쌀국수로 버텼어요. 그렇지만 이번에는 베트남 쌀국수조차 먹을 수 없었어요. 베트남 쌀국수 먹을 수 있다면 집에서 라면이라도 끓여먹었지 3일을 땅콩버터로 연명하지 않았을 거에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영양실조로 더 아프게 되면 이건 답이 없었어요.

 

쇠고기 야채죽을 주문했어요. 매장에서 다 먹고 가기로 했어요. 주문한 지 얼마 안 지나서 바로 쇠고기 야채죽이 나왔어요.

 

본죽 쇠고기 야채죽 상은 이렇게 생겼어요.

 

 

반찬으로 김치, 장조림, 다진 오징어젓갈, 동치미가 나왔어요.

 

'이 정도면 꽤 괜찮은 모습인데?'

 

상차림 모습은 매우 만족스러웠어요.

 

 

본죽 쇠고기 야채죽 위에는 김가루와 깨가 뿌려져 있었어요. 냄새는 엄청 고소했어요. 죽 만들 때 참기름이 들어간 모양이었어요.

 

 

죽을 잘 섞었어요.

 

 

"뭐야? 이거 엄청 맛있는데?"

 

그동안 본죽은 환자식이라는 이미지가 완전히 깨졌어요. 본죽 쇠고기 야채죽을 실제 먹어보니 엄청 맛있었어요. 괜히 본죽에서 인기메뉴라고 소개하는 죽이 아니었어요.

 

본죽 쇠고기 야채죽은 엄청나게 고소했어요. 단순히 참기름의 고소함이 아니라 쇠고기 향도 조금 있었어요. 고기 고소한 향과 참기름 고소한 향이 섞여 있었어요. 그러나 고기 잡내 같은 것은 아예 없었어요. 고소한 맛과 향이 죽을 계속 먹고 싶게 만들었어요. 먹다 보면 향이 옅게 느껴지기 마련인데 본죽 쇠고기 야채죽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소한 맛과 향이 일관되게 느껴졌어요.

 

본죽 쇠고기 야채죽에는 다진 야채도 꽤 많이 섞여 있었어요. 야채를 씹는 맛은 없었어요. 그렇지만 다진 야채가 입에 들어가면 잘 익힌 야채향이 느껴졌어요. 삶은 야채보다는 볶은 야채에 가까운 맛이었어요. 볶은 야채에 가까운 맛이라 느낀 이유는 참기름 때문이었을 거에요. 고소한 향이 섞여 있다보니 야채도 볶은 야채처럼 느껴졌어요. 야채도 고소했어요.

 

제일 놀란 점은 당연히 무지 맛있다는 거였어요. 제가 엄청나게 좋아하는 맛이었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오뚜기 야채 수프, 쇠고기 수프에 밥 말아먹는 것을 매우 좋아했어요. 이건 수프에 밥 말아먹는 것과 거리가 있었지만 기본적인 맛의 뼈대는 꽤 많이 비슷했어요. 여기에 우유와 크림 같은 거 넣고 다시 끓이면 진짜 수프에 밥 말아먹는 맛이 될 거 같았어요. 간도 다 되어 있어서 따로 간 맞출 필요도 없었어요.

 

"이거 내가 씹어서 먹는 것보다 더 고와!"

 

두 번째로 놀란 점은 알갱이가 엄청 곱다는 점이었어요. 씹을 게 하나도 없었어요. 들이마셔도 될 정도였어요. 2/3은 습관적으로 씹어먹었지만 1/3은 아픈 부분 신경쓰여서 그냥 삼켰어요. 그래도 아무 문제 없었어요. 제가 음식 씹어서 삼키는 것보다 본죽 쇠고기 야채죽에 들어간 건더기 크기가 압도적으로 훨씬 더 작았어요. 그냥 삼켜도 거부감 하나도 없었어요. 단지 입에 뭐 들어가면 완전한 액체가 아닌 이상 자꾸 씹으려고 하는 습관 때문에 씹어보려고 할 뿐이었어요. 솔직히 씹었다고 해서 뭐가 더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어요.

