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35 아제르바이잔 셰키

좀좀이 2012. 9. 19. 05:48
728x90

원래 예정대로 숙소 근처에 있는 유리 가가린 식당으로 갔어요.


식당은 노천에서 먹게 되어 있었어요.


"여기 비싸지 않을까?"

"어쨌든 숙소비 아꼈잖아."

"한 번 정도 여기 음식 먹어볼까?"


바쿠에서 외식은 상상도 못했어요. 너무 비싸서요. 그래서 레스토랑 같은 곳은 당연히 절대 안 갔어요. 우리가 항상 끼니를 때운 곳은 메르신 카페. MUM 옆에 있는 작은 카페인데 가격이 저렴하고 양도 괜찮은 편이었어요. 게다가 맛도 좋았구요. 정말 이럴 때 아니면 아제르바이잔 음식들을 맛볼 기회가 없었어요. 바쿠에서 먹는다면 정말 몇십 마나트 나올테니까요. 앞서 말했듯 1달러가 0.785 마나트 정도 되요. 1마나트가 0.785 달러쯤 되는 게 아니라 그 반대에요. 일단 한 사람 당 음식을 하나씩 시켰어요. 저는 ət çığırtması, 친구는 ət qutabı 를 시켰어요. 메뉴판은 앞 장은 아제르바이잔어로 되어 있었고, 뒷장은 영어로 되어 있었어요. 제가 시킨 ət çığırtması 는 Meat with onion & eggs 였고, 친구가 시킨 ət qutabı 는 Meat gutab 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솔직히 영어로 된 메뉴판을 읽어 보아도 무슨 요리인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고기 들어간 걸로 대충 골랐어요.


"빵은?"

"빵도 주세요."

"마실 것은?"

"차요."


이제 택시 기사가 추천한 케밥을 시킬 차례. 문제는 여기 케밥 크기 얼마나 되는지 모른다는 것. 종업원은 케밥을 몇 그램 시킬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우리가 몇 그램 먹어야 하지?"


500g? 1kg? 고기만 먹는다면 1kg 시키면 될텐데 고기만 먹는 게 아니었어요. 이미 한 사람당 한 개씩 요리를 주문했어요. 게다가 걱정되는 것은 가격. 우즈베키스탄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하며 마구 시켜버릴텐데 여기는 우즈베키스탄이 아니에요. 여기는 아제르바이잔. 그래서 가격이 신경쓰였어요. 하지만 메뉴판에 가격은 전혀 나와 있지 않았어요.


"2인분 시킬까?"

"그러면 많을 거 같은데..."


케밥 2인분이 나와 보아야 얼마나 나오겠어. 아무리 크게 나온다 해도 케밥이 케밥이지. 여기서의 케밥은 도네르 케밥 같은 게 아니라 샤슬릭 - 즉 양꼬치를 말하는 것이었어요. 중국식 양꼬치는 아니고 중앙아시아식 양꼬치인데, 이게 크게 나온다고 해봐야 얼마나 크게 나오겠냐고 생각했어요.


친구의 생각은 달랐어요. 음식을 각자 하나씩 시키는데 케밥까지 2인분 시키면 양이 너무 많지 않겠냐는 것이 친구 생각. 음식 양이 많아 보았자 설마 케밥 1인분도 못 먹게 나올까 생각했지만 친구가 2인분은 많을 거라고 우겨서 1인분만 시키기로 했어요.


우리가 계속 1인분이라고 하자 종업원이 알았다고 하고 갔어요.


주문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풍경이 정말 좋았어요. 이렇게 좋은 풍경을 밖에서 보며 느긋하게 저녁을 먹을 수 있구나. 제발 가격이 너무 비싸지 않기만을 빌었어요. 가끔 나뭇잎이 식탁 위로 떨어졌지만 괜찮았어요. 그게 노천 식당이니까요. 그런 것이 싫다면 당연히 실내로 들어가야죠. 바로 옆에는 셰키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어요. 정말 가격만 괜찮다면 저 역시 추천하고 싶은 식당. 문제는 가격이 얼마 나올지 모른다는 것.


먼저 친구가 시킨 구탑이 나왔어요. 이것은 사진을 찍지 못했어요. 밀가루를 둥그렇고 얇게 펴서 그 안에 고기를 집어넣고 두 번 반으로 접은 것이었어요. 딱 2개 나왔어요. 친구와 하나씩 나누어 먹었어요.


"이건 별로인데?"


