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눈에 띄는 한국 사회 현상을 이야기할 때 주식 투자자가 엄청나게 늘어났다는 점을 빼놓을 수 없어요. 뉴스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끝없는 매수세에 대해 '동학개미운동'이라는 표현를 대놓고 사용할 정도니까요. 한국 증시에서의 '동학개미운동'을 제외하고 2020년 한 해 한국 사회의 대표적인 사회 현상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동학개미운동은 단순히 한국 증시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서 꽤 비중있는 현상이었어요.
2020년, 개인 투자자가 급증했고, 어마어마한 투자 자금이 증시로 쏟아져 들어왔어요. 주식 시장에서는 구두닦이가 주식 이야기를 하면 팔아야할 때라고 하고, 파마 머리를 한 아주머니가 객장에 나타나면 매도해야 할 때라는 말이 많이 돌아다녀요. 평소 주식에 관심없던 일반인들이 주식에 관심갖기 시작하면 끝물이라는 말이에요. 주식이란 누군가 끝없이 사줘야 올라요. 매수했던 사람이 매도했다가 다시 사는 일도 있기 때문에 릴레이 경주하듯 이론적으로는 한동안 계속 오를 수 있어요. 그러나 주식 투자에 전혀 관심 없었던 일반인들까지 우루루 들어올 정도라면 더 이상 매수해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곧 하락한다는 말이에요. 과거에는 이런 이야기가 매우 잘 맞았다고 해요. 그렇지만 올해 이 이야기 믿고 주식 시장에서 일찍 나간 사람들은 영 재미를 못 봤어요.
2020년은 기존에 주식 투자를 해오던 사람들과 기관이 재미를 못 보고 신규 진입한 사람들이 오히려 크게 재미를 본 한 해였어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대폭락 후 전례없는 급반등을 했어요. 이후 급반등 수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폭락이 시작되기 직전 2월 전고점도 돌파했고, 그것도 모자라서 역대 최고점도 돌파했고, 이도 모자라서 12월 30일 한국 증시 마지막날에 역대 신기록인 2873.47포인트를 달성했어요.
2020년에 주식 투자는 엄청나게 많이 대중화되었어요. 그동안 시중에 엄청나게 풀려 있던 유동 자금이 부동산을 밀어올리다가 주식 시장으로 갑자기 쏟아져들어오면서 정신없이 올랐어요. 2020년 4월부터는 지수 추종 패시브 ETF를 매수했다면 가만히 있기만 하면 알아서 돈 벌어오는 해였어요. 아무리 이상한 가격에 물려도 길어야 3달 안에는 다 탈출하고 돈 좀 만질 수 있던 시기였어요. 2017년 비트코인 광풍 때가 떠오를 정도였어요. 정점은 2020년 11월부터 12월 마지막 거래일까지로, 이때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신고가 랠리의 연속이었어요. 2달 채 안 되는 사이에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2300포인트대에서 2873.47포인트까지 폭등했어요.
그렇다면 2020년 한국 증시 명장면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후보 1번
- 외국인과 기관이 물량을 미친듯이 던져대는데 개인 투자자들이 단 하루에 2조원 넘게 매수해서 방어해내는 장면
후보 2번
- 010145 삼성중공우 주식이 상한가를 11번 치면서 31400원에서 960,000원까지 치솟았던 인생한방의 진기명기
후보 3번
- 2020년 마지막 거래일인 12월 30일에 코스피가 역대 최고점인 2873.47포인트 달성
후보 4번
- 6000원대에서 시작해 최고 214,000원까지 치솟았던 019170 신풍제약 주식의 가슴 웅장해지는 장대한 여정 스토리
후보 5번
- 개인들이 신용, 미수를 엄청나게 끌어써서 증권사가 보유한 예치금이 동날 판이 되어서 신용 거래를 막는 사태까지 벌어졌던 장면
후보 6번
- 2020년 11월 2일 2277포인트부터 시작해 12월 30일에 2878.21포인트까지 올라간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폭등
2020년 한 해 동안 한국 증시에서는 다양한 명장면이 많이 나왔어요. 후보들이 아주 쟁쟁해요. 하나하나 주옥같은 명장면이에요. 후보들이 하나같이 너무 쟁쟁해서 누구를 2020년 한국 증시 최고의 명장면으로 뽑아야할지 고민될 정도에요.
