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를 보던 중이었어요. 배스킨라빈스가 서울 삼청동에 한옥 컨셉 카페인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을 오픈했다는 뉴스가 보였어요.
아, 그렇구나.
제목만 봤을 때는 별 흥미가 안 생겼어요. 그런가보다 했어요. 한옥 컨셉으로 만들든 초가집 컨셉으로 만들든 안 궁금했어요. 저는 건축, 인테리어 그 자체에는 그렇게 큰 관심 없거든요. 건축, 인테리어는 제 관심사와 엮이는 부분에 한해서만 신경써서 보는 편이에요. 어느 동네가 요즘 사람들 많이 놀러간다고 하면 그 동네에 관심이 있고, 거기에서 인기 좋은 카페가 왜 인기 좋은지 볼 때 건축, 인테리어 같은 것도 눈여겨봐요.
한옥 컨셉 카페가 우리나라에 처음 등장한 거라면 호기심이 생겼을 거에요. 여행, 관광과 관련있으니까요. 그렇지만 한옥 컨셉 카페는 도처에 있어요. 이제는 신기할 것 하나 없는 것 중 하나가 한옥 컨셉 카페에요. 흔하지는 않지만 '초창기'라고 부를 때는 완전히 지났거든요. 게다가 삼청동이면 북촌 한옥마을과 별로 안 멀어요. 길만 잘 찾아간다면 익선동도 금방이구요. 익선동은 한옥 카페가 매우 많아요. 익선동 자체가 한옥거리로 유명한 곳이에요. 삼청동에 한옥 카페 하나 생겼다고 신기할 이유가 전혀 없었어요. 강남 한복판에 한옥 컨셉 카페를 만들었다면 신기하겠지만 위치부터 주변에 한옥 카페가 흔한 익선동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이었거든요.
'차라리 초가집 컨셉 카페를 만들지.'
배스킨라빈스가 초가집 컨셉 카페를 만들었다면 엄청나게 궁금했을 거에요. 초가집 컨셉 카페는 못 봤어요. 초가집 컨셉 카페라면 엄청난 희소성이 있어요. 이거라면 정말 가볼 가치가 있었어요. 벽은 노출 시멘트 대신 노출 흙벽 컨셉으로 가고 벽에는 곡식 이삭 같은 것 좀 걸어두고요. 여기에 아이스크림 종류는 밤이 옥수로 맛있구마, 쫀떡궁합, 찰떡궁합, 잘될거에엿, 미찐감자 같은 한국적인 메뉴로 도배해놓으면 이건 흥미 엄청 땡겨요. 그러나 초가집 컨셉 카페가 아니라 한옥 컨셉 카페였어요. 흥미 없었어요.
베스킨라빈스31 아이스크림 종류는 엄청나게 많아요. 자기들이 갖고 있는 아이스크림으로 못 만들 컨셉은 없을 거에요. SPC삼립이 운영중인 한국 배스킨라빈스31이 출시한 종류들만 갖고도 못 만들 아이스크림 카페 컨셉은 없어요. 무슨 장르건 무슨 컨셉이건 레시피를 새로 개발할 필요도 없어요. 지금까지 출시된 종류가 몇 개인데요. 무슨 장르, 무슨 컨셉으로 만들든 아이스크림 30종류 구성 한 세트는 무난히 맞추고도 남을 거에요. 원시시대부터 SF 까지, 극지방에서부터 열대 밀림까지 전부요.
'저기에서만 판매하는 메뉴 있을 건가?'
그래도 굳이 뉴스를 제목만 보고 넘기지 않고 클릭해본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혹시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에서만 판매하는 메뉴가 있는지 궁금했어요. 한국 베스킨라빈스31의 끝판왕은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에 있는 배스킨라빈스 BROWN청담점이에요. 여기는 아이스크림 플레이버 종류만 100종류니까요. 이걸로 끝난 거에요.
그렇지만 배스킨라빈스 매장을 보면 가끔 다른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매장이 있어요. 정말 엄청나게 드물고 별로 없기는 하지만 찾아보면 있어요. 단순히 플레이버 교체가 늦어져서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그 지점에만 있는 아이스크림들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대체로 '퓨어'한 아이스크림이에요. 특정 매장에서는 자모카 아몬드 훠지 아이스크림이 아니라 자모카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경우가 있어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은 대체로 아이스크림 몇 종류를 섞어서 개별 플레이버를 만들기 때문에 당연히 퓨어한 오리지널 아이스크림도 같이 존재해요. 그런데 이 원료에 해당하는 '퓨어한 오리지널 맛' 아이크림이 일반 매장에 전부 풀리는 일은 별로 없어요. 몇몇 특정 매장에서만 이런 원료에 해당하는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는 경우가 간혹 가다 있어요.