맛이 없다고 하기는 그랬지만 맛이 있다고 하기도 그랬어요. 고기 냄새가 강한 것도 원인이기는 했지만...그냥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었어요. 특별히 호평할 것이 없다고 느꼈어요. 굳이 의미를 찾자면 이게 아제르바이잔 전통 음식이라는 것 정도? 그래도 배가 고파서 사진 찍는 것도 잊어버리고 다 먹어 치웠어요.


음식을 먹는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10분을 기다리자 제가 시킨 음식이 나왔어요.




"에게게...이거 뭐야?"


사진 뒤에 놓여 있는 컵과 크기를 비교해보면 얼마나 나왔는지 알 수 있어요. 정말 이게 한 끼 식사가 맞는지 진지하게 고민되는 순간이었어요. 진짜 케밥 안 시켰으면 큰일날 뻔 했어요. 이건 저 혼자, 또는 친구 혼자 구탑과 이 음식을 다 먹었어도 부족할 판. 그래서 똑같은 것을 하나 더 시켰어요. 이것은 금방 나왔어요.


맛은 꽤 좋았어요. 양고기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지만 않는다면 정말로 맛있는 음식. 더욱 놀라운 것은


요리보다 기름이 더 맛있어!


제가 시킨 요리는 분명히 충분히 맛있었어요. 그런데 접시에 고인 기름을 빵으로 찍어먹는 것이 더 맛있었어요. 이건 정말 '볶음밥도 매우 맛있지만, 후라이팬에 눌러붙은 볶음밥 누룽지가 더 맛있어요'도 아니고...정말로 기름을 빵으로 찍어먹는 게 너무 맛있어서 요리보다 기름을 빵으로 찍어먹는 것이 더욱 맛있고 기억에 남는 음식이었어요.


이것을 다 먹을 때까지 케밥은 나오지 않았어요.


"이거 다 소화되고 나오는 거 아니야?"


가뜩이나 음식이 조금씩 나오는데 음식이 바로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둘이서 나누어 먹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식사를 하는 게 아니라 '맛 보는' 기분이었어요. 배를 채워주는 것은 빵이었고, 음식이라고 시킨 것들은 전부 빵을 조금 더 쉽게 넘기기 위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어요. 케밥이 나왔을 때, 이미 배 속에 있는 것은 다 소화되었어요.



이게 케밥 1인분. 정확히 세 입. 이것을 다지듯 칼로 썰어 먹을 수도 없고...정말로 딱 세 입 거리. 음식 나오는 양에 한숨을 푹 내쉬었어요. 맛은 정말로 환상적이었어요. 지금껏 먹어본 케밥 (샤슬릭)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맛있었어요. 하지만 이 양...대체 어쩔 거야? 딱 세 입 먹으니 끝. 배가 충분히 부른 상태에서 세 조각이면 그다지 큰 불만이 없었을 거에요. 그런데 지금 앞서 먹은 것은 전부 소화가 되었는데 딱 세 조각. 그나마도 친구랑 나누어 먹어야 했어요.


"야, 내가 2인분 시키자고 했지?"


내 이럴 줄 알았어! 이게 무슨 도네르 케밥도 아니고 샤슬릭인데 이게 커 보아야 얼마나 크다구! 설령 주먹만한 고기를 꽂아서 판다고 해도 앞서 먹은 게 양으로는 정말 시원찮았기 때문에 그 정도 먹어도 문제될 것이 없었어요. 알았든 몰랐든 아까 그 상황에서 최소 2인분을 시켰어야 맞았던 것.


친구에게 두 조각 먹으라고 하고 저는 한 조각만 먹었어요. 한 입에 넣기 아까워서 칼로 반으로 썰어서 두 입에 나누어 먹었어요.


다 먹고 입맛만 쩝쩝 다셨어요. 입맛만 쩝쩝 다시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 기껏 주문한지 30분만에 나온 음식이 딱 고기 3점, 그것도 둘이서 나누어먹어서 저는 한 점 먹었어요.


"더 시킬까?"


더 시키고 싶었지만 음식 나오는 속도로 보아서 그럴 수도 없었어요. 이런 케밥 (샤슬릭)은 보통 30분 걸려요. 30분간 숯불에 천천히 굽기 때문에 지금 다시 추가로 시킨다면 또 30분을 기다려야 해요. 30분 기다리는 동안이면 먹은 거 또 깨끗이 다 소화되어서 입만 버릴 게 분명했어요.


"여기 그래도 20마나트는 나오겠지?"


