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잔드 성에 가기 위해 마슈르트카에서 내렸어요.
이렇게 분수가 있고 이 분수 옆길로 들어가서 걷다 보면
우체국이 나온답니다.
우체국 옆면을 보면 소련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생각해보니 이스타라브샨도 그렇고 후잔드도 그렇고 중심 거리의 이름은 '레닌 거리'. 타지키스탄까지 포함해서 구 소련 국가 5개국을 다녀보았지만 타지키스탄처럼 소련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나라도 없었어요.
우체국을 지나 계속 걷다보면 이와 같은 벽화가 나와요.
그리고 이 벽화가 있는 건물 바로 옆에 극장이 있어요.
타지키스탄 역시 모자이크, 부조 같은 것은 확실히 볼 만 했어요. 단순히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지극히 정치적 의도 - 즉 선전의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들이었거든요. 제대로 최대한 아름다워 보이도록 신경써서 만든 것들이라 구 소련 지역을 다닐 때에는 이런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며 보는 재미가 있어요.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생긴 것이 아니라 국가마다 지배적인 민족 문화의 색깔이 있어요. 단, 우즈베키스탄과 타지키스탄은 우즈벡인과 타지크인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교류도 많고 섞여 살고 현재도 양국에 많이 섞여 살기 때문에 비슷해요.
이것이 바로 후잔드 성 입구. 딱 봐도 알 수 있지만 원래 성채 자체가 저렇게 상태 좋게 남은 게 아니라 저 안으로 들어가면 성을 볼 수 있어요. 정식 명칭은 '소그드 지역 역사 박물관'이에요.
이 성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이미 시각이 늦어서 들어갈 수 없었어요.
참고로 이 성 안에서 사진 촬영시 조심해야 해요. 1997년 후잔드에서 우즈벡인들과 타지키스탄 정부군 간의 교전이 있었대요. 그 당시 후잔드 성에서 300명이 살해당했고, 현재 당시 사건이 발생한 곳인 후잔드 성에는 군사 시설이 들어가 있어요. 사진 촬영 잘못 해서 군사 시설을 촬영할 경우 카메라가 압수당할 수도 있대요.
성 옆에는 공원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어요. 여름이라면 사람들이 많겠지만 아직 학교가 방학한 것도 아니고 여름이라고 하기에는 이른 계절이라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어요.
공원을 가로질러 계속 가다 보면 이런 조형물이 나와요.
당연히 루다키의 흉상도 있고, 이븐 시노 (Ibn Sino)의 흉상도 있어요. 이븐 시노는 중세 이슬람에서 매우 중요한 학자들 중 하나. 중앙아시아에서 태어났는데 중앙아시아와 이란에서는 서로 자기네 위인이라고 해요. 이 사람 역시 워낙 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활동했기 때문에 여기 저기 흔적이 남아 있고, 서로 자신들의 위인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여담이지만 이 사람보다 더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나스렛딘 호자 Nasreddin Hoja. 이 사람은 당나귀 하나 끌고 다닌 이야기꾼이자 재치가 많은 사람인데 실존 인물인지도 불투명한 전설 속 인물이에요. 이 사람은 이란, 아프가니스탄, 터키, 중앙아시아 국가들이 서로 자기네 나라 사람이라고 주장하고 있어요. 문제는 이 사람이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는 물론이고, 실존했는지 자체가 의문스러운 인물이라는 거죠.
흉상들 앞에 와서 가로질러온 공원을 보았어요. 정말 쉬고 싶게 잘 꾸며놓은 공원이었어요.
이 조형물 옆에서는 사람들이 체스를 두고 있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체스를 잘 두지 않지만 중앙아시아에서는 거리에서 체스를 두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어요. 이 분들은 그냥 친목을 위해 두는 사람들. 거리에서 두는 사람들을 보면 전용 초시계를 놓고 시간을 재어 가며 두어요.
이 조형물 뒤로 흐르는 강이 바로 시르다리오 강이에요. 큰 강이라고 하면 '잔잔히 흐르는', '유유히 흘러가는' 이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릴 것 같았지만, 이 강의 유속은 생각보다 꽤 빨랐어요.
강 너머에 보이는 소모니 1세 동상. 원래 저 자리에는 레닌 동상이 있었대요. 론니플래닛에는 레닌 동상이 있다고 나와 있어요. 하지만 저 자리에 지금은 소모니 1세 동상이 세워져 있어요. 만약 후잔드에서 레닌 동상을 볼 생각이었다면 크게 실망했을 거에요. 다행히 저는 이스타라브샨에서 레닌 동상을 보고 왔기 때문에 후잔드에서 레닌 동상을 못 본다고 해서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어요.
