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죽겠다."
졸리고 다리 아프고 난리났어요. 춥지 않은 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어요. 도두항 촬영이 끝나면서 모든 일정이 다 끝났어요.이제 도두동에 있는 24시간 찜질방에 가면 따스한 온탕에 들어가 몸을 녹일 수 있고, 바닥에 드러누워 잠을 청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도두항에서 24시간 찜질방까지는 조금 걸어가야 해.
한 걸음도 안 걷고 싶었지만 안 걸을 수 없었어요. 도두항에서 24시간 찜질방까지 가는 방법은 걸어가는 것 뿐이었거든요. 두 발을 질질 끌며 찜질방을 향해 걸어갔어요.
'이건 무조건 냉찜질해야 한다. 안 하면 내일 못 걸어.'
다리 상태가 안 좋았어요. 다리에 피로가 너무 많이 쌓였어요. 이게 느껴지고 있다는 것은 100% 다음날 다리 상태가 영 아닐 거라는 것이었어요. 다음날 심야시간 새벽에 어디를 갈 지 전혀 정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그러나 밤새 걸을 거라는 사실은 확실했어요. 그 점을 고려하면 무조건 조금이라도 피로를 풀어줘야 했어요. 냉찜질하지 않고 그냥 잤다가는 다음날 심야시간 새벽에 호된 댓가를 치뤄야만 했어요.
어둠에 파뭍혀 시커먼 도두봉을 지나 용담해안도로로 갔어요.
'이거 사진 찍으면 제대로 나올 건가?'
일단 사진을 한 장 찍었어요.
사진에서는 바다도 하늘도 전혀 분간 안 되었어요. 위 사진은 이때 촬영한 사진에서 대비와 밝기를 손대서 저 정도 살려낸 거에요. 실제로는 바다도 까맣고 하늘도 까맸어요. 하늘과 바다가 전부 한덩어리였어요.
여기는 진짜로 어두웠어요.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어지간히 어두워도 흔들리는 사진은 안 찍혀왔어요. 어두울 때 스마트폰 자동 모드로 사진을 찍으면 셔터스피드 확보를 위해 ISO를 최대치로 끌어올려버려요. 그래서 사진이 엄청 자글자글하게 나오는 편이에요. 대신 안 흔들리게 찍히구요. 그러나 이 상황은 대체 어찌나 어두운지 그런 스마트폰 카메라조차 사진이 흔들렸어요.
마지막으로 한 장 더 찍어봤어요.
바로 위 사진은 여행기 쓰면서 밝기와 대비를 조정한 사진이에요. 실제 제가 봤을 때 풍경은 바로 위 사진보다는 하나 더 뒤에 있는 사진에 더 가까운 상황이었어요. 어선도 출항하지 않아서 어디가 바다이고 어디가 하늘인지 수평선을 아예 가늠해볼 수 조차 없었어요. 어선이 많으면 어선 불빛 때문에 바다가 보다 밝아보여요. 특히 한치잡이 배는 불빛이 매우 강해요. 그러나 이날은 바다에 떠 있는 어선이 아예 없어보였어요.
'그러니 아까 도두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이 많았겠지.'
도두항에 정박해 있는 어선이 많았어요. 밤에 조업하는 배가 많았다면 도두항에 어선이 그렇게 많이 정박해 있지 않았겠죠.
사진을 다 찍은 후 찜질방을 향해 걸어갔어요.
아까 친구들과 만나서 고기 먹을 때가 떠올랐어요. 제가 이날은 도두동에 있는 24시간 찜질방에서 잠을 잘 거라고 하자 친구가 제게 조언했어요.
"야, 찜질방에서도 마스크 끼고 자."
친구의 조언을 곰곰히 생각해봤어요.
'진짜 마스크 끼고 자야 하나?'
잘 때 마스크 쓰고 자는 것은 그럴 수 있어요. 그렇지만 찜질방 가면 당장 목욕부터 해야 했어요. 목욕하는데 마스크를 쓰고 할 수는 없잖아요. 문화에 따라 아랫도리를 홀라당 벗지 않고 목욕하는 곳들도 있다고 해요. 그건 아랫도리니까 가능한 거고, 얼굴을 가리고 어떻게 씻어요. 수건으로 얼굴 가렸는데 수건 젖으면 그게 물고문이죠.
'운 좋기를 바라자.'
도두동에 있는 24시간 찜질방 앞에 도착했어요.
아주 안심되는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어요.
중국인, 대만인, 홍콩인의 출입을 금지합니다.