뉴스를 봤어요.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 단독 메뉴가 있다고 나와 있었어요. 아이스크림 디저트 3종과 음료 4종이었어요.
'한 번 가봐야겠다.'
일단 일반 매장은 아니었어요. 아이스크림 플레이버 중 독특한 것이 없다면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 단독 메뉴라도 먹고 오면 되었어요. 그래서 가보기로 했어요.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으로 갔어요.
"어? 여기 이게 전부야?"
하마터면 지나칠 뻔 했어요. 뉴스에까지 나와서 상당히 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실제 가보니 별로 안 컸어요. 일반적인 배스킨라빈스 매장보다 더 작아보였어요.
입구에는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 시그니처 메뉴 안내 입간판이 서 있었어요.
안으로 들어갔어요.
'에이, 플레이버 중 특이한 것은 없네.'
혹시 아이스크림 플레이버 중 여기에서만 판매하는 것이 있나 해서 살펴봤어요. 없었어요. 제가 안 먹어본 아이스크림은 있었어요. 사실 저는 배스킨라빈스 아이스크림 플레이버를 100종류 넘게 먹어봤지만 여태 배스킨라빈스 초콜렛 아이스크림, 이상한 나라의 솜사탕 아이스크림, 베리베리 스트로베리 아이스크림, 그린티 아이스크림을 안 먹어봤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어느 매장에 가든 일단 안 먹어본 아이스크림이 기본으로 4종류는 깔려 있어요. 그러나 이거 말고 제가 안 먹어본 독특한 플레이버는 없었어요.
'온 김에 시그니처 메뉴나 먹어봐야겠다.'
그냥 돌아가기는 아쉬워서 시그니처 메뉴를 먹고 가기로 했어요.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 시그니처 메뉴는 흑임자 마당 선데, 옥수수 마당 선데, 흑임자 마당 소프트 서브, 옥수수 마당 소프트 서브, 와와떡, 단호박 식혜 블렌디드, 십전대보차 블렌디드, 흑임자 쫀떡 블라스트, 흑임자 아포가토가 있어요.
'또 올 거 같지도 않은데 두 개 먹고 가야지.'
여기에서만 판매하는 삼청마당점 한정 아이스크림 플레이버가 있다면 간간이 오겠지만 그건 없었어요. 그렇다면 여기를 또 올 일은 없을 것 같았어요. 저는 배스킨라빈스 전종목 석권이 목표가 아니라 플레이버만 계속 먹어보고 있거든요. 여기는 독특한 플레이버가 없어서 또 올 것 같지 않았어요. 그래서 두 종류를 주문하기로 했어요.
흑임자 마당 선데와 십전대보차 블렌디드를 주문했어요. 주문한 후 내부를 둘러봤어요.
한옥 컨셉에 맞게 티슈는 유기 접시 위에 올려놓고 위에 조약돌을 얹어놨어요.
'안에 좌석 얼마 없네? 겨울에 어떡하려고?'
실내 내부는 예뻤어요. 그런데 내부에 좌석이 몇 개 없었어요. 매장 밖 벽에 의자가 있어서 사람들이 거기에 앉아서 햇볕 쬐며 먹고 있었어요. 봄, 가을은 외부에서 먹는 것도 나름 운치있고 좋을 거에요. 그런데 한겨울이 오면 찬바람 맞아가며 차가운 것 먹기 참 어려울 거에요.
'혹시 뒤에 뭐 더 있나?'
건물 뒤에 뭔가 더 있는 거 아닌가 싶어서 창 너머 건물 뒷편을 봤어요. 없었어요.
제가 주문한 흑임자 마당 선데와 십전대보차 블렌디드가 나왔어요.
먼저 흑임자 마당 선데부터 먹었어요.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 흑임자 마당 선데는 흑임자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팥, 작은 쌀과자 2개가 올라가 있었어요.
'베스킨라빈스31에 흑임자 아이스크림이 있었나?'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아, 쫀떡궁합!"
제게 엄청난 충격을 두 번 안겨준 바로 그 아이스크림 - 쫀떡궁합에 흑임자 아이스크림이 들어가요. 베스킨라빈스31에서 흑임자 아이스크림을 단독으로 판매하는 것을 본 적은 없어요. 그러나 쫀떡궁합 아이스크림을 구성하는 아이스크림 중 하나가 흑임자 아이스크림이니 베스킨라빈스31에 흑임자 아이크림은 있어요. 어쩌면 어딘지 알 수 없는 매장에서 흑임자 아이스크림 플레이버를 단독으로 판매하고 있을 수도 있어요.
