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37 아제르바이잔 바쿠 기차역

좀좀이 2012. 9. 2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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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11일의 아침이 밝았어요. 오늘은 일찍 일어났어요. 목에 가래가 껴서 잠에서 일찍 깨어났어요. 아침에 일어났는데 목이 전날보다 더 아프고 머리가 무거웠어요. 일어난 김에 일단 씻고 차를 끓여서 밖으로 나갔어요. 자전거 여행 중인 프랑스 아저씨가 드디어 출국한다고 하셨어요. 아저씨는 카자흐스탄 악타우로 가는 배가 없어서 아제르바이잔 비자가 만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호스텔에 머물고 계셨었어요. 프랑스 아저씨는 체크 아웃한 후, 관청에 가서 벌금을 물고 배를 탈 거라고 자신의 일정을 알려주셨어요. 혹시 오늘 배가 뜨지 않으면 다시 호스텔로 돌아올 수도 있다는 말을 남기며 호스텔에서 나가셨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보내지 못한 둘에게 엽서를 쓰기 시작했어요. 한 명은 고등학교 동창이었고, 한 명은 작년 조지아 트빌리시에서 저를 도와준 조지아인이었어요. 아제르바이잔에서 구입한 엽서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구입한 엽서보다 작았어요. 이렇게 작은 엽서는 영어로 써야할 때 참 좋아요. 조금만 써도 칸이 금방 꽉 차거든요. 영어로 길게 쓰라고 하면 정말 고역. 그래서 한국어로 쓸 때는 엽서에 내용을 적는 칸이 작으면 짜증나지만, 영어로 쓸 때는 칸이 작을 수록 좋아해요.


엽서를 다 쓰고 멍하니 앉아 있었어요. 마침 주인 아저씨께서 밖으로 나오셨어요. 주인 아저씨는 간단한 우즈벡어는 알아들으시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수 있었어요. 주인 아저씨께서는 군대에서 우즈벡인, 투르크멘인, 체첸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그래서 다른 튀르크 언어들은 들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으실 수는 있다고 다시 한 번 이야기해 주셨어요. 단,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만 들을 뿐, 말을 하시지는 못하셨어요. 대신 주인 아저씨께서는 제가 아제르바이잔어를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아주 천천히, 또박또박, 그리고 아주 쉽게 아제르바이잔어로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저도 주인 아저씨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저 역시 주인 아저씨의 아제르바이잔어를 알아만 들을 뿐, 아제르바이잔어로 말을 하지는 못했어요.


아제르바이잔에 와서 항상,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을 아저씨께 여쭈어 보았어요. 제가 아제르바이잔에서 제일 궁금해했고, 반드시 답을 찾고 싶었던 문제. 바로 아제르바이잔 문자 개혁과 관련된 것이었어요.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문자 개혁이 그렇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 생각이 바뀐 것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벡어를 공부하면서부터. 라틴 문자가 정착하기는 커녕, 아직까지도 우왕좌왕하며 대체로 키릴 문자를 사용하는 것을 보고 이게 쉬운 일도 아니고 저항도 적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어요.


주인 아저씨께서는 라틴 문자를 읽을 수는 있다고 대답하셨어요. 그러나 라틴 문자로 쓰지는 못한다고 하셨어요. 또한, 어려운 말은 러시아어로 하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하셨어요. 역시 언어와 관련된 것을 바꾼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 그래도 이렇게 러시아어를 쫓아낸 것은 정부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펼쳤다는 증거. 호스텔 옆집은 러시아인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은 호스텔 주인 가족들과 항상 아제르바이잔어로 이야기했어요. 러시아어로 이야기하지 않았어요. 우즈베키스탄이면 상상도 못 할 일. 러시아어가 쫓겨나고 자국어가 확실히 자리잡아 가고 있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그 어떤 이유를 들든, 그 목적이 어째서이든 간에 이 지역에서 러시아어는 식민지 시절의 잔재니까요. 이번 여행을 통해 예상컨데 발틱 3국을 제외한 구 소련 국가들 중 아제르바이잔과 투르크메니스탄이 가장 먼저 식민지 잔재인 러시아어를 자국 영토에서 뿌리뽑아낼 거에요. 단순히 현재 보아서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소련 시절 가장 러시아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것을 거부한 지역이 카프카스 지역과 투르크메니스탄이거든요.