하지만 제가 2020년 한국 증시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는 순간은 위 후보들이 아니에요. 제가 꼽는 2020년 한국 증시 최고의 명장면은 바로...
2020년 한국 증시 최고의 명장면 - 3월 17일 연기금 곱버스 탑승 사건
올해 새로 주식 입문한 사람들 중 상당수는 위 사건을 잘 모를 거에요. 이 사건은 '동학개미운동'이라는 신조어가 생긴 것과도 꽤 관련있어요. 2020년 4월부터 12월까지 이어진 대폭등장을 있게 만든 2020년 3월 대폭락장 당시 상황을 한 번에 보여주는 매우 상징적인 사건이에요.
한국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2019년 8월 6일 1891.81포인트를 기록한 후 2020년 1월 20일 2277.33포인트까지 상승했어요. 이후 2020년 2월 3일 장중 저점 2082.74포인트를 기록한 후 다시 반등해서 2020년 2월 13일에는 장중 고점 2255.49포인트까지 상승했어요. 이후 또 하락했어요. 여기까지는 주식을 꾸준히 해오던 사람 외에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을 때였어요. 왜냐하면 한국 종합주가지수는 2000포인트에서 2200포인트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는 박스피로 아주 악명 높았거든요. 가끔 하단 2000포인트를 한 번 깨주고 가끔 상단 2200포인트도 한 번 깨주는 이벤트가 있었어요. 이게 얼마나 심하냐 하면 10년간 매해 한 번은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2000 돌파했다고 뉴스에 나올 지경이었어요. 오죽하면 주식 좀 했다는 사람들은 한국 주식은 코스피 2000포인트일 때 잡아서 2200포인트 될 때 던지면 무조건 먹는 장이라고 할 정도였어요. 기관, 외국인들은 이렇게 가두리 양식하면서 행복하게 개인투자자 돈을 털어가고 있었구요.
중국에서 발생한 전염병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었어요. 중국인들이 전세계에 중국 전염병을 퍼뜨리고 있다는 뉴스가 계속 보도되었어요. 한국에도 중국인들이 전염병을 퍼뜨렸어요. 당연히 한국 증시는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2020년 3월 2일에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장중 최저 1969.34포인트를 기록했어요. 이날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기어코 2003포인트로 마감했어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다시 상승해서 3월 5일에는 장중 고점 2089.08포인트를 기록했어요. 3월 5일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종가는 2085포인트였어요. '봐라, ~했지?'라고 하는 햇제충들이 엄청나게 등판했어요. 한국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연기금이 기를 쓰고 2000포인트를 방어하고 2200포인트도 방어하기 때문에 영원히 2000포인트에서 매수하고 2200포인트에 매도하면 돈 버는 시장처럼 보였어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차트는 그 악명 높은 헤드 앤 숄더 차트였어요. 다른 말로는 '삼봉차트'라고도 해요. 많은 사람들이 오른쪽 어깨를 그렸으니 이제 올라갈 거라고 이때 매수를 꽤 많이 했던 것으로 기억해요.
그러나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2000 박스피에 적응된 사람이 아니라면 누가 봐도 주가가 폭락할 상황이었어요. 미국조차 이때가 되면 중국이 퍼뜨린 전염병이 대거 확산되면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어요. 한국은 당시 분위기가 이미 나라 망한 분위기였어요. 을사조약때 분위기가 흉흉해서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생겼다고 하는데 당시 분위기는 정말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였어요. 수도권 사람들은 극도로 공포에 질려 있었어요. 퇴근시간이 되면 모두 집으로 도망치기 바빴어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도망치는' 상황이었어요. 심야시간 및 새벽에 돌아다녀보면 길거리가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어요. 사람들이 소비도 안 하니 쓰레기 배출량 자체가 엄청나게 줄어들었어요. 입으로는 거짓말할 수 있지만 행동은 못 속인다고 해요. 당시 아무리 사람들이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어서 소비 트렌드가 바뀌었을 뿐이라 선동질해도 새벽에 나가서 돌아다니며 쓰레기 배출된 것을 보면 쓰레기 나온 것이 거의 없었어요. 만약 배달음식을 많이 시켜먹는다면 일반 가정집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그에 비례해서 폭증해야 해요. 사람들이 배달음식 주문해서 종이상자 뜯어먹고 족발 뼈다귀까지 다 씹어먹고 닭뼈 갈아서 치킨스톡 만드는 것 아니니까요. 그런데 이 당시는 쓰레기 자체가 엄청나게 줄어들어버렸어요. 누가 봐도 주가가 여기에서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아래는 당시 서울 상황 모습들이에요.
