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달동네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다보니 달동네 관련 자료를 이것저것 찾아보아야만 했어요. 기초적인 것은 알아야 글을 쓸 수 있으니까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그래도 살아온 시간이 길고 보고 들은 게 있어서 대충 얼버무릴 건덕지라도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저는 제주도 제주시 출신이에요. 제주도에는 달동네 없어요. 제주도를 향한 어마어마한 이촌향도 현상이 발생할 리 없으니까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살기 시작했기 때문에 과거 서울이 어땠는지 잘 몰라요. 제가 알고 있는 서울의 과거 이야기는 세 가지 경우에요. 첫 번째는 제가 대학교 올라와서 직접 겪은 것들, 두 번째는 제가 공부해서 알게 된 것들, 세 번째는 서울 사람들이 제게 알려줘서 아는 것들이에요.
서울에 있는 달동네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글을 쓰면서 서울 달동네 관련 자료들을 찾아봤어요. 달동네 관련 자료는 보는 시각에 따라 상당히 다양했어요.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자료도 있고, 도시개발 측면에서 접근한 자료도 있고, 부동산 투자 관점에서 접근한 자료도 있었어요.
서울에 있는 달동네 관련 자료들을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읽으면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달동네라고 다 같은 달동네가 아니다.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달동네는 다 같은 달동네에요. 강남구 구룡마을이나 홍제동 개미마을이나 이화동 벽화마을이나 다 똑같아 보이고 그저 허름한 집, 더 허름한 집, 진짜 판자촌 정도 차이만 보일 뿐이에요. 그러나 아니었어요. 달동네라고 다 같은 달동네가 아니었어요. 서울에 있는 달동네는 몇 개 분류로 또 다시 확실히 구분되었어요. 그제서야 제가 다녔던 달동네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 절 달터마을 절이었어?"
구룡마을에 가기 위해 분당선 구룡역으로 갔을 때였어요. 구룡역 바로 옆에 불교 절이 있었어요. 그 절 이름은 심복사였어요. 이 절은 구룡마을 절이 아니었어요. 달터마을 절이었어요. 정확히는 달터마을 3지구 절이었어요.
인터넷으로 서울 강남구 개포동 달터마을을 검색해 보았어요. 여기는 기사가 전부 순조롭게 주민들이 이주하고 있고 철거 작업도 무난히 잘 이루어지고 있다는 기사들이었어요. 지도로 개포동 달터마을 위치를 찾아봤어요. 개포동 달터마을이 철거된 자리에는 개포근린공원이 생길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2019년 10월 예정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달터근린공원 사진과 글을 보니 공원화가 엄청나게 많이 진행되어 보였어요.
딱 뉴스 하나만 아직도 달터마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어요. 소방방재신문 2018년 12월 12일자 기사였어요. 강남소방서가 2018년 12월 12일 오후 구룡마을, 달터마을 등 겨울철 화재취약 4개 구역에 화재 예방환경 조성을 보강했다는 기사였어요. 화재 예방환경 조성 보강 활동에서 폐소화기 교체 및 보이는 소화기 정비, 세대 방문 단독경보형 감지기 확인 및 추가 설치, 간이 연결 송수관 동결 상태 확인 및 물탱크시설 성능 시험, 소방시설 주변 정리 및 찾아가는 소방안전 교육, 주택용 소방시설 보수및 점검 등을 진행했대요.
'아직도 있을 건가?'
궁금했어요. 모든 뉴스가 달터마을은 순조롭게 철거되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었어요. 오직 소방방재신문 2018년 12월 12일자 기사만이 아직도 달터마을이 남아 있을 거라는 암시를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갔다가 허탕치는 거 아냐?'
왠지 갔다가 허탕칠 것 같았어요. 여기가 의정부에서 가깝다면 그냥 바람쐬는 기분으로 나갔다 와도 상관 없었어요. 그러나 의정부에서 무지 멀었어요. 구룡역은 서울의 남쪽 끄트머리에 가까운 곳이고 의정부는 서울 북쪽 끝 너머거든요. 그나마 관악구처럼 의정부에서 대각선 반대 방향이 아니라는 게 위안이 되는 머나먼 강 너머 저쪽이었어요. 갔다가 허탕치면 교통비만 들이고 시간 날리고 체력도 허비할 거였어요.
