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가본 카페는 서울 마포구 홍대입구역, 상수역에 있는 카페인 델문도에요.
아주 오래전 이야기에요. 중학교 동창 친구집에 놀러갔을 때였어요.
"야, 이 사이트 완전 웃겨."
"무슨 사이트인데?"
"일본인인데 한국에서 별 짓을 다 해."
친구가 보여준 사이트는 나오키넷이었어요. '나오키'라는 일본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였어요. 각종 외국 여행기도 있었고, 한국에서 거주하며 겪은 좌충우돌 이야기도 있었어요. 친구 방에서 노닥거리며 무슨 내용이 있는지 봤어요. 진짜 웃겼어요. 이렇게 세상을 볼 수도 있구나 싶어서 정말 감탄했어요. 글 자체도 엄청나게 재미있었구요. 인생을 정말 재미있게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이후 친구가 알려준 나오키넷에 종종 접속해서 보곤 했어요. 글 자체도 재미있었지만, BGM 선정과 짤방 선정이 참 훌륭했어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한국 음식 번데기에 도전한 이야기였어요. 번데기가 그렇게 난이도 높은 음식일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어요. 물론 저도 번데기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지만요. 이때는 제가 외국 여행을 가기 전이라서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던 때였기 때문에 글 하나하나가 매우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나오키넷은 문체도 상당히 특이했어요. 그 당시, 한국에서 인터넷 문체는 거의 전부 '했다'체였어요. 여행기를 쓰든 리뷰를 쓰든 전부 '했다'체로 쓰고 있었어요. 간혹 귀여니체라든가 아줌마체라든가 하는 것이 있기는 했지만요. 일단 제대로 글을 쓴다고 하면 한국인들은 거의 100% 전부 '했다'체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그러나 나오키넷은 달랐어요. 여기는 자연스럽게 '했어'체를 사용하고 있었어요. 딱딱한 한국어 문체가 아니라 상당히 친근한 문체였어요.
이후 이 '나오키'라는 일본인은 일본 라멘 가게를 오픈했어요. 1년 정도 운영한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 후에는 홍대쪽에 '델문도'라는 카페를 오픈했다고 했어요.
'한 번 가볼까?'
나오키넷을 매우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어떻게 생긴 카페인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한 번 가볼까 했어요.
미안해요. 나 돈 없어요.
그러나 안 갔어요. 그 당시, 델문도 메뉴 가격은 전혀 안 저렴했어요. 그리고 저는 주머니 사정이 정말 안 좋았어요. 게다가 이 당시는 제가 카페를 찾아다니던 때도 아니었어요. 카페 가는 것 자체가 상당히 어색하고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던 때였어요. 이 당시 제게 카페를 간다는 것은 약속이나 모임 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이었던 시절이었어요. 카페 가서 주문하는 방법도 몰라서 무조건 제일 단 걸로 달라고 하고, 무슨 외계어처럼 직원이 쏼라쏼라 이야기하면 '아, 직원이 말을 하는 구나'라고만 생각하고 대충 끄덕거린 후 체크카드를 건네주던 때였어요.
나중에 '카페'라는 곳은 혼자 가서 음료 마시고 노닥거려도 괜찮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때는 이미 델문도의 존재 자체를 까맣게 잊어버린 상황. 그렇게 나오키넷과 델문도는 뇌 구석 어디 깊은 심연 같은 곳에 처박혀 있었어요.
며칠 전이었어요. 친구와 이야기하다 우연히 나오키넷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접속해봤어요. 오랜만에 글을 보니 상당히 재미있었어요.
'델문도 아직도 있을 건가?'
카페 델문도를 검색해봤어요.
"있네?"
제주도에 있는 카페 델문도 말고 진짜 홍대에 있는 델문도 카페가 있었어요. 한국을 좋아하던 일본인 나오키씨가 만든 카페였어요.
아...그분은 이제 없구나.
