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거 잭키 하우스."
역시나 오쉬를 먹고 바르조브에 가기 위해 루다키 거리를 지나가는데 잭키 할아버지의 농담은 끊이지 않았어요. 잭키 아저씨의 구호는 바로
Jacky is strong!
이 구호와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농담들. 계속 웃다보니 어느덧 루다키 거리 끝에 있는 시멘트 공장에 도착했어요.
여기 와서 알루미늄 공장도 보고, 면직물 공장도 보고, 벽돌 공장도 보고, 시멘트 공장도 보았네요. 타지키스탄 산업 시설 중 웬만한 건 다 본 것 같아요. 사실 타지키스탄에서 생산된 전력의 3/4를 소비하고 있는 알루미늄 공장을 보았다면 더 이상의 공업시설은 봐도 무의미할 듯 했어요.
톨게이트에서 돈을 지불하고 바르조브로 들어갔어요.
잭키 할아버지께서 차를 폭포 앞에서 세우셨어요. 차에서 내리자마자 물방울이 우리 있는 쪽까지 거칠게 날려왔어요.
"이게 수력발전소에요. 저 위에 수력발전소가 있어요."
폭포라고 생각했을 때에는 꽤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수력발전소라고 들으니 뭔가...좋게 이야기하면 아담한 것이고 사실대로 말하면 무언가 김이 새는 느낌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큰 댐만 보아서 그런가? 저 발전소에서 전기가 얼마나 생산될지 의문이었어요.
"저 앞에 보이는 산이 안조브 Anzob에요. 이스칸다르 쿨 갈 때 저 산을 넘어요."
5월인데 하얗게 눈이 쌓인 산이 바로 안조브 산이었어요. 론니플래닛에 나와 있는 지도를 보면 안조브 패스 Anzob Pass는 해발 3372m였어요. 이것을 넘으면 한라산은 물론이고 백두산보다 더 높은 곳을 다녀오는 거에요.
경치는 정말 환상적이었어요.
바르조브 강 옆에는 다차(별장)가 많이 있었어요. 개인 다차도 있었고, 기업 소유의 다차도 있었어요. 여기는 말 그대로 두샨베 사람들의 중요한 휴양지.
잭키 할아버지께서는 갑자기 차를 어느 휴양 시설 안으로 몰고 가시더니 우리에게 내부를 구경하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자신은 거기 직원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하셨어요.
휴양 시설 가장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바로 강과 붙어 있었어요.
참고로 이 휴양 시설 내부에는 수영장도 있었어요. 남자 수영장과 여자 수영장은 확실히 분리되어 있었고, 식당도 겸하고 있었어요. 여기를 구경하고 잭키 할아버지 차에 올라탔어요.
툭 툭
빗방울이 조금 떨어졌어요.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 있었어요.
"소나기라도 내릴 건가?"
잭키 할아버지의 표정이 갑자기 매우 어두워지시며 굳으셨어요. 그러더니 차를 우리가 오는 방향으로 틀었어요. 론니플래닛에 의하면 바르조브의 끝에는 폭포가 있다고 했어요. 우리는 폭포를 보지도 못했는데 잭키 할아버지는 갑자기 차를 돌아가는 방향으로 몰기 시작하셨어요.
"여기가 비가 오면 매우 위험해요. 산이 무너질 수 있어요."
잭키 할아버지께서는 비가 오기 때문에 빨리 돌아가야 한다고 하셨어요. 8년 전 체코 관광객을 태우고 여기에 왔다가 비가 왔는데, 그 비로 인해 산사태가 나서 갇힌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얼굴을 보니 진심이었어요. 괜히 적당히 보여주고 대충 일하기 위해 돌아가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표정이 너무 굳어 있었고 어두워져 있었어요.