이 나라도 위성으로 러시아 방송 보는 것은 매한가지인가 봐요. 저렇게 득시글하게 달려 있는 위성 안테나를 보니 예전 모로코를 여행할 때가 생각났어요. 모로코에 비해서는 적었지만 여기도 만만찮게 빽빽히 위성 안테나를 달아 놓았어요.
빠르게 흘러가는 시르다리오 강.
강 맞은편에서는 소년이 양떼를 강변으로 끌고 나와 양에게 풀을 먹이고 있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양떼를 볼 때에는 항상 양떼였는데 타지키스탄 와서는 항상 양 몇 마리를 보았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 보았던 대규모 양떼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한 번도 못 보았어요.
"저건 뭐지?"
강 맞은편에 황금 돔이 있는 검은 모스크가 보였어요. 검은 건물이라면 매우 높은 확률로 반드시 가볼 가치가 있는 건물이었어요. 모스크도 그렇고 성당도 그렇고 검은 것은 거의 없어요. 성당이 검은 것은 대체로 두 가지 이유 중 하나에요. 이끼가 하도 오래 되어서 죽어 검게 되었거나, 불에 탔거나요. 어떤 이유로든 새까만 건물을 보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강 맞은편으로 건너가 황금 돔이 있는 검은 모스크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어요. 강에서 볼 때에는 가까워 보였는데 실제 걸어보니 꽤 멀었어요. 아무리 걸어도 모스크가 보이지 않았어요. 분명 황금 돔이 있는 검은 모스크라면 이정표라도 한 개 있어야 정상인데 모스크와 관련된 이정표 자체가 없었어요.
이 검은 모스크는 론니 플래닛에도 안 나와 있는 모스크. 론니플래닛에서 후잔드를 엄청나게 대충 적어놓았어요. 론니플래닛만 보고 후잔드가 조그마한 국경도시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에요. 체감 규모로는 타슈켄트보다 조금 작아요. 교통수단이 그다지 발달하지도 않았고, 여행자는 어쩔 수 없이 걸어다니는 거리가 많고 가는 곳만 가게 되기 때문에 체감 거리로만 따지면 거의 타슈켄트에 맞먹는 크기였어요. 물론 도시 크기는 타슈켄트가 압도적으로 크지만요.
한참 걸었는데도 검은 모스크는 고사하고 모스크 방향을 알려주는 표지판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모스크 어디 있냐고 물어보았어요.
"모스크? 기도하게?"
"아니요. 검은 모스크요."
사람들은 검은 모스크는 처음 듣는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어요.
그렇게 몇 명에게 길을 물어보는데 한 사람이 모스크에 데려다줄테니 자기 차에 타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군인인 것 같았어요. 차 안에 군인의 제복이 걸려 있었거든요.
그 사람은 친절하게 우리들을 모스크 앞에 데려다 주었어요. 하지만 그것은 황금 돔이 있는 검은 모스크가 아니었어요. 그래서 이 모스크가 아니라고 했는데 하필이면 이 검은 모스크를 찍어 놓은 사진이 없어서 어떻게 사진을 보여줄 방법도 없었어요.
결국 소모니 1세 동사을 보고 다시 시르다리오 강을 건넜어요.
바로 이것이 후잔드에 있는 황금 돔이 있는 검은 모스크.
오늘 그곳을 못 간 것이 너무 아쉬웠어요. 현지인이 도와주겠다고 차를 공짜로 태워주었는데 의사소통의 문제로 결국 그곳에 가지 못했어요. 사실 이날 반드시 그 모스크에 가야만 했어요. 갑과 을 모두 체력이 바닥났어요. 하지만 내일 일정이라고 쉽고 만만하게 볼 것이 아니었어요. 오늘은 판즈샨베 시장과 시르다리오 강을 보았어요. 내일 다시 판즈샨베 시장을 보기로 했고, 그 후에는 걸어서 후잔드 성까지 가야 했어요. 후잔드 성에 간다고 끝이 아니었어요. 오늘 후잔드 성 내부를 보지 못했기 때문에 내일은 후잔드 성 안도 들어가야 했고, 후잔드 성이 있는 지역에서 길을 건너 있는 공원도 가야 했어요. 즉, 최소한 오늘 시르다리오 강 너머 지역의 관광은 끝내야 다음날 일정이 편해지는데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끝내지 못했어요. 졸지에 오늘은 맛보기, 내일은 오늘 본 것을 다시 보며 본격적인 관광이 되어 버렸어요.
