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26 타지키스탄 후잔드 누리 이슬롬 모스크, 후잔드 성

좀좀이 2012. 5. 29. 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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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계획에서 가장 중요한 것


레닌 거리를 걷기 시작했어요.




Komil Khojandi의 동상이 나타났어요.



다시 걷기 시작했어요. 길을 걸으며 누리 이슬롬 모스크를 어떻게 할까 고민했어요. 저는 너무나 가고 싶었지만 친구들은 정말 가기 싫어했어요. 아까 일을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지만 화를 내지는 않았어요. 화를 내면 여행이 지옥으로 변하는 건 당연한 일. 하지만 둘을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둘을 데리고 가야할 이유도 없었어요.


이번 여행은 제가 계획했어요. 여행 일정, 경로, 비자 준비 등 모든 것을 제가 계획해서 둘을 데리고 타지키스탄에 왔어요. 여행을 제안하고 계획한 사람의 입장으로써 이 도시의 관광을 끝내주어야 할 필요가 있었어요.


다른 사람과 여행을 같이 다니다보면 체력의 차이가 갈등으로 발전하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되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체력이 약한 사람에게 맞추어줄 수도 없어요. 한 번 징징대는 것을 받아주기 시작하다가는 여행 일정이 엉망이 되는 것은 당연한 일. 극복하려고 하지 않고 계속 쉬려고만 하면 관광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요. 솔직히 힘들지 않게 여행을 하기를 원한다면 유명한 휴양지 한 곳에 가서 죽치고 쉬고 놀기만 해야죠. 패키지라고 절대 힘들지 않을까요?


지난 카프카스 여행 (뜨거운 마음)에서의 실수를 잊지 않고 있어요. 그때 같이 다니던 친구가 하도 힘들다고 징징대서 친구에게 일정을 계속 맞추어 주었어요. 그 결과...남들 정말 넉넉잡아 이틀, 보통 하루에 다 보는 그루지야 트빌리시를 5일 동안 다 보지 못했어요. 그때 얻은 교훈은 무조건 체력 약한 친구에게 일정을 맞추어주지 말 것. 그리고 같이 다니는 사람이 힘들어한다면 빨리 보기로 한 것을 다 보고 푹 쉬게 할 것. 나중에 다시 갈 나라라면 강행군을 할 필요가 없어요. 저 역시 지금 타슈켄트에 살고 있기 때문에 타슈켄트 관광은 절대 힘든 강행군을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다음날 가도 되고 다음주에 가도 되니까요. 하지만 그루지야도 마찬가지고 타지키스탄도 마찬가지고, 특히 타지키스탄의 후잔드는 다시 오기 정말 힘든 곳이에요. 이 도시 하나 보려고 여기까지 올 일은 전혀 없어요. 두샨베야 타지키스탄의 수도이니 어떻게 행운이 찾아와 중앙아시아와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면 다시 갈 수도 있겠지만 후잔드는 아니에요.


이번 여행은 정말 널널하게 계획을 짰어요. 친구들이 하도 여행 힘들게 다니는 거 싫다고 해서 정말 최대한 널널하게 일정을 계획했어요. 힘든 일정? 두샨베에서 3일 있었고, 후잔드도 3박이에요. 딱 하루, 이스타라브샨이 힘들었어요. 무슨 파리, 도쿄도 아니고 두샨베나 후잔드 같은 작은 도시에서 3일 체류하는 일정도 힘들다고 한다면 계획자 입장에서는 답이 없어요. 하루 쉬게 한다고 해서 그 다음날 힘이 넘쳐 전날 일정까지 전부 소화? 그런 거 없어요. 그랬다가는 하루에 다 볼 도시를 일주일 걸려도 다 못 봐요. 마음 같아서는 파미르 퍼밋을 받아 파미르까지 다 돌고 나오고 싶었지만, 그러려면 일정을 엄청 빡빡하고 강행군으로 짜야 했기 때문에 파미르는 과감히 버렸어요.


중요한 것은 결국 체력. 아무리 계획을 잘 짜고 널널하게 짠다 해도 다 소용 없어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다 소용 없어요. 여행에서는 흥정을 잘 하든, 현지어를 잘 하든 다 필요 없고 무조건 체력이 중요해요. 체력으로 감당이 안 되면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고, 돈으로 감당이 안 되면 그 다음에 흥정과 현지어가 필요한 거에요. 다른 능력들은 결국 체력과 돈을 아끼기 위한 수단이지 여행 자체를 잘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에요. 그런데 둘의 체력이 제 예상보다 훨씬 떨어질 거라고는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어요. 이것이 바로 여행을 계획한 사람의 입장에서 치명적인 실수였어요. 이 정도일 줄 알았다면 일단 이스칸다르 쿨 일정은 아예 빼버렸을 거에요. 그리고 처음부터 후잔드로 넘어가는 방법을 진지하게 고려했을 거에요. 아니면 두샨베로 바로 들어온 후, 후잔드는 버리고 차로 22시간 걸린다는 호로그만 갔다 와서 두샨베에서 다시 휴식을 취하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선택하거나요.


