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뜨거운 마음 (2011)

뜨거운 마음 - 28 아르메니아 예레반

좀좀이 2012. 6. 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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푹 자고 일어났어요. 이제 내일이면 예레반을 떠나 다시 조지아로 돌아가요. 남은 날 모두 조지아의 Rover hostel에서 머물기로 했어요. 내일 마지막으로 긴 이동이 있고, 그 이후부터는 먼 이동이 없어요. 아무리 친구를 위해 일정을 널널하게 잡아주어도 친구는 더위와 물갈이 때문에 계속 힘들다고 하고 있었어요. 입만 열면 '더워', '힘들어'였어요. 그래서 조지아에서의 모든 일정은 트빌리시를 중심으로 당일치기로 왔다 가는 코스로 바꾸었어요. 트빌리시에서 므츠헤타와 카즈베기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고 나머지는 그냥 시내 구경하면서 쉬기로 했어요. 그래도 친구가 하도 힘들다고 계속 노래를 부르고 있었기 때문에 혹시나 내일 이동에서 탈나면 안 되기 때문에 오늘은 최대한 늦게까지 늦잠을 자고 호스텔에서 푹 쉬었어요.


여행자들이 모두 나가고 텅 빈 호스텔에서 둘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며 쉬다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이 되었어요.


"점심은 먹어야지."


그래서 점심으로 라흐마준을 먹으러 식당에 갔어요.



예레반에 있는 날 동안 이 가게에 종종 갔어요. 이제 이 식당도 마지막. 가게 이름은 O.S.T에요. 그래서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자 당연히 된다고 허락해 주었어요. 저 화덕에 라흐마준을 집어넣고 꺼내고 해요. 재미있는 것은 아르메니아도 라흐마준은 자기들의 고유 음식이라고 주장해요. 진실은 저 넘어에...타임머신이 있다면 어느 나라 고유 음식인지 확실히 밝혀지겠죠. 터키 음식과 아르메니아 음식 중 비슷한 게 상당히 많은데 그도 그럴 것이 옛날에는 서로 뒤섞여서 살았거든요. 그리고 아르메니아에서는 라흐마준을 '라흐마조'라고 해요.


라흐마조가 나오자 레몬즙을 친 뒤 한쪽을 접은 뒤 다른 쪽을 작게 여러 번 둘둘 말아서 먹었어요. 이렇게 먹고 있으면 가끔 사람들이 신기하게 쳐다봐요. 보통 죽 잡아 찢은 후 둘둘 말아먹는데 저는 그런 거 없이 한 번에 다 말아서 통째로 먹거든요. 이렇게 말아먹으면 거리에서도 들고 먹을 수 있어요. 이 방법이 널리 퍼진다면 라흐마조가 길거리 음식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차를 시켜서 마시며 쉬다가 헌책방으로 향했어요.


헌책방으로 가는 길에 열두 별자리를 조각한 분수가 있었어요.

별자리 조각을 하나씩 보면












한 번 각자의 별자리를 찾아 보세요.

헌책방. 오늘도 처음 연금술사 아르메니아어판을 구입한 서점으로 직행했어요. 주인 아저씨와 안면이 터서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 주셨어요. 여기서는 여기저기 열심히 돌아다닐 필요도 없는 것이 서로 자기한테 책이 없으면 다른 가게에 물어보아서 구해주거든요.


여기는 정말 규모가 작지 않아요. 책도 엄청나게 많고 가게도 한 둘이 아니에요. 오늘도 책을 사자 아저씨께서 선물이라고 아르메니아어 교과서를 한 권씩 선물로 주셨어요. 생각해보니 이 서점에서 책을 엄청 많이 구입했어요. 그리고 발견 후 거의 매일 왔구요. 이제 이 좋은 장소도 못 온다는 사실이 너무 아쉬웠어요.


헌책방에서 나와 마지막으로 예레반을 돌아다녔어요. 그래서 도착한 곳은 이곳. Matenadaran 이라는 곳이에요.

