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월요일에 가자 (2012)

월요일에 가자 - 04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

좀좀이 2012. 5. 19.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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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니플래닛에 의하면 사마르칸트에서 펜지켄트 국경으로 가기 위해서는 레기스탄 광장에 가야 했어요. 레기스톤 광장에 펜지켄트 국경까지 가는 마슈르트카가 있다고 나와 있었거든요.


역시나 역에서 나오자마자 택시 기사들이 얼씨구나 좋다고 바글바글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레기스톤! 레기스톤!"


사방팔방에서 택시기사들이 '레기스톤'이라고 외쳐대는데 그 와중 속에서 누군가 '앞으로 쭈욱 가면 레기스톤 가는 버스 있어!'라고 알려 주었어요. 우리 모두 우즈벡어를 알았기 때문에 버스가 있다고 알려준 말을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택시 기사들 때문에 정신 없어서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일단 자리를 벗어났어요.


버스가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긴가 민가 했어요. 중요한 것은 어쨌든 역 바로 앞에서 택시를 타는 것보다 역에서 조금 떨어져서 택시를 타는 것 - 정확히는 그냥 지나가는 승용차를 잡아타는 것이 훨씬 쌌기 때문에 일단 아저씨가 알려주신 대로 앞으로 쭈욱 걸어갔어요. 앞으로 걸어가니 버스가 보였어요.


"레기스톤 광장 가는 버스 있나요?"
"3번 버스 타세요."


버스비는 500숨. 타슈켄트 버스비가 700숨인데 사마르칸트 버스비는 아직 인상이 안 된 건지 500숨 밖에 안 되었어요. 500숨이라 돈 내고 거슬러 받기도 편했어요. 타슈켄트에서는 700숨이라 1000숨 내면 200숨짜리 1장과 100숨짜리 1장을 주는데 200숨은 거의 걸레처럼 너덜너덜하고 100숨은 찢어지게 생겨서 절대 받고 싶지 않아요. 500숨짜리는 100숨, 200숨보다는 상태가 훨씬 양호해서 받아도 빨리 써 버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아요. 게다가 거스름돈이 깔끔하게 많이 쓰는 500숨짜리 지폐 한 장으로 끝나구요.


사마르칸트역 근처가 버스 종점이에요. 버스 종점 앞은 이렇게 작은 공원이 있어요.


버스를 타고 레기스톤 광장으로 갔어요. 종점에 앉아서 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할머니께서 타셔서 자리를 비켜드렸어요. 그래서 레기스톤 광장까지 가는 길에서 찍은 사진이 없어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노인 공경 문화가 강하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노인분들께는 양보를 해드려야 한답니다. 단, 국경과 대사관 앞에서만은 그런 거 없어요.


타슈켄트역에서 레기스톤 광장까지 가는 길은 매우 예쁘고 정비가 잘 되어 있었어요. 여기가 중앙아시아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예쁘게 잘 정비해 놓았어요. 솔직히 타슈켄트보다 훨씬 개발이 잘 되어 있었어요. 여기가 현재 우즈베키스탄 대통령인 카리모프의 고향이래요.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관광객이 하도 와서 돈이 많은 지역이라 그런지 개발을 정말 잘 해 놓았더라구요.


버스를 타고 아미르 테무르 동상과 비비 하늠 모스크를 지나 레기스톤 광장까지 왔어요. 사람들에게 펜지켄트 국경까지 가는 마슈르트카를 물어보는데 전부 모른다고 했어요. 레기스톤 광장 맞은편 골목에 마슈르트카가 세워져 있어서 펜지켄트 국경까지 가는 마슈르트카를 물어보았어요.


"펜지켄트 국경 닫혔어!"
"예?"
"펜지켄트 국경 닫힌지 꽤 되었어. 어디 가는데?"
"타지키스탄이요."
"오이벡으로 가!"


