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바람은 남서쪽으로 (2014)

바람은 남서쪽으로 - 22 베트남 꽝남성 호이안 야시장

좀좀이 2020. 10. 15.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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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돌아가야겠다."


어깨에 옆으로 메는 노트북 컴퓨터 가방은 끈 거는 고리가 완전히 끊어져버렸어요. 여기에 하늘에서는 비가 좍좍 퍼붓고 있었어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우산 쓰고 걷는 것조차 엄청나게 불편했어요. 한 손에는 우산, 한 손에는 보조가방을 들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걸으려니 조금만 걸어도 진이 빠졌어요. 투본강 위에 둥실둥실 떠다니던 빛나는 종이등은 모두 싹 다 어둠 속으로 빨려들어갔어요.


'앞으로 여행 어떻게 하지?'


머리 속이 엄청나게 심란했어요. 노트북 컴퓨터 가방은 계속 들고 돌아다녀야 했어요. 여기에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어요. 저의 전재산이라고 해도 될 것들이 싹 다 들어 있었어요. 노트북 컴퓨터, 여권, 돈, 디지털 카메라, 항공권 다 노트북 컴퓨터 가방에 넣고 옆으로 메고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이 가방 끈이 어떻게 살릴 수 없게 끊어져버렸어요. 가방에 끈을 매다는 철로 된 고리가 닳아서 떨어졌기 때문에 이건 바느질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어요. 순간접착제를 발라 붙인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었구요.


가방이 없다면 노트북 컴퓨터는 매일 캐리어에 넣고 잠근 후 숙소에서 나와야 했어요. 여권은 목걸이 지갑에 넣어서 목에 메고 돌아다녀야 했어요. 카메라는 목에 항상 덜렁덜렁 매달고 돌아다녀야 했어요. 가이드북은 답이 안 나왔어요. 사실 가이드북이 어떻게 보면 제일 문제였어요. 가이드북 없이 돌아다니면 지도고 정보고 아무 것도 없이 아는 것 하나도 없이 돌아다니는 거였거든요. 가이드북을 안 들고 돌아다니면 지도를 따로 구입해야 했고, 어디를 갈 지 일일이 다 계획해서 숙소에서 나가야 했어요. 세계를 헤메든 혼자 헤메든 가이드북은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문제는 가이드북을 손에 들고 돌아다니면 이것도 엄청나게 불편하다는 점이었어요. 게다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면 저도 손이 3개가 아니기 때문에 더욱 답이 없었어요.


투본강을 건너 다시 숙소가 있는 쪽으로 돌아왔어요. 빗줄기가 다시 가늘어졌어요.


"어? 야시장 열렸다!"


호이안 야시장


호이안 야시장이 열려 있었어요.


베트남 여행 사진


2014년 12월 21일 저녁 7시 반. 빗줄기가 가늘어지자 이제서야 야시장이 열리고 있었어요. 상인들이 좌판 위에 덮어놨던 비닐을 다시 걷어내고 장사를 재개했어요.


vietnam


"비에 젖으니까 더 예쁜데?"


길거리 바닥은 빗물이 흥건했어요. 온갖 불빛이 야시장 바닥을 적신 물에 반사되어 바닥은 알록달록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이대로 비 그치면 최고의 야경 구경할 수도 있겠다.'


종이등은 더 이상 못 띄울 거에요. 하지만 몰라요. 만약 비가 이대로 그친다면 다시 종이등 판매하는 상인들이 나와서 종이등을 판매할 수도 있었어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물 먹은 길거리는 각종 불빛을 반사해서 알록달록한 길바닥이 되고, 투본강 위에는 영롱한 빛을 내는 종이등이 둥실둥실 떠다닐 거에요. 이런 장면은 가히 최고의 장면이라고 할 수 있어요. 운이 엄청나게 따라주지 않는다면 절대 볼 수 없는 멋진 야경이 될 거였어요.


베트남 밤거리 사진


베트남 종이등


'일단 야시장 좀 구경하고 숙소 돌아가야지.'


