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사람이 있다 (2019)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1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정비구역

좀좀이 2019. 5. 20.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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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막길을 내려오는 중이었어요. 한 할머니께서 제게 뭐하냐고 물어보셨어요.


"취미가 골목 사진 찍는 거라 골목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있어요."

"재개발에서 온 거 아니고?"

"예."


달동네 돌아다니며 사진 찍다보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소리가 있어요. 바로 재개발에서 온 거 아니냐는 말이에요. 아쉽게도 저는 거기에 관여할 돈도 없고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없어요. 부동산에 소속된 것도 아니구요. 그런 쪽과는 100% 아예 무관한 인간이에요. 흔히 로또 되면 집 산다고 하는데 저는 로또 구입하는 걸 매우 싫어해서 아예 안 사기 때문에 그렇게 될 확률도 없어요.


"그런데 왜 사람들이 다 사진찍고 있으면 재개발에서 왔냐고 물어보나요?"


여기까지 오는 동안 재개발에서 왔냐는 소리를 이미 몇 번 들었어요. 그래서 할머니께 왜 사람들이 제가 골목길 돌아다니며 사진 찍고 있으면 제게 재개발에서 왔냐고 물어보냐고 여쭈어보았어요.


"며칠 전 서너명이 재개발 때문에 사진 찍으러 왔어. 그 중 여자는 무슨 작가인데 책 쓰려고 한다더라구."


무슨 책을 쓰려고 사진을 찍으러 왔는지 모르겠어요. 무슨 실전 부동산 투자 책 쓰려고 왔거나 소박하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동네 없어져가서 아쉽다는 감성 충만 책 쓰려고 왔겠죠. 별 관심없어요.


그때 어떤 아저씨가 오더니 할머니께 이삿짐 안 싸냐고 물어보았어요. 할머니는 왜 이사가냐고, 나는 여기에서 계속 살 거라고 대답하셨어요. 그러면서 여기 좋은 집 놔두고 왜 이사 가야 하냐고 하셨어요. 할머니께서는 이 좋은 집을 보상금 그깟 푼돈 주고 떠나가라고 하다니 자기는 안 나갈 거라 힘주어 말씀하셨어요.






내리막길을 어느 정도 내려오자 평평한 공간이 나왔어요.





평평한 공간 한쪽에는 낡은 가구 같은 것을 재활용해 만든 임시 정자 같은 것이 있었어요.



여기는 아마 주차장 관리소 역할도 하고 동네 어르신들 모여 담소 나누는 공간 역할도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진을 찍고 다시 길을 따라 걸었어요.




호박골 달동네


홍은13


홍은 제1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어둠이 짙게 내리깔리고 있었어요. 여기 길에 왜 이렇게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지 이해되었어요. 재개발 때문에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버리고 간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이었어요.


호박골 지도


호박골 안전마을 마을지도가 있었어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홍은동 달동네인 호박골 마을에 대한 자료는 거의 구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이 마을이 어떤 역사를 갖고 있는 마을인지 잘 모르겠어요.


홍은동


일단 이 동네 이름은 호박골 마을이에요. 지금은 호박골보다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정비구역인 홍은13구역으로 더 유명하겠지만요.


아주 옛날에 이쪽에서는 홍은동 지역 가축 분뇨 및 주민들의 인분을 대체로 그랜드힐튼 호텔 근방의 논밭에 버리곤 했대요. 그런데 광복 후 논골 주변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이런 분뇨를 버릴 곳이 없어졌어요. 그래서 당시 가장 외진 곳이었던 그랜드힐튼호텔 뒷편 산 아래쪽에 구덩이를 많이 파고 분뇨를 버렸다고 해요. 이후 이것들이 썩어서 거름이 되어 호박 심기 매우 좋은 땅이 되었구요.


1950년 이후 홍제천 주변에 집들이 들어서면서 여기 살던 사람들이 홍은1동 주민센터 뒷편 홍은동 산1번지 지역 4만평에 대대적으로 호박을 심어 팔기 시작하면서 이 동네 이름이 호박골이 되었다고 해요.


일단 이것으로 미루어보아 여기도 개미마을과 마을 형성 시기는 비슷했던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어요. 그 이후 역사에 대해서는 자료를 못 찾았어요. 기껏해야 2013년에 벽화가 제작되었고, 2015년에는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로 선정되어 주택형 태양광발전기 500여 대, 옥상 쿨루프, 홍제천변 태양광 분수대, 빛-물발전소, 50톤 짜리 빗물 저금통이 설치되었으며, 2017년 9월에는 한국해비타트가 주관하고 삼성전자가 후원한 '에너지효율 개선사업' 공모에서 선정되어서 '북한산 호박골 놀이터 태양광 지붕'과 '호박 모양 태양광 대문 등 150개가 설치되었다는 것 정도에요.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갔어요.


홍은13 재개발


서대문 재개발


위로 올라갈 수록 더 낙후된 집이 나왔어요.


홍은동 주택 재개발


'원일교회'라고 흰색 페인트로 투박하게 글자를 적은 건물이 있었어요.