오이벡 국경은 타슈켄트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요. 문제는 오이벡 국경으로 돌아가는 것은 둘째치고 오이벡 국경을 넘으면 타지키스탄의 '후잔드'라는 도시로 들어가는데 이 '후잔드'와 타지키스탄 수도인 '두샨베'는 절대 차량 이동을 권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이었어요. 론니플래닛에 의하면 차로 갈 수도 있지만 비행기를 타고 가는 것을 권하는 길이었어요. 게다가 기껏 사마르칸트까지 왔는데 다시 타슈켄트로 돌아가 오이벡 국경을 넘고 싶지는 않았어요.


우르릉 콰과광


갑자기 천둥이 치고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어요. 씨알이 굵은 소나기가 좍좍 퍼붓기 시작했어요. 급히 비를 피해 건물 입구 아래로 들어갔어요. 현지인들도 비를 피하러 몰려왔어요. 현지인들에게 계속 펜지켄트 국경에 대해 물어보자 현지인들이 자기들끼리 묻고 대답하기 시작했어요.


"펜지켄트 국경은 닫혔어. 레가르로 가."


레가르라면 '데나우 국경'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사마르칸트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곳이었어요. 사람들은 일단 아브토스탄시야 (Avtostansiya)로 가서 레가르 국경으로 가는 차를 알아보라고 했어요.


사마르칸트...두고 보자!


지난 카슈카다리오 여행 때에는 사마르칸트에 너무 늦게 도착해서 레기스톤 광장을 어둠 속에서 대충 보고 떠나야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사마르칸트 레기스톤 광장 좀 보고 바로 펜지켄트 국경으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소나기가 좍좍 퍼붓고 펜지켄트 국경도 닫혀서 여기를 볼 시간이 없었고, 사진을 찍을 환경도 되지 않았어요. 당장 카메라를 꺼낼 게 아니라 카메라가 비를 맞지 않게 하기 위해 카메라 가방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 사마르칸트를 두 번이나 갔는데 두 번 모두 엉망이었고 제대로 보지도 못했어요. 갔다 왔다고 해도 되기는 해요. 지나가면서 레기스톤 광장도 다 봤고 비비 하늠 모스크도 보았고 우즈베키스탄에서 가장 유명한 아미르 티무르 동상 3개 중 하나도 보았어요. 단지 사진을 찍지 못하고 들어가보지 못했을 뿐이에요. 하여간 사마르칸트는 저를 강하게 거부했어요.


비가 멎자 급히 승용차를 잡아타고 아브토스탄시야로 갔어요.


"아브토바그잘?"
"예."


그놈이 그놈 아닌가 해서 일단 맞다고 했어요. 기사는 어디론가 가더니 우리에게 어디로 가냐고 물어보았어요.


"아브토스탄시야요. 국경 가려구요."
"아...아브토스탄시야!"


사마르칸트에는 아브토바그잘도 있고 아브토스탄시야도 있어요. 그런데 레가르 국경으로 가는 마슈르트카를 타기 위해서는 일단 아브토스탄시야로 가야 했어요. 우리가 잘 몰라서 무조건 맞다고 하자 기사 아저씨가 아브토바그잘로 가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기사 아저씨는 방향을 돌려 아브토스탄시야로 데려다 주었어요.


아브토스탄시야에 도착하니 역시나 기사들이 우루루 몰려 와서 서로 자기 차에 타라고 했어요.


"국경! 펜지켄트 국경이요!"
"그 국경 닫혔어! 닫힌지 오래야!"


기사들 말에 의하면 우즈베키스탄-타지키스탄 국경 중 현재 열려 있는 국경은 오직 북쪽 타슈켄트 근처의 오이벡 Oybek 국경과 남쪽 레가르 Regar 국경 뿐이었어요. 오이벡 국경은 후잔드에서 가깝고, 레가르 국경은 두샨베에서 가까워요. 그리고 후잔드와 두샨베는 엄청나게 멀어요. 남은 선택지는 하나. 레가르 국경행.


레가르 국경으로 가겠다고 하자 아브토스탄시야에는 레가르 국경으로 가는 차가 없고 '그랩노이'에 가야 레가르 국경까지 가는 택시가 있을 거라고 했어요. 기사 한 분이 마슈르트카에 우리만 태우고 그랩노이 Grebnoy에 다녀오겠다고 했어요. 가격은 세 명 다 해서 1만숨. 우즈베키스탄에 적응되어서 비싸게 느껴지지만 실제로는 4달러 채 안 되는 돈.


