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12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좀좀이 2012. 8. 20.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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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반. 눈을 번쩍 떴어요. 눈을 뜨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주르르르


내 이럴 줄 알았어.


전날 만두를 먹으며 왠지 이건 너무 기름져서 설사 한 번 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딱 예상대로였어요.


'오늘은 조금 조심해야겠다.'


크게 탈이 난 것 같지는 않고, 하루 정도 조심하면 그냥 나을 것 같았어요. 이왕 일어난 김에 씻고 나와서 친구를 깨웠어요. 친구도 일어나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갔어요.


"오늘 우리 먹는 거 조심해야겠다."

"응. 속이 안 좋아."


나갈 준비를 하며 오늘 반드시 해야 하는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 보았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 아슈하바트를 탈출할 기차표 확보. 여기 온 이유는 투르크멘어 교과서를 구하기 위해서였지만, 이것조차 뒤로 미루어버리는 가장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투르크메니스탄 탈출


제 비자는 고작 5일 짜리 경유 비자. 그리고 오늘은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이틀째. 내일 밤 기차로 투르크멘바쉬에 가야 나흘째에 투르크멘바쉬 도착. 배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므로 미리 하루 일찍 투르크멘바쉬에 가야 했어요. 그래야 혹시 배가 없으면 하루 더 기다려보죠. 이 나라에서 도박을 해보는 것은 별로 좋지 않은 것이 처음 지정한 출국 장소로만 출국을 할 수 있고, 만약 출국을 못 할 경우에는 다시 아슈하바트로 돌아와서 벌금 물고 비행기로 출국할 수 있거든요. 제 날짜에 출국을 못 해 벌금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열 받을 일인데 아슈하바트까지 벌금 내러 가야 한다는 것은 더 끔찍한 일. 전날 기차표를 못 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일은 바로 투르크멘바쉬행 기차표를 사는 일이었어요.


투르크멘바쉬행 기차표를 산 후에 해야할 일은 바로 투르크멘어 교과서를 구하는 것. 원래 여기에 온 이유가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사용하고 있는 투르크멘어 교과서를 구하는 것이었어요. 이것까지 오늘 다 끝나면 내일은 아침 일찍 '지옥의 불구덩이'라는 다르바자에 다녀와서 투르크멘바쉬로 떠날 생각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서 유일하게 보고 싶은 거라면 다르바자 정도였는데, 이것을 위해 원래 목적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어요. 이건 볼 수 있으면 보고, 볼 수 없으면 포기하는 그런 것.


일단 호텔에서 나왔어요.


"여기 왜 이렇게 습해!"


아슈하바트 주변은 전부 황량한 사막과 초원. 절대 습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밖에 나오자마자 느껴지는 것은 무더위. 참 오랜만에 겪어보는 무더위였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더위를 겪기는 했지만 건조해서 '무더위'는 아니었거든요. 그냥 건조하고 뜨거운 불볕 더위만 겪고 있었는데 여기 오니 정말로 무더웠어요. 공기에 습기가 가득했어요.


"분수 때문인가?"




어젯밤 헤매던 공원에서 분수가 가동되고 있었어요. 물이 분명 부족할 텐데 이건 누가 보아도 물낭비. 습할 이유가 전혀 없는데 습한 이유는 정말 분수 때문이라는 것 외에 마땅히 그럴싸한 답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다이한 호텔에서 기차역까지 가는 길은 어렵지 않았어요. 그래서 길을 따라 걸어갔어요.



거리에 차가 별로 없어 보이지만 무단 횡단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그런 길은 아니었어요. 여기도 무단횡단하는 방법은 우즈베키스탄과 마찬가지. 거리에 차가 없으면 중앙선까지 가고, 중앙선에서 기다리다 차가 없으면 나머지 길도 다 건너가는 것이었어요. 아랍에서 하는 것처럼 '차 꽁무니에 옷깃이 스치는 기분으로' 지나가는 무단횡단은 아니었어요. 이건 나름 소련 덕분에 현대화되어서 그런 거 아닌가 싶었어요.



"패션이 완전 폭주족인데?"


거리를 걸으며 재미있게 본 것은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전부 코와 입을 스카프로 감아 막고 있다는 것이었어요. 햇볕과 먼지 때문에 저렇게 가린 것일텐데 왠지 폭주족 패션 같아 보였어요.




루스키 바자르를 지나 큰 길로 나왔어요. 길을 헤맬 필요도 없었어요. 전날 하도 헤매서 이제 길 파악은 대충 되었어요. 게다가 지도를 보니 아슈하바트의 길은 그렇게 복잡한 편도 아니었어요.


처음 이 나라 들어왔을 때 결심한 대로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려고 거리를 찍는데 누군가 저를 툭툭 치며 불렀어요.


