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2015)

길고도 길었던 이야기 - 84 라오스 비엔티안 자미아 모스크, 왓 씨싸켓, 왓 프라깨우, 탓 담

좀좀이 2017. 7. 17.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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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의 뒷면은 절망. 그 절망은 나락으로 인도했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나락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바닥 아래로 더 깊은 심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충격이 너무 컸어요. 온몸에서 힘이 쭉 빠져버렸어요. 아무리 좋게 말하려 해도 좋은 표현이 하나도 떠오르지 않았어요. 이렇게 자국어로 된 책이 없는 나라는 처음이었어요. 책이 비싸면 복사해서 볼 것이고, 복사비도 비싸면 공책 들고 와서 베껴적을 거에요.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었어요. 아예 책이 없었어요. 책이 있어야 이 나라 사람들이 복사를 해서 본다든지 필요한 부분 베껴적어서 볼 거라는 상상이라도 해보죠. 책 자체가 없었어요. 지금껏 여행한 국가 중 이렇게 자국어로 된 책이 없는 나라는 투르크메니스탄 이후 처음이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에 갔을 때 책이 없었던 것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투르크메니스탄은 소련에서 독립한지 30년도 안 된 나라. 게다가 투르크멘인들이 너무 미개해서 소련에게 흡수되기 전에 문자해독률이 10%가 안 되었다고 해요. 국가도 없고 약탈이나 하며 살아가던 민족이었어요. 투르크멘어 자체도 소련 시절 들어서 여러 방언을 모아서 만든 언어에 가까워요.


그런데 여기는 라오스. 최소한 도서관에는 책이 있을 줄 알았어요. 시장이 작아서 책 자체를 많이 인쇄하지 않고 팔리지도 않으니까 책을 몇 권 찍어내어서 도서관에 모셔놓을 줄 알았어요. 최소한요. 도서관에 책을 모셔놓고 와서 빌려가든 베껴가든 복사해가든 하라고 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국립도서관'이라는 곳에조차 라오어로 된 책이 별로 없었어요.


'이렇게 된 이상 동덕대로 간다!'


저는 여행 중 대학교 가는 것을 정말 싫어해요. 과거 '여행가서 배우고 오자'는 분위기가 강했던 시절, 외국 여행 가면 그 나라의 대학교를 가보아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게 참 싫었어요. 대학교에 가서 대체 무엇을 보고 느끼고 배워와야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그 나라, 그 사회를 알기 위해 대학교를 가서 구경하는 것이 대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우리 모두 알잖아요. 교과서와 현실은 다르다는 거요. 대학 도서관에 책 많다고 대학생들이 다 그 도서관에 있는 책 전부 보나요. 세계적으로 대학교는 '특수사회계층'과 연관이 있어요. 우리처럼 대학진학률 높은 나라 별로 없어요. 제가 보고 싶은 것은 특수사회가 아니라 일반사회. 그래서 더욱 여행 중 대학교 찾아가는 것은 제게 있어서만큼은 시간낭비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국립도서관을 보고 나오자 라오스 국립대학교인 National University of Laos - 동덕대를 꼭 가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국립도서관이 이 모양인데, 대체 대학교는 어떻게 생겼는지 너무 궁금해졌어요. 어차피 '책'이라는 것은 배운 사람들이나 보는 것이니 국립도서관이 아니라 라오스 국립대학교인 동덕대 도서관에 다 모아놓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 나라 학생들은 대체 무엇을 가지고 공부하나 좀 보고 싶어졌어요.


라오스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하지 못해서 '라오인 친구를 만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동덕대를 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기는 했어요.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가보는 것이 낫지 않을 건가'라는 가벼운 추측 수준이었어요. 이제 바뀌었어요. 동덕대는 이제 이번 여행 중 반드시 가야할 목적지가 되었어요. 서점 더 돌아다니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결론이 나와버렸어요. 쓸 데 없이 서점 찾아다니며 시간 낭비할 시간에 비엔티안에서 볼 것을 후다닥 봐서 끝내고 남은 시간에 동덕대 가서 제 두 눈으로 직접 보고 확인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저거 모스크 아니야?"

