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올라온 친구와 모처럼 서울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던 중이었어요. 결국은 흘러흘러 이태원으로 갔어요. 둘 다 이태원은 여러 추억이 있는 곳이거든요. 각자의 추억이 있고, 둘이 거기에서 같이 돌아다니며 만든 추억들도 있어요. 물론 이태원에서 각자 자주 가던 곳은 달라요. 저는 주로 3번 출구로 나와서 모스크가 있는 쪽을 주로 갔어요. 친구는 그쪽을 잘 가지 않았구요.
이태원에 도착하자 일단 모스크로 가서 라마단 이프타르를 보러 갔어요. 친구는 라마단 이프타르를 본 적이 없거든요. 무슬림들이 모스크 옆에 마련된 테이블에 앉아 마그리브 예배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장면을 보고 모스크에서 나왔어요. 이제 저녁을 무엇을 먹어야할지에 대해 논의할 시간. 친구가 제 방에 놀러왔기 때문에 한 끼는 사줄 생각이었어요. 어느 식당을 데려갈까 고민했어요.
'거기 데려가야겠다.'
이태원 모스크 근처에는 예멘 식당이 있어요. 경리단길에 있는 세네갈 식당으로 데려갈까 하다 거기는 또 열심히 걸어야 해서 포기했어요. 이미 저녁 8시를 넘겼거든요. 그러면 근처에서 친구를 놀라게할 만한 식당으로는 예멘 식당 뿐이었어요. 순간 이집트 식당을 가볼까 했지만, 여기는 일단 제가 먹어본 적이 없었어요. 예멘 식당은 제가 좋아하는 식당이고 음식을 여러 번 먹어보고 맛집으로 인정한 곳이기 때문에 친구를 한 번 데려갈 가치가 있었어요.
친구를 데리고 예멘 식당인 페르시안 랜드로 데려갔어요. 여기에서 시켜먹어야 할 음식은 양고기 만디. 음식이 나왔어요.
"야, 이거 뭐 이렇게 많아?"
양고기 만디는 저렴한 가격은 아니었어요. 그렇지만 이 예멘 식당의 양고기 만디는 그 가격에 걸맞는 한국화되지 않은 아랍의 인심을 보여주는 메뉴에요. 찰기 없는 길다란 인디카 쌀로 지은 밥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것에 일단 한 번 기겁. 그리고 그 밥 옆에 있는 고깃덩어리에 또 기겁. 친구가 뼈에 붙은 고기 옆에 있는 수북히 쌓인 것을 보고 경악했어요.
"이거도 고기네?"
친구는 고기가 잔뜩 붙어 있는 커다란 뼈 옆에 쌓여 있는 것이 야채라 추측했어요. 하지만 100% 틀린 추측이었어요. 그것은 전부 살코기였어요. 살이 잔뜩 붙어 있는 뼈 하나만으로도 다른 가게 1인분이었어요. 그런데 그만큼도 아니고, 그 뼈까지 합친 그 크기만큼 수북히 살코기가 또 옆에 한 무더기 쌓여 있었어요. 가격만큼 엄청난 양과 굉장한 맛을 자랑하기 때문에 친구에게 밥 사주려고 데려온 것이었고, 이것은 아주 제대로 먹혔어요. 페르시안 랜드 양고기는 양고기 특유의 노린내를 아주 잘 잡고 고기가 매우 부드럽거든요. 우리나라 식당 중 양고기 요리는 페르시안 랜드가 제일 잘해요.
이태원 맛집 페르시안 랜드 : http://zomzom.tistory.com/2135
밥을 다 먹고 밖으로 나왔어요. 둘 다 배불러서 어떻게든 배를 꺼뜨려야만 했어요. 음식을 다 먹기는 했지만 위가 진짜 꽉 차서 물도 못 마실 지경이었어요.
"우리 배 좀 꺼뜨리자."
"어디 가지?"
"경리단길까지 걸을까?"
"경리단길?"
우리는 여러 번 해봤지. 남산을 넘으면 명동이다.