"사진 찍지 마."


그래서 사진기를 집어넣었어요. 특별히 다른 것은 없었어요. 그냥 사진 찍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고, 제가 알았다고 하고 카메라를 가방 안에 집어넣자 그 사람은 자기 갈 길을 갔어요. 여기는 정말로 촬영 금지 구역 투성이구나.


그런데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의 기준이 뭐야?


저도 나름대로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체류 기간이 5개월인 인간. 이런 사진 찍지 말라는 제재 따위로 호들갑 떨 인간은 아니에요. 아무리 우즈베키스탄에서 툭하면 바가지 쓰고 온갖 실수 투성이의 연속이 끝나고 있지 않지만 무슨 비밀 경찰이네 어쩌네 하며 게거품 물고 떠들어댈 인간 단계는 이미 뛰어 넘었어요. 중요한 것은 사진 촬영 금지 구역과 아닌 곳의 기준을 파악하는 것.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접점을 안 만드는 것이에요. 이 나라에서 저는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여행자. 이 나라의 안보와 치안에 문제를 일으킬 짓 따위는 전혀 하지 않아요. 조용히 구경하고 볼 일 보고 떠나는 것이 최대 목표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장 많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것 - 바로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의 기준을 아는 게 중요했어요. 괜히 사진 촬영 금지 구역 찍다 걸려서 경찰에게 빌든 경찰과 싸우든 어느 쪽이든 간에 다 저한테는 그저 피곤하고 짜증나는 일에 불과하니까요.


대충 감은 오는데 정확히 어떤 것을 찍어도 되고, 어떤 것은 찍으면 안 되는지 명확한 기준은 확실히 알 수 없었어요. 일단 군인이 서 있는 곳은 기준을 몰라도 사진 촬영 금지 구역. 그런데 경찰이 서 있는 곳은? 타슈켄트 정도는 아니었지만 경찰이 엄청나게 많이 서 있었고, 경찰이 서 있는 곳을 다 사진 촬영 금지 구역으로 생각한다면 이 동네는 사진 찍을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지경이었어요.


"니야조프다!"



사파르므라트 니야조프 대통령 동상이었어요. 그 뒤의 건물은 Türkmenistanyň Içeri Işler Ministrligi - 즉 투르크메니스탄 내무부 건물이었어요. 베르디무하메도프 대통령이 집권한 후, 니야조프 대통령 동상을 많이 부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슈하바트를 조금 돌아다니지도 않았는데 바로 니야조프 전 대통령의 동상과 마주칠 수 있었어요.


"이건 사진 찍어야겠다!"

"이거 찍다가 잡히는 거 아닐까?"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후다닥 사진을 찍고 



엉뚱한 방향을 사진 찍으며 전혀 다른 것을 찍고 있는 척하며 재빨리 지하도 안으로 들어갔어요.



아까 동상 사진 찍었던 곳. 사진이 검게 나왔는데 해가 너무 강해서 사진이 제대로 나왔는지 액정을 확인할 수 없었어요. 액정을 보면 그냥 다 시커멓게만 보였거든요. 이 동네는 정말 사진 찍기가 어려운 것이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 많아서 빨리 찍어야 하는데, 건물도 흰색이고 햇빛도 지나칠 정도로 강해서 찍고나서 보면 사진이 시커멓게 나온 것이 많아요. M모드로 찍지 않는 한 아주 하얗게 나오거나, 아주 시커멓게 나오거나 둘 중 하나로 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았어요. 덕분에 배터리만 열심히 닳고 건진 사진은 얼마 없어요. 여행기 쓰려고 사진을 고르는데 아주 하얗게 나온 것과 아주 시커멓게 나온 것을 다 골라내면 쓸 사진이 너무 없을 지경이라 그냥 너무 안 나온 사진도 올리고 있어요.


얼마 걷지도 않았는데 깨닫게 된 것이 하나 있었어요.


여기야말로 진정한 미녀의 나라구나!


이건 어쩔 수가 없어요. 미녀가 그리 많다는 슬로베니아니 우즈베키스탄이니 하는 곳을 여행해 보았지만 이렇게 미녀가 많은 곳은 처음 보았어요. 무슨 누런 피부의 바비 인형들이 걸어다니고 있었어요. 러시아계는 못 생겼고, 투르크멘계는 정말 예쁜 여자가 많았어요. 그리고 우즈벡인, 아제리인과는 확실히 생김새가 달랐어요. 아제리인들은 카프카스 지역 사람들과 섞여서 인상이 날카로운 편이고, 우즈벡인들은 약간 이란인 비슷하게 생긴 동양인이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데 투르크멘인들의 외모는 이들과는 다른 느낌이었어요.


기차역을 향해 걸어가는데 또 니야조프 대통령의 동상이 나타났어요.