주인 아저씨께서는 아제르바이잔어와 터키어의 관계도 이야기해 주셨어요. 아제르바이잔어와 터키어는 거의 비슷해서 서로 잘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게다가 예전 대통령조차 아제르바이잔어와 터키어는 하나라는 발언을 했었다고 알려주셨어요. 아제르바이잔의 예전 대통령이 아제르바이잔어와 터키어는 하나라고 발언했던 것은 저도 들어서 알고 있었어요. 문제는 이 발언을 엘치베이가 했는데 헤이데르 알리예프가 했는지 정확히 모른다는 것. 가능성만 놓고 보자면 엘치베이가 더 높기는 하지만, 헤이데르 알리예프가 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높았어요. 이것에 대해서는 주인 아저씨께서도 정확히 기억하시지는 못 하셨어요.


또 한 가지, 재미있게 들은 이야기는 아제르바이잔인들도 러시아인을 매우 싫어한다는 것. 이것은 우즈베키스탄도 비슷해요. 우즈벡인들도 단지 내색을 안 할 뿐이지, 러시아인들 싫어해요. 아제르바이잔인들이 러시아인들을 매우 싫어하는 이유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아마 우즈벡인들이 러시아인들을 싫어하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싫어하지 않을까 추측해 보았어요. 우즈벡인의 문화는 많은 점에서 동양의 문화와 비슷해요. 예를 들자면 어른에게 깍듯이 대해야 해요. 심지어는 어른에게 인사할 때 허리를 숙여 인사해요. 이슬람에서 허리를 숙여 인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런데 우즈벡인들은 해요. 러시아인들은 당연히 이런 문화가 아니죠. 게다가 러시아인들에 대한 나쁜 정보들이 위성 방송을 통해 전해져요. 알코올 중독, 매춘, 살인, 가정붕괴 등등...더욱이 이게 방송으로 나오는 것이니 그 사건들 중에서도 더욱, 제일 자극적인 것으로 엄선되어 나오죠. 문화적으로 너무나 다른데 위성 방송에서 나오는 러시아에서 일어나는 러시아인들의 사건 사고는 그야말로 엽기 수준. 더욱이 안 좋고 이상한 문화가 자꾸 러시아인들을 통해 들어오다보니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지만 속으로는 상당히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자기 자식은 절대 러시아인과 결혼시키지 않겠다는 우즈벡인들도 많구요. 하지만 러시아인들과 어울려 살아야하니 내색하지 않을 뿐이죠. 아마 이와 비슷한 이유에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에서 러시아가 아르메니아를 도왔다는 것까지 추가되어서 아제르바이잔인들도 러시아인을 싫어하는 것 아닌가 싶었어요.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저의 추측. 확실한 것은 아니에요. 우즈벡인들이 러시아인을 싫어한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아제르바이잔인들도 우즈벡인들이 러시아인을 싫어하는 이유와 비슷한 이유로 러시아인을 싫어할 것이라는 것은 정말로 추측에 불과해요.


"바쿠에서 가장 큰 서점은 어디에요?"


바쿠에서 가장 큰 서점 위치를 물어보자 주인 아저씨께서는 이체리 셰헤르 근처에 있는 서점들을 알려주셨어요. 그래서 거기를 다 갔다고 하자 그렇다면 지하철 28 May 역 근처에 가 보라고 하셨어요. 책은 그쪽이 가장 많다고 하셨어요.


친구와 아저씨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내다 2시가 되어서야 집에서 나왔어요. 먼저 메르신 카페에 가서 오늘도 역시 탄투니를 먹었어요. 다 먹고 우체국에 갔어요. 우체국 가는 방법은 MUM이 있는 길에서 MUM 맞은편 방향 인도를 따라 이체리 셰헤르 반대 방향으로 쭉 걸어가면 되요.


