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따라 계속 걸어갔어요.
이때는 여기가 재개발 구역인지, 청룡마을인지도 몰랐어요. 여기가 신곡동 청룡마을이라는 것은 이 글을 쓸 때에요. 여기가 정확히 어떤 동네인지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니 청룡마을이었어요. 이 동네 인근에 청룡초등학교가 있어요. 의정부 청룡초등학교 이름은 여기 마을 이름이 청룡초등학교라서 거기에서 따왔나 봐요. 어쨌든 여기를 돌아다니러 왔을 때만 해도 그냥 신곡동의 일부라고만 알고 있었어요.
사진을 찍으며 돌아다니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께서 집에서 나오셨어요.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어요. 할머니께 먼저 허리를 굽혀 인사를 드렸어요.
할머니께서 어떤 일로 여기에 왔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취미로 사진을 찍는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리고 할머니께 이 동네 재개발되냐고 여쭈어 보았어요. 할머니께서는 재개발한다는 말이 있지만 아직 모른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재개발 찬성하고 홍보하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한다는 소리가 동두천은 살기 좋으니 거기로 가라고 한댔어요. 할머니 표정에 그 말을 들었을 때 얼마나 황당하고 어이없었는지 그 감정이 나타났어요. 동두천에 좋은 집 많으니 거기 가서 살랬대요.
의정부와 동두천은 정말로 거리가 멀어요. 물론 저는 동두천을 딱 두 번 가봤어요. 그런데 동두천과 의정부는 일단 대중교통에서 하늘과 땅 차이에요. 똑같이 지하철 1호선이 들어간다 하지만 의정부역까지 가는 지하철 수와 동두천까지 가는 지하철 수는 천지차이에요. 버스만 해도 당장 의정부는 서울로 나가는 버스가 매우 많지만 동두천은 일단 의정부부터 들어와야 하구요.
의정부와 동두천은 생활 터전이 아예 달라요. 심리적 거리 뿐만이 아니라 실제 대중교통으로 봐도 상당히 먼 지역이에요. 그런 엉뚱한 동네에 좋은 집 많으니 거기로 가라 하면 이쪽에 있는 사람들 반응이 좋을 리 절대 없어요. 의정부 안에서 다른 동네로 가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시 경계를 2번 넘어서 떠나가라고 한다면요. 가뜩이나 집 하나가 전부인 사람들은 재개발 문제에 매우 민감할 수 밖에 없는데 기껏 했다는 말이 동두천 가라는 이야기였으니 반응이 안 나쁜 게 이상한 일이었어요.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 이어서 온 의정부 신곡동 청룡마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리고 그동안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어요.
흔히 재개발한다고 하면 보상과 분양권을 떠올려요. 이주비용 얼마 받고, 추가로 웃돈 얼마 더 내서 새로 지어지는 아파트에 입주하는 형식이에요.
문제는 이 웃돈을 낼 여유가 아예 없는 사람들이에요. 특히 이렇게 낡고 오래된 단독주택들로 이루어진 동네를 밀어버리고 재개발 들어갈 경우에 그래요. 이 사람들에게는 '집 대 집' 문제에요. 다세대 주택에서 못 산다느니 다세대 주택에서 적응이 어렵다느니 하는 취향과 선호 문제가 아니라 진짜로 딱 집 하나 있어서 그 집 없어지면 갈 곳이 없어진다는 게 문제였어요. 멀쩡히 자기 집에서 살고 있는 사람에게 다른 곳 가서 셋방살이 하라고 하면 그 누구도 기뻐하지 않아요. 신규 아파트 분양받기 위해 추가로 내야 하는 돈이 한두 푼인 것도 아니구요.
재개발 문제에 대해 무턱대고 재개발을 막아버리는 것도 잘못된 방법이고, 대충 푼돈 몇 푼 쥐어주고 쫓아내버리는 것도 잘못된 방법이라 봐요. '집 대 집' 문제로 해결할 방법을 찾아내야 할 거에요. 이런 일 하라고 정치인이 존재하는 거구요.
금낭화가 예쁘게 피어 있었어요.
단독주택과 골목길이 계속 이어졌어요.
의자 한 쌍이 나란히 붙어 앉아 있었어요.
자전거도 쌍을 이루어 서 있었어요.
계속 걸었어요.
길가에 누가 나무를 심어놓았어요.
허름한 집과 골목길이 나왔어요.
누가 재개발 홍보 벽보를 신경질적으로 찢어냈어요.
허름한 집이 계속 나왔어요.
고양이 한 마리가 보였어요. 심심해서 줌으로 확 당겨서 찍어봤어요.
허름한 집과 골목길은 계속 이어졌어요.
재개발 홍보 벽보가 여기저기 붙어 있었어요.
날이 유난히 습했어요. 땀을 닦아내며 주변을 둘러보았어요.
벽에는 낡은 나무 의자 하나가 기대어 서 있었어요.
시끄러운 침묵이 깔린 동네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