양이 너무 적기는 했지만 그래도 20마나트는 나올 거라고 예상했어요. 사람들이 그럭저럭 들어와 먹고 있는데 저렴한 식당은 아니었어요. 택시 기사 아저씨도 아까 가격이 약간 비싸다고 알려주었구요. 그래서 대충 20마나트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계산하러 가서 얼마냐고 물어보았어요.


"7마나트."

"7마나트요?"


계산서를 보여달라고 했어요. 믿을 수가 없었어요. 우리가 먹은 접시가 3개인데 고작 7마나트? 제가 깜짝 놀라며 계산서를 보자 주인 아저씨는 비싸냐고 물어보았어요. 몇 번을 확인했지만 7마나트였어요. 혹시 우리가 주문한 음식 중 빠트린 게 있나 확인해 보았지만 제대로 되어 있었어요.


"너무 싸서요!"


7마나트 짜리 식사라면 정말 괜찮은 식사였어요. 구탑도 맛이 별로라고 했는데, 그 가격이라면 괜찮은 음식. 아니, 우리가 먹은 것 전체를 한 사람이 다 몰아서 먹어도 되었어요. 만약 그랬다면 양도 딱 맞았을 거에요. 괜히 비쌀 거라 지레짐작했다가 정말 맛있고 가격도 저렴한 식당에서 식사를 망쳐 버렸어요. 둘이 찌질거리며 코딱지만한 음식 세 접시를 나누어 먹었는데 그렇게 먹을 필요가 애초에 없었어요. 바쿠 물가만 생각하고 처음부터 바쿠 물가로 예상하고 주문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어요. 그냥 가격을 물어보고 주문했으면 맛있고 딱 적당한 양을 먹고 한 사람당 7마나트 내었을 훌륭한 저녁식사의 기회. 그 기회를 둘이 사이좋게 바쿠 물가와 비슷할 거라고 지레짐작하며 화끈하게 날려버린 것.


"우리 다시 먹을까?"


하지만 다시 먹으려면 또 한참 기다려야 했어요. 그래서 7마나트 내고 식당에서 나왔어요.


우리에겐 할와가 있어!


이건 진한 아쉬움 정도의 표현으로 표현할 수 있는 아쉬움이 아니었어요. 그나마 배가 고프지 않게 된 것은 빵을 다 해치우고 나왔기 때문. 이 먹었지만 계속 몸 속에서 돌아다니며 영토을 넓혀가는 공복감에 약이 하나 있었어요. 그것은 바로 할와. 할와가 무려 500 그램이나 있어! 이것을 둘이 다 먹어치우면 아마 속이 느글거려서 배고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거야. 물론 농담이었어요. 할와를 그런 용도로 먹고 싶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할와는 대체로 너무 달아서 식욕을 싹 사라지게 하는 효과가 분명 있어요.


"나 아제르바이잔 맥주 사올게. 너도 먹을 거야?"

"아니. 안 마셔."


술을 좋아하는 친구는 여기에 왔으니 기념으로 아제르바이잔 맥주를 꼭 마셔야겠다고 했어요. 그러나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저는 술을 마시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어요. 이제까지 살면서 술을 마시며 기분이 좋아진다는 것은 단 한 번도 못 느껴보았거든요. 오히려 술을 마시면 졸리고 짜증만 나는데, 이렇게 아름답고 너무나 마음에 드는 도시에서 술을 마시며 스스로 제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술을 안 좋아하는 것을 아는 친구는 자기 것만 사오겠다고 가게로 들어갔어요.


친구가 가게에서 나오기를 기다리며 나무 아래에서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어요. 하늘은 시커먼 구름이 뒤덮고 있었어요.


투둑 투둑


기다리던 친구는 오지 않고 하나도 반갑지 않은 비가 내리기 시작했어요. 빗방울이 굵어지는데 친구는 가게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비를 피하기 위해 나무 아래로 깊숙히 들어갔어요.


한참 후에야 친구가 가게에서 나왔어요.


"무슨 맥주 하나 사는데 그렇게 오래 걸려?"

"아제르바이잔 맥주가 없대. 패트병에 들어 있는 것은 다 러시아 맥주라서 겨우 이거 찾았어."


친구는 패트병에 들어 있는 맥주가 전부 러시아제 맥주라 아제르바이잔 맥주 찾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다고 했어요. 친구가 사 온 맥주는 캔맥주. 친구가 돌아왔으므로 이제 숙소로 갈 일만 남았는데...