"응?"

"모스크!"

"아악!"



친구가 절규했어요. 친구는 모스크를 정말 싫어했어요. 그런데 모스크가 나와버렸어요. 저는 신났어요. 모스크 구경하는 것도 매우 좋아하거든요.


"이건 내가 모스크로 끌고온 거 아니다? 나는 너 따라가고 있었어."

"알아!"


스마트폰이 친구에게만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길을 찾고 있었어요. 저는 친구를 따라서 걸어갈 뿐이었어요. 그렇게 친구가 길을 찾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모스크가 딱 튀어나와버린 것이었어요. 저는 신났지만 친구는 얼굴이 굳었어요.


"야, 모스크가 막 너 쫓아온 거 아니야?"

"어으...라오스는 불교의 나라라서 모스크가 없을 줄 알았는데..."


친구는 매우 당황해했어요. 저도 비엔티안에서 모스크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어요. 설마 이 나라에 모스크가 있을까 싶었어요. 있었어요. 표지판에 '모스크'라고 딱 적혀 있었어요. 모스크 안내 표지판답게 초록색 표지판이었고, 초승달과 별이 그려져 있었어요. 맨 아래에 적힌 글자는 인도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글자 같았어요. 타밀어 글자 같기는 한데 타밀어 글자는 저도 모르기 때문에 맨아래에 어떤 말로 적힌 것인지 알 수 없었어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것이 중국 회족 모스크가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이 모스크 이름은 '비엔티안 자미아 모스크'였어요.


모스크를 보러 갔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자미아 모스크


모스크 담장에는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어요.



예배당으로 갔어요. 역시나 문이 열려 있었어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어요.


"여기 왜 이렇게 휑해?"




지금까지 본 모스크 중 손에 꼽을 정도로 안에 아무 것도 없었어요. 여기가 예배당이 아닌 줄 알았어요. 사무실로 쓸 공간인데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모스크 가면 꼭 보이는 미흐랍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예배 방향을 알려주는 미흐랍이 안 보여서 더욱 제가 잘못 들어온 줄 알았어요. 미흐랍은 무슬림들의 예배에서 정말로 중요한 예배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모스크든 꼭 있는 것이거든요.


"다른 곳에 제대로 된 예배당 있는 거 아니야?"


다른 쪽을 살펴보았어요.


Mosque in Vientiane, Laos


우두하는 장소가 있었어요. 그거 아무리 보아도 제가 있는 이 휑하고 삭막하게 생긴 공간이 예배당 맞았어요.


벽에는 여행자들에게 들어와서 드러누워 자지 말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어요.



"키블라가 있기는 있구나."


이슬람 예배 방향


키블라를 알려주는 미흐랍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쇄물을 붙여놓았어요. 그나마도 글자를 보니 글자가 태국어였어요.


'태국 남부의 무슬림들을 위한 모스크인가?'


라오어로 적혀 있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라오스에 무슬림이 있을 것 같지 않았거든요. 아예 없지야 않겠지만 여기는 이슬람권과는 거리가 먼 지역이었어요. 캄보디아 및 베트남 남부에 살고 있는 참족이 이슬람을 믿는다고 하기는 하는데, 라오스는 캄보디아 남부 및 베트남 남부와 멀어요. 태국 남부에도 무슬림들이 사는데 태국 남부는 라오스에서 더 멀구요.



예배당 내부 한 켠에는 카펫이 정리되어 있었어요. 예배를 볼 때만 펼쳐놓는 것인지, 청소를 위해 접어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모스크 예배당 건물에서 나왔어요.