버스를 탑승하라!
현명한 투자자들은 하나 둘 버스로 도망치기 시작했어요. 도저히 주가가 버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사람들은 일명 '인버스' - 114800 KODEX 인버스 종목과 일명 '곱버스' - 252670 KODEX 200선물인버스2X 종목에 탑승하기 시작했어요.
참고로 KODEX 인버스 ETF는 KOSPI200 지수 반대로 움직이는 ETF에요. KOSPI200 선물 지수가 하락하면 그만큼 주가가 상승해요. KODEX 200선물인버스2X ETF는 KOSPI200 선물 지수 반대로 움직이는 ETF에요. KOSPI200 선물 지수가 하락하면 하락한 것의 2배로 상승해요. KODEX 인버스 ETF는 KOSPI200 지수 하락에 1배 배팅, KODEX 200선물인버스2X ETF는 KOSPI200 선물 지수 하락에 2배 배팅이에요. 인버스, 곱버스 모두 기초지수는 KOSPI200 선물지수인 F-KOSPI200 에요. 단순히 주가 하락하면 먹는 상품이라고 알아도 되지만, 기초지수가 KOSPI 종합주가지수가 아니라 KOSPI200 선물지수라는 것을 알아놓는 것도 꽤 중요해요. KOSPI 종합주가지수와 KOSPI200 지수 움직임에 차이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거든요.
인버스, 곱버스가 본격적으로 널리 알려진 것은 2019년 여름 정신나가고 머리 모자라고 평소에는 일본 제품 사랑하다가 갑자기 일본 통치 시절에는 독립운동 못했지만 이제 와서 반일운동에 동참한다는 근본 없고 족보 없는 인간들의 NO JAPAN 반일선동 및 한일관계 악화로 인한 주가 하락 때였어요. 그 이전에 한국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2018년 1월 29일 장중 역사상 최고점이었던 2607.10포인트를 기록한 후 꾸준한 우하향하면서 인버스, 곱버스 투자는 근본있는 가치투자로 조금씩 주목받기 시작했어요. 여기에 한국 증시는 워낙 박스피로 악명높다보니 2200에서는 인버스, 곱버스 사면 돈 번다는 것이 조금씩 계속 알려져가기 시작했어요. 이것이 본격적으로 알려졌던 때가 바로 2019년 여름 하락장 시기였어요.
2019년 여름에 인버스, 곱버스가 꽤 알려졌기 때문에 현명한 투자자들은 부리나케 버스에 탑승하기 시작했어요. 한편, 코스피 2000포인트는 연기금이 기를 쓰고 방어할 거라 굳게 믿으며 역사와 족보를 자랑하는 박스피를 무시하냐는 사람들은 이때부터 엄청나게 매수하기 시작했어요. 연기금도 실제로 2000포인트를 어떻게든 방어하려고 발악하기 시작했어요.
버스 승차감 죽인다!
거침없는 기사님의 드라이빙!
버스가 의심되면 청와대를 보라. 든든하다.
당시 상황은 위와 같이 정리할 수 있어요. 주가는 계속 떨어졌어요. 뉴스에서는 온갖 증권사가 이번 하락은 코스피 2000포인트 선에서 마무리될거라고 했다가 점점 하단이 낮아졌어요. 1800 중반 정도까지 하락할 거라는 뉴스가 나오기 무섭게 코스피 1800선도 보기 좋게 돌파당했어요. 인버스, 곱버스는 매드맥스 분노의 질주를 찍고 있었어요. 거칠 것이 없었어요. 기사님 운전 실력이 아주 최고였어요. 중간에 승객들 다시 탑승시키고 또 달리고 중간에 휴게소도 한 번 들려줬다가 다시 분노의 질주했어요.