일본인 나오키씨는 일본으로 영구귀국했대요. 그런 글이 있었어요. 나오키씨는 귀국할 때 카페를 접으려 했대요. 그런데 그 카페에서 오랫동안 일했던 직원들이 이 카페가 사라지는 것이 아쉬워서 자기들끼리 운영하기로 했대요.
이 참에 한 번 가볼까? 더 미루지 말구.
아니, 미룬 것은 아니야. 그냥 잊어버리고 있었던 거지.
더 미루지 않고 한 번 가보기로 했어요. 한때 나오키넷을 정말 재미있게 봤거든요. 좀좀이의 여행 블로그 문체 결정할 때 꽤 많은 영향을 준 사이트였어요. 그래서 여기는 이왕 생각난 김에 가보기로 했어요.
카페 델문도 주소는 서울 마포구 잔다리로 19-6 에요. 지번 주소는 서울 마포구 서교동 405-15 이에요. 위치가 조금 어정쩡해요. 홍대입구역, 합정역, 상수역 사이에 있거든요. 버뮤다 삼각지대 중심부에 있는 것 같은 위치에 있어요.
입구가 길거리에서 잘 안 보였어요. 상권으로 보면 절대 장사 안 될 '죽은 자리'라고 해도 될 곳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에서 몇 년간 영업 잘 했고, 지금도 영업 잘 하고 있어요. 위치만 봐도 참 대단한 카페라는 게 느껴지는 카페였어요.
카페 델문도는 2층에 있었어요.
입구 옆에는 뽑기 기계가 있었어요.
입구 옆에는 날짜를 알려주는 조형물이 있었어요.
뻑뻑한 문을 밀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어요.
한쪽 벽에는 플리마켓 코너가 마련되어 있었어요.
자리에 앉았어요. 직원이 메뉴를 갖다주었어요.
카페 델문도는 일본 카페 메뉴를 판매하는 카페에요. 저는 말차 아포가토와 유즈 얼그레이 홍차에이드를 주문했어요.
말차 아포가토 가격은 7500원, 유즈 얼그레이 홍차에이드 가격은 6500원이었어요.
주문한 후, 카페 안을 돌아다니며 구경했어요.
책장에는 여러 종류 책이 꽂혀 있었어요. 엣센스 일한-한일 사전도 있었어요.
여기저기 꼼꼼하게 잘 꾸며놓았어요.
나오키씨가 찍은 사진들을 모아놓은 사진첩이 있었어요.
단체석으로 다다미 좌석도 있었어요.
전등갓을 잡지 종이를 씌워 만들어놨어요. 꽤 운치있었어요.
먼저 말차 아포가토가 나왔어요.
뜨겁고 매우 걸쭉한 말차를 아이스크림에 부어서 섞어 먹으라고 했어요.
이거 맛 상당히 강한데?
쓴맛이 매우 강했어요. 말차향도 상당히 강했어요. 씁쓸한 아포가토 맛을 말차의 쓴맛으로 살려내었어요. 여기에 말차향이 아포가토에서 느껴지는 커피향처럼 강하게 풍겼구요. 매우 맛있었어요. '말차로 아포가토를 만들면 커피로 만든 아포가토만큼 강한 맛과 향을 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대해 '예, 그렇습니다'라고 소리 높게 외치고 있는 맛이었어요.
유즈 얼그레이 홍차에이드가 나왔어요.
유즈 얼그레이 홍차에이드는 맛이 강하지는 않은데 빈 구석이 하나도 없었어요. 맛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여백을 남기지 않고 꼼꼼히 꽉 채워놓은 느낌이었어요. 사과맛, 레몬맛, 홍차맛이 절묘하게 섞여있고 은은하게 달았어요.
'진작에 와 볼 걸.'
델문도 카페 분위기도 매우 좋았고, 유즈 얼그레이 홍차에이드와 말차 아포가토 둘 다 매우 맛있었어요. 진작에 올 걸 후회되었어요. 한국을 좋아했던 일본인이 남기고 간 흔적은 아직도 살아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