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19 투르크메니스탄 투르크멘바쉬

좀좀이 2012. 8. 28.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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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나와 거리로 나왔어요. 기차역 건물을 통과하지 않고도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구조여서 건물 안은 들어가지 않았어요.


기차역에서 나오자마자 달려드는 택시기사들. 버스를 타고 가든 걸어 가든 웬만해서는 돈을 아끼고 택시를 탈 마음이 없었어요. 그래도 혹시 모르므로 가격을 물어보았어요.


"항구."

"5마나트."

"에...안 타요."


일단 항구는 기차역에서 나와 오른쪽으로 쭉 가면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택시 요금은 한결 같이 5마나트를 불렀어요. 3마나트면 타겠는데 모두가 5마나트라고 불러서 택시 기사를 뒤로 하고 길을 건넜어요.




정말 '워크잘'스럽게 생겼네...


철 냄새가 풍길 것 같은 바다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차역. 아무리 보아도 저건 놀이동산이지 기차역으로 보이지 않았어요. 정말 이 나라 정부의 취향은 알 수가 없었어요. 굳이 정의를 내리자면 '어린이스러움'. 사실 니야조프의 여러 막장 정책들도 보면 지극히 어린이스럽죠. 자기 몸에 안 좋다고 전부 금연하라고 하지 않나, 자기가 보기 싫다고 TV에 나오는 사람들 금니 못하게 하지 않나, 교통편 좋으니 아프면 모두 수도에 오라고 하지 않나...지극히 유아적 발상의 연속. 도시 디자인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냥 자기 좋아하는대로 두서 없이 이것 저것 막 지어놓은 느낌.


이 나라에서 정말 인상적이고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하얀 대리석으로 도배한 건물이 아니라 기차역이었어요. 투르크메나바트 기차역은 놀이동산 매표소, 아슈하바트 기차역은 놀이동산 가운데에 있는 광장, 투르크멘바쉬 기차역은 놀이동산의 한 코스. 이 나라를 지나오며 우즈베키스탄과 큰 차이를 느끼지 못했지만, 딱 하나 우즈베키스탄과 너무나 큰 차이를 보였던 것이 바로 기차역이었어요.


오늘은 2012년 7월 4일. 투르크메니스탄에 들어온지 4일째. 숨을 돌리고 싶었으나 숨을 돌릴 틈이 없었어요. 쫓기듯 다니고 일을 보았고, 지금 역시 또 쫓기듯 가야할 곳이 있었으니, 그곳은 바로 항구.



역 맞은편에 있는 동상 사진을 찍고 항구를 향해 걷기 시작했어요. 아직까지는 견딜 만한 짐이었어요. 이 정도라면 1km 정도는 거뜬히 걸을 수 있어! 5마나트로 과자 사먹을 거야! 마음은 벌써 항구를 향해 뛰어 가고 있었어요. 그러나 몸은 감기가 들었는지 무겁고 콧물이 조금 나왔어요. 그 풀어 버리자니 휴지가 아깝고 안 풀고 참자니 신경 쓰이는 그 정도의 콧물이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있었어요.


나의 근성은 이 정도로 꺾이지 않아!


고작 책 몇 권 늘어났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어요. 무게가 많이 늘어나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힘들다고 하는 건 부끄러웠어요. 콧물을 훌쩍이며 오기로 걸으려고 하는데 이날따라 정말 몸이 무거웠어요. 게다가 날이 아슈하바트만큼 덥지도 않았어요. 타슈켄트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가벼운 감기 걸리는 건 흔한 일이에요. 덥다고 에어컨 빵빵하게 틀고 이불 안 덥고 자면 다음날은 가벼운 감기 확정. 그런데 이게 알면서도 또 잘 안 되는 거라 종종 걸리곤 했어요. 그러나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이 바로 강한 햇볕 때문이었어요. 강한 햇볕을 쬐면 가벼운 감기 정도는 저절로 다 나았거든요. 그런데 투르크멘바쉬는 날씨는 맑은데 감기를 치료해줄 만큼의 강렬한 햇볕과 더위를 주지 못하고 있었어요. 밤새 하도 웅크리고 자서 몸은 다 굳어버린 듯 했고, 콧물은 계속 신경을 긁어댔어요.