둘이 아침에 내일 하루 더 있자고 했어요. 하지만 내일 타슈켄트로 돌아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어요. 둘 다 체력이 완벽히 바닥나서 어떻게든 쉬고 싶어만 하는데 다음날까지 이 도시에 더 있을 리가 없었어요. 하지만 일단 속으로 생각하고 추측할 뿐 입 밖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았어요.



'누리 이슬롬 어떻게 하지?'


계속 고민되었어요. 저는 반드시 가고 싶었어요. 그러나 나머지 둘은 여행 의욕 자체가 아예 없었어요.


'나 혼자서라도 간다.'


다음에 다시 오면 그때 가면 된다고? 그딴 것은 없어요. 무조건 왔다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야만 해요. 그게 맞거든요. 세상은 넓고 돈과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요. 갔던 곳을 몇 번이고 다시 갈 수 없어요. 더욱이 여기는 타지키스탄. 한국에서 무슨 비행기 직항편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게다가 타지키스탄을 가기 위해서는 비자를 받아야 해요. 우즈베키스탄도 입국하려면 비자를 받아야 해요. 쉽게 올 수 있는 곳도 아니었어요. 죽기 전에 다시 올 일이 있을지도 의문인데다 가는 것도 상당히 복잡했어요. 무조건 가야 했어요.



후잔드 성으로 가는 갈림길에 도착하자 친구들에게 말했어요.


"너희들 누리 이슬롬 안 갈 거지?"


둘은 아무 말 없이 얼굴이 굳어졌어요.


"그러면 너희는 소모니 1세 동상에 가 있어. 나는 누리 이슬롬 갔다가 거기로 갈 테니까."


레닌 거리와 시르다리오 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레닌 거리를 타고 강을 건너가면 소모니 1세 동상이 있어요. 그리고 강을 건너지 않고 왼쪽으로 가면 후잔드 성이 있고, 오른쪽으로 가면 공원이 있어요. 전날 소모니 1세 동상에 너무 늦게 가서 제대로 구경을 못 했기 때문에 오늘은 소모니 1세 동상까지 보고 와서 후잔드 성과 반대편에 있는 공원을 보기로 했어요. 이 정도 보면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후잔드 관광은 끝내는 거에요. 일단 소모니 1세 동상을 보고난 후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후잔드 성과 공원을 보고, 남은 시간은 친구들에게 알아서 계획 세워서 돌아다니라고 했어요. 내일도 마찬가지. 딱 시르다리오 강변에 있는 공원까지 간 후, 나머지 모든 일정을 둘이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둘이 소모니 1세 동상을 향해 걸어가자 저는 택시 기사에게 누리 이슬롬 사진을 보여주며 가자고 했어요.


"10소모니."
"10소모니!"


생각보다 택시비가 너무 비쌌어요. 하지만 택시 기사는 정상 가격이라고 몇 번을 강조했어요. 주변에 다른 택시 기사들도 뭘 놀라냐는 반응이었어요. 그래서 20소모니에 누리 이슬롬까지 갔다가 소모니 1세 동상으로 돌아오기로 했어요.


둘은 제가 자기들 도움 없이는 절대 못 갈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완벽히 틀린 생각이었어요. 이름만 알면 택시 타고 가면 되거든요. 택시비를 아끼기 위해 여러 방법을 알아보고 걸어가고 마슈르트카 타고 하는 것 뿐이에요. 말이 완벽히 하나도 안 통해도 이름만 알면 택시 타고 가면 되요. 현지어를 모른다고 해서 여행을 못 하는 것은 아니거든요. 단지 주로 택시비 때문에 돈이 조금 더 들고 피곤할 뿐이죠. 이 나라 교통비가 비싸다고 해도 우즈베키스탄에 비해 비싼 것이지 유럽만큼 비싸다는 것은 아니에요. 빨리 보고 와야 했기 때문에 20소모니에 그냥 가기로 했어요. 물론 20소모니까지 낼 것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20소모니는 약 5천원.



누리 이슬롬 Нури Ислом 사원 입구.



이래서 검어 보였구나!


빈 부분이 멀리서 보았을 때 검게 보였던 것이었어요. 만약 진짜 검은 벽이었다면 당연히 후잔드의 자랑이 되었겠죠. 하지만 건축중이라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는 장소였어요.



모스크를 보는 것은 이슬람 국가를 여행한 사람이라면 나중에 질려서 안 하는 행동이지만, 모스크 건축 현장에 들어가서 구경하는 것은 의외로 기회가 별로 없어요. 저 역시 모스크 건설 현장은 멀리서 보기만 했지, 이렇게 내부에 들어와서 제대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어요.