2020년 3월 12일,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1888포인트로 시작했어요. 당연히 이건 연기금이 발악하며 지켜줄 거라 믿고 많은 개인들이 주식을 매수했어요. 이날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장중 1809포인트까지 하락했다가 간신히 조금 반등해서 1834포인트로 마감했어요. 이날 하루에만 마이너스 3.87%를 기록했어요.
여기에서부터 의견이 극단적으로 갈리기 시작했어요. 1800포인트는 어떻게든 지켜줄 거라고 버스에서 하차하는 사람들이 꽤 나왔어요. 이 정도면 많이 먹었고 슬슬 주식을 주워야 할 때라고 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뉴스에서 보도되는 증권사의 예상 저점에 다 왔을 때였어요. 연기금도 자기들이 들고 있는 주식이 있기 때문에 여기는 무조건 방어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았어요. 당시 연기금은 코스피 2000선 방어해보겠다고 하다가 아주 대차게 물린 상황이었어요. 연기금은 연일 주식을 엄청나게 매수했고, 이렇게 투입된 자금은 돌아오지 않는 병사들이 되어 녹아가고 있었어요.
3월 13일이 되었어요. 바로 13일의 금요일이었어요. 아침 8시 30분. 전날 주식을 매수한 사람들은 절규하기 시작했어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시가 1723포인트!
전날 3월 12일 종가가 1834포인트였어요. 그런데 3월 13일 증시가 개장하자마자 한 방에 111포인트 하락한 1723포인트로 시작했어요. 당연히 모두가 기겁했고 뒤집어졌어요. 한 방에 111포인트가 하락했으니 이건 손 쓸 방법이 없는 상황. 종합주가지수가 111포인트 하락한 상태로 시작했으니 개별 종목들은 이보다 더 끔찍한 상황이었어요. 무슨 시작하자마자 바로 손절가 떠버린 상황이었어요.
이건 선 세게 넘었다!
연기금과 개인들은 미친듯이 매수했어요. 외국인들은 물량을 계속 묻지마 떡드랍했어요. 주식 관련 커뮤니티 분위기는 점점 격앙되어가기 시작했어요. 이제부터 인버스, 곱버스 탑승하는 사람들은 야수의 심장이 아니라 야수의 대가리라는 말도 나왔어요. 반면 개미들이 대가리 없이 무슨 동학운동하냐고 주식 미친듯이 매수한다고 비꼬는 말도 나왔어요. 바로 이 시기에 드디어 개인들의 엄청난 매수세에 대해 동학 운동에 비유하는 말이 등장했어요. 누가 봐도 오를 수 없고 더 처박을 상황인데 묻지마 풀매수한다고 무슨 동학운동하냐고 비아냥거리고 비꼬는 말이었어요.
동학운동이라는 표현이 등장한 이유는 단순히 개인들이 묻지마 풀매수했다고 등장한 것이 아니었어요. 동학 운동은 아주 잘 알려졌다시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의 도움을 받은 조선 관군이 동학군을 아주 싹 다 쓸어버리며 끝났어요. 지금 개인들이 연기금 믿고 풀매수하고 있는데 연기금이 동학농민운동 당시 관군처럼 분명히 개미들 대학살 파티 벌일 거라는 의미였어요. 기관, 연기금이 그간 한국 주식시장에서 해온 꼴을 보면 이들은 개미들은 밟아주고 터뜨려 죽여줘야 제 맛이었거든요.
2020년 3월 13일, 13일의 금요일 한국 증시는 코스피 1771포인트로 끝났어요. 결국 1800포인트를 수복하지 못했어요. 그리고 주말이 찾아왔어요.
이때까지 곱버스 - 252670 KODEX 200선물인버스2X 매매동향은 다음과 같았어요.
연기금은 3월 13일까지 전에 매수했던 곱버스를 모두 매도했어요. 개인들은 3월 6일부터 3월 13일까지 꾸준히 버스에서 하차하고 개별 종목을 매수해왔어요. 외국인들도 3월 13일에는 곱버스를 대량 매도했어요.