"항구 어디에요?"

"저기로 쭉 가야 해."


헐...엄청 머네...


지나가는 아저씨께 항구가 어디냐고 하자 산 하나를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이건 못 걸어. 무식하게 걷는 게 능사가 아니었어요. 산 하나를 돌아가야 한다면 이건 빨래를 늘리는 일이에요. 별로 현명한 선택은 아니었어요.


"택시비 얼마에요?"

"2사람이니까 5마나트?"


택시 기사들이 바가지 요금 부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적정가였어요. 그래서 바로 택시를 잡았어요.


"항구, 5마나트!"

"타."


택시에 탔어요.


"어느 항구? 화물? 여객?"

"여객이요."


택시는 멀리 달려서 검문소 비슷한 곳에 내려주었어요.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고 했어요. 택시에서 내려 검문소 비슷한 곳으로 걸어갔어요.


"여권."

"여기요."


여권을 보자 가라고 했어요.


"이 문 찍어도 되요?"

"응."


Ýoluňyz Ak Bolsun!


직역하면 '당신의 길, 하얗게 되세요!'. 의미는 '안녕히 가세요', '좋은 여행 되세요' 이 정도 되요. 이 문을 찍어도 된다고 허락해 준 것 자체가 신기했어요. 군인도 있고 옆에 검문소처럼 생긴 사무실도 있는데요. 사실 사무실 보다는 검문소나 초소라고 해야 맞을 거 같은데 참 애매했어요.



항구에서 빠져나가는 트럭들.



항구에 가자마자 매표소로 갔어요. 표가 없다면 다시 투르크멘바쉬 시내로 돌아가야 했어요.


"몰라."


이건 또 무슨 말이야?


있다는 것도 아니고 없다는 것도 아니었어요. 모른다고 했어요. 일단 이름이나 적어 놓으라고 했어요. 여객선이 있기는 했는데 그 배가 언제 출발할지는 자기도 모른다는 이야기였어요. 그 배가 오늘 출발할 수도 있고, 내일 출발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 일단 배가 있기는 있다고 했어요.


출항 시간만 안다면 다시 투르크멘바쉬로 돌아가서 먹을 거라도 사오겠는데 출항 시간을 모르니 이제 그저 죽치고 있는 수밖에 없었어요. 우리가 들고 온 것은 아무 것도 없었어요. 이미 아슈하바트에서 돈을 거의 다 썼고, 혹시 돈이 더 필요하다면 투르크멘바쉬에서 조금 환전해서 쓸 생각이었거든요. 둘이 남은 돈을 다 합쳐 보니 딱 5마나트 있었어요. 이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투르크멘바쉬 시내로 돌아가는 택시비?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안 오는지 매점조차 없었어요.


딱 보아도 사진을 찍으면 안 될 거 같아서 얌전히 있었어요. 변변찮은 항구 사진 찍다가 카메라 사진 확인해본다고 하면 더욱 골치아프니까요. 지금까지 찍은 사진을 한 방에 다 날릴 수도 있었기 때문에 항구 내부는 그냥 안 찍었어요. 물어볼 생각도 안 한 것이 여기는 전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거든요. 군인이 지키는 시설이니 물어볼 필요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억지로 접점을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요.


항구 건물은 2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그 사이에 공터가 있었어요. 한쪽은 매표소가 있었고, 공터가 있고, 맞은 편에 니야조프 흉상이 있고 그 뒤 건물이 대합실이자 출입국 심사대가 있는 곳이었어요. 매표소에서 기다릴까 했는데 거기는 의자가 단 한 개도 없었어요. 그래서 대합실로 갔어요.


