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후기

좀좀이 2012. 7. 2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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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로 돌아와 학원을 찾아가려고 했어요. 하지만...


나이스 타이밍!


그냥 폭우 좍좍. 도저히 밖에 나갈 날씨가 아니었어요. 의정부에 있는 학원에 찾아가기는 커녕, 집에 가기 위해 공항에 가는 것도 힘들어 보였어요. 물론 가려면 갈 수야 있었지만, 노트북도 들고 가야 했고, 역까지 가는 동안 비바람이 워낙 세게 몰아쳐서 역까지 가는 동안 온몸이 쫄딱 젖게 생긴 날씨였어요.


그래서 집에 내려가는 날도 결국 하루 미루고, 학원도 찾아가지 못했어요. 그저 원장선생님께 전화로 잘 다녀왔다고 인사만 드리고, 찾아가려고 했으나 날씨가 너무 나빠 고향 갔다가 올라와서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고향에 내려왔는데 하나도 덥지 않았어요. 부모님께서는 계속 너무 덥다고 하시며 제게 덥지 않냐고 물어보셨지만...


나는 덥지 않아요!


카프카스 여행을 하며 엄청난 더위를 경험했어요. 덕분에 더위에 엄청나게 강해져 버렸어요. 한국 더위쯤은 그냥 우스웠어요. 오히려 찬물로 샤워하려고 하면 추울 지경이었어요.


제주도에서 충분히 쉬고 올라가려는데


태풍이 왔다.


비행기 전부 결항. 학원 출근 때문에 빨리 다시 올라가야했기 때문에 비행기 운항이 재개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공항에 갔어요. 공항에서 특별기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인천 공항으로 간 후, 집에 돌아오니 새벽 1시가 되어가고 있었어요. 고향에서 살 때, 뉴스에서 가끔 비행기 결항으로 제주공항에 헬게이트가 열렸다는 소식을 보고 웃었는데 제가 그 헬게이트에 빠질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겨우 집에 돌아와서야 여행이 다 끝났다는 것이 실감났어요.





집에 와서 지갑을 열어보니 집에 놓고 오려고 들고 갔던 아제르바이잔 바쿠의 지하철 카드와 조지아 트빌리시의 지하철 카드를 그대로 들고왔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얘네들은 먼 땅 - 아제르바이잔과 카프카스에서 와서 제주도까지 구경했구나. 특히 아제르바이잔 바쿠 지하철 카드는 저와 함께 아제르바이잔, 아르메니아, 조지아, 터키를 돌아다녔어요.


처음으로 구 소련 지역을 여행했는데 다행히 별로 큰 문제는 없었어요. 단, 언어의 장벽은 다른 동구권과 비할 바가 아니라는 사실은 정말 철저히 깨달았어요. 제가 처음 발칸유럽 지역을 여행할 때보다 더 영어가 잘 안 통해서 영어를 싫어하고 잘 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여행기간동안 영어를 아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너무 반갑고 기뻤어요. 그나마 몇 마디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었으니까요.


고향에서 니노 진쯔벨라슈빌리에게 엽서와 돌하르방을 사서 부쳐주었는데 니노가 너무 고맙다고 답장을 보내주었어요. 그리고 자기는 영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제가 영어로 메일을 보내면 답장이 오래 걸리기는 하겠지만 읽을 수는 있을 거라고 답장했어요.


카프카스 지역은 모두 한결같이 아름다웠고, 모두 복잡한 역사와 갈등관계를 가진 땅이었어요. 그래서 더욱 기억에 남았어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이 여행을 다닐 때, 저는 그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록을 하나도 남기지 않았어요. 그 댓가는...


이 여행기 쓰느라 뇌를 쥐어짜야만 했다.


이때 제 생각은 '어차피 돌아와 여행기 쓸 것이니 자료는 나중에 론니플래닛이나 인터넷 찾아보며 추가하고, 사진만 많이 찍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 일 없는 날도 사진을 최소한 한 장은 찍기 위해 노력해서 사진은 그럭저럭 많이 찍었는데, 당연하게도...돌아와서 바로 여행기를 열심히 써서 완결지었을 리가 없었어요. 차일피일 미루다보니 기억이 빠른 속도로 흐릿해지기 시작했어요. 가뜩이나 조지아어, 아르메니아어는 글자와 몇 마디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매우 어색하고 낯선 언어였고, 이 문제는 기억을 더욱 빠르게 잊게 만드는 촉매 역할을 했어요. 나중에 가니 조지아, 아르메니아편 쓸 때 기억이 확실히 남는 것이라고는 조지아어로 광장은 '모에다니', 아르메니아어로 광장은 '흐라파락'이라는 것 정도였어요. '모에다니'는 왠지 '모에'라는 어감 때문에 귀엽게 느껴졌고, '흐라파락'은 그냥 입에 짝짝 붙었어요. 문제는 이것 외에 마땅히 선명히 기억나는 것들이 너무나 적었다는 것. 사진을 보며 아무리 느낌을 다시 살려보려 했지만 너무나 힘든 일이었어요. 결국 '두 개의 장벽' 여행 가기 전에 완결지으려 노력했지만 이마저도 실패. 그나마 다행이라면 올해 8월이 오기 전에 글을 다 썼다는 것. 그리고 이 교훈을 통해 여행 중 메모하는 방법을 깨우쳤다는 것이었어요. 최대한 감정에 솔직한 메모를 많이 남겨놓아야 나중에 돌아와서 여행기 쓸 때 뇌를 쥐어짜는 고통에 덜 휩싸인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동안 재미없는 '뜨거운 마음' 읽어주신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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