드디어 찾아온 주말. 버스 탑승자들과 상승론자 모두 크게 격앙된 상태였어요. 심적으로 몰리는 쪽은 아무래도 버스 탑승자들이었어요. 여기부터는 '쫄리는 구간'이었어요. 연기금은 눈 뒤집고 계속 어떻게든 2000선으로 다시 올리려고 발악중이었고 개인들은 어디에서 돈이 생겼는데 밑도 끝도 없이 풀매수중이었어요. 게다가 3월 13일에 장중에 잠시 코스피 주가지수 1800포인트가 탈환되었어요. 비록 외국인들의 떡드랍으로 1800고지를 사수하지 못하고 1771포인트로 내려앉았지만 지금 기세를 보면 1800포인트 사수는 순식간일 수 있어보였어요.
하지만 상승론자들도 속이 편할 리 없었어요. 뉴스를 보든 주변 상황을 보든 주가가 더 폭락하고도 남을 상황이었어요. 게다가 이들 중에는 2000포인트 깨질 때부터 박스피 믿고 엄청나게 매수했다가 거하게 처물린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어요. 연기금도 발악하고 개인들도 이건 어떻게든 2000포인트 복귀할 거라 매수하고 있으니 물린 것도 조만간 회복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지만 냉정히 보면 상황이 엄청나게 안 좋았어요.
주식 커뮤니티에서 3월 14일, 15일 상황은 매우 혼란스러웠고 모두가 감정적으로 엄청나게 격앙되어서 서로 치고 받고 싸우기 바빴어요. 위로 가도 이상하지 않고 아래로 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더 문제는 위로 가면 크게 올라갈 거고, 아래로 가면 무섭게 처박을 자리라는 점이었어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누구 한 쪽은 목이 잘릴 절체절명의 순간에서 건곤일척 진검승부만 남아 있었어요. 모두가 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한 쪽은 무조건 뒤지는 거였어요. 이제 봐주고 나발이고 없었어요. 올라가면 2000까지 대폭등, 아래로 빠지면 이건 밑도 끝도 없는 대폭락. 중간 따위란 없었어요.
축구 중계하고 야구 중계하듯 전세계 상황과 뉴스가 실시간으로 주식 커뮤니티에 올라왔어요. 코로나 확진자수가 운동경기 스코어처럼 실시간 중계되었고 관중들은 모두 확진자수를 긴장하며 바라봤어요. 확진자수가 증가할 때마다 버스 탑승자들은 열광의 도가니. 이때마다 상승론자들은 코로나 그거 감기 따위라고 발악했어요. 전세는 조금씩 버스 탑승자 쪽으로 기울어갔어요.
당시 디씨인사이드 실전주식투자 마이너 갤러리에서는 하락론자는 곱버충, 상승론자는 레버충이라고 부르곤 했어요. 하락론자들은 252670 KODEX 200선물인버스2X에 배팅했다고 곱버충, 상승론자들은 122630 KODEX 레버리지에 배팅했다고 레버충이라고 불렀어요. 곱버충과 레버충은 주말 내내 온갖 것 다 들고 나오며 격렬하게 싸웠어요. 중요한 것은 한 쪽은 무조건 뒤진다는 거였어요.
3월 16일. 코스피 도박장이 다시 오픈했어요. 코스피 도박장 오픈하자마자 레버충들이 환호했어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시가는 1805포인트였어요.
그것이 마지막 코스피 1800이었다.
숨도 안 쉬고 아래로 처박았어요. 코스피 종가는 1715포인트로 끝났어요. 아침에 갭상했다고 레버리지 탄 사람들은 망했어요. 이날도 개인은 개별종목을 엄청나게 많이 사들였어요. 그러나 외국인들의 물량 떡드랍에 계좌가 제초제 맞은 잡초처럼 싹 다 말라타들어버렸어요. 생존자는 오직 인버스, 곱버스에 탑승한 사람들 뿐이었어요. 이날은 시가에 1800고지 다시 수복하나 싶더니 다시 1715포인트로 처박아서 더욱 충격적인 날이었어요.
3월 16일 장이 끝났어요. 주식 관련 커뮤니티는 더욱 시끄러워졌어요. 코스피가 1715포인트 찍으며 단기 쌍바닥 그렸으니 이제 들어가야 한다는 사람도 꽤 많았어요. 한국 경제 규모 운운하며 1700포인트는 절대 깨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울부짖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반면 인버스, 곱버스는 아주 흥겨운 관광버스가 되었어요. 버스 안에서 춤추고 뭐 까먹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대망의 3월 17일.