대합실에는 러시아인 가족이 의자에 누워 자고 있었고, 다른 사람 몇몇이 있었어요. 우리가 여기 기차로 도착하자마자 여기로 왔는데 저 사람들은 언제 온 거지? 설마 여기서 밤을 샌 건가? 밤을 샌 것이 맞는 것 같았어요. 먹다 남긴 수박 반통 껍질이 바닥에 굴러다니고 있었거든요. 우리는 출입국심사대 근처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어요. 대합실은 2층 구조였어요. 아래층에는 의자가 있고, 윗층에는 식당이 있었어요. 하지만 식당은 영업을 안 하는 것 같았어요. 매점은 없었어요.


지루함과 초조함의 기다림이 시작되었어요. 친구와 번갈아 간간이 매표소 쪽으로 가 보았어요. 그러나 아예 직원도 없었어요. 배가 일단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약간 마음이 놓이기는 했어요. 비자는 내일까지였으니까요. 배가 내일 뜬다고 해도 비자와 관련해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내일까지 이렇게 기다리는 것은 극도로 지루하고 힘들다는 게 문제였죠.


밖과 매표소는 페인트칠 작업이 시작되었어요. 사람들이 와서 긁어내고 붙이고 바르기 시작했어요. 대합실은 바닥 구석에 신문지를 깔고 천천히 페인트를 칠하고 있었어요.


2시간 정도 대합실에 앉아 있다가 가끔 매표소에 갔다 오며 기다렸어요. 갑자기 대합실로 사람들이 몰려가기 시작했어요.


"표 판다!"


친구에게 제 여권을 주고 먼저 뛰어가라고 한 후, 저는 혼자 전부 들고 따라갔어요. 난리가 나야 정상인 대합실은 의외로 한산했어요. 왜냐하면 사람들 자체가 별로 없었거든요. 끼어들기와 새치기를 잘 못하는 친구는 맨 뒤로 쳐져 있었어요.


"뭐하러 뛰었냐?"


어차피 꼴등으로 갈 거면 뭐하러 뛰었냐고 물어보고 백팩이나 가져가라고 했어요. 친구가 그래도 뒤에서 2등이라도 할 줄 알았는데 꼴지였어요. 걸어가나 기어가나 꼴찌 할 거면 저 혼자 이렇게 무거운 짐을 다 끌고 올 필요도 없었다는 사실에 그냥 웃어버렸어요. 친구도 민망한지 자기가 끼어들면 튕겨져 나갈 거 같았다고 하며 같이 웃었어요.


우리 차례는 금방 돌아왔어요. 창구 직원은 여권을 받아서 종이에 무언가 찍찍 갈겨써서 주었어요.


"얼마에요?"

"여기서 돈 안 내."


표를 받아들고 돈을 내려는데 돈을 내지 말라고 했어요. 외국인 우대? 설마 공짜? 뭐라고 러시아어로 막 이야기하는데 그 설명은 당연히 못 알아들었어요. 그냥 돈을 내지 말라는 것만 이해했어요. 돈을 주려고 하니까 쫓아냈거든요.


일단 표는 받았어요. 이제 걱정은 거의 없어졌어요. 남은 건 '몇 시에 승선하느냐' 뿐이었어요. 친구는 윗층에 왔다 갔다 하며 물을 몇 통 사왔어요. 그거 말고는 살 게 없다고 했어요. 5마나트를 깔끔히 다 썼다고 좋아하는 친구. 제게 1마나트 동전 가지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그래서 달라고 했어요. 투르크메니스탄 동전 중 1마나트 동전만 참 좋아했어요. 2마나트 동전은 그냥 별로였고, 텡게들도 별로였어요. 1마나트는 왠지 게임칩 같았어요. 그래서 두 개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장난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좋았어요.


"여기 또 에어컨이야!"


친구는 시원해서 좋다고 하는데 저는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여기는 기차 만큼은 아니었지만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고 있었어요. 여기 있다가는 정말 감기 제대로 들 거 같았어요.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신경을 계속 박박 긁어대는 콧물.


"나 밖에 좀 나갔다 올께."

"왜?"

"햇볕 좀 쬐게. 여기 너무 추워."


친구에게 짐과 의자를 봐달라고 하고 밖으로 나왔어요.