의자와 탁자는 모스크와 어울리는 초록빛이었어요. 이 모스크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우두하는 장소와 이 탁자의 초록색이었어요. 라오스에서 모스크를 갔다는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인상적이지 않았어요. 미흐랍이 없고 KIBLAT 라고 인쇄된 종이를 붙여 놓은 것이 그나마 인상적이었구요. 우리나라의 모스크도 참 볼품없고 볼 거 없다고 생각하곤 했는데 여기는 그보다도 더 볼 것이 없었어요. 그래도 이것은 이해가 되었어요. 무슬림 자체가 얼마 없어서 크고 화려하게 지을 필요 자체가 없다고 본다면 납득이 가는 것이었으니까요.


모스크에서 나와 왓 씨싸켓을 향해 걸어갔어요. 거리에는 차와 오토바이가 느긋하게 돌아다니고 있었어요. 이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라는 것을 알려주는 커다란 표지판도 보였어요.



"저거 빠뚜싸이다!"


라오스 비엔티안


"오늘 빠뚜싸이도 갈까?"


시간은 이제 3시. 빠뚜싸이도 가려고 마음먹으면 갈 수 있었어요.


"저기는 내일 가자."

"그래."


오늘 왓 씨싸켓과 왓 프라깨우를 보기로 했어요.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 곳 중 국립박물관, 빠뚜싸이, 탓 루앙 정도 남는데, 이것은 다음날 하루에 다 볼 수 있었어요. 붓다파크는 갈까 말까 고민중이었구요. 애초에 비엔티안에서는 느긋하게 여행을 다닐 생각이었어요. 관광보다는 원래 목적들을 달성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기도 했구요. 게다가 이따 저녁에 블로그 지인도 만나야했기 때문에 이날 일부러 강행군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빠뚜싸이


빠뚜싸이 앞에는 차가 많았어요. 샹젤리제 거리에서 보는 개선문처럼 멀리서도 빠뚜싸이가 잘 보였어요.


이것이 라오스 대통령궁이에요.


라오스 대통령궁


대통령궁에서 길을 건너 왓 씨싸켓으로 갔어요.



여기는 입구에서 입장료를 받고 있었어요.



왓 씨싸켓 표는 이렇게 생겼어요.


왓 씨싸켓 표


왓 씨싸켓은 1820년 비엔티안의 마지막 왕인 아누웡 Anouvong 왕 재위시절 도시 한 가운데에 있는 왕궁 근처에 지어진 절이에요. 1827년 비엔티안이 오늘날 태국인 시암의 군대에 의해 대대적으로 파괴되는데, 이 절은 그때 파괴되지 않고 살아남았어요. 그래서 이 절은 비엔티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 중 하나에요. 왓 씨싸켓은 1930년대에 보수되었대요. 왓 씨싸켓은 태국 중부 양식으로 지어진 절이고, 이 절의 가장 큰 특징은 크고 작은 불상이 6800개가 넘게 모셔져 있다는 것이에요. 불상 재질은 청동, 나무, 돌 등이에요.







대법당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어요. 대법당은 이렇게 생겼어요.



대법당을 중심으로 담이 둘러쳐 있었어요.



대법당을 둘러싼 담벼락을 보러 갔어요.



이래서 이 절 안에 불상이 6800기가 넘게 모셔져 있다고 하는구나!







담벼락은 벌집처럼 종 모양으로 작게 푹 파인 구멍이 많았어요. 그 구멍마다 불상이 2기씩 안치되어 있었어요. 그 구멍 앞에 불상이 또 모셔져 있었어요. 작은 구멍마다 불상이 2기씩 안치되어 있으니 이 규모에 불상 수천 기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었어요. 아무리 작은 불상이라 해도 현대처럼 기계로 찍어내는 것도 아닌데 저 많은 구멍에 전부 불상 2기씩 안치한 근성에 놀랐어요.


"라오인들은 불상을 많이 모셔놓으면 더 좋다고 생각하나봐."