야시장에서 숙소까지는 거리가 약간 있었어요. 하나도 안 멀었지만 숙소까지 다녀오기에는 매우 귀찮은 거리였어요. 매우 불편하기는 했지만 이제 우산을 안 쓰고 돌아다녀도 될 정도로 빗발이 엄청나게 가늘어졌어요. 우산을 접어서 가방에 집어넣었어요. 숙소에 가방을 놓고 나온다고 해도 우산은 들고 나와야 했어요. 숙소에 다녀온다고 해서 왼손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일단 사진을 찍으며 야시장을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베트남 호이안 야시장 풍경


바람은 남서쪽으로 - 22 베트남 호이안 야시장


비에 젖은 호이안 속에서 종이등은 더욱 아름답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어요.


베트남 호이안 야시장 사진


기념품을 하나씩 살펴봤어요.


베트남 관광 기념품


베트남 여행 기념품


vietnam souvenirs


"어? 다시 비 내린다!"


빗방울이 다시 굵어지기 시작했어요.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네 방울.

투둑. 투둑. 투두두둑.


"아, 망할!"


쏴아아아!


비가 또 다시 무섭게 퍼붓기 시작했어요. 망했어요. 아주 깔끔하게 망했어요. 상인들 얼굴에서 낭패를 읽을 수 있었어요. 야시장을 돌아다니던 사람들 모두 우산을 꺼내거나 황급히 비를 피해 지붕 아래로 들어갔어요. 상인들은 상품이 젖지 않게 황급히 좌판에 비닐을 다시 덮기 시작했어요. 모든 것은 순식간에 일어났어요. 비가 다시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순식간이었고, 상인들이 좌판에 다시 비닐을 씌우는 것도 순식간이었어요.


베트남 소나기


travel in vietnam


'일단 저녁 먹어야겠다.'


이게 제발 한순간의 소나기이게 해주세요.

다시 한 번 비가 그치고 야시장이 제대로 열리게 해주세요.


그저 마음 속으로 하늘에 제발 비 좀 그치게 해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었어요. 이건 제가 무슨 노력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었어요.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는데 이걸 제가 뭔 수로 막아요. 비가 오고 싶어서 온다는데요. 지구의 중력이 빗방울을 잡아끌어당기고 있는데요. 매주 토요일 저녁 로또 결과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잠시 뒤에 비가 그치기를 바래야만 했어요.


마침 저녁을 아직까지 안 먹었어요. 야시장에는 식당이 있었어요. 사람들이 식당에 밥 먹으러 가고 있었어요. 우물쭈물하다가는 밥도 못 먹게 생겼어요. 밥 생각이 아직 없던 사람들도 비가 오니까 일단 저녁부터 먹고 보려고 하고 있었어요.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길거리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아직 길거리의 많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인생은 타이밍이었어요. 재빨리 식당에 들어가 앉았어요.


식당 테이블에 앉자 점원이 메뉴판을 갖고 왔어요. 음식을 이것저것 주문했어요.


저녁 8시. 제가 주문한 음식들이 나왔어요.


베트남 음식 껌 가 Cơm Gà


위 사진 속 음식은 베트남 음식 껌 가 Cơm Gà 에요. 닭고기 덮밥이에요. 베트남 여행 갔을 때 반드시 알아야 하는 단어 중 하나로는 Cơm 이 있어요. 이게 '밥'이라는 뜻이에요. 어떤 음식이든 Cơm 으로 시작하면 쌀밥이 들어간 요리라고 보면 되요. Gà 는 베트남어로 '닭'이에요. 직역하면 닭 밥이에요. 껌 가는 맛은 매우 담백했어요.


베트남 음식 Cao lầu


위 음식은 베트남 음식 까오 라우 Cao Lầu 에요. 점심에도 먹은 요리였어요. 이것은 베트남 호이안 지역 음식이에요.


베트남 음식 bánh vạc


위 음식은 베트남 음식 반 박 bánh vạc 이에요. 정확히는 Bánh Bao Bánh Vạc Hội An 반 바오 반 박 호이안이에요. 쌀로 만든 만두피 속에 다진 새우가 들어간 새우 만두로, 베트남 호이안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에요. 역사는 그렇기 길지 않은 편이에요. 약 130년 전 호이안에 살던 중국인이 만든 음식인데 이것이 현재 호이안 명물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고 해요.


