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두 개의 장벽 (2012)

두 개의 장벽 - 13 투르크메니스탄 아슈하바트

좀좀이 2012. 8. 22. 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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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역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대합실 안에 있는 환전소에 가서 환전을 했어요. 환율은 괜찮은 편이었어요. 이제 표를 사러 갈 일만 남았어요.


참고로 저 건물 안에는 대합실만 있어요. 매표소는 사진에서 오른쪽으로 가야 있어요. 저도 몰라서 계속 건물 안에서 뱅글뱅글 돌아가 경찰에게 물어 보고 나서야 매표소를 찾아갈 수 있었어요. 매표소가 건물 안에 있거나 붙어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 헤매었고, 매표소 앞에 도착했을 때는 10시 40분이었어요.


아슈하바트 역에서 매표소 가는 방법은 아슈하바트 역 오른쪽 끝에 케밥 파는 가게가 있는데, 거기에서 플랫폼까지 쭉 걸어나가 오른쪽으로 가다 보면 조그만 사무실 입구가 보여요. 거기로 들어가면 되요.


"여기서 어디에 줄을 서야 하지?"


아슈하바트 역 매표소는 타슈켄트 역 매표소에 비해 작은 편이었어요. 그래도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어서 에어컨도 나오고, 화장실도 있었어요. 화장실 인심이 야박하기 그지 없는 우즈베키스탄과는 매우 대조적인 부분이었어요. 이것으로 끝이라면 좋겠지만 절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 투르크메니스탄이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줄을 선 모습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역 매표소보다 몇 배 더 심했어요.




타슈켄트 역도 마찬가지이기는 하지만 이곳 기차역은 이런 모습이에요.


일단 매표소 직원. 자리에 있을 때는 일을 열심히 하는 거 같은데 절대 사람들이 빨리 빠지지 않아요. 이유는 사람들이 자기 표만 사러 오는 게 아니라 여권 뭉치를 들고 와서 몇 장씩 표를 사 가기 때문. 그리고 매표소 직원이 한 번 사라지면 함흥차사. 언제 올 지 몰라요.


그리고 선두권. 여기는 한 줄은 아니고 두 세 줄로 서서 선두권을 형성하는데 나름의 순서가 있고, 질서도 잘 지켜지는 편. 여기만 들어가면 새치기 걱정은 그다지 할 필요 없어요. 선두권에서는 새치기를 현지인들이 알아서 견제해 주거든요.


문제는 바로 후발 주자들. 이 구역에서는 새치기라고 하기도 민망할 지경으로 사람들이 뒤죽박죽 서 있어요. 서로 다른 창구 쪽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하고 어차피 다 섞여 있기 때문에 새치기라고 하기도 뭐해요.


이 치열한 후발 주자 무리에서 내 순서를 지키는 방법은 오직 하나.


현지인 꽁무니에 찰싹 달라 붙자!


새치기와 끼어들기에 자신 있다면 어떻게 조금 빨리 앞으로 갈 수도 있으나 줄에서 빠지는 사람보다 끼어드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그렇게 큰 의미도 없어요. 여기에서 그나마 제 순서 잘 찾아먹는 방법은 무단횡단 때와 마찬가지로 자기 바로 앞의 현지인 뒤에 찰싹 달라붙고, 그 틈에 다른 사람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 틈이 생기면 다른 쪽에서 치고 들어오기 때문에 앞 사람 꽁무니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야 해요.


새치기는 생각만큼 많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현지인들도 모두 앞사람 꽁무니에 찰싹 달라 붙어 새치기할 공간을 남겨놓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으...찐다!"


문제는 이렇게 모두가 새치기와 끼어들기 견제를 위해 찰싹 달라붙어 있다 보니 한여름에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덥다는 것. 한국에서 해도 참 더워서 힘든 짓인데 여기는 한국보다 2배 더 힘들어요. 이유는 먼저 계절이 여름인데 한국에서 아무리 열대야니 뭐니 난리를 쳐도 그 정도는 그냥 우스운 동네라는 것. 두 번째는 여기 사람들이 한국인보다 몸에 열이 훨씬 더 많다는 것. 여기 사람들은 한국인보다 몸에 열이 확실히 많아요. 이것에 대해 현지인들은 자신들이 양고기를 매우 자주 먹기 때문에 몸에 열이 많다고 해요. 어쨌든 우즈벡인이든 투르크멘인이든 몸에 열이 매우 많은데,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으면 그야말로 찜통이 따로 없어요.