카카오맵 위성사진을 확대해서 봤어요.
"어? 여기 뭐 있는데?"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판자촌 달동네 구룡마을을 가기 위해 위성사진을 봤을 때 그냥 넘어갔던 달터근린공원을 자세히 봤어요. 뭔가 득시글하게 있었어요. 네이버 지도 위성사진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해봤어요. 분명히 확실히 뭔가 득시글하게 있었어요. 나무 아래에 숨어있는 건물. 판잣집이었어요. 하도 위성사진을 보니 이것이 판자집이라는 것을 분간해낼 수 있었어요.
'진짜 있는 거 아냐?'
카카오맵 로드뷰를 보았어요. 로드뷰 촬영 날짜는 2018년 6월. 이때까지는 분명히 있었어요. 네이버 지도 거리뷰로 확인해 봤어요. 네이버 거리뷰 촬영 날짜는 2019년 1월. 이때도 있었어요.
'가보자. 정 안 되면 달터근린공원이라도 보고 오면 되지.'
진짜 허탕치게 된다면 원래 불법 판자촌 달동네가 있던 공원을 가본다는 것에 의의라도 두기로 했어요. 2019년 1월까지는 확실히 있었어요. 2018년 12월에 소방서에서 화재 예방환경 조성 보강 활동을 펼쳤다고 했으니 2019년 1월에는 분명히 있었어요. 어쩌면 지금도 남아있을 수 있고, 다른 모든 뉴스와 블로그에서 떠들어대는 것대로라면 지금은 철거가 진행되었고 공사중일 것이었어요.
집에서 나왔어요. 지하철을 타고 구룡역으로 갔어요. 이날은 정말 재수없게 의정부에서 구룡역 가는 내내 지하철에서 서서 갔어요. 이상하게 이날따라 지하철 좌석이 다 차 있었어요. 평소에는 좌석이 절대 다 안 차는데요.
2019년 5월 18일 오전 11시 13분. 지하철 분당선 구룡역에 도착했어요.
구룡역에서 나오자마자 보이는 것은 현수막이었어요.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눈가림 보상! 떠밀리는 이주대책! 이대로는 못나간다
달터마을 주민자치회 / 이주 및 보상대책위원회
'진짜 있나?'
개포고등학교로 갔어요. 개포고등학교 옆길을 타고 달터근린공원으로 갔어요.
"이거 뭐야!"
현수막이 걸려 있었어요. 현수막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이 곳은, 평생 살아 온 삶의 터전이다!
달터마을 지켜내자!
달터마을 주민자치회 / 철거대책위원회
조심스럽게 현수막이 걸린 곳을 지나 개포동 달터근린공원 안으로 들어갔어요.
표지판이 있었어요.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도시계획시설(공원) 사업에 따른 행위제한 안내
가. 개요
1) 사업시행지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 18길 15, 개포로 403 (달터마을 1~3지구)
2) 사업시행자 : 강남구청장 (서울시 강남구 학동로 426)
3) 사업의 종류 및 명칭
- 사업의 종류 : 도시계획시설(공원)사업
- 사업의 명칭 : 달터근린공원 조성
나. 행위제한
1) 건축물, 가설물, 공작물 등의 신축, 증축, 개축 행위
2) 무허가 건축물을 매매 알선하는 행위
3) 토지의 형질변경, 토석, 수목, 초본 등의 채취 및 훼손
4) 농작물 재배 및 나무를 베거나 심는 행위
다. 기타사항
- 사업기준일 이후 미거주 위장전입자로 확인되는 경우에는 관계법령에 따라 불이익을 받게 됨
- 위 제한행위를 위반 시 도시공원 및 녹지 등에 관한 법률 제24조 및 동법 제53조에 따라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됩니다.
'뭐지? 뉴스랑 블로그들 다 뭔 소리를 해놓은 거야?'
여기 오는 동안 달터근린공원에 판자촌 달동네인 달터마을이 남아 있을 확률과 없어졌을 확률은 1:9라고 봤어요. 모든 뉴스와 블로그 글이 다 달터근린공원 조성이 순조롭게 진행중이라고 했거든요. 이미 완성된 달터근린공원 사진도 올라와 있었구요.
