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있어서 노량진에 가야 했어요.
'조금 일찍 가서 노량진 좀 돌아다녀볼까?'
서울 동작구 노량진은 저와 인연이 참 많을 만도 한데 별 인연이 없는 곳이에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고향 친구들이 놀러오면 노량진 수산시장을 잘 갔다고 해요. 그렇지만 고향에서 친구들이 올라오면 저는 친구들과 노량진에서 만나지 않았어요. 항상 종로, 명동에서 만났어요. 아니면 친구들이 제가 살고 있는 동네로 오든가요. 아주 가끔 코엑스에서 친구들을 만났어요. 노량진에서 친구들을 만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아마 노량진에 들렸던 적은 있을 거에요. 그렇지만 거기에서 놀고 먹고 한 적은 없었어요. 그래서 남들 다 한 번은 가본다는 노량진 수산시장도 여태 한 번도 못 가봤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잠시 숭실대 다니는 친구 자취방에서 친구와 같이 살았던 적이 있어요. 이때는 진짜로 노량진에서 많이 놀 줄 알았어요. 전혀 아니었어요. 숭실대 학생들은 학교 주변에서 놀든가, 아니면 택시 타고 신림 가서 놀았어요. 숭실대에서 노량진으로 가는 버스가 있어서 노량진으로 많이 갈 줄 알았지만, 숭실대 학생들이 잘 가는 곳은 노량진이 아니라 신림이었어요. 숭실대에서 신림이 안 멀거든요. 걸어가기에는 조금 멀기는 하지만 작정하고 걸어가려고 하면 걸어갈 수도 있는 거리에요. 택시 타고 가면 솔직히 금방이에요. 신림 근방에서 막혀서 그 근처 교통체증 때문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릴 뿐이죠.
한때 제 고향 친구들이 거의 전부 노량진에 있었던 시절도 있었어요. 공무원 시험 준비하려고 노량진에 우루루 몰려 있었어요. 그래서 9급 공무원 열풍이 언제부터 불기 시작했는지 잘 알아요. 일단 지방에서는 2006년 즈음부터 9급 공무원 열풍이 불기 시작했어요. 지방에서 9급 공무원 준비하기 위해 노량진으로 많이 올라왔거든요. 노무현 정부부터 9급 공무원 열풍이 불었어요. 이때부터 청년층 실업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거든요. 이게 점점 위로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2010년 중반대에 들어서는 서울 중하위권 대학교까지 9급 공무원 열풍이 퍼졌어요. 그리고 지금은 말할 것도 없죠. 이때도 노량진은 가지 않았어요. 역시나 친구들 만날 때는 주로 종로에서 만났어요.
그래서 제 고향 친구들은 노량진을 잘 알지만 저는 노량진을 잘 몰라요. 지하철 타고 가다 노량진 앞을 지나갈 때, 진한 회색의 탁한 공기가 거기에 내려 앉아 있는 느낌을 받곤 했어요. 칙칙하고 무거운 분위기요. 이후 노량진으로 친구들 만나러 가기는 했지만, 갈 때마다 친구들은 자기들끼리 어디어디 위치를 잘 아는데 저는 걔네들이 어디를 말하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그나마 다행이라면 요즘은 카카오맵이 있어서 검색해보면 어디로 오라는 건지 알 수 있다는 것이에요.
요즘은 예전과 조금 달라졌다고 해요. 지금은 청년들이 노량진에서 공무원 준비할 돈조차 부족해서 인강을 듣는 것이 대세라고 하더라구요. 신림쪽으로 옮겨간 학원도 있다고 하구요.
하여간 노량진을 혼자 돌아다녀본 적은 없었기 때문에 약속 시간 전까지 노량진을 혼자 돌아다녀보았어요.
가파른 오르막을 올라갔어요. 노량진 성당이 나왔어요.
노량진 성당 정식 명칭은 천주교 노량진동 성당이에요.
'여기에 와서 공무원 시험 붙게 해달라고 빈 사람 많겠지?'
노량진에서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친구들 중에 가톨릭 신자들도 있었어요. 걔네들이 여기 와봤을지는 모르겠어요. 어쨌든 여기에 와서 시험 붙게 해달라고 기도한 사람들 꽤 있을 거에요. 그거 말고 여기 와서 이상한 짓 하려고 한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거구요. 고시촌이 원래 그렇죠. 실제 노량진 가보면 길거리에서 기도하는 무리가 보일 때도 있어요.
다시 노량진역으로 돌아가는 길.
노량진 분위기도 언젠가는 화사하고 밝아지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