"이거 좋은데?"
아이스크림에 뜨거운 팥을 올려주는 시도는 매우 좋았어요. 뜨거운 팥과 접하는 면은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액체가 되었어요. 보통 아이스크림이 녹으면 최악이에요. 그런데 이것은 팥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녹아서 된 액체와 아이스크림의 조합이 꽤 좋았어요. 아이스크림을 떠먹고, 아이스크림 액체도 떠먹을 수 있었어요. 아이스크림이 들어간 음료를 스푼으로 떠서 먹는 기분이었어요. 아이스크림이 건더기로 들어간 차가운 수프 같았어요.
흑임자 아이스크림과 팥과의 조합도 좋았어요. 둘이 매우 잘 어울렸어요.
배스킨라빈스 삼청마당점 십전대보차 블렌디드는 진짜 십전대보차 맛이었어요. 다른 아이스크림과 달리 참 한국적이라 매우 튀었어요.
"으, 머리야!"
너무 욕심부렸어요. 흑임자 마당 선데를 먹은 후 십전대보차 블렌디드를 마시자 차가운 것 너무 마셔서 머리가 엄청나게 아팠어요. 한여름에도 이렇게 먹으면 머리 아픈데 날이 쌀쌀해진 상태에서 이렇게 먹자 십전대보차 블렌디드를 몇 모금 마시자마다 바로 엄청난 두통이 찾아왔어요. 따뜻한 물을 한 컵 받아서 그거 마시면서 먹었어요.
'흑임자 아이스크림을 단독 플레이버로 판매하고 흑임자 아이스크림에 팥만 넣은 걸 추석 특집 플레이버로 내놔도 괜찮지 않을 건가?'
먹으면서 계속 이런 생각을 했어요. 흑임자 아이스크림에 팥 리본 넣어서 추석 특집 플레이버로 출시하고, 흑임자 아이스크림은 어르신 입맛 가진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니까 단독 플레이버로 판매하는 것도 괜찮을 거에요.
아니면 진짜 '초가집 컨셉 매장'을 만들어보는 것도 괜찮구요. 초콜렛은 사실상 한국전쟁 이후 주한미군 때문에 퍼진 것이니까 사상 초유의 '초콜렛 없는 배스킨라빈스 매장'으로 가는 거에요. 과감하고 과격하고 파격적으로요. 그래도 30종류는 채우고도 남아요. '초콜렛 없는 배스킨라빈스'라고 홍보하면 사람들이 충격받을 거에요. 게다가 한국에 국한할 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홍보하면 이건 무조건 터져요. 완전히 '이걸 우리가 해냈습니다' 급이에요. BR31 기술력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될 거에요. 애플민트, 그린티, 체리쥬빌레, 밤이 옥수로 맛있구마, 쫀떡궁합, 꿀꿀허니, 잘 될거에엿, 쌀떡궁합, 핑크스타, 그린티 티라미수, 월넛, 너는 참 달고나, 미찐감자, 아이스 호떡, 아이스 붕어빵을 라인업에 넣으면 일단 초가집 컨셉 매장 플레이버 라인업 중 15개 채웠고, 여기에 바닐라 추가되고 다른 과일맛 더 추가하면 30개는 무난히 채우고도 남아요.
좀 더 파격적인 플레이버 구성을 했으면 어땠을까 아쉬움이 있었어요. 엄청나게 새로운 것을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되요. 한옥 배스킨라빈스 BROWN 청담점에 있는 플레이버 중 추려서 구성해도 되니까요. 매장 자체는 예뻤지만 좌석이 너무 없었어요. '한옥 컨셉'만으로는 솔직히 많이 부족했어요. 그거보다 뭔가 추가로 더 있어야 하는데 제가 봤을 때는 '초콜렛 없는 배스킨라빈스'가 한옥 컨셉에 딱이었어요. '초콜렛 없는 배스킨라빈스 매장'이라고 하면 전세계 사람들이 궁금해서라도 오게 되어 있거든요. 세상에 초콜렛 하나도 없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이 어디 있어요. 몇 개 소수 종목만 갖다놓고 파는 작은 곳이라면 몰라도 플레이버 30종류 채워놓고 파는 곳 중에 초콜렛 없는 곳은 없어요. 그러니 한 번 시도해볼 만 하죠. 다른 아이스크림 전문점들에 대한 초격차, 막강한 기술력을 자랑하는 상징적인 존재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