우리나라도 천불전 같은 것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라오스의 절을 보면 확실히 그렇게 불상을 많이 모셔놓은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여기는 무조건 불상을 많이 모셔놓고 있었어요. 내가 라오인들의 미적 감각을 이해 못 하는 것인지, 진짜 일단 불상을 많이 모셔놓고 보자는 것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어요. 그만큼 라오스의 절을 보면 불상을 많이 모셔놓고 있는데, 딱히 통일성이나 규칙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어요.




왓 씨싸켓은 매우 인상적이고 재미있었어요. 불상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가득했어요. 왓 씨싸켓을 구경하면서 기분이 매우 좋아졌어요. 이제 왓 프라깨우를 갈 차례. 길을 건너 왓 프라깨우로 갔어요.


"여기는 왜 입장료 안 받지?"


이것은 부처님 행운 마일리지 사용으로 인한 행운인가?


적립은 자유지만 사용은 자유가 아니란다.


라오스 비엔티안 왓 프라깨우


보수공사중이라 안에 아예 들어갈 수 없었어요.


"안 돼!"


왓 프라깨우는 워낙 유명해서 보고 싶었던 곳이었어요. 보기는 봤어요. 보수공사중인 외관을 보았어요. 내부로는 들어갈 수 없었어요. 태국 방콕 왓 아룬에 이어 라오스 비엔티안 왓 프라깨우도 이렇게 보수공사중이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어요.




"이제 뭐 하지?"


아직 오후 4시가 되지도 않았는데 왓 프라깨우가 보수공사중이라 오늘 일정이 다 끝나버렸어요. 빠뚜싸이를 가기에는 시간이 애매했어요.


"우체국이나 가볼까? 우체국에서 우표 같은 거 팔 수도 있잖아."


딱히 할 것은 없고, 우체국을 한 번 가볼 생각이었기 때문에 남은 시간에 우체국이나 가보기로 했어요. 가이드북을 보며 우체국을 향해 걸어갔어요.



왓 씨싸켓을 지나 가이드북에 나와 있는대로 빠뚜싸이를 향해 걸어갔어요.



"이거 뭐야?"


가이드북에 우체국이라고 나와 있는 자리에 있는 건물은 이런 상태였어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어요. 우체국은 다른 장소로 옮겼다고 알려주었어요. 아직 가이드북에 그 사실이 반영되지 않았던 것이었어요.


"숙소 돌아가자."


정말 더 이상 할 것이 없었어요. 이렇게 된 것, 탓 담이나 보고 돌아가기로 했어요.


탓 담은 이렇게 생겼어요.


라오스 비엔티안 탓 담


탓 담은 16세기 양식으로 지어진 탑이에요. 이 지역 설화에 의하면 이 탑에 머리 7개 달린 상상 속 동물인 나가가 살고 있대요. 원래는 금박으로 장식되어 있었지만 1828년 시암 군대가 비엔티안을 침략해 파괴할 때 금박을 전부 약탈해갔다고 해요.


탓 담을 보고 숙소로 터벅터벅 걸어갔어요.






"확실히 동남아는 친일 성향이 강하구나."



일본은 동남아시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원조도 많이 하고 교류도 많아요. 게다가 태국은 대표적인 친일 국가이구요. 대동아공영권이 우리에게는 망언이지만, 동남아시아 역사를 보면 이 사람들이 솔깃했을만 하기도 해요.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에 지독하게 착취당하고 있었으니까요. 일본 깃발이 그려진 버스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여기도 일본이 공을 꽤 들였다는 것을 느꼈어요. 게다가 라오스 여행붐은 일본에서 먼저 일어났어요. 일본에서 라오스 여행붐이 한물 갔을 때 우리나라에 라오스 여행붐이 분 것이에요. 이런 쪽은 아직도 일본 것 많이 베끼고 있거든요.


'영어도 안 통하는데 일본어나 말하면서 다녀봐?'