우체국에 가서 엽서를 부쳤어요. 가격은 1개당 1.1 마나트. 직원 아주머니께서 우표는 자기가 붙여주시겠다고 하시며 선물로 잡지 두 권을 주셨어요.


"이거 러시아어로 된 잡지잖아."


아제르바이잔어로 된 잡지라면 어떻게 떠듬떠듬 읽겠는데 러시아어로 된 잡지였어요. 게다가 여성지. 그래서 이것은 이따 호스텔 돌아가서 주인 가족분들께 드리기로 했어요. 어차피 우리가 가지고 있어보아야 읽지도 못하니까요. 사전 가지고 아주 천천히 떠듬떠듬 아주 약간 읽을 수야 있지만 그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어요. 게다가 당장 우즈베키스탄으로 들고 가야 할 책도 많았구요.


"우표 팔아요?"


직원 아주머니께서 우표를 보여주셨어요. 우표는 전부 꽃 아니면 말이었어요.


"이거 말고 다른 것은 없나요?"

"그건 옆 가게 가 봐요."


혹시 엽서를 팔면 엽서를 몇 장 사기 위해 엽서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우체국에는 엽서도 없었어요. 우리에게 보여준 것은 그냥 평범한 카드 뿐. 직원 아주머니께서는 우체국에서 엽서도 안 팖으로 다른 가게에 가서 사라고 하셨어요.


우체국 바로 옆이 우표상이었어요. 우표상에 들어가자마자 우표상 주인 할머니께서 우리가 잡지를 들고 있는 것을 보고는 봉투를 하나 주셨어요.


"우표 좀 볼 수 있을까요?"

"봐요."


우표를 보는데 제가 찾는 전통 의상 우표는 보이지 않았어요.


"혹시 전통 의상 우표 있나요?"

"그건 관광객들이 하도 찾아서 다 떨어졌어요. 그거 아마 바쿠 전체를 뒤져도 없을 걸요?"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께서는 전통 의상 우표는 하도 인기가 좋아서 자기들도 구하려 했지만 지금까지 못 구했다고 했어요. 바쿠에서 가장 큰 우표상에 가도 아마 없을 거라고 했어요. 그리고 그 우표가 없는 이유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그 우표를 집중적으로 사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면 이 나라는 전통 의상이 예쁜데 전통 의상을 제대로 다룬 책이나 엽서가 보이지 않았어요.


한침 고르다 아제르바이잔에 온 기념으로 구입한 우표는 바로 이것들.




이체리 셰헤르 우표.


재작년인 2010년에 나온 이 우표 13장에는 이체리 셰헤르에 있는 주요 유적과 그 유적이 지어진 시기가 나와 있었어요. 마음 같아서는 여러 장 사고 싶었지만 여러 장 구입할 가격은 아니었어요. 혹시 안 간 곳 있나 살펴보았는데 전부 간 곳이었어요. 원하던 전통 의상 우표는 아니었지만 이 우표도 꽤 마음에 들었어요.


우표를 사고 95번 버스를 타고 28 May 역으로 갔어요.




서점을 돌아다녔어요. 그리고 정말 탐이 났던 그 책들을 손에 넣었어요.



전 5권으로 된 아제르바이잔 민담집. 가격은 다섯 권 다 해서 20마나트. 5권 모두 하드커버인 것을 감안하면 비싸지 않았어요.


"너 그거 다 읽을 수 있어?"

"해 보아야겠지?"


친구는 이 책을 천천히 읽을 수 있었지만 저는 정말 사전이 있어야 달팽이 기어가는 속도로 겨우 어느 정도 읽을 수 있는 수준. 물론 지금 실력으로는 절대 읽을 수 없는 책이라는 사실은 확실해요. 하지만 언제 아제르바이잔에 다시 갈 지 모르니까요. 게다가 중요한 것은 사전이 있으면 어느 정도까지는 읽을 수 있다는 것. 그래도 한때 아제르바이잔어 문법만 공부했었고, 지금은 우즈벡어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라 사전이 있으면 힘겹지만 볼 수는 있었어요. 그리고 꼭 우즈베키스탄에서 다 읽어야할 이유도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못 읽으면 한국에 들고 가면 되니까요. 아무리 수하물 추가 요금을 물더라도 한국에서 아제르바이잔까지 갔다 오는 비용보다는 싸요.