투다다닥

쏴아아


"어머, 폭우 내리네? 이를 어쩌지?"


친구가 가게에서 맥주를 고르느라 정신 없는 동안 빗방울은 계속 굵어졌어요. 그리고 친구가 제 옆에 오자마자 수도꼭지를 다 열은 것처럼 비가 퍼붓기 시작했어요.


"미안..."


잠깐 지나가는 소나기이기를 바라며 나무 아래에서 비 내리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비는 전혀 가늘어질 생각이 없었어요. 게다가 나무 아래에 몸을 피했어도 나뭇잎을 뚫고 들어오는 놈들 때문에 옷은 계속 젖어가고 있었어요.


"야, 뛰자!"


비가 하도 세게 퍼부어서 눈을 제대로 뜨면 눈으로 비가 들어갔어요. 그래서 바닥을 보며 뛰었어요. 그렇게 먼 거리도 아니었는데 숙소에 돌아가니 완벽히 쫄딱 젖었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 카메라에 물이 들어가면 안 된다는 생각에 카메라 가방은 품에 꼭 안고 뛰었고, 그래서 카메라 가방은 별로 젖지 않았어요.


집에 들어가서 우리가 머무는 방 입구를 찾는데 입구를 찾을 수 없었어요. 게다가 집은 작은 마당이 있는 집이라 지붕 아래에서 비만 피할 뿐, 왔다 갔다 하며 방을 찾는 동안 비를 또 맞았어요.


"여기에요!"


아주머니의 목소리였어요. 우리가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가자 한 자상하게 생기신 할머니께서 우리를 맞아주셨어요.


"얼른 옷 갈아입어. 감기 걸릴라."


할머니는 우리가 쫄딱 젖은 것을 보고는 빨리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셨어요. 일단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으려고 가방을 뒤졌어요.


아차차...


짐을 줄인다고 윗도리는 제대로 챙겨오지 않았어요. 속옷과 바지는 갈아입을 수 있었지만 위는 갈아입을 옷이 마땅치 않았어요. 일단 바지는 갈아 입었는데 위는 갈아입을 옷이 없었어요.



조금 후 나가서 밤길을 걷고 싶은데...이렇게 좋은 풍경을 두고 비 때문에 사진을 찍을 수 없다니...우리에게 셰키에서의 시간은 오늘 밖에 없는데 왜 하늘은 하필 오늘 말썽을 부리는 거니...


아쉬운 마음으로 계단에 있는 창에서 바깥 풍경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왔어요. 안에서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아내고 있는데 할머니께서 다시 들어오셨어요.


"왜 안 갈아입어? 그러면 감기 걸려."

"괜찮아요. 비 그치면 다시 나가려구요."

"그래도 어서 옷 갈아입어. 아들 옷이라도 빌려줄까?"


할머니께서 옷을 빌려주냐고 물어보셔서 괜찮다고 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갔어요. 젖은 셔츠를 벗고 속옷으로 입을 생각으로 가져온 티셔츠로 갈아입었어요. 그새 할머니께서는 차를 끓여오셨어요.


"어디에서 왔니?"

"한국이요."

"여기에서 일하고 있니?"

"아니요. 학생이에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우즈벡어 공부해요."

"우즈베키스탄!"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왔다고 하자 매우 반가워하셨어요.


"혹시 우즈벡어 할 줄 아세요?"

"응. 나 우즈베키스탄에서 살았어."


할머니께서는 젊으셨을 때 우즈베키스탄 샤흐리사브즈에서 사신 적이 있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자기 아들도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자랐고, 아들이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을 매우 좋아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만 만나면 그렇게 반가워할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왜 하루만 머무르니? 키쉬는 안 가니? 여기서 더 머무르다 가렴."


저희도 그러고 싶어요. 여기 정말 마음에 든단 말이에요. 하지만 이미 돈까지 다 지불해서 돌아가야 해요. 참고로 키쉬 Kiş 는 셰키 근처에 있는 도시로, 알바니아 교회가 있는 곳이에요. 보통 셰키에 가면 키쉬까지 보고 간다고 해요. 물론 우리들은 여기 와서 현지인들에게 듣고 알았어요.


"잠깐만 기다려봐. 아들에게 전화 좀 할게."