도두동 24시간 찜질방 사우나 입구에는 중국인, 대만인, 홍콩인 출입을 금지한다고 적혀 있는 플래카드가 아주 눈에 잘 띄게 걸려 있었어요. 이것을 보니 너무나 안전해보였어요. 서울은 매일 중국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코로나 19 바이러스 덩어리 중국인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거든요. 바이러스 살포하는 중국인들이 득시글한 서울보다 이 찜질방이 100배 더 안전해 보였어요.
'대만인들 참 불쌍하네.'
타이완은 중국 우한 폐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에서 안전한 나라였어요. 그러나 이렇게 타이완인들까지 막을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납득되었어요. 중국인들이 자기들은 타이완인이라고 우기면 그걸 어떻게 구분해요. 그나마 중국인들은 아주 약간 구분 가능한 경우가 있어요. 패션이 좀 티나거든요. 하지만 홍콩인과 타이완인은 정말 구분하기 어려워요. 중국인은 시진핑 욕해보라고 하면 구분해낼 수 있겠지만 홍콩인과 타이완인은 그것도 안 먹혀요. 심지어 한자도 중국인들은 간체를 쓰지만 홍콩인과 타이완인은 똑같이 번체를 써요. 중국인, 홍콩인이 자신들이 타이완인이라고 우기면 여권 검사하지 않는 한 알아낼 방법이 없어요.
찜질방 안으로 들어갔어요. 15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고, 15시간을 넘어가면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고 했어요.
'15시간이면 잠 푹 자고 일어나도 되겠다.'
일단 목욕탕으로 들어갔어요. 바로 냉찜질할 수 없었어요. 몸이 차가워져 있었거든요. 온탕에 들어가서 몸을 데웠어요. 온탕에서 몸을 데운 후 냉탕으로 들어갔어요. 상반신이 추워서 견딜 수 없었어요. 그래서 5분 정도 있다가 다시 온탕으로 들어갔어요. 온탕에서 5분 정도 몸을 데운 후 또 냉탕으로 들어가서 냉찜질을 했어요. 그렇게 탕을 7번 왔다갔다 하면서 두 다리를 냉찜질했어요.
냉찜질을 마친 후 찜질방으로 올라갔어요. 자리를 깔고 드러누웠어요. 콘센트에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를 충전하기 위해 충전잭을 꽂았어요. 꽤 깊게 잔 것 같았어요. 눈을 떠보니 1시간 잤어요.
'다시 자야겠다.'
아무 것도 덮지 않고 자려고 하니 으슬으슬 추웠어요. 따뜻한 곳이 없는지 찾아봤어요. 수면실이 있었어요. 수면실에 콘센트가 있는 자리가 있나 살펴봤어요. 있었어요. 수면실로 자리를 옮겨 잠을 청했어요.
이번에는 정말 깊게 잤어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오후 2시였어요.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를 확인해봤어요. 완전히 충전되어 있었어요.
'이제 다른 스마트폰 배터리 충전해야겠다.'
이따 또 심야시간 새벽에 밤새 돌아다니며 영상을 촬영해야 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2개 모두 완전히 다 충전되어 있어야 했어요. 목욕탕으로 내려가 캐비넷에서 가방을 꺼내 수면실로 들어왔어요.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를 충전하기 시작했어요.
'여기 와이파이 될 건가?'
와이파이가 있는지 확인해봤어요. 와이파이가 있었어요.
'아까 새벽에 찍은 영상도 다 유튜브에 업로드해야겠다.'
스마트폰 보조배터리가 완충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다시 자고 싶었지만 잠이 오지 않았어요. 이왕 이렇게 된 바에는 밤새 촬영한 영상들을 유튜브에 업로드하며 스마트폰 보조배터리가 완충되기를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찜질방 와이파이를 이용해 밤새 촬영한 영상들을 유튜브에 하나씩 업로드하기 시작했어요. 와이파이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어요. 그래도 제 스마트폰 테더링을 이용해 업로드하는 것보다는 몇 배 더 빨랐어요.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스마트폰 보조배터리가 완충되기만을 기다렸어요.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충전은 매우 느렸어요. 유튜브에 영상을 전부 업로드했지만 여전히 완충되려면 멀었어요.
'뭐라도 먹고 싶은데...'
찜질방에서 식사를 사먹기에는 돈이 아까웠어요. 마침 다른 친구와 연락이 되었어요. 친구와 저녁에 동문시장에서 몸국을 먹기로 약속했어요.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를 계속 쳐다봤어요. 여전히 완충되려면 한참 남았어요.
