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인왕산 달동네 개미마을을 계속 돌아다니며 둘러보았어요.
벽에 발라놓은 시멘트가 깨진 집이 있었어요.
부서진 벽을 보니 원래는 판자집이었는데 그 벽에 벽돌을 쌓아 외벽을 만들고 그 위에 시멘트를 발라놓은 집 같았어요.
벽화를 잘 살펴보았어요.
벽화에 적힌 년도는 2009년, 2010년이었어요.
마을을 계속 돌아다녔어요. 햇살이 참 좋았어요. 역광 상황만 아니면 사진 색깔이 마음에 들게 잘 나오고 있었어요.
'동네 예쁘기는 하다.'
그런 생각을 안 가지려 해도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어요. 모든 생각을 다 끄고 멍한 머리로 여기를 둘러보면 확실히 동네가 예뻤어요. 얼핏 보면 사람들이 참 아름다운 동네라고 좋아하게 생겼어요. 어떤 동네인지 모르고 보면 예쁜 산골 마을처럼 생겼거든요. 서울에는 이렇게 생긴 동네가 없으니 더더욱 그렇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어요. 지금까지 외국 여행, 국내 여행 다녀본 것 다 합쳐도 이 동네가 참 예쁘게 생긴 건 사실이었어요.
서울 서대문구 홍제3동 인왕산 달동네 개미마을의 기원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었어요. 서울에 있는 자연발생적 달동네 중 역사가 긴 편이라 할 수 있어요.
참고로 조선시대, 일제강점기까지 거슬러올라가는 정말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달동네들도 몇 곳 있지만, 대체로 서울에 있는 달동네는 그 역사가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부터라 해도 되요. 왜냐하면 한국전쟁 당시 서울은 초토화되었거든요. 무슨 조선왕조 600년이니 뭐니 하지만 냉정히 따져보면 서울 자체가 족보가 얼마 안 되는 역사에요. 한국전쟁때 초토화되고 그 이후 급격한 발전과 변화를 거친 땅이니까요. 당장 그렇게 물고 빠는 경복궁도 1867년 말 완공된 얼마 안 된 건축물이에요. 국사 공부하면 다 알다시피 지금 경복궁은 흥선대원군이 당백전 찍어내며 지은 건물이니까요. 현대 서울의 역사는 한국전쟁 1.4후퇴 이후 대한민국이 서울을 재수복한 1951년 3월 14일부터라고 봐도 되요.
서울의 달동네 중 여러 곳이 초기에는 피난민 및 도시 빈민, 일자리를 찾아 시골에서 상경한 사람들이 모여 살며 형성된 곳이에요. 그러나 1960년대 및 1970년대에 서울 도심부 개발 및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여러 판자촌, 달동네가 사라졌어요. 그리고 이렇게 사라진 달동네,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은 서울 외곽으로 강제 이주당해서 서울 외곽에 새로운 달동네, 판자촌이 생겼구요. 서울에서 한국전쟁 이후부터 쭉 그 자리를 곱게 지키고 있는 달동네는 의외로 별로 없어요.
개미마을은 피난민과 도시 빈민들에 의해 형성된 부락 중 하나로, 그 위치는 도심에서 멀지 않은 인왕산 계곡이었어요. 초기에는 사람들이 인왕산 계곡 하류에 판잣집을 짓고 자리를 잡았으나 점차 유입인구가 증가하면서 점점 마을이 상류쪽으로 확대되었고, 나중에는 인왕산 정상부 바로 아래까지 집이 들어찼다고 해요.
개미마을의 원래 이름은 인디언촌이었어요. 인디언촌이라고 불린 이유는 당시 사람들이 천막을 치고 사는 모습이 인디언들의 천막과 비슷하기 때문이었다고 해요. 이 외에 수시로 벌어지던 철거에 대항하면서 소란스러운 모습이 당시 유행하던 서부 활극 속 인디언들과 닮은 모습으로 비쳐져서 그렇게 불렸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이후, 개미마을에는 두 차례 대규모 철거가 집행되었어요.
첫 번째 대규모 철거는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와 관련 있어요. 1972년 남북공동성명 발표 후 북한 방문단이 개미마을 인근을 지나가게 되자, 양택식 서울시장은 대한민국 체제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개미마을 산1-166번지를 철거하고 학교부지로 지정했어요. 여기는 계속 나대지로 방치되다가 2009년에 인왕중학교가 들어섰어요.