설마 일본어로 이야기한다고 말이 통할라구. 그럴 확률은 너무나 희박했어요. 일본어를 공부 안 한 지 10년도 넘었지만 간단한 일본어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일본어 능력을 떠나서 일본어를 아는 라오인 찾기가 영어 아는 라오인 찾기보다 쉬울 것 같지 않았어요.



"이 근처에 서점 하나 있어. 들렸다 갈래?"

"응. 거기 가보자."


친구가 근처에 서점이 하나 있는데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어요. 한 번 가보자고 했어요. 아까 간 서점은 말이 좋아 서점이지 헌책방이었어요. 이번은 뭔가 다를 거라 생각했어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서 근처였기 때문에 서점을 들려보기로 했어요. 라오스의 부처님 행운 포인트가 얼마나 강력한가 시험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서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라오어판을 구하고 싶었어요. 다른 책들도 구할 수 있으면 구하구요.


지도를 보며 서점으로 갔어요. 서점은 깔끔하고 현대적이었어요.



'여기에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겠다!'


기대가 절망으로 바뀌는 데에 필요한 시간은 딱 5분이었습니다. 그 이상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기대의 뒷면은 절망. 이번에는 되겠다는 느낌이 짜릿하게 왔지만, 이건 답이 없다는 생각으로 바뀌어버렸어요. 서점은 분명히 컸어요. 그러나 그 안에 라오어로 된 책은 거의 없었어요. 있었는지조차 모르겠어요. 온통 외국 서적 뿐이었어요. 서점 규모를 보면 이 나라의 교보문고급인 거 같은데 그 안에 책이라고는 죄다 외국 책 뿐이었어요. 아까는 헌책방이니 그러려니 했어요. 그렇지만 여기는 분명히 새책을 팔고 있었어요. 그 새 책이 모두 외국 서적일 뿐.


너무 허탈해서 내부 사진조차 찍지 않았어요. 친구도 서점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잃어버렸어요. 결과가 너무 안 좋아서 같이 다니는 친구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차라리 무시하고 지나갔으면 환상이라도 남았을텐데 환상조차 남지 않았어요.


"여기는 없어."

"그런가?"

"여기는 자국어로 된 책 자체가 없잖아.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을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다른 책도 없잖아."

"욕심을 버려."


친구가 위로를 하며 현실을 직시하라고 했어요. 현실을 직시할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이 정도면 좌절 수준이 아니라 절망이었거든요. 왜 라오스에 왔는지조차 혼란스러워지고 있었어요. 라오스에 올 때 라오어를 몇 마디라도 더 익히고 라오어로 된 책도 구하고 제 라오어 공부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도 사귀려고 했어요. 그 목적 모두가 이제 와르르 무너지려 하고 있었어요.


'이러려면 라오스를 왜 왔지?'


차라리 태국 쑤코타이나 갈 걸 그랬나? 인도네시아를 더 둘러볼 걸 그랬나? 나는 지금 왜 내 피같은 돈을 들여서 이 나라에 왔지?


머리가 어지러웠어요.


'아니야, 내 목적은 반드시 달성할 수 있을 거야!'


현실부정과 함께 오기가 생겼어요. 이것은 '오기'라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어요. '독기'였고 '악'이었어요. 여행을 위해 쓴 돈을 회수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원래 목표를 달성하는 것. 학원 강사로 일하며 받은 스트레스의 총합만큼 오기가 생겼어요. 목표 중 단 하나라도 꼭 달성하기로 했어요.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 라오어판이 없어도 좋아요. 그 책이 존재하는지나 확실히 알아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먼 미래의 어느 순간을 위하여, 언젠가 라오스에 라오어로 된 책이 많이 출간될 그때를 위해서 라오어를 물어볼 수 있는 라오인 친구 하나만큼은 꼭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숙소로 돌아와 샤워를 했어요. 블로그 지인분께서 제가 머물고 있는 숙소로 찾아오셨어요. 인사를 나눈 후, 신닷을 먹으러 갔어요.