"이거 사진 찍어도 될 건가?"


마침 동상 앞에 경찰이 서서 주변을 지키고 있었어요. 잘 되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하던 것처럼 경찰에게 일단 물어보면 되겠네.


"여기 사진 찍어도 되요?"

"여기는 관공서라서 안 되고, 저기는 찍어도 돼."


관공서라서 안 되고

관공서라서 안 되고

관공서라서 안 되고

관공서라서 안 되고

관공서라서 안 되고


이 동네에서 귀찮은 접점이 발생하는 기준을 하나 깨달았어요. '관공서 사진 촬영 금지'. 지난 투르크메니스탄 여행자들의 악평의 원인 중 하나가 풀렸어요. 이것이 바로 투르크메니스탄을 지나간 여행자들이 중앙아시아의 북한이네 뭐네 하며 게거품 물고 악담을 여행기에 잔뜩 써놓았던 결정적 이유였어요. 이것은 별 것 아닌 것 같은 정보였지만 알고 보면 가장 중요한 정보였기 때문에 별 다섯 개에 빨간 줄 좍좍, 형광펜으로도 좍좍.


일단 찍어도 된다고 한 극장으로 가서 사진을 찍고



뒤돌아서서 아까 찍지 말라고 한 니야조프 동상을 찍었어요.



역시 이럴 때는 DSLR보다 컴팩트 디카와 하이엔드 디카가 좋아요. 그냥 줌으로 당겨 찍어버리면 되거든요. 확실히 아슈하바트는 DSLR보다는 컴팩트 디카와 하이엔드 디카 중 줌이 강한 카메라가 압도적으로 유리했어요. 모든 관공서가 사진 촬영 금지 구역이니 그나마 찍고 싶은 거 몇 장이라도 건지려면 일단 줌이 잘 되어야죠. 줌이 잘 되는 컴팩트 디카라면 정말 아슈하바트에서는 극강의 카메라.




'저건 뭐지?'


약간의 고민. 그리고 친구에게 던진 한 마디.


"우리는 주석궁을 폭파하러 간다!"


졸지에 실미도 찍게 되었어요. 저건 아무리 봐도 '주석궁'이라는 말 외에 마땅히 어울리는 표현이 없었어요. 저렇게 크고 아름다운 건물이라면 분명히 매우 중요한 기관이겠죠. 설마 별 볼 일 없는 것을 주변에서 가장 높고 크게 지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요. 정말 첫 감상은 딱 '주석궁을 폭파하러 간다'는 말 외에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어요. 하얗고 커다란 것은 강한 햇볕을 받아 거대하게 빛나고 있었어요.



그렇게 특별할 것 없는 버스 정거장.




과연 이 건물들이 사용되는지 의문이었지만, 분명 신경 써서 잘 지어놓기는 했어요.


뒤를 돌아보면



사진 속 왼쪽 끝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사진 촬영 금지 건물이자 니야조프 동상이 있는 건물이에요. 가운데와 오른쪽 건물은 모두 극장.



이곳은 어제 쫓겨났던 바로 그 수도 호텔.



거리에 행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어요. 적당히 있었어요. 이렇게 휑한 거리는 분명 계절도 고려해야 하니까요. 여기까지 오는데 이미 옷은 땀으로 다 젖어 버렸어요.




"이게 대학교야?"


이 유독 눈에 띄는 거대한 건물은 주석궁이 아니라 대학교였어요. 정말 이것은 상식 파괴.



이렇게 하나만 뚝 떼서 보면 멋진 건물과 아름다운 분수, 공원.


이곳에서 이제 기차역으로 가기 위해 방향을 꺾었어요. 방향을 꺾자 나타나는 것은



저게 왜 대학교 건물인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단 말이야...


일단 의문을 뒤로 하고 기차역으로 갔어요.



이건 또 무슨 희안한 디자인이란 말인가!


그냥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재미있게 생긴 기차역이었어요. 여기도 어김없이 Wokzal. '보크잘'이라고 읽어야하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왠지


워크잘!


이렇게 외쳐주고 싶었어요.


저 디자인은 아르메니아 예레반 기차역에서 보았어요. 아르메니아 예레반 기차역이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기차역과 약간 비슷하게 생겼어요. 하지만 뭔가 놀이동산스럽게 생겼어요. 투르크메나바트 기차역 건물은 놀이공원 입구이고, 여기는 본격적으로 노는 곳인가? 꿈과 희망이 가득한 놀이공원, 아슈하바트 기차역? 아무리 보아도 소련 건물 특유의 무거운 느낌이 보이지 않았어요. 오히려 소련 건물을 패러디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참고로 아래 사진은 아르메니아 예레반 기차역 사진이에요.



확실히 비교 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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