코스피 시가 1641포인트, 장중저가 1638포인트, 장중고가 1723포인트, 종가 1672포인트!
기존에 주식하던 사람들은 멘탈 제대로 털린 하루였어요. 1715포인트도 엄청 충격적인 거라고 했는데 이건 개장하자마자 전날 대비 74포인트가 하락했어요. 말이 좋아 74포인트지, 시작하자마자 4.3% 넘게 털린 날이었어요. 더 끔찍한 것은 그렇게 개인과 연기금이 매수했는데 1800고지는 고사하고 1700고지조차 완전히 개털려버렸다는 점이었어요. 1800선은 어떻게든 사수할 거라고 했는데 이제 1600선까지 폭삭 무너져버렸어요.
이날 인버스, 곱버스 탑승해서 계속 들고 있던 사람들도 쫄리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이제 버스를 탑승했다면 1500선으로 간다는 거에 배팅하는 거였어요. 아무리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대한민국 시절을 지나고 일본 통치 시절을 지나고 조선시대까지 올라왔지만 코스피가 1500선까지 빠지기는 어려워 보였거든요. 똑같은 6000원이 있으면 1500원에는 4개 살 수 있고 2000원에는 3개 살 수 있어요. 종합주가지수가 낮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점점 자금만 있다면 방어하기 쉬워진다는 것을 의미했어요.
본장이 끝났어요. 모두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졌어요. 버스충들은 005930 삼성전자 주식 일반주 가격이 4만원이 되어서 4만전자가 되면 그때나 매수해볼 생각 가져보겠다고 레버충들을 실실 약올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이날 진짜로 삼성전자 일반주 가격 종가가 47300원으로 마감되었어요. 이제부터 버스를 타는 것은 정말 야수 그 자체가 되지 않는 한 버틸 수 없는 상황이었어요. 중국 패악질 역사 중 하나인 병자호란 이전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말이 좋아 병자호란이지, 병자호란은 1636년에 일어났어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1636 아래로 가면 이제 임진왜란 1592년을 바라봐야 했어요.
레버충들은 이제 버스로 먹을 것 없다고 약올리고 귀순할 것을 종용했어요. 물론 상승론자들도 제정신인 상태는 아니었어요. 1800대도 엄청난 저점이라고 왕창 매수했는데 시원하게 1700선으로 밀렸고, 뭐 하고 말고 할 시간도 없이 바로 1600선까지 밀려버렸거든요. 그렇게 믿고 있던 연기금의 방어도 외인들의 물량 무차별 떡드랍 폭격에 완전히 녹아버렸어요.
양쪽 다 신경이 곤두설 대로 곤두선 상황. 그때였어요. 누군가 스크린샷 하나를 올렸어요.
주식 커뮤니티에서 아주 흔히 볼 수 있는 투자자별 매매동향 스크린샷이었어요.
네가 버스를 왜 타고 있는데, 이 개사익희야!
순간 온갖 주식 커뮤니티를 다 뒤집어버린 스크린샷 한 장.
연기금도 곱버스를 탔다!
야수 그 자체가 되어 곱버스에 올라탄 사람들은 열광의 도가니. 그렇게 버스 앞길을 가로막던 연기금도 슬그머니 곱버스에 탑승했어요.
드디어 우금치 전투 발발인가, 관군의 시원한 뒤통수.
동학군은 조선 관군이 외국인 도움 받아서 싹 죽여버려야 제맛이지 캬캬캬!
야수가 되어 곱버스에 탑승하기는 했지만 내심 쫄리던 사람들은 열광했어요. 귀순용사 환영회처럼 연기군의 탁월한 선택을 축하해줬어요. 이제 버스는 외롭지 않았어요. 망국배팅, 매국배팅 욕먹었지만 진정한 애국배팅은 바로 버스 탑승이었어요. 연기금도 버스에 같이 탔으니까요. 든든한 우군 연기금이 생겼어요. 외국인과도 어깨동무하고 조선 관군 연기금과도 어깨동무했어요. 이제 동학개미들한테 시원하게 기관총 갈겨대며 대학살 파티 벌일 일만 남았어요.
