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성동구 마장동 한양대학교 빈민가 달동네

좀좀이 2019. 6. 12. 0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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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따라 걸으며 계속 서울 성동구 마장동 한양대학교 빈민가 달동네를 둘러보았어요.



서울특별시 성동구 마장동은 마장동 축산시장으로 유명한 곳이에요.


오늘날 마장동인 곳은 조선 초기부터 말을 기르던 양마장이 있었던 곳이라고 해요. 그래서 이곳을 마장안, 또는 한자명으로 마장내(馬場內), 마장리(馬場里)라고 한 것이 마장동의 지명 유래라고 해요.




마장동은 조선시대에는 한성부 동부 인창방에 속해 있었어요. 1751년 영조 27년에 나온 도성삼군문분계총록에 의하면 이곳은 동부 인창방 마장리계였다고 해요. 1894년 갑오개혁 때 동서(東署) 동소문외계 마장리라고 했다고 하구요.




이곳은 1911년 4월 1일 경기도령 제 3호에 의해 경성부 인창면 마장리가 되었어요. 이후 1914년 4월 1일 경기도고시 제 7호에 의해 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마장리가 되었어요.




이후 1936년 4월 1일에 경성부 고양군 한지면 마장리가 되었고, 1943년 6월 9일에 경성부 성동구 마장정이 되었어요.




일본이 미국에게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하고 대한민국이 광복을 맞이한 후, 1946년 10월 1일 일제식 동명을 모두 없애면서 이 지역 이름이 마장동이 되었어요. 이 동명이 오늘날까지 내려오고 있어요.




1961년 즈음 마장동 축산시장이 형성되었어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숭인동 도축장과 우시장이 마장동으로 옮겨지면서 생긴 시장이라고 해요.




1958년 마장동에 들어선 우시장과 1961년에 건립된 제1시립도축장이 합쳐져서 마장동 축산물 시장이 되었어요.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서는 수도권, 강원도, 충청도에서 끌려온 소, 돼지 떼의 도축, 유통이 이루어졌어요. 이 당시, 오전 4시부터 오전 10시까지 가축 매매가 이뤄졌는데, 하루 최대 소 250여 마리, 돼지 2000여 마리가 도축되었다고 해요.




1970년 5월 18일에 마장동은 성동구 마장1동과 마장2동으로 분동되었어요. 그리고 1974년 경매제가 도입되며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사라졌어요. 이 무렵 도축장은 서울 시립 기구에서 민간으로 불하되었어요.




1977년 9월 1일에 성동구 마장1동과 마장2동은 다시 통합되었어요. 그리고 1998년에는 이쪽에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며 도축장도 사라졌어요.


오늘날 마장동 축산물 시장에서는 도축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요. 도축된 육류를 들여와 해체, 정형, 발골 작업하고 유통하는 시장이에요.




마장동 달동네가 언제 형성되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어요.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 보았지만 딱히 나오는 것이 없었어요. 하지만 마장동은 꽤 오래된 동네라는 점에서 아마 자연발생적 달동네 아닐까 싶었어요.




마장동 피카소 마을에서 다 내려왔어요. 이 길에서 방향을 잘 잡아 내려가면 한양대학교로 갈 수 있었어요. 그러나 저는 한양대학교 캠퍼스 구경을 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피카소 마을이 아니라 맞은편 달동네와 그 너머 사근동 달동네를 갈 계획이었거든요.


마장동


성동구


맞은편 달동네로 가려면 계단을 올라가야 했어요.





계단을 올라가다 뒤를 돌아봤어요.


성동구 마장동 벽화마을


마장동 꽃담벽화마을 전경이 보였어요.


서울 성동구 마장동 한양대학교 빈민가 달동네


다시 위로 올라갔어요.








꼭대기까지 다 올라가자 가게가 하나 있었어요.



가게에서 콜라를 하나 사서 마신 후 가게 주변을 돌아다니며 주위 풍경을 보았어요.



한양대학교 달동네


서울 성동구 한양대 달동네


한양대 빈민가


마장동 빈민가


성동구 마장동


서울 성동구 마장동 한양대학교 빈민가 달동네인 꽃담벽화마을을 다 둘러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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