반 박은 모양이 흰 장미 같다고 '화이트 로즈'라고 부르기도 한대요.


베트남 음식 Hến trộn


위 음식은 베트남 음식인 헨 쫀 Hến Trộn 이에요. 베트남어 Hến 은 '조개'라는 뜻이고, Trộn 은 '섞다'라는 뜻이에요. 직역하면 '섞은 조개'에요. 후에에서 끝까지 못 먹고 온 베트남 후에 전통 음식인 껌 헨 Cơm hến 이 이것과 비슷한 음식이에요. 헨 쫀은 호이안 음식이구요.


후에 음식 껌 헨과 호이안 음식 헨 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껌 헨은 이름에 Cơm 이 들어갔어요. 즉, 껌 헨은 조개 덮밥이에요. 하지만 호이안 음식 헨 쫀은 bánh đập 이라는 뻥튀기 비슷한 것에 올려 먹어요. 위 사진에서 뻥튀기 같은 것이 바로 반 답이에요.


후에에서는 결국 끝까지 껌 헨을 못 먹고 왔어요. 후에에서 먹지 못한 껌 헨은 헨 쫀으로 대충 퉁치기로 했어요.


음식을 먹으며 식당 밖을 바라봤어요. 상인들 표정은 망했다는 표정이었어요. 빗줄기는 더 강해졌어요. 야시장 자체는 완전히 망했어요. 그나마 아직 남아 있는 곳은 음식을 판매하는 곳이었어요.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다시 밖으로 나왔어요.


베트남 사탕수수 쥬스


사탕수수 쥬스가 보여서 하나 사서 먹어봤어요.


'이건 좀 아니네.'


사탕수수 쥬스는 뭔가 비렸어요. 입에 잘 안 맞았어요. 그래도 깔끔하게 다 비웠어요. 사탕수수 쥬스를 다 마셨을 때, 노점상이 도저히 장사를 못 할 정도로 빗줄기가 엄청나게 강해졌어요.


'숙소 돌아가야겠다.'


베트남 호이안 야경


'아니야, 아직은 그래도 더 돌아다닐만 해.'


어차피 신발은 푹 젖었어요. 더 나빠질 것도 없었어요.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최대한 밖에서 버티고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보기로 했어요.


nightview of hoi an


night view of vietnam


"아, 잘못했어요!"


이건 감당이 될 비가 아니었어요. 아까보다 더 무섭게 쏟아졌어요. 투본강가는 이미 물에 잠겼어요. 물이 엄청나게 빠르게 불어나고 있었어요. 이 속도라면 호이안이 잠기게 생겼어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비가 무지막지하게 쏟아지고 있었어요.


급히 숙소로 돌아갔어요.


'오늘 완전 망했네.'


호이안을 어떻게 다 둘러보기는 했지만 망했어요. 신발은 푹 젖었고, 가방끈은 완전히 떨어져서 더 이상 어께에 걸쳐메고 다닐 수 없었어요. 앞으로 남은 일정을 어떻게 여행해야하나 심란해졌어요.


아까 기념품으로 구입한 인형을 꺼냈어요. 제가 모르고 있던 악재 하나를 발견했어요.


인형이 목이 부러져 있었어요.


'이건 한국 가서 순간접착제로 붙여야겠다.'


오늘 하루를 정리해보자.


1. 가방방 끈 떨어짐

2. 신발 완전히 다 젖음

3. 기념품으로 구입한 인형 목 부러짐


하루에 이걸 다 겪었어요. 이렇게 재수없기도 어려워요. 이것들이 무슨 일련의 과정에서 연관을 갖고 쭈르륵 일어난 것도 아니었어요. 큰 사건을 겪고 평정심을 잃고 계속 수렁에 빠지는 식으로 일어난 게 아니에요. 비가 온 것, 가방끈 떨어진 것, 기념품으로 구입한 인형 목이 전부 부러져 있는 것 사이에는 그 어떤 개연성도 없었어요. 말 그대로 삼재가 덮친 날이었어요.


'일단 여행 기록부터 정리해야지.'


노트북 컴퓨터를 켰어요. 하루 종일 촬영한 사진을 노트북 컴퓨터로 옮겼어요. 사진을 확인했어요.


"진짜 망했네?"


