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무화과

좀좀이 2012. 8. 18.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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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가 나온지 조금 되었는데 이제야 무화과를 사 왔어요. 무화과를 좋아해서 사온 건 아니고 신기해서 사왔어요.



 무화과를 사면 이렇게 바닥에 잎을 한 장 깔아주고 봉지에 넣어 주더군요.


맛은 별 특별할 향기 없이 달어요. 그리고 다 먹으면 이빨 곳곳에 작은 무화과 씨앗이 껴서 몇 번 쩝쩝 거리며 씨를 빼내야 해요. 여기까지는 그냥 평범한 무화과.


어제 장을 보며 사온 것인데, 생각해보니 어제 시장 가서 사온 게 복숭아 1kg 과 무화과 1kg. 아 망했어요. 주말에 월요일 연휴까지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장을 보러 간 거였는데 사온 건 쉽게 썩는 무화과와 복숭각 각 1kg 뿐.


이런 일이 발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아요.


시장에 도착했을 때 매우 배가 고팠어요. 이 상황에서 장을 보면 무조건 불필요하게 많이 사기 때문에 속을 채우고 돌아다니기로 했어요. 그래서 일단 솜사 2개를 사 먹고 돌아다니는데


이 시장에도 밥집이 있었네?


그래서 밥집 구경하는데 투르크메니스탄에서 먹었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만두가 보였어요. 이런 거 보면 절대 그냥 못 지나감. 꼭 먹어보아야 함.


만두만 시켜 먹자니 뭔가 허전해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밥이나 먹고 가자는 생각에 만두 3개에 오쉬를 시켜 먹었어요. 다 먹으니 이제는 배가 너무 빵빵해졌어요.


장 보기도 귀찮고 배는 터질 거 같아서 대충 돌아다니다 집에 가려고 했는데 마침 눈에 들어온 것이 무화과.


'무화과나 사서 집에 가야지.'


그래서 충동구매 하고 돌아다니는데 이게 왠걸? 제가 좋아하는 백도가 상태 좋은 놈이 있었어요. 참고로 여기는 우즈베키스탄. 백도가 맛은 매우 뛰어난데 얘네들 기술이 많이 떨어져서 설익거나 완전 물러 터지거나 둘 중 하나에요. 그런데 제대로 된 복숭아가 시장에 있었어요. 가격은 좀 비쌌지만 주말 내내 먹을 거라 생각하고 사왔어요.


과일 사고 또 구경하는데 꿀땅콩이 새로 들어왔어요. 확실히 질이 좋은 놈이었어요. 예전에 한 번 샀다가 질이 안 좋아서 대실망했는데 월요일이 축제라서 좋은 놈이 들어온 듯 했어요. 그것도 충동구매.


'이 정도 샀으면 되었겠다.'


원래 솜사 10개 사와서 집에서 전자렌지에 돌려먹을 계획이었는데 전부 취소. 그냥 집에 왔어요.


'살짝 후숙시켰다 먹어야지.'


이 나라 과일은 좀 설익은 놈 사서 후숙시켜 먹는 것이 좋아요. 안 그러면 그 자리에서 다 먹어치워야 함. 복숭아도 살짝 후숙을 시키는 게 좋아보였어요. 무화과 마찬가지였구요.


그래서 냉장고에 넣지 않고 부엌 바닥에 놓은 후, 방에 들어와 바닥에 드러누웠어요.


깨어보니 자정. 하도 목이 타서 부엌에 갔어요.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과일들 상태를 보니


망해도 완전 제대로 망했다!!!!!


꽤 더웠는데 집에 가져오는 과정에서 무른 놈들이 썩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후다닥 썩어가는 놈은 먹어치우고 그나마 멀쩡한 놈만 골라서 냉장고에 집어넣었어요.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직전. 무화과 상태와 복숭아 상태를 확인해보니


"그냥 오늘 무화과 다 먹어치워야겠네."


무화과에서 시큼하고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는 걸로 보아 좀 맛이 간 놈들이 많이 생겼어요. 이 정도 상한 거면 먹어도 탈이 나지야 않겠지만 더 놔두면 전부 버려야하게 생겼어요. 복숭아는 다행히 멀쩡했어요. 그래서 무화과를 다 가지고 와서 먹으며 글을 쓰기 시작.


아주 끝을 봐야지!


다 먹으려고 하나하나 먹는데 어떤 놈은 시큼하고 꼬릿꼬릿한 냄새가 나고 - 즉 조금 썩었고, 어떤 놈은 맛이 있었어요. 골라내기도 귀찮아서 시큼한 놈은 그냥 삼켜버리고 아닌 놈은 씹어 먹고 하다가 나중에는 입에 마구 우겨넣어서 다 먹어치웠어요.


다시는 무화과 안 산다.


다 먹고 나니 왜 그런 지는 모르겠지만 입에서 생밤 냄새가 나네요.


오늘은 도저히 시장 귀찮아서 못 가겠어요. 내일 가든가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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