사실 이 구간 길을 보면 참 위험하게 생기기는 했어요. 산을 깎아 길을 넓히고 포장한 도로인데 산사태 방지 시설은 하나도 안 되어 있어요. 산에서 돌 하나라도 굴러 떨어진다면 바로 도로 위까지 굴러오게 되어 있었어요. 돌이 떨어지는 힘이 얼마가 되었든간에요.
잭키 할아버지께서는 우리들에게 미안했는지 돌아가는 길에 우리들에게 거리에서 아이들이 파는 붉은 풀을 사주셨어요. 영양분이 매우 많은 풀이라고 하셨어요. 저는 무슨 맛인지 알았기 때문에 각오하고 먹었어요. 전에 푸른 것을 먹었는데 진짜 신 거 못 먹는 사람은 머리 쥐어뜯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신 맛이었어요.
"이건 생각보다 안 신데?"
붉은 것은 푸른 것보다 참고 먹을만 했어요. 그러나 저보다 신 것을 더 못 먹는 을은 한 입 먹고 엄청나게 괴로워했어요. 을이 저보다 신 것을 더 잘 못먹어서 더 괴로워했는지, 아니면 저는 단단히 각오하고 먹은 데에 비해 을은 별 생각 없이 먹었기 때문에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여간 을은 신 맛 때문에 매우 괴로워했어요.
차가 먹구름으로부터 도망쳤어요.
우리가 갈 길은 맑은 날씨.
바르조브 구경을 마치고 잭키 할아버지와 헤어진 후, 피곤해하는 을은 호텔 방에 들어가고 저와 갑은 잠시 두샨베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어요.
"우리 내일 어떻게 하지?"
"내일?"
"내일 다른 도시로 이동할 거라면 그냥 있으면 되고, 내일도 두샨베에 머무를 거라면 호텔 연장해야지."
갑과 을 모두 하루 더 두샨베에 머무르자고 했어요. 저도 월요일의 두샨베를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에 화요일날 다른 곳으로 떠나자고 했어요. 그래서 하루치 숙박비를 더 내고 을은 방으로 들어갔고, 저와 갑은 다시 거리로 나왔어요.
"우리 멀리 갈 거야?"
갑이 제게 어디를 갈 거냐고 물어보았어요.
"아니, 대충 아이니 거리나 둘러보자."
그래서 루다키 거리가 아니라 올라미 키톱 옆길로 걷기 시작했어요.
"저거 뭐지? 왠지 터키 그랜드 바자르 입구처럼 생겼는데?"
멀리 갈 수도 없는 것이 을을 데리고 나와서 저녁을 먹으러 같이 가야 했기 때문에 그랜드 바자르처럼 생긴 곳이나 구경하고 돌아가기로 했어요.
외관이 왠지 그랜드 바자르처럼 느껴졌는데 내부는 시장이었어요.
"우즈벡이랑 똑같네..."
"우즈벡이랑 똑같은데?"
"우즈벡이랑 똑같잖아!"
"우즈벡도 수박 나왔을까?
시장은 우즈벡과 똑같았어요. 우즈베키스탄 시장과 다른 점을 찾아낼 수가 없었어요. 사람들이 타지크어로 말하고 있다는 것 정도? '우즈벡과 똑같은데?'에서 '우즈벡과 똑같잖아!'로 바뀌었어요. 그리고 수박을 보자 '우즈벡에도 수박은 있는데 지금 우즈벡 시장에도 나왔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즈벡과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시장 구경은 금새 재미가 없어졌어요.
견과류 역시 똑같았어요.
"포토! 포토!"
청년이 와서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어주었어요.
청년은 자기를 찍지 말고 어머니를 찍으라고 계속 손으로 가리켰어요. 그래서 청년의 어머니 독사진도 찍었어요.
저녁을 먹기 위해 을을 부르러 호텔로 가다 호텔 앞에 있는 아이니 동상을 한 번도 제대로 찍은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게 아이니 동상이에요.
아이니 동상을 찍고 SFC로 갔어요.
"어제 너 뭐 골랐어?"
갑과 을이 제게 물어보았어요.