"우리 잠깐 쉬자."


머리가 살짝 어지러웠어요. 온몸이 대지가 잡고 늘어지는 것처럼 무거웠어요. 기차역만 사진으로 찍고 빨리 갈까? 도저히 몸이 무거워서 걸을 수가 없었어요. 천천히 걷는데 술 취한 것처럼 땅이 잘 느껴지지 않았어요. 도저히 바로 버스를 타고 호스텔로 돌아갈 자신이 없었어요.


찻주전자 하나를 시키고 앉아서 쉬었어요. 확실히 앉아서 쉬니 많이 괜찮아졌어요. 차를 마시며 잡담을 하고 구입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차를 다 마시고 계산을 했어요. 찻주전자 하나가 2마나트. 셰키의 5배 가격.


기운을 내서 이왕 온 김에 기차역 내부를 구경하고 가기로 했어요.


"아무 것도 없네."


정말 휑했어요. 역시 규모가 크다고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었어요. 규모는 큰데 안에 사람도 별로 없고 가게도 별로 없어서 썰렁할 뿐이었어요. 기차역 안에도 서점이 몇 곳 있었어요. 대충 둘러보고 나왔어요. 무언가 마음을 크게 끄는 책이 하나도 없었거든요.


기차역 사진은 하나도 없지만 여기가 기차역이에요. 바쿠에서 기차역에 가기 위해서는 지하철 28 May 역으로 가면 되요. 지하철을 타고 가면 기차역 바로 근처에서 내릴 수 있어요.


기차역 주변에 모스크 비슷한 건물이 있었어요.



"저기 갈까?"


친구가 강력히 싫다고 했어요. 저도 갈 생각이 없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적당히 사진만 찍고 발길을 돌려 간 곳은



지하철 28 May 역.


역에 들어가서 작년에 구입한 지하철 카드를 꺼내었어요. 작년에는 매표소에서 돈 내고 충전했는데 올해는 자동 충전 기계가 들어와 있었어요. 두 명이 탈 거라 40개픽을 충전했어요.


우즈베키스탄,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 지하철 모두 나갈 때에는 특별한 것이 없어요. 그냥 나가면 되요. 심지어는 경찰도 들어가는 사람만 잡지, 나가는 사람은 안 잡아요. 그래서 바쿠에서는 지하철 카드 1장으로 몇 명이고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어요. 지하철 카드에 돈만 많이 충전되어 있다면요. 방법은 간단해요. 통과한 사람이 뒷사람에게 지하철 카드를 전해주고, 뒷사람은 다시 지하철 카드를 찍고 들어가면 되요. 지하철 카드에 돈만 많이 충전되어 있다면 계속 이렇게 카드 한 장으로 여러 사람이 들어갈 수 있어요.


바쿠 지하철 카드 디자인은 선물하고 싶을 정도로 예뻤어요. 그러나 이것을 마땅히 줄 사람이 없어서 또 구입하지는 않고 그냥 제 것으로 둘이서 지하철을 탔어요.


지하철을 타고 이체리 셰헤르 역에서 내렸어요. 이체리 셰헤르 역에서 카스피안 호스텔까지는 그다지 먼 거리가 아니에요. 호스텔에는 생각보다 일찍 들어왔어요.


"안녕하세요."


새로운 손님이 호스텔에 들어왔어요. 새로운 손님은 프랑스 청년으로 자전거 여행중이라고 했어요. 이 청년 역시 카자흐스탄을 경유 비자로 지나친 다음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가는 일정이라고 했어요.


프랑스 청년과 몇 마디 나누는데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어요. 오후 6시. 정말 본격적으로 콧물이 줄줄 나오기 시작했어요. 콧물을 아무리 풀어도 계속 끊임없이 콧물이 나왔어요. 그래서 일찍 침대에 드러누워 오늘 사온 책을 몇 장 뒤적이다 잠을 청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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