두 번째 대규모 철거는 1973년도에 이루어졌어요. 김신조 청와대 습격 미수사건인 1968년 1.21 사태로 인해 높은 지역 주택들이 철거 대상이 되었어요. 이 당시 철거당한 주민들 대부분은 성남시 대원동 지역으로 이주했다고 해요. 그리고 이 철거로 인해 개미마을 가구수는 500여 가구에서 200여 가구로 줄어들었다고 해요.
1970년대 있었던 두 차례에 걸친 대규모 철거로 인해 개미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집이 언제 철거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게 되었어요. 이렇게 철거 공포에 시달리던 개미마을 주민들은 자기 집에 대한 권리 확보 필요성을 인식하게 되었고, 이를 위해서는 토지에 대한 불하가 우선이라 판단했어요. 그래서 개미마을 주민들은 국유지 불하를 통해 토지소유권을 확보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아나갔어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달동네 개미마을 주민들은 1983년부터 토지불하추진위를 구성해 정부에 토지 불하를 요구했어요.
참고로 '개미마을'이라는 이름은 이 당시 서울시와 토지불하 협상과정에서 '인디언촌'이라는 이름은 주민들 입장에서 너무 불쾌한 마을 이름이라고 주장하며 몇몇 주민들이 '개미처럼 열심히 일하는 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라는 의미로 '개미마을'로 바꿀 것을 요구해 마을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이라고 해요.
그리고 이와는 별개로 개미마을에는 1985년에 공중화장실과 수도가 설치되었어요.
개미마을 주민들의 지속적인 요구와 노력으로 국유지 불하가 가시화되자 1988년에는 국유지매입추진이사회가 조직되었어요. 이 당시 협상을 통해 토지비용을 5년간 분납하면 토지 불하를 받을 수 있게 되었어요. 이 토지비용 분납은 1989년부터 1993년까지 5년에 걸쳐 진행되었어요.
1993년 8월 31일, 불하대금이 완납되자 서울시는 매매 형식으로 국유지매입추진이사회에 국유지를 분할했어요. 그리고 1993년 10월 16일에 국유지매입추진이사회는 명의신탁해지 형식으로 개인에게 지분을 이전했어요. 이로써 개미마을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국유지 불하가 성공적으로 완수되었어요.
개미마을은 토지를 불하받으면서 지번을 나누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불하 후 재개발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어요.
이 당시 주민들은 드디어 자신의 토지를 갖게 되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고 더 이상 철거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과 함께 공동 개발을 통해 아파트를 지어서 살자는 희망적인 생각들을 하게 되었어요. 이 당시에는 이것이 나름대로 꽤 합리적인 생각이었어요. 경사가 엄청나게 심하고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깔리지 않은 곳에 무질서하게 집이 빼곡히 들어차있는 게 개미마을이었으니까요.
이것이 상당히 중요해요. 이는 현재 전국의 모든 낙후된 달동네 판자촌에 해당하는 문제에요. 이런 동네들은 전기, 상하수도 등 기본 인프라가 제대로 깔리기 전에 날림으로 들어선 집들로 꽉 차 있어요. 건물은 날림 건물이고 인프라는 안 깔려 있다보니 뭐 하나 손대려고 해도 집이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러다보니 결국 완벽한 방치 아니면 완벽한 파괴 후 재개발이라는 선택지밖에 안 남는 것이구요.
여기 주민들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었어요. 오히려 더 정확히 알고 있었겠죠. 그러니 날림으로 지은 집 싹 밀고 아파트 올려서 거기서 살자는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생각이나 과욕이 아니었어요. 그거 외에는 사실 답이 없으니까요. 차라리 싹 밀고 기본 인프라 제대로 구축하고 아파트 세워서 같이 사는 것이 더 나을 거에요.
이처럼 공동개발에 대한 기대로 인해 주민들은 토지 소유 방법을 필지 분할이 아닌 공동지분 방식을 선택했어요.
개미마을에 토지 불하가 완료된 후, 2000년도 이후부터는 그린벨트 해제와 개발 요구들이 나오기 시작했어요. 서울시는 그린벨트 해제, 지구단위계획수립 등 개미마을에 대한 도시계획을 수립했지만 복잡한 소유 관계와 종상향 요구 등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미개발 상태에 있어요.