여기 판자촌 달동네 그대로 있잖아!
조금 걸어올라가자 판자촌 달동네가 나왔어요. 달터마을이었어요.
알림 표지판이 있었어요.
표지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어요.
알림
이곳(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8길15, 개포로403)은 도시계획시설(공원)사업으로 달터근린공원 조성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허가건물 철거 공지에 물품 및 자재등을 적치하거나 생활폐기물 등을 버리시면 아래와 같이 관련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되오니 위법행위를 금지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 아 래 -
- 무허가건물 철거 공지에 물품 및 자재등을 적치할 경우 :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6조 및 동법 제99조에 의거 형사고발 및 변상금 부과
- 무허가건물 철거 공지에 생활폐기물 등을 버리거나 적치할 경우 : 폐기물관리법 제8조 동법 제68조에 의거하여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
2017년 4월
강남구청장
"이놈들 대체 뭔 소리를 한 거야?"
몇 집 안 남아 있는 정도가 아니었어요. 그냥 진짜로 판자촌 달동네가 온전히 남아 있었어요. 입구부터 멀쩡한 판잣집이 여러 채 있는데 안쪽은 안 봐도 뻔했어요. 이게 대체 어떻게 되어서 그런 뉴스와 블로그 글이 난무하는지 진심 궁금해졌어요.
그래도 예전에 비해 규모가 조금 적어진 티가 나기는 했어요. 표지판이 세워진 자리도 예전에는 판잣집이 있었던 자리 같았거든요.
사람이 살고 있었어요.
계단은 블록 벽돌을 쌓아서 만들어놨어요.
고추묘목을 심어놓은 화분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었어요.
한 판잣집에는 아래와 같은 공고문이 붙어 있었어요.
공고문 내용은 아래와 같아요.
무허가건축물 폐쇄
본 무허가건축물(공가)은 서울특별시 소유 공유(행정)재산에 무단으로 설치된 시설물로서 공가 폐쇄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본 무허가건축물(공가)을 무단으로 점유할 경우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 제99조의 규정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 주의 : 안내판 등 공공기물 파손시는 형법 제141조에 의거 고발조치 함.
달터마을 안을 둘러보았어요. 분명히 사람 사는 동네였어요.
이게 어디를 봐서 순조롭게 철거 진행중이야?
구룡마을 근처에 또 다른 판자촌 달동네가 숨어 있어서 놀란 것이 아니었어요. 뉴스와 블로그 글들을 보고 한 예상과 완전히 벗어나 있는 모습에 당황했어요. 몇 집 없어진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마을이 그대로 남아 있었거든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판자촌 달동네인 구룡마을, 달터마을 모두 개포동에 있어요. 달터마을은 구룡마을에서 조금 멀리 떨어져 있어요. 달터마을 입구와 구룡마을 입구 사이 거리는 800m 조금 넘는 거리에요.
달터마을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공식적으로는 달터근린공원을 돌아다니고 있는 중이었어요. 이곳은 공식적으로 달터근린공원이거든요.
달터마을 안에 있는 길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었어요.
계속 동네를 돌아다녔어요.
계단을 따라 올라갔어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산 156번지 달터마을에서도 구룡마을과 마찬가지로 타워팰리스가 아주 잘 보였어요.
타워팰리스를 지을 때 사람들은 상상도 못했을 거에요. 타워팰리스가 개포동에서 너무 잘 보여서 구룡마을, 달터마을과 한 사진에 찍혀 빈부격차의 상징물이 될 거라구요.
이것은 그냥 땅이 아니에요. 판잣집 지붕이에요.
공사장에서 쓰는 틀을 올려놔 빗물이 흐르도록 만든 물길을 건너는 다리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집이 계속 나왔어요.
비닐하우스촌 모양이 살아 있는 집이었어요.
이런 집은 처음부터 여러 사람이 거주할 계획으로 지어진 집이라 봐야 해요.
모래주머니를 쌓아 만든 축대가 있었어요.
역시나 나무가 하늘을 가리지 않은 곳에서는 타워팰리스가 잘 보였어요.
계속 달터마을 안쪽을 향해 걸어갔어요.
판잣집은 계속 나오고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