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종로구 동대문 창신동 쪽방촌

좀좀이 2019. 6. 23.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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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대체 왜 벽화가 있지?'


서울 종로구 동대문 창신동 쪽방촌에 왜 벽화가 있는지 매우 궁금했어요. 낙후된 지역에 벽화 그리는 작업은 한때 엄청나게 열풍이 불었어요. 낙후된 곳이라면 여기저기 도처에 벽화가 들어찼어요. 창신동 쪽방촌이 동대문 벽화골목이 된 것은 지금까지 몰랐어요. 여기 와서야 창신동 쪽방촌이 동대문 벽화골목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을 보고 알았어요. 대체 왜 여기에 벽화가 있는지 매우 궁금해졌어요.





일단 골목에서 밖으로 빠져나왔어요.


서울 쪽방촌


차 뒤에 있는 낡은 집들이 창신동 쪽방촌이에요.


서울 동대문 벽화골목


서울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이 동대문 벽화골목이 된 것은 2012년이래요. 2012년 8월 25일~26일에 홍익대학교 미술학과 학생 20명 및 자원봉사자 80명이 '추억을 그리다'라는 주제로 벽화 제작을 위한 1차 작업을 시행했고, 2012년 9월 1일~2일에 2차 작업을 했다고 해요. 최종적으로 2012년 10월말, 1970년대~1980년대 추억을 그려볼 수 있는 벽화 39점이 완성되었다고 해요.


이 벽화 제작 작업은 홍익대학교 미술대학생들의 제안에 자원봉사자들과 서울시청 직원들로 구성된 '나눔과 봉사단'이 재능기부 의사를 밝히며 본격화되었다고 해요. 벽화 주제가 '추억을 그리다'가 된 것은 창신동 쪽방촌 거주민을 위해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결과 1970~80년대 번성했던 청계천 일대 생활상을 그려달라는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하구요.


순안슈퍼 앞을 지나 다른 골목길로 들어갔어요.


동대문 쪽방촌


쪽방촌 건물들은 입구 문이 열려 있었어요.


동대문 벽화골목 쪽방촌


골목 담벼락에는 벽화가 매우 잘 조성되어 있었어요. 2012년에 제작된 벽화 골목이 지금도 관리가 꾸준히 되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


서울 종로구 동대문 창신동 쪽방촌


고시원.


서울 동대문 벽화골목 쪽방촌


내부를 안 봐도 알 수 있었어요.


서울 종로구


오래된 티가 나는 건물. 그리고 그 안에서 나는 굳이 내부를 들어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시원.


서울 주거상황


서울 도시재생사업


서울특별시 도시재생사업


한 가지는 아주 확실해졌어요.


서울 빈부격차


쪽방촌은 찾아가서도 안 되고, 찾아갈 필요도 없어.





예전에 살았던 고시원. 누우면 발 끝이 벽에 닿을 것 같고 두 팔을 펴면 양쪽 벽에 닿을락 말락하던 그곳. 아마 가로 2m, 세로 2m 조금 안 되었을 거다. 1평보다 조금 더 넓은 방. 여름에는 더워 죽을 것 같고 겨울에는 추워 죽을 것 같던 그곳.


도시재생사업


자세히 둘러볼 필요도 없었어요. 답이 나왔어요. 여기 주거 환경이 어떨지 눈에 뻔히 보였어요. 진짜 비슷한 곳에서 살아봤으니까요. 그것도 2년 동안요.


서울 창신동 동대문역 벽화골목 쪽방촌


앞으로 쪽방촌은 더 늘어날 수도 있어. 이름만 바뀔 뿐이야. '고시원'이라는 이름으로.


쪽방촌이 궁금하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살았던 고시원과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쪽방촌 방 내부 사진을 볼 때마다 전기밥솥이 있고 버너가 있는 게 정말 부러웠다. 고시원에서 맨밥과 김치는 제공해준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쪽방촌과 다를 게 하나도 없어보였다. 와서 보니 진짜 그런 거 같았다.


쪽방촌은 일부러 찾아갈 필요 없어. 앞으로 더 늘어날 수도 있어. 이름만 '고시원'인 곳들. 서울 도처에 깔려 있는 곳들. 왜 여기는 학생도 없는데 고시원이 있는지 한 번은 궁금해해보지 않았어? 그게 말이 좋아 고시원이지 실상 쪽방촌 같은 곳이야.






서울 종로구 창신동은 옛날부터 서울 도심 주변에 위치한 인구 밀집 지역이었어요. 1960년대만 해도 창신동은 사창가로 매우 유명한 동네였어요. 그런데 1968년 8월, 창신동 사창가 단속에 걸린 포주가 앙심을 품고 그동안 상납한 경찰 명단이 적힌 장부를 공개하는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 사건으로 인해 상납 받은 경찰들이 무더기로 파면 또는 구속되었어요. 이후 경찰은 사건 발생 1년 후부터 사창가 입구에 초소를 설치하고 24시간 교대근무를 실시해 사창가를 몰락하게 만들었다고 해요.


