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우즈베키스탄 멜론 샤베트

좀좀이 2012. 6. 23. 23:05
728x90

요즘 멜론 중 겉에 초록색 선이 있고 속이 붉은 빛이 도는 한달락이 제철이에요. 가격도 눈부시게(?) 폭락하고 있어요.


매일 멜론을 복용하고 있어요. '섭취'라고 하지 않고 '복용'이라고 한 이유는 멜론이 더위에 매우 좋거든요. 특히 갈증 해소에 매우 좋아요. 더위를 덜 느끼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멜론 먹으면 그날 목이 타는 느낌이 없어서 물은 엄청 조금 마셔요.


매일 한달락을 먹다가 이걸로 샤베트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생각이 들었어요.


"설마 먹고 죽는 독약이 제조될 리는 없겠지."


목표 : 먹을 수만 있으면 된다


통에 한달락을 썰어 집어넣었어요. 냄새가 좋은 놈으로 샀더니 설익은 놈이었어요. 물론 설익어도 엄청 달아요. 냄새가 꼬리꼬리한 놈으로 사야 바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초록색 통을 쓴 이유는 멜론이 초록색이기 때문에 기분을 위해서 ('라고 쓰고 집에 이걸 할만한 통이 저것밖에 없었음'이라고 읽는다.)에요.

해체하고 남은 잔해물들. 여기 비닐봉지는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서 봉지 하나에만 집어넣고 조금 놔두면 물이 줄줄 새요. 몇 번 당해서 이제는 딱 봉지에 넣자마자 바로 밖에 내다버려요. 저 껍질과 씨들은 작업이 다 끝난 후 바로 봉지에 집어넣어서 밖에 후다닥 버리고 왔어요.

그리고 전에 한창 여기서 야구르트를 퍼먹을 때 사 놓았던 꿀. 뚜껑이 안 열려서 맥가이버 칼의 도움을 받았어요. 잼이나 꿀이나 여기에서 저런 병에 들어있는 것들은 뚜껑이 처음에 엄청 안 열려요. 힘으로 되는 일이 아님. 힘으로 어떻게 해 볼 수도 있지만 잼이나 꿀이 병 입구 주위에 스며들어 굳어버린 게 대부분이에요. 거기에 병 내부 기압이 낮아진 것은 덤. 이걸 쉽게 따는 법은 저렇게 1자 병따개로 뚜껑을 조금씩 들어주는 거에요. 여기 저기 들어주면 '퍽' 소리가 나면서 뚜껑이 솟아오르고, 쉽게 열 수가 있어요. 너무 많이 들어올리면 병 뚜껑을 다시 못 쓰므로 살짝 들어올려주면 되요.

꿀이 완전 돌이 되었네요...


절대 꿀을 안 먹고 뒹굴리다 구실이 생겨서 집어넣은 거라 직접 말은 못 함. 그저 글로 쓸 뿐. 가운데 구멍이 난 이유는 제가 마구 후벼팠기 때문이에요.

정확한 양을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 그냥 돌이 된 꿀을 숟가락으로 꽉꽉 찍은 후 벅벅 파서 집어넣었어요. 사진 위에 보이는 아이스커피는 최근 아는 사람이 주어서 받아온 것. 아이스커피 우즈벡서 먹기 힘들어요. 이 나라 사람들은 아이스크림은 엄청 먹는데 얼음은 또 희안하게 안 먹어요. 나중에 우즈벡 사람과 여름에 만났을 때 참고하세요. 팥빙수 매우 안 좋아할 수가 있음.

꿀을 넣고 휘휘 젓자 멜론에서 물이 나오며 꿀이 다 녹았어요. 아까는 완전 돌처럼 굳어있더만 무서운 놈들...


한달락이 푹 익은 놈이 아니라 원래 계획인 '숟가락으로 으깬다'는 불가능. 그래서 동원한 도구가...

마늘 으깨고 즙 짜는 집게!


이걸로 하나하나 으깨주며 깨달았다. 멜론 한 통 많긴 많더라...그냥 먹을 때는 몰랐는데...

우유를 적당히 붓고 냉장고에 넣었어요. 일단 얼리기 전의 맛은


좋은 술안주다!


한국 술집에서 '과일 화채'라고 파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어요. 그냥 퍼먹어도 맛있지만 목표는 멜론 샤베트이므로 냉동실에 집어넣었어요. 이제 하는 일은 적당히 시간 되면 설설 저어주고 얼음 생기면 얼음 깨주기.


생각으로는 금방 얼 거 같았는데 2시간이 지나도 안 얼었어요. 3시간 지나야 살얼음 조금 얼기 시작했어요.


"이제 다 되었을까?"

하지만 밤 11시까지도 다 안 얼어서 그냥 마지막으로 얼음덩어리 다 부셔놓고 잤어요.


아침. 일어나보니 한 덩이 되어서 얼어있었어요. 왜 수시로 깨야 하는지 이해했어요.


무슨 사탄의 인형 처키가 칼 들고 설치듯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숟가락 들고 얼음덩어리를 마구 찍고 깨었어요. 예쁘게 숟가락으로 긁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음. 그래서 숟가락으로 퍽퍽 찍어가며 다 부셨어요.

이게 완성품. 먹다가 '아! 사진 찍어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급히 찍었어요.


맛은 의외로 아주 좋았어요. 당연히 한달락 껍질에서 나는 꼬릿꼬릿한 냄새도 없었고, 멜론 향과 아주 미세한 꿀 향이 잘 섞였어요. 특히 잘 갈리지 않은 멜론이 약간 젤리 같은 역할을 해 주어서 씹는 맛도 꽤 좋았어요.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전날 다 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서 아래로 퍼먹어갈수록 맛있어진다는 것. 균일한 맛이 아니라 아래로 갈수록 맛이 더 좋아졌어요. 그래도 위도 매우 맛있었어요.


"독약을 안 만들었다!"


독약이 아니라 진짜 맛있는 멜론 샤베트가 완성되었어요. 스스로 만들었지만 정말 의외의 결과였어요.


먹다 얼음 깨고 먹다 얼음 꺠고 하면서 아침에 다 먹어치웠어요.


다음에는 무슨 과일로 할까 생각해 보아야겠네요. 살구로 해보고 싶은데 살구는 껍질 벗겨내는 게 귀찮고, 수박은 씨 골라내는 게 귀찮고...


반응형

'여행-중앙아시아 생존기 (2012-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행기 쓰기  (22) 2012.06.26
추워서 감기  (4) 2012.06.26
소련의 건물 복사  (12) 2012.06.22
우즈베키스탄의 멜론  (8) 2012.06.20
우즈베키스탄의 바클라바  (6) 2012.0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