일단 앞사람에게 찰싹 달라붙었어요. 그렇게 기다리는데 너무 더웠어요. 도저히 견디다 못한 친구가 물을 사오겠다고 잠깐 밖으로 나갔고, 저는 계속 앞사람 등 뒤에 찰싹 달라 붙어 사람들이 빠져나가기만을 기다렸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줄어들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앞을 보니 충분히 이해되는 상황. 절대 직원이 게을러터지고 느려터져서 그런 건 아니었어요. 직원은 나름 일을 빨리 하는데 문제는...


사람들이 여권을 뭉텅이로 쥐고 있어.


사람 한 명 서 있는데 일처리가 늦는다고 욕할 건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여권 뭉텅이를 들고 와서 혼자 표를 몇 장씩 사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좀 다른 곳 가서 물어봐!


자기가 원하는 표가 없으면 직원 붙잡고 이것 저것 계속 물어보며 시간을 끌고 있었어요. 발권 작업 자체는 얼마 안 걸리는데, 사람들이 여권 뭉텅이를 들고 오는 데다 마음에 드는 표가 없으면 다른 표 알아본다고 직원 잡고 계속 이것 저것 물어보느라 일이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었어요.


친구는 화장실에 갔다가 물까지 사서 돌아왔는데, 그제서야 저는 중위권 그룹에 올라섰어요.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조금 쌓여 있었어요. 그걸 보자 뿌듯했어요. 아...이게 노력의 대가로구나! 그런데 앞은 여전히 별로 줄어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중.


"우리 옆 줄로 옮길까? 옆 줄 사람 많이 빠졌어."

"글쎄...여기까지 기다렸는데..."

"그러면 나 혼자 저쪽 줄에서 기다리고 있을께."


친구는 옆 줄로 가고 저는 계속 순서를 기다렸어요. 친구가 서 있는 줄은 사람들이 잘 빠지는 것 같았고, 친구는 순식간에 저를 앞질렀어요.


"여기로 와!"

"됐어. 나 그냥 여기 있을래."


중위권까지 왔는데 여기서 또 앞에 사람들이 빠지지 않아 저는 그대로 있고, 친구는 빨리빨리 앞으로 가고 있었어요.


그렇게 또 한참 기다리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어요. 앞에서 질문하는 사람들이 없자 여권 뭉텅이를 들고 온 사람들조차 빨리 표를 사서 나가기 시작했어요. 정말 다행이었던 것이 제가 서 있는 줄에서 말 많은 사람들과 여권 뭉텅이를 들고 온 사람들이 대충 다 빠져나갔고, 이제 남은 사람들은 자기 표를 사러 온 사람들. 이때부터 갑자기 저의 순위가 마구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이쪽으로 와!"


친구에게 소리를 쳤어요. 친구는 저를 역전한 후, 얼마 앞으로 나가지도 못한 상태. 이제 저는 드디어 대망의 순위권에 진입했어요. 그래서 친구에게 빨리 제가 서 있는 쪽으로 오라고 했어요.


이때 다른 창구에서 한 명의 새치기 등장. 하지만 제 바로 뒤에 있던 아주머니께서 격분하셨어요. 이야기하고 손짓 발짓 하는 것으로 보아 새치기를 하려고 한 남자는 다른 창구에서 우리가 줄 서 있는 창구로 가서 표를 사라고 퇴짜를 맞아 맨 앞에 끼어들려고 했는데, 아주머니께서는 그건 나 알 바 아니니 맨 뒤로 가라고 하는 것 같았어요. 새치기는 어떻게 계속 끼어보려고 했지만 사람들이 아주머니와 합세하여 새치기 타도에 나섰고, 새치기하려던 남자는 창구 앞에서 여권을 들이밀어보려 했지만 심지어 창구 직원조차 그 남자의 여권을 외면해 버렸어요.


드디어 우리 차례.


"7월 3일 투르크멘바쉬 밤기차 2명이요."


