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집에 돌아갈 때였어요. 날은 엄청나게 뜨겁고 지친 상태였는데 하필 버스에서 자다가 지하철역 한 정거장을 더 가서야 잠에서 깨어서 내렸어요. 제대로 내려서 걸어가도 덥고 피곤해서 힘든데 지하철역 한 정거장을 추가로 더 걸어가야 하니 정말로 지치고 어지러웠어요. 동남아시아 여행 중 느꼈던 더위를 다시 느끼는 것 같았어요.
'뭐 좀 사서 마시고 걸어가자.'
어지간하면 편의점 가서 무언가 사서 마시지 않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 물을 마시려고 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요. 이대로 가다가는 분명히 더위를 먹을 것 같았거든요. 편의점의 에어컨 냉기를 쐬며 시원한 것 하나 마시면서 몸의 열기를 조금 식힌 후 다시 집으로 걸어가야겠다고 느꼈어요. 거의 생존본능처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느꼈어요.
세븐일레븐 편의점에 들어갔어요. 차가운 냉기가 맞이해주었어요. 피부의 열기가 식자 조금씩 정신이 돌아왔어요. 처음에는 무조건 시원한 탄산수를 사서 마셔야겠다고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정신이 조금 돌아오자 생각이 바뀌었어요.
'뭐 새로 나온 음료수 있나?'
음료수를 하나씩 천천히 살펴보았어요. 에어컨 바람을 쐬는 순간 굳이 탄산 음료가 아니라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꼭 탄산 음료가 아니라도 시원하기만 하면 되고, 이왕이면 그 중에서도 새로 나온 거나 지금껏 마셔보지 못한 것이라면 좋았어요. 집까지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면 앞으로 걸어갈 길을 생각해서 시원한 탄산수를 사들고 나섰겠지만 다행히 집까지 그렇게 먼 거리가 남아 있지 않았거든요.
"이런 것도 있었네?"
사실 편의점에 무엇이 있는지 딱히 기억하지도 않고,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잘 사서 마시지 않는 편이에요.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신다면 그것은 일단 제가 여기저기 정신없이 많이 돌아다녔다는 의미. 하도 돌아다니다 갈증을 참을 수 없을 수준이 되어서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거든요. 아니면 같이 만난 사람이 편의점에서 음료수 사서 마시자고 해서 들어가거나요.
그래서 고른 것이 바로 세븐일레븐 자두 우유였어요.
이름이 매우 간단했어요. 군더더기 없이 딱 '자두우유'라고 적혀 있었어요.
'이거 복숭아 요구르트랑 맛 비슷할 건가?'
자두랑 복숭아랑 맛이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잘못 만든 제품을 먹어보면 자두인지 복숭아인지 분간 안 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도 말이 좋아 자두지 복숭아 음료 아닌가 추측했어요.
우유곽 아래에는 유음료에 용량이 300ml 라고 적혀 있었어요. 열량은 220 kcal 이래요. 냉장제품이고 자두 농축액이 0.1% 들어갔대요. 0.1%면 0.3ml 라는 이야기.
한쪽 면에는 영양정보가 인쇄되어 있었어요.
성분표를 보면 정제수와 국산 1등급 원유 30%가 들어갔대요. 액상과당, 정백당도 들어갔어요. 네덜란드산 탈염유청혼합 탈지분유 2.8%, 국산 유크림 2%, 합성향료 자두향도 들어갔어요. 자두 농축액이 0.1%인데 이 중 고형분이 65%이고, 자두과즙 1%인데 독일산이래요. 상자에는 '자두과즙으로'라고 적혀 있는데 이건 오타를 낸 건지 자두 과즙이 자두 농축액 0.1% 중 1%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만약 후자라면 이 우유의 자두 과즙 함량은 0.001%. 자두 한 알을 껍질을 까서 우유에 살짝 넣었다 빼었다 해도 왠지 저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자두맛 사탕맛.
예전 어렸을 때 즐겨 먹었던 투명하고 빨간 줄이 하나 그어져 있는 자두맛 사탕 맛이었어요. 딱 그 맛이었어요.
자두맛 사탕을 입에 넣어서 빨아먹으며 우유랑 같이 먹는 맛이었어요. 어렸을 적에 자두맛 사탕이 한 알 남으면 망치로 깨서 조각을 나누어먹곤 했는데 그런 식으로 자두맛 사탕을 가루로 빻아서 우유에 타서 마시면 아주 비슷할 것 같았어요. 맛이 자두맛 사탕이랑 너무 비슷했거든요.
이건 우유인지 음료수인지 애매했어요. 우유 느낌이라고는 입에 느껴지는 촉감 뿐이었어요. 맛에서도 향에서도 우유를 전혀 찾을 수 없었어요. 우유의 맛과 향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또는 저처럼 자두맛 사탕 매우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주 좋은 선택지가 될 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