예쁜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어요. 경악할 수준이었어요. 침팬지한테 카메라를 들고 사진 찍어보라고 해도 이거보다는 더 나았을 거에요. 제대로 살릴 사진이 안 보였어요. 그나마 괜찮게 찍은 것처럼 보이는 사진은 너무 깜깜하게 찍혔어요. 밝기가 맞는 사진은 한결같이 이걸 사진이라고 찍었냐고 욕할 사진 뿐이었어요. 총체적 난국 그 자체였어요. 아찔했어요. 여행기 쓰려면 사진이 반드시 있어야 해요. 말로 주절주절 떠드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이 훨씬 더 강력하거든요. 그런데 호이안에서 촬영한 사진은 단 한 장도 살릴 사진이 없었어요. 아무리 후보정을 많이 한다고 해도 살아날 수 있어보이지 않았어요.


'이거 여행기 진짜 어떻게 쓰지?'


여행 기록을 남기면서 계속 머리가 복잡했어요.


'일본교 야경이라도 찍고 와야겠다.'


마침 빗줄기가 다시 가늘어졌어요. 비 내리는 소리가 사라졌어요. 조용해졌어요. 몇 시인지 봤어요. 밤 10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카메라와 우산만 들고 숙소에서 나왔어요. 절박했어요. 사진 한 장이라도 건져야 했어요. 이렇게 호이안 여행을 끝낼 수 없었어요. 다음날 아침에 잠깐 시간이 있었지만 지금 신발 상태를 봐서는 과연 돌아다닐 수 있을지 의문이었어요. 다음날은 점심에 슬리핑 버스를 타고 하루 종일 이동해서 다다음날 아침에 하노이 도착하는 일정이었거든요. 만약 다음날 아침에 또 비가 내린다면 호이안 관광은 이렇게 끝날 거였어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일본교 야경이라도 건지고 와야 했어요.


베트남 호이안 여행 사진


모든 것은 끝나 있었어요.


베트남


일본교로 갔어요. 표를 받는 사람은 없었어요. 그냥 사람 자체가 없었어요. 일본교 안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어요.


외국 여행 사진


hoi an


사진은 지나치게 시뻘겋고 깜깜하게 나왔어요. 하도 어둡게 찍혀서 이게 제대로 찍히기는 한 건지도 알 수 없었어요.


베트남 호이안 일본교


최대한 안 흔들리게 노력하면서 계속 사진을 찍었어요.


베트남 여행


trip to vietnam


'이거면 되었겠지?'


대충 된 것 같았어요. 일본교 안에 있는 사당으로 갔어요.


베트남 화교 문화


사당 안에는 사람이 한 명 있었어요. 사당 내부를 정리하고 있었어요.


해외 여행 사진


일본교 건너편은 완전히 잠들어 있었어요.


베트남 중부 호이안 여행 사진


일본교 내부 사진을 다시 찍었어요.


베트남 호이안 일본교


"무슨 사진이 이렇게 시뻘겋게 나와?"


제 디지털 카메라 후지필름 HS10 은 사진을 아주 핏빛으로 찍고 있었어요. 화이트밸런스가 아주 요상하게 잡히고 있었어요.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쓸 틈이 없었어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했거든요.


베트남 겨울 여행


위 사진은 여행기 쓸 때 채도를 확 낮춘 사진이에요. 실제 당시 일본교 내부는 위 사진과 가까웠어요.


우산을 쓰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신발은 아마 더 많이 젖었을 거에요. 그러나 더 많이 젖었는지 안 젖었는지조차 알 수 없었어요. 이미 푹 젖어 있었거든요. 그냥 신발이 더 무거워졌고 걸을 때마다 축축하게 젖은 양말과 깔창이 만들어내는 질척이는 촉감만 느껴질 뿐이었어요.


'망했다.'


숙소로 돌아와서 씻고 바로 드러누웠어요. 다음날 아침에 잠깐이라도 비가 안 내리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러나 창밖 빗소리를 들어봤을 때, 그리고 일기예보를 봤을 때 다음날 아침은 지금보다 더 절망적일 거였어요. 포기하면 편한 다음날 아침일 거였어요.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보려 했지만 그건 복권 당첨을 바라는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다 포기하고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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