"나 이거 골랐는데? 왜? 어제꺼 별로였어?"
둘 다 어제 고른 것은 정말 별로였다고 했어요. 그래서 모처럼 셋 다 메뉴를 통일해서 먹었어요. 저는 당연히 전날 먹은 것과 똑같은 햄버거를 골라서 먹었어요. 맛은 우리나라 징거버거와 비슷한데 크기가 매우 작았어요.
햄버거를 다 먹은 후 카페 세가프레도 Cafe Segafredo에 가서 커피를 마셔보기로 했어요. 여기 역시 론니플래닛이 추천한 가게. 이 카페 역시 당연히 루다키 거리에 있어요. 우리가 상상하는 도시를 즐기려면 두샨베에서는 무조건 루다키 거리로 가면 되요.
"음...이게 뭐야?"
제가 시킨 것은 마키아또에 초콜렛이 들어간 커피. 저는 당연히 큰 잔에 나올 줄 알았는데 결과물은...에스프레소에 우유 조금 집어넣고 초콜렛 가루 뿌린 커피였어요. 맛 뿐만이 아니라 커피 양과 잔 모두 딱 에스프레소.
가격은 절대 저렴하지는 않았어요. 에스프레소 잔에 나오는 커피가 대충 8~10 소모니 정도. 큰 잔에 나오는 것들은 가격이 더 비쌌어요. 커피를 아껴먹으며 인터넷을 하고 앱을 업데이트하다가 밤이 되자 숙소로 향했어요.
"우리 공원 야경이나 볼까?"
혼자라면 당연히 안전을 위해 호텔로 갔겠지만 지금은 세 명.
루다키 동상.
아직 사람들이 많이 나와 노는 철이 아니라서 그런지, 아니면 전기가 부족해서 그런지 몇몇 곳만 불을 밝혀 놓았을 뿐, 공원은 어두웠어요. 조명을 받는 루다키 동상, 타지키스탄 국장이 달려 있는 기념물, 타지키스탄 깃대, 구 대통령궁을 제외하면 그냥 볼 것 없는 어두운 밤의 공원이었어요.
그래서 루다키 동상 앞에 앉아서 잡담을 하다 호텔로 돌아왔어요.
호텔 로비에서 2층으로 가는 계단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저는 이것을 보고 매우 신기해했는데 친구들은 이거 오늘 처음 보냐며 어이없어했어요.
방에 들어가서 모레 어떻게 할 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일단 열려 있는 국경은 레가르 국경과 오이벡 국경. 하지만 오이벡 국경은 우리가 직접 통과한 것도 아니고 레가르 국경에서는 '여기 빼고는 다 닫혔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므로 정확히 열려 있는지 닫혀 있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만약 후잔드까지 갔다가 오이벡 국경이 닫혀 있다면 그야말로 낭패. 그 경우에는 다시 두샨베로 돌아와서 두샨베에서 레가르 국경으로 나가야 했어요. 게다가 두샨베~후잔드 육로 이동은 론니플래닛에서 가능하기는 하나 절대 권하지 않는다고 하는 코스.
"레가르로 다시 나가서 테르미즈 보고 올까?"
이때 지금까지 여행 일정에 대해 단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어디 가자고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을이 말했어요.
"나는 후잔드도 가보고 싶은데..."
지금까지 여행 일정과 계획에서 을이 지금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을의 의견은 사실상 하나도 반영되지 않았어요. 을은 계속 저와 갑의 의견에 동의만 할 뿐이었어요. 그런데 처음으로 을이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어요.
더 이상의 논의는 필요없다.
이것은 형평성의 문제이기도 했어요. 을이 처음으로 제시한 여행 계획에 대한 자신의 의견이었기 때문에 여행 계획 수립에서의 형평성 문제 때문에 을의 주장을 들어주어야 했어요. 그래서 육로이동으로 무조건 후잔드까지 가기로 결정했어요.
이렇게 또 하루의 일정이 끝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