"저거 다 걸어오려고 했으면 엄청 고생했겠네."


멀리 주차된 트럭 위에 보이는 산과 항구의 경계. 저기가 항구로 오는 길이에요. 정말 그다지 권장하고 싶지 않은 길이었어요. 길이 특별히 나쁘거나 난폭 운전자들 천국인 것은 아닌데 저 길을 다 걷는 것은 피곤한 일이니까요. 충분히 5마나트의 가치를 하는 길이었어요. 물론 1명이라면 더 싸질 수도 있구요.


햇볕을 쬐는데 햇볕이 강하지 않았어요. 아슈하바트에서의 그 햇볕과 더위가 필요했는데 정작 필요할 때에는 그것도 없었어요. 정말 개똥도 약으로 쓰려고 하면 없다더니 그 말이 딱 맞았어요. 친구는 밖이 덥다고 했는데 저는 별로 덥다고 느껴지지 않았어요. 땀이 나야 감기와 콧물이 가라앉을텐데 땀이 날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느껴지기로는 그냥 따뜻하다는 정도? 물론 당연히 더운 날씨였지만 더위에 적응이 되다 보니, 그리고 지독한 더위를 겪고 왔더니 이 정도는 그냥 저냥 괜찮은 날씨 같았어요. 제 고향이 원래 더운데다 서울에서 살 때도 여름에는 거의 항상 더운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더위에 많이 무딘 것도 있었구요. 더위에 강한 것이 이럴 때는 참 안 좋았어요. 땀이 나고 덥다고 느끼면 바로 나을 감기가 안 나으니까요.


햇볕을 쬐고 있는데 화장실에 가고 싶어졌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카메라 가방도 맡기고 화장실로 갔어요.


노크할 필요가 없네?


화장실 문 높이가 1m 정도였어요. 발가벗은 하체가 보이지는 않으나 누가 있는지 없는지는 충분히 잘 볼 수 있었어요. 노크를 할 필요 없이 그냥 안을 휙 둘러보면 어디에 사람이 있는지 다 보였어요.



뭐 이런 구조였어요. 굳이 더러운 것을 사진 찍어 '이렇게 더럽습니다'를 보여줄 필요도 없고, 화장실에 사진기 들고 가서 찍기도 그래서 사진은 안 찍었어요. 그나마 가장 괜찮은 칸은 딱 한 칸 - 입구 쪽에 있는 칸이었어요. 나머지는 도저히 볼 일을 볼 수 없을 지경. 가장 깨끗하고 괜찮은 칸도 한 쪽에 휴지가 쓰레기통 높이만큼 높이 쌓여 있었어요. 다 사용한 휴지였어요.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물병. 이것은 볼 일 보고 물을 내릴 때 쓰는 거에요. 아랍부터 중앙아시아까지 화장실 보면 이런 식으로 수동 수세식인 곳이 종종 있어요. 문은 원래 반쪽이 아니라 일부러 잘라버린 것 같았어요. 아마 화장실서 어지간히 담배 태워대서 잘라버린 거 아닌가 싶었어요.


볼 일을 보고 나오는데 군인과 어떤 아저씨가 말다툼을 하고 있었어요. 얼핏 보았을 때는 말다툼이었는데 자세히 보니 아저씨가 군인에게 싹싹 빌고 있었어요.


'담배 태우다 걸렸구만.'


화장실 쪽이 담배 태우기 좋게 생겼어요. 그리고 실제 이쪽에 꽁초도 조금 떨어져 있었구요. 저 아저씨 20달러 날리겠구나...아마 군인들도 담배 태우겠지? 말이 좋아 금연 국가이지, 오히려 실외 금연 때문에 국민 건강만 더 많이 해치는 거 같은데...말이 좋아 금연 국가이지 정말 희안한 흡연 문화를 가진 국가였어요. 억지로 누르니 삐져 나온 것이라 해야겠죠.


다시 안으로 들어왔어요. 또 지루한 기다림. 배가 오늘 뜨기는 하는 거야? 하지만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만히 기다리는 것 뿐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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