그랩노이 가는 길.




다행히 소나기여서 비가 조금씩 멎고 있었어요.





차는 사마르칸트 외곽으로 빠져 나갔어요. 그랩노이가 아브토스탄시야에서 가깝다고 해서 정말 가까운 줄 알았는데 가까운 거리는 아니었어요.


오후 1시 50분. 드디어 그랩노이에 도착했어요.


그랩노이에 도착하자 마슈르트카 기사 아저씨가 레가르 국경까지 가는 택시 기사를 찾아오겠다고 했어요. 잠시 후. 한 할아버지께서 마슈르트카로 오셨어요.


"레가르 국경까지?"
"예."
"한 사람당 7만 5천 숨."
"그러면 얼마죠?"


일단 7만 5천 숨이라면 꽤 많은 돈이에요. 론니플래닛에 나온 택시 및 마슈르트카 정보는 절대 믿을 게 못 되요. 대체 언제적 정보인지는 몰라도 가격이 엄청나게 많이 뛰었어요. 결정적 이유는 숨 가치의 엄청난 하락. 하지만 7만 5천 숨은 절대 적은 돈이 아니었어요. 타슈켄트에서 암시장에서 잘 바꾸어봐야 1달러가 현재 2850숨이에요. 7만 5천 숨이면 우리나라 돈으로 약 3만원.


"세 명 해서 22만 5천 숨."
"20만 숨에 해주세요."


흥정을 시도했어요. 아저씨께서는 안 된다고 했어요.


"우리들은 한국에서 왔어요. 그리고 학생들이에요."


아저씨는 22만 숨이라고 했어요. 그래서 제가 다시 21만 5천 숨에 해 달라고 했어요. 마슈르트카 기사 아저씨도 얘네들 한국인에 학생에 우즈벡어 배운다는데 좀 깎아주라고 같이 말씀해 주셨어요. 택시 기사 아저씨께서는 마지못해 21만 5천 숨에 레가르 국경까지 가기로 동의하셨어요.


택시에 올라탔는데 아저씨께서 기다리라고 하셨어요.
"승객 한 명 더 와야 출발해. 아니면 셋이 100달러."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이나 특히 장거리를 갈 때 종종 있는 현상이었어요. 장거리를 뛰는 택시 (라고 하지만 택시 면허 없는 일반 승용차이고, 이게 면허 있는 택시보다 훨씬 저렴함)는 승객을 다 채워서 가거나, 원래 타야 할 승객 몫까지 내고 바로 출발하거나 둘 중 하나에요. 즉 바로 출발하고 싶으면 빈 좌석 돈까지 지불하면 되요.


세 명이서 100달러라면 꽤 큰 돈이었어요. 이 나라의 교통 사정이나 사마르칸트에서 레가르 국경까지의 거리를 생각하면 비싼 돈은 아니었지만, 이 나라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큰 돈이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우리의 적이다.


이미 오후 2시였어요. 도로 상태가 매우 안 좋은 이 나라에서 언제 올 지 모르는 손님 한 명 기다리다가는 오늘 레가르 국경까지 절대 갈 수 없었어요. 아니, 갈 수 있다 하더라도 너무 늦어서 국경이 닫혀버릴 수 있었고, 그보다 낫다면 국경을 넘기는 했지만 국경에 택시가 하나도 없어서 국경에서 노숙하는 아제르바이잔의 악몽을 다시 겪어야 할 수도 있었고, 그보다 더 나은 최상의 조건이라 해도 두샨베 호텔 정보가 제대로 없는 상황에서 야심한 시각에 두샨베 거리를 헤매야 할 수 있었어요. 최악부터 최선까지 전부 최악이었어요. 뭘 골라도 다 최악. 더 시간을 끌 수록 우리에게 상황이 안 좋아질 뿐이었어요.


"지금 바로 가요. 100달러 드릴께요."


시간이 우리의 적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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