할머니께서는 아들과 전화를 하더니 아쉬워하며 전화를 끊으셨어요. 아들은 우즈벡어로 대화하고 싶어 하는데, 여기는 우즈벡어를 아는 사람이 없고,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사람들도 잘 오지 않는대요. 그래서 아들이 우리와 우즈벡어로 대화하고 싶어했지만 우리가 당장 내일 아침 바쿠로 다시 떠날 거라 아들을 부를 수 없다고 서운해하셨어요.


우리가 자리잡은 방에 걸려 있는 부부의 초상화는 할머니와 할머니의 남편분 초상화였어요. 할아버지께서는 돌아가셔서 아들과 같이 살고 계시다고 하셨어요. 딸도 있다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우리가 우즈베키스탄에서 어떻게 왔는지, 비행기표는 얼마인지, 우즈베키스탄이 많이 변했는지 물어보셨어요. 정말 우즈베키스탄을 많이 좋아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완벽한 우즈벡어를 구사하는 아제르바이잔인은 이분이 처음이었어요. 호스텔 주인 아저씨는 우즈벡어를 알아들으시기는 했지만 문법이 조금만 어려워져도 잘 이해하지 못하셨거든요. 하지만 할머니께서는 어떤 문법을 쓰든 다 알아들으셨어요.


할머니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할머니께서 내일 아침 일찍 떠나야할테니 쉬라고 하시며 방에서 나가셨어요.


"이제 할와 먹자."


할머니께서 안에 있는 접시, 포크, 나이프를 사용하고 싶은 대로 사용해도 좋다고 하셨어요. 밖에는 아직도 비가 퍼붓는 중. 일단 할와를 먹고 나서 다시 날씨를 보며 어떻게 할 지 생각하기로 했어요. 친구는 맥주를 땄어요. 저는 할와를 뜯었어요.



이것이 바로 셰키 할와. 아까부터 정말 궁금했던 셰키 할와를 드디어 먹을 시간이 되었어요.



드디어 입에 넣었어요.


역시나 이 단 맛!


현지화 테스트용으로 쓸 수 있는 그 단 맛이었어요. 이 찐득찐득하고 혀를 꽉 눌러버리는 느낌! 바클라바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팔아요. 하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파는 바클라바에는 이런 찐득찐득하고 혀를 꽉 눌러버리는 느낌이 없었어요. 우즈베키스탄 할와는 한국에서 파는 할와보다 오히려 덜 달아서 그 묵직한 단 맛이 없었어요. 이것은 혀를 누르는 묵직함과 입안을 설탕으로 치덕치덕 발라대는 그 단 맛이 있었어요. 이 할와의 독특한 점은 계피향이 난다는 것.


"나 못 먹겠어. 계피향 때문에 더 먹기 힘들어."


친구는 딱 한 조각 먹고 못 먹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남은 것을 전부 저 혼자 먹어치웠어요.


하...많다...


친구가 한 조각 먹다가 나가떨어졌기 때문에 나머지는 전부 제 몫. 아무리 바클라바를 좋아하는 저라 해도 이건 정말 많았어요. 그래도 열심히 먹었어요. 2/3까지 먹자 그때부터는 힘들었어요. 입이 달아서 못 먹는 것보다 속이 느글거렸어요. 고농축 설탕이 배 속에 들어가며 위산을 흡수하며 적정 농도로 낮아지는 기분이었어요.


"다 먹었다."


어쨌든 다 먹었어요. 이렇게 먹었으니 최소 6개월은 바클라바 먹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겠지. 셰키 할와 500그램을 거의 혼자서 다 해치웠다는 뿌듯함과 함께 창밖을 보았어요.



나갈 날씨는 아니었어요.


이 집의 특징은 침대가 정말 많다는 것.




여기는 대체 무슨 집이길래 이렇게 침대가 많을까? 주인 할머니께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지만 정말 궁금했어요. 공간이 된다 싶은 곳은 모두 침대였어요. 예전에 일가족이 모여 살던 집이 아니라 '일족'이 모여 살던 집이었을까요? 침대 없어서 잠을 못 잘 일은 없어 보였어요.


우산도 안 가져왔기 때문에 밖에 나갈 수가 없었어요. 시계를 보니 그다지 이른 시각도 아니었어요.


"잠이나 자자."


이렇게 셰키 여행을 끝내야한다는 것이 억울했지만 별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이렇게 비가 퍼붓는다면 사진을 찍기도 글렀고, 제대로 거리를 걷기도 글렀어요. 창밖을 보며 비 때문에 저 아름다운 밤 풍경 속을 걸을 수 없다며 혼자 열받을 바에는 그냥 일찍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는 게 낫겠다고 판단했어요.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