반면 상승에 배팅한 사람들은 완전 멘탈 붕괴 그 자체.
연기금 네가 그걸 왜 타고 있는데, 이 신발깔창아!
믿음이 부족한 사람들은 3월 17일에 노아의 방주 그 자체인 곱버스에서 대거 하차했어요. 이들이 얌전히 곱버스에서 하차해 집으로 돌아갔겠어요. 다 주식 매수했죠. 이들은 이때 멘탈이 완전히 가루가 되어버렸어요. '삼성전자 저렴해요 지금 풀매수해서 대대손손 물려줄 거에요'하며 곱버스 탄 사람들을 비웃던 사람들은 그렇게 믿던 연기금의 배신에 절규했어요.
몇몇은 이성을 찾은 척 하고 '이건 연기금이 헷지용으로 매수한 것입니다'라고 논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했어요.
"헷지를 할 건데 인버스도 아니고 왜 지금 곱버스에 같이 탑승하고 있냐고, 이 비읍신아!"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척 하던 사람들은 곱버스, 인버스 탑승자들에게 각목으로 대가리가 터질 때까지 두들겨맞고 사라졌어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연기금이 위에서 방어하다가 방어선이 줄줄이 다 녹아버렸고 주가지수 방어하려고 투입한 자금들은 모두 행방불명 돌아오지 않는 병사가 되었거든요.
설령 연기금이 헷지를 위해 곱버스를 매수했다 해도 문제였어요. 이날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종가는 1672포인트였어요. 앞으로 다시는 못 볼 저점이라고 하는 무려 1600대인데 여기에서 연기금이 헷지를 위해 곱버스를 매수했다고 해석한다 해도 이건 결국 연기금조차 여기에서 지수가 더 크게 밀릴 수 있다고 인정해버리는 꼴이었거든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 1672포인트 자체가 상당히 큰 충격인데 여기에서 끝이 아니라 더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봤으니 헷지 차원으로 곱버스를 매수하죠. 이것이 과대낙폭이라 봤다면 여기에서 헷지를 할 리가 없어요. 더 떨어질 것도 없는데 왜 하락에 무려 2배로 배팅하는 곱버스를 헷지 수단으로 대량 매수했겠어요. 어떻게 해석해도 매우 비관적인 상황이었어요.
3월 18일, 역시나 보기 좋게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1591포인트로 마감했어요. 임진왜란 이전 시대로 회귀했어요. 반일선동하더니 정말 반일선동 2대 요소인 임진왜란, 일본 통치 시절 둘 다 사라져버렸어요.
3월 19일, 코스피 종합주가지수는 1458포인트로 마감했어요. 장중에 훈민정음 반포 1446년 이전인 1439.43포인트까지 하락했지만 다행히 장 마감할 때 한글은 되찾아왔어요.
이후 코스피는 연기금의 풀매수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납세자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정책을 한국식으로 바꾼 1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의 영향으로 크게 반등했어요. 반등장에서 연기금은 '약속의 2시'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어요. 코스피 종합주가지수가 하락하면 오후 2시가 되었을 때부터 풀매수해서 주가지수를 어떻게든 다시 끌어올렸어요. 한두 번이 아니라서 모두가 약속의 2시라고 불렀어요. 이후 반등을 넘어서서 폭등하기 시작하자 연기금은 한국 주식을 매도하기 시작했어요.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말은 3월 하락장에서 개인 투자자들이 주식을 엄청나게 많이 매수하면서 등장한 말이었어요. 이 말이 확실히 굳어진 때는 3월 17일 연기금 곱버스 탑승 사건 즈음이에요. 연기금마저 곱버스에 탑승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개인투자자들의 엄청난 매수세가 하나도 안 꺾이고 미친 듯이 주식을 매수해서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말이 확실히 많이 사용되게 되었어요. 그래서 동학개미운동 이야기를 할 때 2020년 3월 17일 연기금 곱버스 탑승사건은 꽤 중요해요. 떨어지는 것을 연기금과 함께 싸운 게 아니라 연기금마저 뒤통수친 상황에서 개인투자자들이 광적인 매수세로 물량을 계속 받아내며 방어해보려 했던 것이 '동학개미운동'이라는 말이 널리 쓰이게 된 결정적 사건이었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