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예습의 시간 (2019)

[일본 여행] 예습의 시간 - 31 일본 최초 Bar 바 - 일본 도쿄 아사쿠사 카미야바 日本 東京 浅草 神谷バー

좀좀이 2019. 11. 2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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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쿠사로 돌아가기 위해 긴자역으로 갔어요.


일본 도쿄 지하철 긴자역


긴자역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어요.


"이 포스터는 뭐지?"


일본 질서 포스터


얼핏 보니 교통질서 포스터 같았어요. 일단 사진을 찍고 무슨 내용인지 잘 살펴봤어요. 어미새가 IC 교통카드를 들고 있었어요. 하지만 지하철 개찰구 문은 닫혀 있었어요. 어미새는 매우 크게 당황한 모양이었어요. ピンポーン! 이라고 적혀 있는 건 '핑퐁!'이니까 의성어겠죠. 지하철 개찰구에 무단승차자가 있다고 경고 알람 울리는 거요. 어미새는 분명히 IC카드를 들고 있는데 왜 통과 안 되냐고 매우 당황한 모양이었어요.


뒤에 따라오는 아기새들. 아기새들이 문제가 발생한 원인에 대한 의견을 열심히 개진하고 있었어요. 카드를 똑바로 댄 거 맞냐, 잔액 부족 아니냐, 다른 IC카드랑 중첩된 거 아니냐 중얼거리는 것 같았어요. 여기에서 제게 정답을 고르라고 한다면 저는 3번을 선택할 거에요. 교통카드 찍을 때 순간 당황하게 만드는 경우는 바로 다른 IC카드랑 겹쳐 있어서 카드가 2개 읽혀 오류난 경우거든요. 잔액부족이면 당황할 거 없이 다시 충전하면 되요. 카드 제대로 안 찍었다면 그냥 또 찍으면 되구요. 하지만 다른 IC카드랑 겹쳐 있어서 오류가 생기는 것은 조금 달라요. 이 오류는 일어날 때도 있고 안 일어날 때도 있거든요. 기계의 민감도에 따라 발생하는 때가 꽤 차이나서 사람 제일 당황하게 만들어요.


새치기 이야기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교통카드 사용법을 알려주는 포스터였어요. 한국도 일본도 최신 문물은 어른들보다 어린 아이들이 더 잘 알아요.


일본 동전 공중전화기


동전을 넣고 통화하는 공중전화기가 있었어요. 공중전화기 자체는 그렇게 인상적일 것도 없고 놀라울 것도 없었어요. 우리나라도 아직까지 공중전화기가 있어요. 예전 마그네틱 카드를 집어넣고 사용하는 공중전화기는 안 보이지만 동전 및 IC카드를 집어넣고 사용하는 공중전화기는 아직도 여기저기 있어요. 예전처럼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보고 놀랄 정도는 아니에요.


그러나 일본 와서 공중전화기를 보니 한국에서 보는 것과 느낌이 아주 달랐어요.


이건 왠지 많은 일본인들이 동전 넣고 사용할 거 같아.


에스컬레이터 없는 계단에 아주 제대로 혼쭐난 하루를 보낸 후였어요. 일본이 얼마나 아날로그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지, 디지털화에 대해 느리게 반응하는지 직접 몸에 와닿게 경험할 일은 없다시피했어요. 인터넷 잘 사용하고 있었어요. 제가 일본 와서 무슨 팩스를 보내야만 하는 일을 겪었던 것도 아니에요. ATM에서 돈 인출해야 할 일도 없었어요. 일본인들도 스마트폰 잘 사용하고 있었어요. 일본이 아직도 많은 부분에서 아날로그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직접 몸소 체험해볼 일은 아직까지 없었어요.


그런 제게 충격을 준 것이 바로 이날이었어요. 계단에 제대로 시달렸거든요. 한국은 물론이고 중국도 에스컬레이터는 여기저기 잘 설치되어 있어요. 물론 후줄근한 건물이라면 없는 곳도 많죠. 그러나 나름 규모가 되고 신식 건물이라면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는 기본으로 설치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일본 도쿄는 그렇지 않았어요. 계단 오르내려야 할 일이 상당히 많았어요. 그리고 그 정점이 바로 이토야였어요.


그래서 이 공중전화기가 다르게 보였어요. 한국에서 공중전화를 보면 볼 때마다 '저거 지금도 쓰는 사람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곤 했어요. 있기야 있겠죠. 아주 가끔 있을 거에요. 가뭄에 콩 나듯 있겠죠. 한국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보면 1년에 두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이기는 하지만 몇십 원 남아 있는 공중전화기를 볼 때가 있기는 하거든요. 그러나 계단에 시달리고 난 후 일본의 공중전화기를 보니 이 전화기는 아직도 사용하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 같았어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것 같았어요.