아르메니아는 조각을 왠지 부드럽게 만드는 듯한 느낌이 있었어요.

이곳에서 내려다본 예레반.

여기에서부터 위로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어요.




끝까지 올라가서 도착한 곳은 여기였어요.

여기 또 왔어!


이 계단 폭포만은 절대 다시 오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은 다시 와버렸어요. 게다가 중턱까지 와서 걸어내려가야 했어요.


둘이 한숨을 내쉬며 하나하나 내려가는데 옆에 문이 열려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래서 거기로 들어갔더니

안에는 에스컬레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힘들게 밖에서 걸어올라가고 내려갈 필요가 없게 되어 있었어요. 이것을 몰라서 전에 왔을 때 힘들게 걸어올라가고 걸어내려온 것이었어요. 전에 찾았을 때는 분명히 입구가 닫혀 있었는데 여기는 열려 있었어요. 그래서 힘들게 걸어내려오지 않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아주 편하게 내려왔어요. 론니플래닛에 의하면 여기도 뭔가 있다고 하는데 에스컬레이터 외에는 그다지 볼 게 없었어요.


내려와서 어디 있는지를 기록하기 위해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숙소에서 쉬고 있는데 케말 아저씨께서 오늘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셨어요.


"같이 카페 가실래요? 게미니 카페 아세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모르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우리가 괜찮은 카페 하나 알려드리겠다고 하고 게미니 카페로 갔어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술을 전혀 안 드시는 독실한 무슬림 터키인이셨기 때문에 아이스티를 시켰어요. 그리고 차는 얼마 하는 것도 아니니 우리가 사겠다고 했어요. 게미니 카페에서는 차와 이것 저것 섞어서 믹서기에 갈아서 컵에 따라줘요. 이러면 맥주처럼 거품이 두껍게 생겨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차에 거품이 생긴 것을 보시더니 술 아니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래서 이건 술이 아니라 믹서기로 섞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설명해 드렸어요. 그래도 케말 아저씨께서는 거품 때문에 그런 거 아니냐고 강하게 의심하시며 몇 번을 다시 물어보셨어요. 당연히 술은 짚신벌레 한 마리 만큼도 안 들어가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강하게 의심하다가 직접 어떻게 만드는지를 보고난 후에야 차에 입을 가볍게 대 보셨어요. 그리고 술이 전혀 안 들어간 평범한 차라는 것을 확인한 후에야 드시기 시작하셨어요.


터키인도 잘 알고 우리나라 사람도 잘 아는 터키인은 당연히 세뇰 귀네슈 전 터키 국가대표 축구팀 및 전 FC 서울 축구팀 감독. 세뇰 귀네슈가 터키 대표팀 감독이었을 때 터키가 사상 최초로 2002년 월드컵에서 3위를 했어요. 당시 터키가 재미있었던 것이 월드컵에서 동아시아 3국을 다 이긴 유일한 국가였다는 것이었어요. 2002년 때에는 한국과 일본이 개최국으로 아시아 지역예선에서 빠진데다 중국의 최종예선 대진운이 워낙 좋아서 사상 최초로 월드컵에 운빨로 참가했어요. 결과는 당연히 대참사. 그간 아시아 국가들이 올려놓은 아시아 축구의 좋은 이미지를 크게 깎아먹었어요. 월드컵에 절대 나올 수 없는 실력을 가진 국가가 운빨로 나왔으니 당연한 결과. 그리고 이렇게 운빨로 나오는 것은 어디까지나 한 번. 딱 그때 터키가 유일하게 조별예선에서 중국을 이기고, 16강에서는 일본을 이기고, 3,4위전에서는 한국을 이겨서 한 월드컵에서 동아시아 3국을 다 이기는 진귀한 기록을 세웠어요. 그리고 세뇰 귀네슈의 2002년 월드컵 이후 터키는 계속 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어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2002년에는 정말 잘 했는데 그 이후 선수들이 그때만큼 잘 하지 못한다고 하셨어요. 세뇰 귀네슈와 한국과 터키 국가대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다가 여행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게 되었어요.


