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노원구 상계4동 당고개역 달동네 합동마을

좀좀이 2019. 6. 2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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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어요. 올라가기 귀찮았지만 지금 귀찮다고 안 올라가면 나중에 그 계단 위가 어떤지 궁금해서 다시 와야 할 수도 있었어요. 주저앉고 싶을 정도로 피곤한 것은 아니라 일단 위로 올라가보기로 했어요.



낡고 가파른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어요.


서울


달동네


시멘트 블록을 쌓아 만든 단 위에 항아리가 놓여 있었어요. 이제 해가 서쪽으로 빠르게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집 안에서 음식 만드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어요.


노원구


화분에 심어진 식물들도 슬슬 잠들 준비를 하고 있었어요.


서울 강북권 주거환경


서울에 남아 있는 달동네를 가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공간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이 보였어요. 그리고 조금이라도 더 공간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노력도 보였구요.



달동네를 돌아다닐 때마다 정말 신기한 것 중 하나는 바로 선인장을 키우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선인장은 서울의 겨울을 이겨내기 매우 어려울텐데요. 여러 선인장이 잘 자라고 있었어요.



계단에서 아래쪽으로 내려다 보았어요. 화분이 일자로 쭉 놓여 있는 것이 아니라 교차로 놓여 있었어요.



스티로폼 상자에 흙을 담아 만든 화분에서는 고추 묘목이 잘 자라고 있었어요. 고추는 제대로 농사지으려면 꽤 어렵지만 가볍게 키우는 용도로는 많이 재배해요.




합동마을에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어요. 저도 이제 슬슬 집으로 돌아가야 했어요. 양지마을까지 돌아보는 것은 정말 무리였어요. 체력도 방전되었고, 해도 따라주지 않았어요. 더 돌아다녀봐야 어둠 속을 돌아다닐 것이었어요. 어둠 속에서는 사진을 제대로 찍기 어려웠어요. 게다가 합동마을을 돌아다니며 큰 감흥을 못 받았기 때문에 양지마을로 간다고 해서 뭔가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어요.


합동마을


분홍색 큰 대야에는 꽃잎이 둥둥 떠다니고 있었어요.






'여기까지 글 다 쓴 후에 다시 돌아다니든지 해야겠다.'


서울 노원구 상계4동 당고개역 달동네 합동마을을 돌아다니며 아무 것도 특별하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은 꽤 중요한 문제였어요. 그냥 생각없이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었거든요. 기록으로서의 사진으로조차 뭘 찍어야할지 알 수 없었어요.


이런 개인적인 느낌 문제 외에 보다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어요. 컴퓨터 하드디스크 용량이 없었어요. 이날 사진으로 찍은 것들을 바로 컴퓨터 하드디스크로 옮길 수 없었어요. 그 앞에 찍은 사진들조차도 컴퓨터 하드디스크에 용량이 없어서 카메라 SD카드 메모리 속에 묵혀두고 있었어요. 어떻게든 글을 써서 하드디스크 용량을 늘려 카메라 SD메모리카드 안에 있는 사진을 컴퓨터로 옮기는 것부터 해야 했어요.






다시 계단에서 아랫쪽 큰 길로 내려왔어요.





'저건 단지집인가?'


단지집


합동마을 아랫쪽으로 내려오자 가옥 형태가 약간 특이했어요. 처음에는 1층을 짓고 그 후에 급조하다시피 2층을 올린 건물이 여러 채 보였어요. 그와 더불어 위 사진처럼 생긴 집이 있었어요. 이것이 단지집인지 아닌지 애매했어요. 단지집이란 건축자재와 땅이 부족해서 두 가구가 건물 하나를 지은 후 둘이 나눠쓰는 집을 이야기해요. 이 또한 정부에서 서울 도심 판자촌을 밀고 인위적으로 다른 곳에 거주민들을 정착시킬 때 생긴 가옥 형태에요.









서울 노원구 상계4동 당고개역 달동네 합동마을 사진을 찍으며 계속 마을 안을 돌아다녔어요.












허름한 가옥과 좁은 골목길 사이를 돌아다녔어요.






담장에 도둑을 방지하기 위해 박아놓은 유리병 조각조차 풍화되어 무뎌졌어요.




계속 돌아다녔어요.




할아버지 한 분과 마주쳤어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여기에서 뭐 하고 있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취미가 사진 촬영인데 골목길 사진 찍으러 왔다고 대답했어요.