지하철 승강장으로 갔어요. 조금 기다리자 아사쿠사로 가는 지하철이 왔어요. 지하철을 탔어요.


일본 미학


"으악!"


이것이 일본의 미란 말입니까. 일본인들은 이런 것을 좋아한단 말입니까. 일본인 평균 시력은 알고 보니 세계 제일이었단 말입니까!


일본 지하철 광고


보자마자 눈 엄청 아프고 머리 지끈거리는 일본 지하철 광고. 보자마자 눈이 빙빙 돌 거 같았어요. '일본땅에서 여백의 미란 죄악입니까!'라고 속으로 외치는 상태였어요. 이건 그것의 끝판왕이었어요. 글자들의 테러. 글자로 이렇게 사람 두뇌를 지끈거리게 만들 수 있다. 이런 것을 증명해보이고 싶은 건가. '축소 지향 일본인'이라지만 이건 우겨넣어도 너무 많이 우겨넣었잖아!


일본어를 아예 모르면 그냥 정신 사나운 정도라고 보고 넘어갔을 거에요.


왜 나는 이것을 읽으며 괴로워하고 있는가?


나 일본어 알아. 한자 알아. 저거 읽으면 대충 무슨 말인지 알아. 나의 눈은 한 줄씩 저걸 따라가고 있어. 그리고 내 두뇌는 눈에 들어온 글자들을 보고 읽고 정보를 받아들여. 제일 오른쪽 빨간칸에 있는 것만 다 봤는데 벌써부터 두뇌는 정보 초과잉유입이라고 난리. 시사프로그램 및 다큐멘터리에서 봤던 프랑스의 푸아그라 만들기. 거위 목에 관을 꽂고 사료를 쏟아부어넣어. 관을 뽑으면 뱃속에 초과잉투입된 사료가 거위 입 밖으로 마구 튀어나와. 딱 그 거위가 된 기분. 두뇌는 절규한다.


과거 한국의 시사잡지 표지 및 광고도 저거랑 비슷했어요. 그러나 저렇게 글자를 우겨넣을 수 있는 한 최대로 꽉꽉 채워놓지는 않았어요. 더 웃긴 것은 배경색은 프랑스 깃발 삼색기와 똑같은 파랑-흰색-빨강 구조. 아주 그냥 너는 이걸 보며 프랑스 어딘가에서 괴로워하며 밤을 보내고 있는 푸아그아 목적으로 사육중인 거위 이불몽땅의 고통에 동조되어보라고 작정하고 만든 건가.


정말 한국과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야.


뼈저리게 느꼈어요. 한국과 일본은 서로 비슷하다고 느껴요. 그러나 가까운 것 같지만 알고 보면 너무나 먼 당신. 왜 한국과 일본이 서로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라고 하는지 와닿았어요. 안구테러 참교육을 당하면서요.


한국에서 지하철 광고를 저렇게 만들면 아마 엄청 혼날 거에요. 진심 귓싸대기 맞을 수도 있을 거에요. 요즘은 그래도 폭력에 대해 민감한 사회이니 그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예전이라면 그랬을 거에요. 한국에서 지하철 광고를 저 따위로 만들면 엄청나게 욕먹어요. 눈에 들어오는 게 하나도 없고 보자마자 인상 찌푸리게 만드니까요. 어떤 정보를 중점적으로 제공하고 싶어하는지 하나도 알 수 없어요. 게다가 지하철 객차 안에서 서서 저걸 일일이 다 읽을 사람도 없구요.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은 글자가 하도 빽빽해서 뭐가 뭔지 보이지도 않아요. 시력 3.0 넘어간다는 몽골인 시력쯤 된다면 보일 거에요.


그러나 일본은 달랐어요. 저게 지하철 내부에 걸려 있었거든요. 저것도 나름대로 아름다워보이는 구석이 있으니까 광고 시안이 통과되어서 완성되어 저기 걸려 있는 거겠죠. 한국이라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일. 한국에서 미술 시간에 저런 식으로 디자인하면 미술 선생님한테 혼나요. 그러나 일본은 아니었어요. 일본에서 교육받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지만 쉽게 유추할 수 있었어요. 저게 걸려 있다는 것은 저 디자인도 좋다고 본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Metro in Japan


아사쿠사가 가까워지자 지하철 내부는 매우 한적해졌어요. 글자가 수두룩 빽빽한 지하철 내부 광고와 아주 다른 풍경이었어요.


아사쿠사역에 도착했어요. 지하철에서 나왔어요.