케말 아저씨는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을 다녀오셨다고 하셨어요. 예전에는 터키인은 아제르바이잔 비자를 비행기로 입국했을 때 도착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터키인도 비자를 받아야 아제르바이잔에 입국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아제르바이잔어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처음 들었는데 이해는 다 되는데 터키어를 이상하게 하는 것 같아서 낯설었지만 몇 번 들으니 금방 적응이 되셨다고 아제르바이잔어를 들은 터키인의 소감을 들려주셨어요. 그리고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는 하루면 다 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아르메니아와 터키의 음식이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문제까지 이야기가 흘러갔어요. 에치미아진에 갈 때, 케말 아저씨께서는 아르메니아에서 사람들이 못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하고 터키어로 이야기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알려주셨어요. 특히 늙으신 분들 중 터키어를 아시는 분들이 좀 계신데 그분들이 터키어를 아는 것을 티내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못 알아듣겠거니 하고 터키어로 아무 말이나 마구 하는 것은 아르메니아에서 매우 위험한 행동이라고 주의를 주셨어요. 굳이 터키어 뿐만이 아니라 아제르바이잔어도 마찬가지이구요. 소련 시절, 아제르바이잔 - 특히 바쿠, 숨가이트는 공업이 매우 크게 발달한 지역이라 그쪽에서 일하던 아르메니아인들도 많이 있었어요. 그래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때 아르메니아로 쫓겨온 사람들 외에도 이런 저런 이유로 터키어와 아제르바이잔어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이것은 터키인이 제공한 정보니 어느 정도 신빙성이 높은 정보라고 봐도 될 거에요. 케말 아저씨께서도 여기 와서 터키어를 아는 아르메니아인들을 몇몇 보았다고 하셨어요.


케말 아저씨께서는 주변을 한 번 둘러보시더니 주변에 터키어를 아는 사람이 없다는 확신이 드셨는지 터키어로 설명해주시기 시작하셨어요. 저는 터키어를 잘 몰랐기 때문에 친구가 듣고 통역을 해 주었어요.


아르메니아에서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 사건을 사과할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어요. 이것은 양국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에요. 일본이 우리에게 식민지배를 사과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문제에요. 왜냐하면 이 문제는 영토 분쟁 - 즉 큰 아라라트 산, 작은 아라라트 산 영유권 문제로 발전할 수 있거든요. 이것은 절대 가능성 낮은 추측이 아니에요. 지금도 아르메니아는 터키의 반대에도 무릅쓰고 국장에 아라라트산을 떡하니 그려넣고 있어요. 터키가 '왜 우리나라 영토인 아라라트산을 너희 나라 국장에 집어넣냐?'라고 따지자 아르메니아가 '그러면 너희는 왜 너희 것도 아닌 달을 국기에 그려넣냐?'라고 받아쳐버린 것은 유명한 일화에요.


아르메니아와 전세계의 아르메니아인들은 지금도 꾸준히 여러 노력과 로비를 하며 오스만 튀르크 제국 말기에 발생한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한 터키의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노력중이에요. 하지만 터키는 크게 두 가지 이유로 사과를 거부하고 있어요.


1.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학살이 아니라 민족분쟁이었다.

- 아르메니아인들이 일방적, 조직적으로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 터키인들과 아르메니아인들 간에 대규모 민족분쟁이 발생했다는 주장이에요. 즉 아르메니아인들도 그 시기에 터키인들도 많이 죽였다는 것이에요.


2. 증거를 대라.

- 민족분쟁에서 열세여서 큰 피해를 당해 사상자가 많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조직적으로 아르메니아인을 학살한 증거를 대라는 것이에요. 터키는 이 시기 아르메니아인들이 터키인을 죽인 증거를 꾸준히 찾아내서 제시하고 있는데 아르메니아는 이 증거들이 분명 조작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증거도 없이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학살을 인정하라고 하고 있다는 것이에요. 터키 정부는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인정해야 한다면 당시 많은 터키인들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살해당했기 때문에 이것 역시 아르메니아 정부가 인정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친구 말로는 케말 아저씨의 이야기는 정확히 터키 정부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알려주었어요.