"여기 오래된 동네인가요?"

"여기 정말 오래되었지. 1968년에 생긴 동네니까. 나는 내 집에서 사진 찍고 있길래 뭐하고 있나 했지."


할아버지께서는 제가 자기 집 근처에서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있어서 궁금해서 물어보신 거라 대답하셨어요.


"1968년에 생긴 동네면 정말 오래된 동네네요?"

"그렇지."

"그때는 여기 어땠어요?"

"여기는 그냥 허허벌판이었지. 내가 여기 처음 온 사람이야."


할아버지께서는 자신이 합동마을로 처음 이주온 사람이라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께서는 예전에 성북구에서 거주하셨다고 하셨어요. 합동마을로 처음 이주당한 사람들은 1968년 1월 21에 발생한 1.21 사태 - 소위 '김신조 사건'이라고 말하는 사건 때문이었대요. 1.21 사태는 1968년 1월 21일 북한 민족보위성 정찰국 소속 공작원 124부대 31명이 청와대를 습격해 박정희 대통령을 암살할 목적으로 남침해 서울 세검정 고개까지 침투했던 사건이에요.


1.21 사태가 우리 사회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주민등록번호가 생겼다는 점이에요. 그렇지만 아주 안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로 인해 노원구 상계4동 당고개역 근처에 합동마을도 생겼대요. 1.21 사태 이후 군사 목적이 매우 큰 북악스카이웨이 길을 건설했어요. 이때 북악 스카이웨이 자리에서 살고 있던 사람들을 모두 현재 합동마을로 강제 이주시켰대요. 그게 합동마을의 시초였어요.


현재 합동마을 자리로 강제 이주당한 사람들에게 정부는 분필로 8평 정도씩 선을 긋고 알아서 집 짓고 살라고 했대요. 그래서 사람들은 천막 치고 살았다고 해요. 할아버지께서 처음 여기 왔을 때 이 자리는 산, 채석장, 밭 조금 뿐이었다고 해요.


합동마을에서 보이는 수락산 자락에는 채석장이 있었대요. 수락산 자락에 있었던 채석장에서 채취한 돌은 서울 전역 축대 제작용으로 사용되었다고 해요.


할아버지께서는 나중에 토지는 불하받으셨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건물은 현재도 무허가 상태라고 하셨어요. 서울 달동네에서 강남3구 판자촌을 제외한 나머지 달동네를 보면 이런 경우가 많아요. 서울의 달동네, 무허가 주택 난립 문제에는 정부도 직접적, 간접적 책임이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토지를 불하해 줬어요. 달동네, 무허가 주택에서 거주하던 사람들은 토지를 불하받아 강제 철거 문제에서 해결되었어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바로 1982년이에요. 1981년까지 항공사진으로 촬영되었거나 무허가 건물 등기로 올라가 있는 곳에 대해서만 토지를 불하해줬거든요. 서울 한강 이남 - 특히 강남3구 판자촌의 경우 1982년에 무허가 건물 등록이 안 되어 있는 신발생 무허가 건물들이기 때문에 다른 달동네들과 상당히 많이 달라요.


합동마을이 1.21사태 때문에 생긴 마을이라는 사실은 몰랐어요. 그러나 8평 정도씩 나눠주고 알아서 집 짓고 살라고 한 점, 나중에 토지를 불하해줬다는 점 등은 노원구 합동마을에 오기 전에 알아본 내용과 할아버지의 말씀이 일치했어요. 이 점은 노원구의 다른 달동네인 백사마을도 마찬가지에요.


"할아버지, 여기에서 양지마을은 어떻게 가나요?"

"양지마을? 나도 거기 여러 번 들어보기는 했는데 어딘지 잘 모르겠네. 잠깐 기다려봐요."


할아버지는 주변 조그만 가게로 들어가셨어요. 할머니께 양지마을이 어디냐고 물어보셨어요. 할머니는 바로 옆이 양지마을이라고 알려주셨어요. 위치는 상계3,4동 주민센터 옆쪽이었어요.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어요.


서울 노원구 상계4동 당고개역 달동네 합동마을


노원구 합동마을


이렇게 서울 노원구 상계4동 당고개역 달동네 합동마을을 다 둘러봤어요. 양지마을 둘러보는 것은 가볍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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