일본 도쿄 아사쿠사역


지하철에서 내리자 광고 하나가 보였어요.


일본 지하철 이용 매너 안내 포스터


지하철 이용 매너 안내 포스터였어요. 광고 디자인이 매우 인상적이었어요. 복고풍 디자인이었어요. 1920년대에서 1950년대쯤 분위기가 저러지 않을까 싶었어요.


재미있는 점은 오른쪽 내용이었어요. 걸으면서 휴대폰 사용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일본도 이 문제는 똑같이 겪고 있는 모양이었어요.


지하철역에서 나왔어요.


"너 여기 근처에 일본 최초의 바 있는 거 알아?"

"어? 진짜?"


'일본 최초의 바'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어요.


"너 그런데 술 안 마시잖아."

"괜찮아. 주스 같은 거 시켜서 마시면 되지."


일본 최초의 바는 한 번 가보고 싶었어요. 어떤 곳인지 마구 궁금해졌어요. 친구에게 바로 가자고 했어요. 친구는 내일 가면 안 되겠냐고 말했어요.


"아니. 오늘 가자. 내일은 우리 짐 싸야 하잖아."


다음날 밤은 도쿄에서의 마지막 밤이었어요. 모레 아침에 나가서 돌아다니기 위해서는 다음날 밤에 짐을 다 싸놔야 했어요. 귀국 준비를 해야 하는 날이었기 때문에 일정을 늘리는 것을 최대한 피해야 했어요. 못 가본 곳이 있다면 어떻게든 이날 밤에 다 끝내는 것이 좋았어요. 그래야 실상 여행 마지막날이라 할 수 있는 다음날에 가벼운 마음으로 돌아다닐 수 있었거든요. 다음날로 미뤘다가 재수없게 일정이 꼬여버리면 연쇄파동이 일어날 거였어요. 문제는 모레 귀국이었기 때문에 그 잘못된 일정을 잘 해결할 시간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어요. 만약 다음날 일정이 꼬여버린다면 못 간 곳은 못 간 채 귀국해야만 했어요.


그래서 친구와 함께 일본 최초의 바로 갔어요. 일본 최초의 바는 일본 도쿄 아사쿠사 카미야바 日本 東京 浅草 神谷バー 였어요.


카미야 바 안으로 들어갔어요. 사람들이 많았어요. 엄청 시끄럽고 정신없었어요. 여기 저기에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고 있었어요.


'왜 점원이 우리한테 안 오지?'


계산대 앞 메뉴 모형이 진열되어 있는 곳에 서 있었어요. 아무도 저와 친구에게 신경쓰지 않았어요. 뭔가 이상했어요. 들어와서는 안 되는 곳에 들어온 기분이었어요. 직원 중 그 누구도 새로 들어온 손님에게 관심을 단 하나도 주지 않고 있었거든요.


'여기 뭐야? 왜 이래?'


가만히 서서 점원이 오기를 기다렸어요. 점원은 안 왔어요.


'잘못 들어왔나?'


멀뚱멀뚱 서서 계산대 직원을 바라봤어요. 술잔을 나르는 직원을 쳐다봤어요. 그러나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계산대를 계속 쳐다봤어요. 새로 들어온 손님이 있었어요. 손님은 들어오자마자 계산대로 가서 뭐라고 이야기하고 계산했어요.


"아, 여기 선불제구나!"


카미야 바는 메뉴를 골라서 결제부터 하는 시스템이었어요. 결제를 하면 직원이 딱지 같은 것을 줬어요. 그 딱지 같은 것을 갖고 아무 자리나 가서 앉으면 되었어요.


"여기는 덴키브렌이 유명하대."

"그거 독한 거지?"

"어."

"아...그러면 안 마실래."


제일 만만해 보이는 것을 찾아봤어요. 무슨 로즈 와인 같은 게 있었어요. 이것이 제일 만만해보였어요. 그래서 와인 한 잔을 결제한 후, 딱지를 들고 빈 자리로 가서 앉았어요. 좌석에 앉자 직원이 와서 딱지를 가져갔어요.


日本 東京 浅草 神谷バー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어요. 이렇게 시끄럽고 활기찬 모습은 일본 와서 처음 겪어봤어요.


조금 기다리자 제가 주문한 술이 나왔어요.


일본 술 여행


역시 아직 내가 술맛을 아는 것은 무리야.


썼어요. 인생의 쓴맛을 몇 방울 쥐어짜서 집어넣은 맛이었어요. 색은 고운데 썼어요. 술은 아직 제게 무리였어요. 호로요이, 맥주 정도가 제가 맛있다고 느낄 수 있는 최대치였어요.


도쿄 여행


이렇게 밝은 표정으로 신나게 떠들어대는 일본인들은 처음이야.