"무단횡단하면 어떡해요!"


태국, 인도네시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주 당연하게 무단횡단을 했어요. 그러자 블로그 지인분께서 놀라서 소리치셨어요. 그제서야 여기에서 무단횡단하는 사람이 저 뿐이라는 것이 보였어요.


차도 오토바이도 다른 동남아시아에 비해 느긋하게 달리고 있었어요. 규정속도를 아주 칼같이 지키는 것 같았어요. 베트남,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는 차와 오토바이가 빨리 달리고 싶은데 길이 꽉 막혀서 못 달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여기는 저들 나라였다면 훨씬 더 빠르게 밟을만한 여유로운 상황인데도 악셀레이터를 마구 밟지 않았어요.


길가를 보았어요. 길가는 역시나 매우 깨끗했어요.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깔끔함이었어요. 라오스의 길거리는 못해도 우리나라 정도는 될 정도로 깔끔했어요. 그 깔끔한 길거리에서 쥐 한 마리가 가고 있었어요.


"이거 안 뛰네?"


보고 어이없어서 웃었어요. 분명히 쥐 바로 옆에 제가 걸어가고 있었어요. 이러면 보통 쥐가 후다닥 달려서 도망치기 마련이에요. 그런데 이 쥐는 아주 느긋하게 발발발 기어가고 있었어요. 일부러 발로 땅을 쾅 내리쳐서 쥐를 달리게 할까 하다가 말았어요.


"이 나라는 차도 느긋하게 달려가고 쥐도 느긋하게 기어가네."


웃으며 블로그 지인분을 따라 신닷 식당으로 갔어요. 신닷은 매우 맛있었어요. 삼겹살과 샤브샤브를 같이 먹는 느낌이었어요. 신닷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라오인들이 와서 앉았어요. 물이 끓자 개인적으로 가져온 라면을 꺼내어서 면발을 불판 밑쪽에 끓고 있는 물에 집어넣었어요.


"쟤 먹을 줄 아네."


면발을 육수에 집어넣는 것을 보고 웃었어요.


블로그 지인분께서 라오스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어요. 너무 재미있었어요. 그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 두 가지는 이것이에요.


하나는 라오인들은 화를 내면 지는 것으로 여긴대요. 그래서 화를 잘 내지 않는다고 해요.


다른 하나는 라오인들은 느긋하고 현실에 만족하며 사는 경향이 있대요. 요즘 젊은층은 물질에 욕심을 내는 경향이 그 윗세대보다 강해지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요즘 라오스에 절도, 날치기 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요. 라오인들은 라오스로 넘어온 베트남인들이 그러는 거라고 하는데, 그분께서 자기가 생각해도 그 말이 맞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라오인들은 그렇게 열심히 안 살아요. 베트남인들이 열심히 살죠."


그 말에 배를 잡고 깔깔 웃었어요. 그 말이 너무 확 와닿았어요. 베트남이나 라오스나 그 사회 속에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정확히는 잘 몰라요. 제가 본 것은 어디까지나 스쳐지나가는 관광객의 입장. 그러나 이 말이 너무나 와닿았던 것은 양국의 기념품 차이 때문이었어요. 베트남은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이것저것 만들고 하는데 라오스에서는 그런 느낌을 전혀 못 받았어요. 베트남은 여성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어떻게든 관광상품으로 만들어보려고 노력하는데, 라오스는 여성 전통 의상인 씬을 관광상품으로 만들려는 의욕 자체가 없어보였어요.


블로그 지인분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낸 후 숙소로 바로 돌아갈까 하다 야시장을 가보기로 했어요.



한국인들이 많이 보였어요. 오랜만에 술을 마신데다 아침 일찍부터 일정을 시작했더니 피곤해서 야시장을 대충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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