2003년 6월 13일에 발행된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보면 서대문구청은 이곳을 도시계획시설인 공원으로 지정하고 2008년 12월까지 공원을 조성할 계획을 갖고 있었어요. 이 계획에 따라 2008년에는 도심 속 녹지 복원 사업의 일환으로 인왕산 도시자연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했어요. 오래된 무허가 건물들이 인왕산 고유의 자연경관을 훼손하고 있으며 붕괴와 재난 사고 위험이 높기 때문에 이러한 무허가 주택들을 철거하고 녹지복원 공사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이었어요. 이 정책에 의해 2008년 2월부터 집주인과 세입자에 대한 보상 실시 및 이주가 착수되었고, 50여 가구가 철거되었어요.
개미마을 주민들은 비록 토지 불하는 받았으나 재산권 행사는 제대로 할 수 없었어요. 결정적으로 이 땅은 그린벨트로 묶여 있었거든요. 그래서 개미마을 주민들은 계속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2006년 3월 16일 서울특별시고시 제2006-91호에 의해 개미마을은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었어요. 그리고 해제된 지역의 체계적인 정비를 위해 자연녹지지역의 용도지역을 유지하되 제1종 지구단위계획구역으로 지정되었어요.
여기까지가 행복한 이야기에요.
행복한 이야기는 딱 저기에서 끝나요. 이후 개발이 지지부진해지면서 계속 낙후된 달동네로 머무르고 있어요. 개발이 지지부진해지자 공동지분 방식이 문제가 되었어요. 어디만 따로 개발하는 식의 개발이 불가능하거든요. 주민들 의견은 종상향 및 민간재개발 요구, 공공 수용 및 공공개발과 집단 이주 요구, 현지 개량 및 외부공간 정비와 주택개량 및 보수 요구로 갈렸고, 여전히 진행중이에요.
길을 계속 걸어 올라갔어요.
벽돌로 만든 계단 양 옆으로 철쭉이 매우 예쁘게 피어 있었어요.
길 끝에는 불교 절인 관음사가 있었어요. 시각을 확인해 보았어요. 2019년 5월 4일 18시 3분이었어요. 절에 들어가기에는 너무 늦었어요.
발걸음을 되돌려 아래로 내려왔어요.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어요.
아래로 조금 더 내려가자 개미마을 서쪽이 매우 잘 보였어요.
벽화 때문에 저주받은 마을.
아니, 아름답기 때문에 저주받은 마을.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 계곡 달동네 개미마을을 보며 든 생각은 '아름답기 때문에 저주받은 마을'이라는 것이었어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제동 달동네 개미마을은 못 사는 동네, 달동네로 유명한 것이 아니라 출사지, 벽화마을로 오히려 더 유명해요. 그래서 이 마을이 어떤 마을인지는 오히려 덜 알려져 있어요.
누가 봐도 여기는 일단 아름답게 생겼기 때문에 보존이나 테마 공원으로 개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떠오르게 생긴 달동네에요. 정치인들도 이런 욕심을 안 낼 리 없을 거에요.
규모가 백사마을, 구룡마을, 정릉골처럼 엄청나게 큰 것도 아니에요. 딱 테마 파크로 만들거나 보존지역으로 규정하기 좋은 규모에요.
계곡을 따라 양쪽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요. 이 양쪽이 하필이면 동쪽과 서쪽이에요. 이게 엄청나게 중요해요. 사진 몇 번 찍어보면 알 수 있어요. 사진을 찍을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역광 상황이에요. 역광 상황이란 자신이 찍으려고 하는 것 바로 뒤에 해가 떠 있는 경우를 말해요. 이렇게 자신이 찍으려는 것 바로 뒤에 해가 떠 있는 상황에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찍으려던 것이 까맣게 나오든가 아니면 하늘이 하얗게 날아가버리는 일이 발생해요. 이건 기술적으로 어떻게 피할 방법도 없어요. 기껏해야 아주 시꺼멓게 촬영한 후 집에 돌아와 후보정으로 까맣게 찍힌 곳을 살려보는 것 뿐이에요.
그런데 개미마을은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요. 이 말은 어느 시간대에 가도 사진을 건질 수 있는 방향이 하나는 존재한다는 거에요. 아무리 큰 달동네라 해도 대체로 한쪽 사면에 형성되다보니 시간 잘못 맞춰서 가면 사진 찍을 때 엄청나게 고생해요. 그런데 여기는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서 어느 시간대에 가도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이 하나는 꼭 있다는 것이에요.