일본 여행 와서 이렇게 밝고 왁자지껄한 곳은 처음이었어요. 누렇고 조금 어두운 조명. 그러나 분위기만큼은 엄청나게 밝았어요. 일본인들이 이렇게 활기차게 웃고 떠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어요. 신주쿠도 긴자도 아사쿠사도 모두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깔려 있었거든요. 이렇게 모든 사람이 신나고 즐거운 분위기는 일본 도쿄 여행 와서 처음이었어요.


일본 도쿄 여행 여행기예습의 시간 - 31 일본 최초 Bar 바 - 일본 도쿄 아사쿠사 카미야바 日本 東京 浅草 神谷バー


일본 도쿄 아사쿠사역 근처에 있는 카미야 바 神谷バー 는 일본 최초의 서양식 바에요.


카미야 바는 1880년 4월에 개업했어요. 神谷伝兵衛 라는 일본인이 자신의 고향 이름을 따서 みかはや銘酒店 라는 이름으로 개업했다고 해요. 이때는 탁주를 판매하는 술집이었다고 해요. 그리고 1년 뒤인 1881년, 카미야바에서 수입 포도주 판매를 시작했어요.


1882년. 카미야 바는 수입 브랜디 칵테일을 제조해 판매 개시했어요. 이 브랜디 칵테일 이름은 덴키브렌 電気ブラン, デンキブラン 이었어요. 이 수입 숙성 브랜디 이름이 덴키브렌 - 한국어로 번역하면 '전기 브랜디'가 된 이유는 당시 일본에서는 전기와 관련 없더라도 새로운 것의 이름 첫 머리에 '전기' 電気, デンキ 를 붙이는 것이 유행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이때는 일본에서 아직 전기가 일반적이지 않은 시절이었대요.


덴키브렌은 일본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매우 좋았대요. 원래 이름에 電気 라는 단어를 붙인 것은 단순히 유행을 따라한 것 뿐이었어요. 그런데 이 브랜디 도수는 45도였어요. 당시 일본에는 이 정도에 달하는 독주가 거의 없었다고 해요. 덴키브렌을 마신 일본인들은 독주가 주는 짜릿짜릿한 느낌을 받고 전기에 감전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해요. 게다가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서 정전되고 불이 깜빡깜빡 들어오는 분위기에서 덴키브렌은 전기에 감전된 느낌을 주어서 더욱 잘 어울렸다고 해요.


일본여행


1912년 4월 10일. 매장 내부가 서양식으로 개조되었고, 가게 이름이 카미야 바 神谷バー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1921년에는 현재 사용하고 있는 건물이 완공되었다고 해요.


이후 시간이 많이 흐른 후인 1960년에 양식 부문 영업이 개시되었어요.


여기 왔으면 원래 마셔야 하는 것은 덴키브렌이었어요. 그러나 그 독주를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아서 얌전히 와인 한 잔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카미야바


가게 밖으로 나왔어요.


일본 도쿄 아사쿠사 여행


카미야바에서는 이런 안주 및 양식을 판매한대요.


일본 음식


일본 양식


이제 진짜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어요. 숙소로 가기 위해서는 아사쿠사 센소지를 가야 했어요. 아사쿠사역에서 센소지까지 간 후, 센소지를 넘어가야 숙소가 있었거든요.


'일본인들도 저렇게 쾌활하게 떠들고 웃을 수 있구나.'


뜨뜻한 밤바람을 맞으며 걸었어요. 저렇게 활기차게 웃고 떠드는 일본인들 모습을 봤다는 것에 큰 의의가 있었어요. 조심스럽고 감정을 절제하려고 하는 일본인들만 보다 저렇게 즐거운 감정을 자연스럽게 마구 폭발시키는 일본인들을 보니 매우 색달랐어요. 덴키브렌은 안 마셨어요. 그러나 일본 최초의 바를 가본 경험 이상으로 좋은 경험을 했어요. 단순히 일본 최초의 바를 가봤다는 것에만 의의가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신나게 웃고 떠들며 술 마시는 일본인들을 본 것에도 큰 의의가 있었어요.


일본 도쿄 아사쿠사 센소지


센소지까지 왔어요.


Asakusa photo


"다녀왔습니다."


오늘도 어김없이 아사쿠사 센소지에 퇴근 도장을 찍었어요. 숙소가 아사쿠사역에서 센소지를 지나가야 나오다보니 매일 출퇴근 도장을 찍고 있었어요.


일본 도쿄 야경 사진


"이제 들어가서 쉬어요."


센소지가 오늘 하루 고생 많았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어서 숙소 들어가서 쉬라고 웃으며 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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