홍은동 원일교회


"여기 전망 좋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홍은1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정비구역


여기도 땅이 매우 예쁜 곳이었어요. 교통 문제만 해결된다면 분명히 누가 봐도 탐낼 자리이기는 했어요. 홍제역 앞은 큰 도로인데 차가 드글드글한 지역이고 이쪽은 그나마 길도 좁거든요.


그리고 여기 와서 현수막 보고 여기가 홍은13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 정비구역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홍은13구역은 2009년 3월 26일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었어요. 2009년 9월 4일에는 조합설립이 인가되었어요. 2011년 4월 20일에는 사업시행이 인가되었고, 2018년 7월 10일에는 관리처분인가되었어요.


당초 계획대로라면 2019년 4월에 분양이 이뤄져야 했지만 현재 분양이 미루어진 상태에요. 만약 분양이 이뤄졌다면 제가 돌아다니러 왔을 때 철제 담장 쳐놓고 한창 철거작업이 진행되고 있었을 거에요.


더 윗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어요.


홍은13구역 달동네


계단을 따라 위로 올라갔어요.


홍은13구역 호박골 달동네


'아, 여기가 내가 위성사진에서 찾았던 거기구나!'


가로등은 켜져 있었지만 침침했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다 떠나간 것 같았어요.


홍은동 호박골 달동네


서대문구 달동네


홍은동 달동네 호박골 마을 골목을 걸었어요.


홍은동 달동네 호박골


사람이 떠나간 흔적이 여기저기 많이 보였어요.


서대문구 호박골 달동네 재개발


무슨 기도원 공동체 건물이 있었어요.


서대문구


여기도 사람들이 다 떠나고 철거될 때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서울 개신교


침침한 어둠 속을 걸어다니며 사진을 찍었어요.


홍은 제13구역


서대문구 홍은 제13구역 재개발


홍은동 달동네 호박골 골목길


꼭대기에 조금 남아 있는 판자촌 형태가 보존된 동네에서 빠져나왔어요.





'아, 아까 전망 좋았던 곳 다시 가볼까?'


이제라면 집집마다 불이 켜져서 야경이 괜찮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까 전망 좋았던 자리로 다시 걸어갔어요.


홍은동 달동네 재개발


아까보다 더 예쁜 야경이었어요.


홍은동 야경


사실 제일 좋은 것은 여기 살던 사람들은 보상 잘 받아서 속 시원하게 떠나고 재건축되는 것이에요. 그러나 아까 그 할머니 말이 영 찜찜했어요.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저도 몰라요. 분양은 미루어졌고, 이 좋은 곳에서 푼돈 받고 떠날 수 없다는 할머니 말은 2019년 5월 4일에 들은 말이었어요. 동네 곳곳에 떠난 사람들의 흔적이 잔뜩 있었구요.





홍은동 호박골 할머니 쉼터가 나왔어요.


홍은동 호박골 할머니 쉼터


여기는 꽤 밝았어요.



무수히 많은 층계로 구성된 계단이 나왔어요.



계단이 묘하게 휘어져 있었고 그림자 때문에 햇갈리게 생겼어요. 조심하며 계단을 내려왔어요.


홍은동 달동네 계단


이제 저녁 8시도 넘었어요.


아래로 내려가며 궁금한 게 하나 있었어요.


재개발로 주민들 다 떠나보낼 거면 서대문구는 왜 이 마을에 정 주라고 노력한 거야?


이 마을을 돌아다닐 때 홍은13구역이 언제 재개발 대상지역으로 지정되었는지 몰랐어요. 그러나 이렇게 이주가 진행되고 있다면, 동네에 호박등 달아주고 친환경 에너지 마을이라고 자랑하기 전에 결정되었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어요. 동네 예쁘게 꾸미고 주민들에게 마을에 애정을 가지라고 하는데 그 끝은 결국 재개발로 인한 작별이라는 게 사실상 확정인 상황이었어요.


어쨌든 잠깐이라도 좋았으니 된 건가?


그렇게 생각했어요. 잠깐이라도 행복한 추억 가졌으면 되었죠. 그거라도 안 했다면 슬럼가 되어서 주민들 정신건강 매우 나빠졌을테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또 병원비 아껴준 복지라 할 수도 있을 거에요.



아래로 계속 내려갔어요. 맨 아래로 내려가자 포방공영주차장 버스 정류장이었어요.


포방공영주차장 버스 정류장


포방터시장 쪽으로 걸어갔어요. 아까 내렸던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려면 충분히 걸어갈 수 있는 거리였어요.


호박골 야경


가는 김에 야경 사진도 한 장 찍었어요.


호박골 설명


동네 다 돌고 나서야 호박골 지도와 호박골 설명이 적혀 있는 안내판을 발견했어요. 여기 도착하니 20시 30분이었어요. 어디든 더 돌아다녀봐야 아무 것도 없는 토요일 밤이라 바로 마을버스 타고 홍제역으로 가서 전철 타고 집으로 돌아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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