이렇게 돔을 짓고 있었어요.



여기도 짓고 있는 중.


누리 이슬롬이 나름대로 갈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었던 이유는 단지 '모스크를 어떻게 짓는지 볼 수 있는 곳'이어서 뿐만은 아니었어요.



여기에서는 후잔드를 시원하게 내려다볼 수 있었어요. 후잔드를 내려다보기 좋은 자리. 멀리 셰이크 맛살 앗딘 모스크와 마드라사도 보여요. 사진 속 푸른 돔이 바로 셰이크 맛살 앗딘 모스크.


건축중인 모스크 뒤편으로는 지금도 예배당으로 쓰고 있는 건물이 있었어요. 때마침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어요.



누리 이슬롬을 본 후 소모니 1세 동상으로 택시를 타고 갔어요.



둘은 정신줄 놓고 쉬고 있었어요.


"밥 먹으러 가자."
"그래."


소모니 1세 동상과 그 주변이에요.






다시 시르다리오를 건너러 가는 길.



후잔드 성 내부를 지키는 군인과 군사시설. 저걸 코 앞에서 찍으면 당연히 카메라 빼앗기죠. 멀리서 당겨 찍었어요.



푸르른 시르다리오를 건너 점심을 먹으러 갔어요. 점심을 먹으러 후잔드 성 옆에 있는 공원을 관통해 갔어요.



포즈가 비장하다고 해야 하나, 장렬하다고 해야 하나?



이것이 후잔드 성. 입구에 속으면 안 되요. 입구는 현대에 새로 예쁘게 잘 지은 것이에요. 설마 옛날 후잔드 사람들이 성 입구에 역사 박물관이라고 써 놓았을 리는 없어요. 적더라도 '후잔드 성'이라고 적었겠죠.



식수대가 있기는 했는데 물이 빌빌빌빌 나왔어요. 물이 나오는 부분을 입으로 물고 있는 힘껏 빨아들이지 않으면 마시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어요.


우리가 간 식당은 샤슬릭이 괜찮다고 소개된 집이었어요. 주문을 해야 하는데 음식이 뭐가 뭔지 몰라서 고민하다 옆 테이블 사람들이 먹는 걸로 달라고 했어요. 그 결과 우리의 점심은 닭고기 샤슬릭. 맛있었어요.


다 먹고 나왔어요.


"후잔드 성 안 가?"
"안 가!"


갑이 신경질적으로 소리쳤어요.


"진짜 안 갈 거야?"
"안 간다구!"
"그래. 그러면 건너편 공원까지 가자. 그 다음엔 너희 마음대로 해."



이런 기념물을 지나서



루다키 동상이 있는 공원에 도착했어요.






"이제 너희들이 알아서 해. 나는 따라만 다닐 테니까."


둘은 아까 가방을 10소모니에 파는 가게를 보았다는 둥, 여기는 정말 물건 싸고 좋은 게 많다는 둥 여러 이야기를 했어요.


알아서 해라.


공원에서 쉬다 갑이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갑을 따라갔어요.


갑과 을이 간 곳은 판즈샨베 바자르 근처에 있는 지하상가. 둘이 힘들다고 했는데 어디 있는지 잘 몰라서 결국 판즈샨베 바자르까지 걸어갔어요. 저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얌전히 따라가며 둘이 뭘 하나 볼 생각이었어요. 기껏 지하상가에 갔는데 10소모니에 파는 가방은 괜찮은 게 없었어요. 결국 흐지부지. 둘은 계속 앞으로 걸어갔어요.


후잔드는 매우 큰 도시이고, 론니플래닛에 실려 있는 후잔드 지도는 그야말로 쓰레기에요. 차라리 '레닌 거리를 따라 걸으세요' 한 마디가 훨씬 나을 지경이에요.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가 가지 않은 길에도 볼 만한 것들이 보였어요. 하지만 가자고 하지 않았어요. 분명 약속은 약속이었거든요. 오후 4시. 둘이 정신없이 걸어서 간 곳은 결국 호텔이었어요.


내 이럴 줄 알았다.


한숨을 내쉬고 방 문을 열었어요. 그리고 침대에 드러누웠어요. 조금 쉬다 혼자 나갔다 올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기분이 상당히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지 돌아다닐 마음도 들지 않았어요.


"잠이나 자자."


이제 여행은 다 끝나버렸어요. 자기들 입으로 내일까지 후잔드에 머무르고 모레 타슈켄트로 돌아가자고 했는데 보나마나 내일 돌아가겠구나. 내일 돌아갈 생각을 하니 짜증이 확 나서 혼자 나가서 놀 기분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6시부터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잠을 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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