여권을 건네주며 말하자 직원은 컴퓨터로 뭔가 톡톡 입력하더니 종이 두 장을 주었어요. 다음날 밤기차 표를 사는 건데 이미 좋은 자리는 전부 매진이었고, 그나마 남아 있는 자리가 3층 침대 중 3층 밖에 없었어요.


'내일 밤은 시원하게 자겠군.'


부하라행 열차에서 아래에서 잤다가 더워 혼났어요. 여기도 비슷한 기차라면 분명 위쪽은 그나마 살만 하겠지. 좋은 자리는 전부 매진이라는데 오히려 조금은 잘 된 거 아닌가 하는 긍정적인 생각이 떠올랐어요. 밤새 한 번 정도 갈 지 안 갈 지도 모르는 화장실 때문에 기차에서 내릴 때까지 더위에 시달리는 것보다는 낫겠지.



가격은 아슈하바트에서 투르크멘바쉬까지 가는 야간 침대칸 열차가 6.69 마나트. 우리나라 돈으로 2500원 조금 넘는 가격. 이러니 기차표가 남아나지 않지. 이 정도 가격이면 우즈베키스탄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한 가격. 사실 거저라고 할 수 있었어요. 전날 택시비를 생각해보면 이건 그냥 공짜라고 해도 될 정도.


표를 사니 11시 15분. 줄에서 빠져 나와 여권과 표를 잘 집어넣고 앞을 보니 우리 순서를 확보해주신 아주머니께서 표를 구입하고 계셨어요.


"저기 앉아서 여권이랑 표 좀 넣고 앉아서 쉬었다가 갈까?"


별 것도 아닌 표 사기에 30분 넘게 걸렸어요. 그래서 잠깐 앉아서 물도 마시고 쉬다가 가려는데 경찰이 계속 나가라고 했어요.


"여기서는 그냥 쉬는 것은 아예 금지하나? 용무 있는 사람만 여기 안에 머무르게 하는 건가...?"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요. 경찰은 갑자기 매표소 안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쫓아내기 시작했어요. 우리 바로 뒤의 아주머니께서 표를 사자마자 우리가 서 있던 줄 사람들을 모두 밖으로 쫓아냈어요.


이유는 점심 시간.


11시 30분부터 점심 시간이라 업무 안 한다고 사람들을 밖으로 다 쫓아냈던 거였어요. 우리와 그 아주머니는 간신히 오전에 뒤에서 1,2 등으로 사이좋게 표를 샀고, 그 외에 새치기 시도하던 아저씨를 비롯해 나머지 모든 사람들은 한참 기다려놓고 매표소에서 표도 못 사고 쫓겨났어요. 정말 이건 운이 잘 따라주었다는 생각 외에는 다른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11시 30분부터 12시 30분까지는 매표소가 점심 시간이라고 문을 닫아요.



표의 뒷면. 표 자체에는 오직 투르크멘어만 적혀 있었어요. 그런데 타이핑된 것은 모두 러시아어. 단순히 키릴 문자라서 러시아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로 쓴 거에요. 키릴 문자로 쓴 투르크멘어는 저렇게 안 생겼어요. 일단 투르크멘어 키릴 문자로는 투르크멘바쉬를 저렇게 적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아슈하바트에서 투르크멘바쉬로 가는 기차표는 구했어요. 이제 여기 오기로 결심한 진짜 목적을 달성해야할 때.



다시 아까 주석궁처럼 생긴 대학교가 있는 사거리로 나왔어요. 이제 가야 하는 곳은 서점. 서점에 책도 없고 교과서는 아예 살 수 없다고 했어요. 이건 단순히 여행자들 뿐만이 아니라 대사관에 문의 메일을 보냈을 때 답장으로 온 내용이었어요. 하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이번 투르크메니스탄에서의 목표. 이래뵈도 아르메니아에서 불법 복사본으로 아르메니아어판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를 구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현지 아르메니아인들조차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근성으로 뒤지니 나왔어요. 여기라고 뒤지면 안 나올 리는 없을 거다. 분명히 나온다. 모두가 안 된다고 했지만 저는 '갈망하면 그렇게 바뀐다'는 말을 믿고 교과서를 반드시 구해 나갈 거라고 의심치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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