처음에는 적당히 경리단길까지 걸어갈 생각이었어요. 그러나 너무나 자연스럽게 길은 남산으로 이어졌어요. 문제는 아직도 배가 하나도 안 꺼졌다는 것. 여전히 배불렀어요. 식당에서 나올 때까지만 해도 명동까지 걸어갈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그때는 적당히 경리단길까지만 갔다가 집에 돌아갈 생각이었어요. 경리단길까지 가면 어느 정도 배가 꺼질 줄 알았어요. 아니었어요. 하나도 안 꺼졌어요. 여전히 물 한 컵 마시기 부담스러울 정도로 배불렀어요. 마치 항상 그랬던 것마냥, 저와 친구의 발은 남산을 넘어 명동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우리 여기 한 번 내려가볼까?"
남산을 타고 내려오는 길. 항상 버스가 다니는 큰 길로만 다녔어요. 길 옆에 집이 많이 있고 술집도 있지만 거기를 가볼 생각은 단 한 번도 안 해봤어요. 이것은 친구도 마찬가지였어요.
겁낼 거 없어. 서울은 지하철역만 가면 돼. 게다가 카카오맵도 있어.
예전에는 이렇게 막 다닐 수 없었어요. 버스와 지하철은 환승이 안 되었고, 스마트폰 지도 어플이 없었기 때문에 길 잃어버리면 대책없이 헤매야 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2020년도 불과 2년 남은 시점. 버스와 지하철은 환승이 되고, 스마트폰 지도 어플을 이용하면 주변을 둘러볼 필요도 없이 길을 맞게 찾아갈 수 있는 시대. 기술과 제도의 발전으로 간뎅이가 그만큼 부었어요. 게다가 남자 둘. 이러면 우리나라에서 아무리 밤이라 해도 어지간한 곳은 겁없이 잘 돌아다닐 수 있어요.
둘 다 한 번도 안 가본 길. 친구와 어디로 이어지는지 탐험해보기 위해 버스가 다니는 큰 길에서 벗어나 샛길을 타고 남산을 내려왔어요.
"여기 어디지?"
일단 발길 가는 대로 걸어갔어요. 큰 길이 있을 법한 쪽으로 쭉 걸어갔어요.
"여기가 후암동이구나!"
용산구 후암동은 이름만 들어본 적이 있는 동네. 가본 적은 없었어요. 카카오맵을 보니 저와 친구가 있는 곳은 후암동이었어요. 평범한 동네였어요. 친구와 지하철 역을 향해 걸어갔어요.
"시장 있다!"
시장이 하나 나왔어요.
'후암시장'이라는 빨간 글씨 아래 HUAM TRADITIONAL MARKET 라고 영어로 적혀 있었어요.
"너 시장 구경 좋아하잖아. 여기 한 번 구경해봐?"
"그러자!"
시장 안으로 들어갔어요.
"야, 시장 문 다 닫았는데?"
"그러네."
밤 9시가 조금 넘은 시각. 시장에 있는 가게들 거의 다 문을 닫은 상태였어요.
"여기 뭐 더 없나?"
친구와 계속 시장을 돌아다녔어요.
위를 쳐다보았어요.
구름 모양 조형물이 매달려 있었어요.
새벽 3시 시장 풍경이라 해도 될 법한 모습이었습니다. 밤 9시와 새벽 3시가 똑같아 보이는 일을 겪었습니다.
친구와 시장 안을 돌아다녔다고는 하지만 딱히 길을 잃거나 일부러 쑤시고 다니거나 하지 않았어요. 길 하나를 따라 조성된 시장이었거든요. 그 길 하나만 따라서 쭉 걸으면 되었어요.
밤 9시라 그래도 시장에 혹시 불이 켜진 가게가 있을까 하고 들어가보았어요. 거의 없었어요. 새벽 3시에 왔어도 이것과 거의 완벽히 똑같은 풍경을 보았을 거에요.
시장 입구가 있어보여서 꽤 큰 줄 알았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후암동에 있는 후암시장은 작은 동네 시장이었어요. 입구를 보고 시장이 꽤 크고 볼 게 많을 줄 알았어요. 그것은 저의 착각이었어요. 조그마한 동네 작은 시장이었어요. 낮에 왔다고 해서 뭔가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았어요.
여기는 제가 단 한 번도 가볼 생각 자체를 못 했던 곳, 그리고 이태원에서 남산을 넘어 명동 가는 길에 있는 샛길을 따라 남산을 내려가면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는 점 외에는 그다지 기억에 남을만한 곳은 아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