규모도 딱 테마 파크 및 보존 지역으로 설정하기 좋고, 인왕산 계곡을 따라 동쪽 사면과 서쪽 사면에 형성되어 있어서 어느 시간에 가도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어요. 경사가 심한 곳에 집이 다닥다닥 붙어서 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초목도 적당히 우거져 있어요. 개미마을은 땅 자체가 예쁜 자리에요. 솔직히 저기 있는 모든 집을 하얗게 페인트칠하고 지붕을 회색이나 주황색 시멘트 기와로 통일시켜놔도 그림 꽤 예쁘게 나올 거에요.
그러다보니 여기 온 사람들은 여기 사람들이 부실하고 오래된 집에서 힘겹게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동네 보고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요. 실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백사마을, 정릉골 같은 곳은 가난, 빈곤과 관련된 이미지와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개미마을은 아름답고 예쁘다는 이미지와 내용이 주를 이뤄요. 정말 살기 열악한 동네 중 하나인데 땅 자체가 예쁜 곳이다보니 아름다운 마을, 여기에 벽화까지 더해져서 사진 찍기 좋은 장소로만 인식되고 있어요.
토지 소유권이 공동소유로 되어 있다는 점과 더불어 주민들 의견도 갈리고 있는 점, 외부인이 보기에는 이곳이 못 사는 동네가 아니라 단순히 예쁜 동네로만 보인다는 점 모두 다 이 동네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요소에요.
차라리 서울시장이 엉뚱한 종로에 되도 않는 문화유산이니 유적이랍시고 여기저기 알박기하지 말고 이 동네에 관심을 가졌다면, 그리고 그놈의 도시재생사업을 엉뚱한 곳에 강제로 적용시키려 들 게 아니라 여기에 적용시켰다면 개미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서울 사람들 모두, 더 나아가 경기도 사람들에게까지도 좋았을 거에요.
사실 한 마을을 보존하기로 했다면 필연적으로 그곳은 관광지화되어야만 해요.
개발이 안 되는 땅과 집은 엄연한 사유재산권 침해에요. 게다가 한국 특성상 집값은 아파트만 잘 올라요. 모두가 아파트에서 살 필요가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문제는 아파트만 잘 오른다는 것이고, 보존하기로 결정되면 거기는 집값이 지지리 안 올라요. 집값 안 오르는 게 뭐 대수냐고 묻는 사람들도 많아요. 그러나 집값이라는 것은 단순히 매매차익을 의미하지 않아요. 집을 담보로 대출 받는 사람도 많아요. 괜히 사업 망하는 내용 나올 때 집 날리고 반지하, 옥탑방 단칸방으로 쫓겨나는 장면이 나오는 게 아니에요. 집값이 오를 수록 빈부격차가 커지는 결정적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집값 상승으로 인한 대출 능력 차이가 더 커지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한 마을을 보존하기로 했다면 그에 따른 다른 혜택이 지원되어야 하고, 계속 거기에서 살 이유를 제공해야 해요. 현재까지 나온 방안 중 실상 유일한 방법이 바로 관광지화에요. 관광지화시키고 주민들이 관광산업에 종사하도록 하는 것이에요.
만약 보존구역으로 지정만 하고 아무 혜택도 제공하지 않는다면 그 동네는 단순히 낙후된 동네 수준을 뛰어넘어 거지 동네, 슬럼가로 전락할 수 밖에 없어요.
즉, 개미마을을 보존하고 싶다면 일단 기본 인프라를 제대로 깔아줘야 하고, 집도 외형만 형식적으로 유지하고 나머지는 싹 다 제대로 새로 짓도록 해야할 거에요. 그 다음 관광지화시켜야 하고, 주민들을 관광업 종사자로 종사할 수 있도록 교육 및 사업지원을 해야 할 거구요.
이게 안 된다면 주민들 원하는 대로 동네 다 밀어버리고 재개발하라고 하는 게 맞구요. 인왕산은 국립공원도 아니잖아요. 억지로 조선 바짓가랑이 부여잡고 의미 부여할 뿐이죠.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인왕산 달동네 개미마을을 다 둘러보았어요. 여기를 떠나며 계속 개미마을은 아름다워서 저주받은 마을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