'결국 이게 나를 심야시간 여행하게 만드는구만.'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만 아니라면 바로 밖으로 나가서 뭐 좀 사 먹고 제주시 낮 시간 풍경을 촬영했을 거였어요. 문제는 스마트폰 보조배터리가 완충되려면 까마득하게 멀었다는 점이었어요. 이게 다 충전되어야 밖에 나갈 수 있는데 충전되려면 멀고도 멀었어요. 무턱대고 밖에 나가면 스마트폰 보조배터리 충전한다고 쓸 데 없이 카페 같은 곳 가서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예상컨데 이 속도라면 무조건 낮 시간 영상 촬영은 못 할 거였어요. 무조건 한밤중에 영상을 촬영해야만 했어요. 제주도 내려올 때만 해도 심야시간 영상을 촬영해야겠다는 계획만 있었지, 진짜 제주도 심야시간 야간 여행을 할 계획까지는 없었어요. 그러나 강제로 그렇게 되어버렸어요.
오후 5시가 되어서야 충전이 다 되었어요. 가방을 정리해 목욕탕 캐비넷에 집어넣은 후 다시 몸을 씻으러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어요. 다시 한 번 냉찜질과 온찜질을 번갈아가며 했어요. 확실히 효과가 좋았어요. 다리 피로가 엄청나게 많이 풀렸어요. 운동선수들이 괜히 냉찜질하는 것이 아니에요. 냉찜질을 해주고 안 해주고 차이는 상당히 커요. 몸에 느껴질 정도로 많이 차이나요.
오후 6시. 찜질방에서 나왔어요.
버스를 타고 동문시장으로 갔어요.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어요. 웃기면서 슬픈 제주도의 현실에 대해 들었어요. 제주도 무비자 중단하고 관광객이 안 와서 오히려 제주도는 상황이 나아졌다는 이야기였어요. 애초에 제주도가 감당할 수 없는 인원을 받아들여서 제주도가 몸살을 앓고 있었어요. 그런데 중국 우한 폐렴 때문에 제주도 무비자 중단되고 육지에서 내려오는 관광객도 줄어들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는 것이었어요.
현재 제주도에서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지하수 수위가 계속 낮아지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무턱대고 관광객을 많이 받아들이고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지하수 이용량이 급증했고, 이로 인해 제주도 지하수 수위가 자꾸 낮아져가고 있어요. 제주도는 섬이기 때문에 모든 물을 지하수에 의존하고 있어요. 지하수 수위가 일정 정도 이상 낮아지면 바닷물이 역류해 들어와요. 이러면 대참사 나는 거에요. 친구는 제게 이 문제가 여전히 하나도 해결 안 된 상태라고 알려줬어요.
친구가 다음날 아침 일찍 서울로 올라가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녁 식사만 같이 하고 헤어졌어요. 친구와 헤어진 후, 신제주에 살고 있는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전날 봤던 친구 중 하나였어요. 이 친구는 이날 자기가 새벽 2시까지 같이 놀 수 있다고 아주 자신있게 말한 친구였어요.
전화해보니 갑자기 말이 바뀌었어요. 자정까지밖에 못 논다고 말하면서 일단 신제주로 넘어오라고 했어요. 그래서 신제주로 넘어갔어요.
신제주로타리에 도착해 친구에게 연락했어요. 이번에는 자기 집으로 오라고 했어요. 친구 집 앞까지 가서 다시 전화했어요.
"우리 집으로 올라와."
"아니, 너가 내려와."
친구는 일단 자기 집으로 올라오라고 했어요. 그러나 전날 친구 상태로 미뤄봤을 때, 이 친구 집 안으로 들어가면 100% 제 일정 전체가 개판이 될 거였어요. 친구에게 전날까지 새벽 2시까지는 같이 놀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패기는 싹 사라져버렸어요. 일단 아래로 내려오라고 했어요.
친구가 아래로 내려왔어요.
"어디 갈 거?"
"글쎄...일단 카페라도 갈까?"
어디로 걸어갈지 딱히 정하지 않은 상태였어요. 친구 몸 상태가 영 아니라는 것을 전날 보고 눈치챘기 때문에 일단 어디 괜찮은 카페 있으면 거기 가자고 했어요.
"에이어바웃 카페 갈래?"
"거기 탐라도서관 근처에 있는 거 아니?"
"아, 그랜드 호텔 쪽에도 하나 있어."
"그러면 거기로 가자."
에이어바웃 카페로 가서 앉아서 음료 마시며 어디를 향해 걸을지 생각해보기로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