갑과 을은 꼭 그 모스크에 가야 되냐고 불만이 잔뜩이었어요. 이때 이미 눈치를 챘어요. 이 둘은 이제 여행이 끝났구나...단순히 황금 돔이 있는 검은 모스크에 가기 싫은 것이 아니었어요. 후잔드를 돌아다니며 구경하는 것 자체가 이제 싫은 것이었어요.
숙소에 돌아와 숙소에서 찍은 후잔드 야경이에요. 조명이 화려한 도시도 아니고 크게 발전한 도시도 아닌, 그냥 큰 도시이기 때문에 야경도 소박해요.
숙소에 돌아와 잠시 앉아 있다가 근처 가게에 간식과 음료수를 사러 갔어요.
"이거 뭐 이렇게 싸?"
교통비는 우즈베키스탄보다 타지키스탄이 훨씬 비쌌어요. 하지만 가게에 가 보았더니 공산품은 우즈베키스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했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프링글스가 우리나라 가격의 두 배가 넘어요. 하지만 타지키스탄에서는 우리나라 가격보다 저렴했어요. 다른 수입 공산품들 역시 우리나라보다도 쌌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수입 공산품들이 우리나라보다 비싸요.
후잔드의 가치는 여기에 있구나!
가게에 가서 깨달았어요. 만약 중앙아시아를 여행하시는 분 중 타지키스탄을 거쳐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갈 계획이신 분이라면 반드시 타지키스탄에서 공산품 보급을 하고 우즈베키스탄에 들어가세요. 우즈베키스탄은 수입 공산품이 정말 비싸요. 비누, 치약, 샴푸, 칫솔, 과자 등 모든 공산품이 다 비싸요. 왜 우즈베키스탄에서 공산품 가격이 엄청나게 비싼가에 대해 갑, 을과 토론을 한 결과, 우리들은 우즈베키스탄이 지리적으로 운송료가 비쌀 수 밖에 없는데,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고 관세를 엄청나게 세게 물린다고 결론을 내었어요.
가게에서 모처럼 과자와 음료수를 사 와서 맛있게 먹고 진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어요.
"방 어떻게 할까?"
마음 같아서는 다음날 확 다른 호텔로 옮기고 싶었어요. 하지만 하루 남기고 다른 호텔로 옮기는 것도 꽤나 비경제적인 선택. 호텔 찾아다니고 호텔 가격 알아보면 오전은 다 날아갈 것이고, 체력은 바닥날 거에요. 그러면 체력도 없는데 오후에 후잔드 일정을 전부 마쳐야하는 최악의 상황 도래. 이미 갑과 을은 체력이 고갈되어서 호텔 찾아 돌아다니는 것조차 힘든 상황이었어요. 만약 오늘 푹 잔다면 내일 오전 정도야 돌아다니겠지만 내일 오전에 호텔을 찾으러 다닌다면 오후에는 확실히 무리라고 생각되었어요.
"내가 아침에 방 잘못 들어갔는데 거기 세면실은 엄청 깨끗하고 좋더라."
"그러면 일단 이 호텔 안에서 방을 바꿀까?"
멀리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비효율적이었어요. 체력을 바닥내면서까지 돌아다녀서 호텔만 잡을 바에는 차라리 이 썩은 방에서 하루만 더 버티는 게 낫다는 판단이 섰어요. 정 못 버티겠다면 금요일 아침 일찍 돌아가면 되니까요. 세수만 하고 볼 일은 아침 먹는 겸 해서 현지 화장실에서 해결해도 되는 것이구요. 하루 정도 버티는 것은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어요.
일단 셋이 카운터에 내려가서 다른 방으로 바꿀 수 없냐고 했어요. 좀 더 비싼 방은 없냐고 물어보자 1층 왼쪽 구석에 있는 방에 가 보라고 했어요.
"이 방이 내가 아침에 잘못 들어갔던 방이야!"
갑이 좋아하며 문을 열었어요.
세상에...
천국과 지옥이었어요. 이 방은 천국, 우리가 머물고 있던 방은 지옥. 1층 구석에 있는 방은 정말로 좋았어요. 호텔 포이타크트의 방보다 조금 떨어지는 정도였어요. 비록 화장실과 세면실이 구분되어 있지 않았지만 그 정도는 괜찮았어요. 침대는 호텔 포이타크트의 침대보다 훨씬 컸어요.
더욱 놀라운 것은 가격. 이렇게 3인 1실이 160소모니. 우리가 머물고 있던 그 지옥같은 방은 4인 1실에 120소모니인데 기사 아저씨께서 흥정을 해 주셔서 100소모니에 들어갔어요. 이 방 가격도 150소모니에 들어갔어요. 셋이서 50소모니만 더 내면 괜찮은 방에서 잘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그래서 바로 다음날 아침 8시에 방을 옮기기로 하고 방에 들어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