터키쪽 주장을 정리해보면


현재 터키 정부는 오스만 튀르크 제국과 아무 관련이 없어요.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국가가 아니라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뒤엎고 건국한 국가에요. 즉, 터키 역사상 오스만 튀르크 제국 다음에 터키 공화국이기는 하나, 오히려 터키 공화국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국가가 아니에요. 이는 터키의 세속주의 정책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요. 아르메니아 주장대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을 학살했다면 현재 터키 공화국과 아르메니아인 학살은 오히려 연관이 많이 떨어져요. 게다가 당시 아르메니아인이 일방적으로 학살당한 것이 아니라 아르메니아인에 의한 조직적인 터키인들에 대한 공격이 이루어진 것 역시 사실이구요. 이 두 가지 이유와 더불어 아르메니아가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정부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학살을 했다는 확실한 증거도 아직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조건 터키에게 사과하라고 하는 것은 억지 주장이라는 것이에요.


아르메니아쪽 주장을 정리해보면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살해당한 것은 분명 사실이에요. 이건 반박의 여지가 조금도 없어요. 얼마나 죽었는지 정확한 숫자에 대해서는 서로 이견이 있지만, 그 시기에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살해당했다는 것은 모두가 인정해요. 더욱이 그 당시 아르메니아는 당하는 입장.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아르메니아인들에게 '알아서 빨리 죽어버리세요'라고 명령을 내렸을 리는 당연히 없죠. 도망치느라 바쁘고 살아남기 위해 바쁜 일방적으로 당하는 입장에서 정부의 명령이었다는 증거를 챙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에요. 정말 아르메니아의 주장이 맞다면 당연히 그런 명령을 증명할 증거는 아르메니아인들 손에 들어갈 수도 없을 뿐더러, 설령 어떤 매우 현명하고 용감한 아르메니아인이 그 증거를 후세에 전해주기 위해 챙기려 했다 하더라도 그거 챙기는 시간이 있다면 그 시간 안에 충분히 죽임을 당하죠. 많은 아르메니아인들이 살해당한 역사적 사실이 있는데 계속 증거를 내놓으라는 것은 그저 사과하지 않기 위한 핑계이자 억지 주장이라는 것이에요.


이 문제는 정말 난감한 문제에요. 양쪽 다 일리가 있어요. 어느 쪽을 편들어주기 매우 어려운 문제에요. 양쪽 다 맞는 말이니까요.


이 문제가 얼마나 양국 간에 심각한 문제인지 아르메니아와 아제르바이잔의 민족 감정을 이 문제에서 기원을 찾으려는 사람들도 있어요. 이 시기, 아르메니아인들은 터키인과 아제르바이잔인들을 특별히 구분해서 부르지 않고 단순히 '튀르크인'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아르메니아인들 입장에서 공포와 원한의 대상으로 인식되었고, 그 감정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설명이에요.


하늘에서 비가 툭툭 떨어지더니 무섭게 퍼붓기 시작했어요.


셋 다 우산이 없어서 호스텔까지 후다닥 달려갔어요. 호스텔에 돌아와 이 지역에서 많이 하는 주사위 놀이 - 아르메니아어로는 '나르디'인데 우리나라의 '쌍륙'이라는 게임과 비슷해요'를 하는 방법을 터키식으로 배웠어요. 재미있는 것은 주사위를 우리나라처럼 손에 쥔 것을 아래로 쏟듯 던지는 것이 아니라 마치 구슬치기하듯 엄지손가락으로 튕겨서 던진다는 것이었어요.


아저씨와 나르디를 몇 판 하고 자정이 되어서 잠을 청하러 방으로 들어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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