이 즈음인 1968년, 서울 전차 운행이 중단되었어요. 이로 인해 전차 차고지 부지는 유휴지가 되었어요. 1970년에 전차 차고지 자리에 동대문 종합시장이 건립되었고, 이 중 한 동이 고속버스터미널로 건립되었어요. 동대문 고속터미널은 1972년에 건립되었고, 1977년에 폐지되었어요.


동대문 터미널이 들어서면서 산업화 초기 지방 등지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이 지역에 정착해 살게 되었어요. 사창가로 유명했던 지역은 터미널 이전과 복합상가 건설 등으로 인해 소규모 공장과 쪽방촌으로 바뀌었다고 해요.


여기에 이 당시 여관들이 손님을 더 받을 욕심에 방을 매우 작게 쪼개어서 손님을 받기 시작한 것도 창신동 쪽방촌 형성 원인이라고 해요.





결론이 나왔어요. 더 돌아다닐 필요가 딱히 없었어요. 달동네는 사라져가고 있지만, 쪽방촌은 이름만 바뀌어서 계속 존재할 거니까요. 어쩌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어쩌면 더 줄어들 수도 있지만, 이 형태가 아예 사라질 리는 없었어요. 오히려 현재 상황을 본다면 오히려 더 늘어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신동 쪽방촌


창신동 쪽방촌 골목에서 나왔어요.


서울특별시 주거환경


저 담장 너머가 창신동 쪽방촌이에요.








서울 종로구 동대문 창신동 쪽방촌에서 빠져나왔어요.


여담으로 이 글을 쓰면서 창신동 쪽방촌 관련해 놀라운 점 두 가지를 알게 되었어요.


첫 번째는 창신동 쪽방촌은 카카오맵 로드뷰로 어떻게 생긴 곳인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창신동 쪽방촌 골목길은 로드뷰로 촬영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생긴 곳인지 직접 가보지 않아도 충분히 다 살펴볼 수 있어요. 벽화, 동네 구조 같은 것 다 볼 수 있어요.


두 번째는 창신동 쪽방촌이 일종의 유명 출사지, 관광지처럼 알려졌다는 점이에요. 서울의 숨은 관광명소랍시고 알려져서 사람들이 거기로 사진 찍고 벽화 구경하러 많이 갔대요. 2017년에서 2018년에 갑자기 엄청나게 퍼졌던 것 같아요. 실제 검색해보면 이런 글이 상당히 많아요. 이로 인해 벽화조성사업의 부정적인 면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곳 중 하나가 바로 창신동 쪽방촌이었어요. 다른 곳은 그래도 '주민'이지만 여기는 주민이 아니라 '거주민'이에요.


영등포 쪽방촌도 똑같이 벽화조성사업이 이루어졌지만 창신동 쪽방촌이 유독 부작용을 극심하게 겪었고, 겪고 있는 이유는 동네 차이에요. 영등포 쪽방촌은 섣불리 다가갈 엄두 자체가 나지 않거든요. 영등포역 노숙자, 부랑아, 빈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동대문에 있는 창신동 쪽방촌은 영등포 쪽방촌에 비해 훨씬 '가볼 만한 환경'이에요. 일단 이쪽에 이런저런 숙소들이 많이 있어요. 모텔, 여인숙 같은 곳도 있고, 게스트하우스도 있어요. 게다가 영등포역 근방에 비해 훨씬 깔끔하고 안전한 것은 사실이에요. 멀쩡한 식당가와 청계천 뒷편에 있으니까요.


대체 낙후되고 허름한 동네에 진행된 벽화조성사업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볼 문제에요. 벽화가 조성된 곳에는 벽화 빼고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오히려 평온만 상실했어요. 이건 벽화골목으로 유명해져서 구경하러 가고 사진 찍으러 가는 사람들 잘못이 아니에요. 관광지처럼 만들어놓고 관광지처럼 홍보해서 관광지인 줄 알고 간 사람들에게 비난을 가하는 것은 방향이 잘못된 비난이에요.


이것은 엄연히 부작용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벽화조성사업을 추진하고 만들고 홍보한 사람들 잘못이에요.



p.s.

2019년 11월, 창신동 쪽방촌을 다시 갔어요.



위 영상은 2019년 11월에 창신동 쪽방촌에 갔을 때 촬영한 서울 종로구 동대문 창신촌 쪽방촌 심야시간 풍경 영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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