 

반찬도 매우 맛있었어요. 장조림은 매우 부드러웠어요. 오징어젓갈은 이 없는 사람도 먹을 수 있게 완전 곱게 다져놨어요. 반찬을 먹는 동안 발치한 부분에 부담이 하나도 없었어요. 김치는 신경써서 먹어야 했지만, 김치 외의 반찬인 장조림은 대충 씹으면 될 정도였고, 오징어 젓갈은 그냥 삼켜도 될 정도였어요. 오징어 젓갈은 따로 사와서 집에서 또 먹고 싶었어요.

 

"이거 나중에 또 먹어야겠다!"

 

본죽 쇠고기 야채죽을 먹으면서 이건 앞으로 계속 사먹을 음식 리스트에 등재시키기로 했어요. 정말로 제가 매우 많이 좋아하는 맛이었어요. 본죽 쇠고기 야채죽을 먹는 동안에는 이게 아파서 이거 외에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있었어요. 맛있어서 먹는 거였어요. 그래서 더 기분좋았어요. 만약 맛없다면 진짜 신세가 처량해서 최악이었을 건데 매우 맛있어서 이건 환자라 먹는 게 아니라 맛으로 찾아먹는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었어요.

 

본죽 쇠고기 야채죽은 괜히 인기메뉴 딱지가 붙어 있는 메뉴가 아니었어요. 맛 자체가 매우 맛있었어요. 간도 먹기 딱 좋게 다 맞춰져 있고, 죽 안에 들어 있는 쇠고기와 야채 맛이 죽어 있지 않고 살아 있어서 음식 먹는 맛이었어요. 아파서 먹더라도 아파서 먹는다는 사실을 잊게 만들어주는 맛있는 음식이었어요.

 

음식에 위로받는 느낌이 바로 이런 느낌이었어요. 처음 느껴봤어요.

 

좋은 일 때문에 본죽에 간 건 아니었어요. 치과 치료 때문에 밥 못 먹어서 그나마 음식 같은 것을 먹으러 본죽 간 거였어요. 그런데 쇠고기 야채죽은 배고파서 맛있는 게 아니라 그냥 먹어도 맛있었어요. 치과 치료가 끝난 후에도 하도 맛있어서 멀쩡한 음식 사먹을 수 있는데 또 사먹었어요. 앞으로도 본죽 쇠고기 야채죽은 별미로 간간이 사서 먹을 거에요.

 

Posted by 좀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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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세상에 !! 제가 본죽을 처음 접했을 때 느낌이 딱 그 느낌이었드랬죠. '어디 아플때나 먹는게 죽아닌가?' '죽먹어서 어디 배부를까?' 그러다가 본죽에서 김치낙지죽을 먹었는데 이거슨 맛의 신세계였죠 ㅜㅜ 그 이후로 잊을만하면 찾는 본죽이 됐습니다. 정성들여 만든 정갈하고 따뜻한 죽을 한그릇 먹은듯하네요. 좋은글 맛있게 읽고 가요^^

    2021.04.19 23:1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 앗! 호지티브님께서도 딱 그러셨군요! 막 '동지여!' 이러고 싶네요. 진짜 저때 본죽 처음 먹어보기 전까지는 환자들이 먹는 게 죽이라고 생각해서 본죽 먹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누가 본죽 먹고 있으면 한 입만 달라고 한 적도 없구요. 어떻게 환자식을 달라고 하나 해서요 ㅋㅋ 김치낙지죽도 엄청 맛있군요! 본죽도 종류별로 하나씩 천천히 먹어보고 싶어요. 저는 저때 진짜로 쇠고기 야채죽에 위로를 받았어요. 아파서 먹는 게 아니라 맛 때문에 먹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말 기분 좋았어요 ㅋㅋ

      2021.04.19 23:15 신고 [ ADDR : EDIT/ DEL ]
  2. ㅎㅎ 저도 이해합니다. 그돈을 주고 죽을 사먹나 했거든요.
    그리고 풀처럼 휘감기는 그 느낌이 싫었구요. 게다가 뜨겁구요.
    그런데 이제는 그래도 많이 잘 먹게 되었어요.
    그나저나 죽 값도 많이 올랐네요.

    2021.04.20 09:39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
  3. 본죽 쇠고기 야채죽은 뭔가 따듯한 정같은 맛인것같아요.
    어릴 적 아프면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죽 맛도 생각나구요..
    흡입력있는 글 잘 보고 갑니다. 공감 구독 하고 갑니다.^^

    2021.04.20 10:53 신고 [ ADDR : EDIT/ DEL : REPL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